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변화시켜라 (요5:1-18)
본문
옛날 어른들이 "인생에는 3번의 기회가 있다." 라고들 말을 합니다. 살아오면서 생각을 해보니 어쩌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아-어쩌면 그 때가 내 인생의 기회였구나 하는 생각 이 드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도 그런 싸이클이 있다고 합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인생 의 싸이클이 최절정에 이를 때가 있다고 하는데, 그 때를 기회라고 한 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전도서3:1에 보면"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을 이룰 때가 있나니."하여 어떤 목적을 이룰 때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이러한 "기회" 혹은 "인생의 때"에 대한 문제를 생각 해보면서 "운명을 변화시켜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읽은 성경속에 나타 난 한 사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베데스다"란 연못이 나옵니다. 그리고 38년된 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연못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성문곁에 있는 작은 연못입니다. 이 성문은 옛날에는 양 떼들을 몰고 드나드는 문으로 사용해서 "양 문"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그 문 옆에 있는 작은 연못입니다. 고고학자들이 그 연못을 발굴했는데 넓이가 17평 방미터정도 되는 아주 작은 연못입니다. 이 연못 옆에는 행랑-즉 조그마한 마루방이 다섯 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행랑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몰려와서 앉아있었습니다. 왜냐면 전 설에 의하면 이 연못이 1년에 한차례씩 물이 꿈틀거리면서 동하는데, 그 때에 이 연못에 제일 먼저 뛰어든 사람은 무슨 병이라도 고침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연못에는 소경, 절름발이, 중풍병자, 피부병자, 등 각색 병 자들이 전국 각처에서 모여들어 이 행랑에서 물이 동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냄새와 신음과 고통의 현장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 베데스다 연못가는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풍속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첮째로, 이 사회는 환자의 사회, 병든 사회라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각종병자들이 모여있는 집단입니다. 치료와 수술 이 요구된 사람들이 모여서 신음과 냄새를 피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도 병든 사회입니다. 타임지의 발행인이요, 사회학자인 도노반이 란은 사회와 현실을 읽는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현대사회를 평 하여 "현대는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복합난치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지구는 오염과 환경파괴로 인류의 장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 지구의 장래가 우리의 후세대가 어떻게 살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는 먹구름으로 덮여있습니다.
그런데도 소수의 몇 사람들만 깨어서 걱정들을 하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 몰라라하고 더욱 소비의 쾌락과 방탕의 낭떠러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이미, 서구사회에는 성의 문 란, 마약중독, 알콜중독이 심각한 사회의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서양에서는 결혼한 사람들 중 2쌍중 한 쌍이 이혼을 합니다. 이제 이혼을 한 사람이 안 한