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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요4:46-54)

본문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서 두 번째로 나타내신 이적 선포의 말씀입니다(요 4:46, 5
4). 이 말씀은 하나밖에 없었던 외아들이 병의 침노를 받아 죽음 앞에 자식을 빼앗겨 버려야만 하는 처절한 절망의 순간 앞에 서 있던 그 아버지에게 부활의 소망을 던진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I. 아버지의 신앙을 봅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자식의 아버지는 왕의 신하라고 하였습니다(요 4:46). 왕의 신하는 당시 갈릴리 분봉왕인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의 신하 구사(눅 8:3)이거나 아니면 헤롯 안티파스의 첫동생 마나엔 중의 한 사람인지 모릅니다. 당시 궁중의 높은 관직에 몸담은 사람이었음에 확실합니다.
1. 그가 목수의 아들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4장 47절에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심을 듣고 가서… 라고 하였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의 거리는 약 34km의 먼 공간이 매개되어 있었습니다. 도보로 약 이틀간의 먼 길이었습니다. 왕의 신하가 일개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를 찾아 온 것입니다. 자기 밑에 그가 부리는 많은 신하가 있음에도 본인이 직접 예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 본문은 그가 … 가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분이나 권위나 처신에 대한 입장 따위는 아랑곳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예수를 찾아뵈올 수밖에 없는 긴박한 문제를 가지고 먼길의 괴로움도 생각지 않고 예수를 찾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에 대한 그의 신앙의 행동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2. 그는 아들의 죽음 문제를 가지고 예수를 초청하러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 4장 46절에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7절 중에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저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큰 문제를 가지고 예수를 찾았습니다.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만난 죽음의 문제였습니다. 여기 아들은 '그 아들'이란 정관사가 있는 것으로 보면 외아들, 곧 독자일 지도 모릅니다. 그는 아들이 만난 죽음 문제를 가지고 예수께 온 것입니다. 화급하기 짝이 없는 그의 모습은 49절에 또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라고 강청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그 아들'을 '아이'라고 말함으로 어린아이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만난 질병과 죽음 앞에서 부성과 모정의 한계를 느낀 자였습니다. 왕의 신하라고 하는 권력과 신분과 사회적 명예의 한계를 느낀 자였습니다. 인생이 만나는 죽음의 실존 앞에 인간의 본질적 한계를 절감한 자였습니다. 정치니, 경제니, 문화니, 교육이니, 과학이니, 예술이니, 철학이니, 심리학이니, 사회학이니, 우주공학이니, 해양공학이니, 천문학이니, 지리학이니, 의학이니 하는 등등의 것들이 도대체 무엇들인가 하는 사실을 직감한 자였습니다. 아버지라고 하는 이름이 아들이 만난 질병과, 그 질병으로 인하여 만나는 죽음에서 얼마나 허무하고 무능한가를 직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당시 사회에서 쇼킹한 화제의 인물이 되어 버린 예수를 찾아오는 종교적, 신앙적 결단만이 자기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까지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아들의 문제, 아니 그 아들이 만난 죽음 문제를 가지고 예수에게로 달려 왔습니다. 참으로 중대한 인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께 좇아온 아버지였습니다. 정말 아버지다운 걸음을 걸었던 자였습니다. 결코 진학문제나 교육문제가 아닌, 정치문제나 경제문제가 아닌 생명의 문제, 그것도 자기 아들의 생명문제를 가지고 예수께 온 것입니다.
3.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는 아들의 질병과 죽음 문제를 가지고 자기를 찾아온 그 아버지에게 '표적'과 '기사'만을 기다리는 그 세대의 영적 나약성을 탄식하였습니다(요 4:48). 그러면서도 그 아비에게 이르기를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 고 하였습니다(요 4:50). 예수께서 주신 이 소망의 메시지는 그를 찾아온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께서 가버나움 자기 집까지 직접 오셔야 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집에 친히 오셔서 기적과 표적을 나타내어 주실 것을 희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그래도 그 아버지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라는 예수의 폭탄적인 복음의 메시지에 믿음을 걸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말씀이 곧 예수의 인격과 능력의 표현임을 믿은 것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그 위대하신 능력의 말씀이 그 인격을 노크하는 순간, 그에게는 그만 그 시간에 믿음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먼저 그 순간에 자신에게 있었던 불안과 공포와 절망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마음은 흥분되었고, 소망의 확신 속에서 집을 향하여 다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제 아들이 병에서 놓인다는 희망의 빛 속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그 아들, 곧 외아들을 죽음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는 확실한 소망 가운데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놀라운 장면을 성경은 본문 50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라고 하였습니다.
4. 그는 자기 믿음대로 결과를 체험한 자였습니다. 그는 믿고 내려가는 길에서(요 4:51) 자기 집의 종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종들은 자기 주인께 이 기쁜 소식을 빨리 알리고 싶어 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향하여 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주인을 만난 종들은 "아이가 살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신하는 "그때가 언제부터였느냐"고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종들이 "어제 7시(오후 1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요 4:52). 이 말을 들은 그 아버지 왕의 신하는 바로 예수께서 자기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고 하신 그때인 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요 4:53). 그가 믿고 간 그대로 되었음을 체험하였습니다.
5. 더하는 믿음의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 본문 53절에 …자기와 온 집이 다 믿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이 아닌가! 우리 속담에 '병주고 약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이 속담은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된 경우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속담을 문자대로 직역해서 본문에 적용해 본다면,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은 결국 그 아버지와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께서 계획하신 섭리적인 병이 아닌가! 아들이 만난 죽음에 이르는 육신의 병 때문에 오히려 그보다 더 중하고 급한 영혼의 중병이 고침 받는 믿음을 얻게 되고, 그 결과 그와 온 집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인생에게 임하는 고통이 모두가 불행한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행하신 두 번째 이적도 그 이적의 목적인 믿음을 일으키는 방편적 목적을 성취하고야 말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요 4:54, 2:11). 성도 여러분, 아이의 질병을 계기로 아이의 아버지만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예수님께 간구했습니다. 본문 53절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아이가 죽을 병에 걸림으로써 아버지만이 근심한 것이 아님을 나타내 줍니다. 아이는 온 가족을 근심케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것이 오히려 온 가족을 구원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 가정을 다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온 가족이 함께 믿는 가정이야 그 고통을 모르지만 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그 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 가족을 전도하는 일이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본문에 나타난 신하의 가정은 일시에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극한 환난이 닥칠 때 원망과 불평, 낙심을 금하고 자신의 신앙을 돌아봄은 물론, 나아가 주님의 크신 은총을 기대하는 적극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고 하지 않았습니까
Ⅱ. 오늘 아버지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 세대의 아버지들과 어머니된 자들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니다. 오늘의 아이들은 너무 똑똑합니다. 너무 민첩합니다. 너무 아는 것이 많습니다. 아니 너무 빨리 자라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가 볼 때에는 무섭다고 할만큼 체육과 지육이 급속적으로 계발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사고(思考)가 아니라 어른들의 사고가 되어 버린 감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니 어떤 때는 우리 시대보다 저들의 생각이 앞서 가 버립니다. 21세기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저렇게 확실히 다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시는 오늘 우리 자녀들은 정말 건강한 것인가 저 유대 가버나움의 왕의 신하의 아들과 같이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가진 자녀는 없는 것일까 성경은 확실하게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하늘 아래 모든 아이들은 다 병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중병에 걸려 있다고 합니다. 그 병은 죽음에 이르고야 말 병이라고 합니다. 무슨 병인가 바로 불신앙의 조상(부모)들로부터 유전받은 원죄(혹은 본죄)라는 병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성장하면서 범하는 자범죄라는 병입니다. 아이들의 육신은 완전한데 그 영들이 이미 죽었고, 또 죽어가고 있다는 이 무서운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들의 불신앙이 자녀에게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사망으로의 이어짐입니다. 거기에다 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오는 온갖 무신론적이요 유물론적이요 우상숭배적이요 진화론적이요 미신적인 문화와 거짓 과학주의 교육의 공해가 사실상 육신까지 통제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온갖 사탄숭배적 시대의 흐름 때문에 모든 이 시대의 아이들은 무서운 죄악의 공해를 먹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아니 하나님을 모르는, 아니 하나님을 반역하는 무신론적이요 반신론적인 인본주의 교육은 이 시대의 니므롯(Nimrod) 자손을 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창 10:8, 9). 저들은 이 세상의 영걸(英傑)들은 될 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중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의 영의 아버지가 된 교회 전도의 본질적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교회가 주장하는 어린이 전도, 어린이 천국잔치의 시대적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가정들 가운데 영적으로 병중에 있는 자녀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는 예수 안에서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데 자녀들은 주 안에서 양육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들입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런 자녀들은 중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된 사명을 다해야 됩니다. 우선 자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부모들이 자녀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나올 때마다 주께 죽어가는 내 아들을 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간절한 기도 말입니다. 눈물의 기도 말입니다. 회개하는 기도 말입니다. 복을 비는 기도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받아야 합니다. 이 일엔 그 어떤 장애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부모된 자가 자식을 위하여 예수께 나오는 일이 얼마나 당연한 일입니까 결국 자녀문제는 이른바 종교문제, 더 확실히 말하자면 신앙문제만으로 해결해야 됩니다. 이 문제해결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대대적인 어린이 새소식반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유치부 그룹의 모임이 가장 왕성합니다. 정말 잘 하는 일입니다. 정말 복받은 일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이 예수의 소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부모들에게 소망을 줍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이 예수의 선언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가정에 빛나는 미래의 축복입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이 예수의 약속은 오늘의 조국의 교회를 향한 21세기 새 비전이 실려 있습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이 예수의 말씀은 대 종말 세계 선교를 분부받은 경향의 세계적 기업의 약속입니다. 오늘의 아버지들이여! 오늘의 어머니들이여! '가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하시는 예수님의 이 음성을 듣고 있는가 그리고 믿고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를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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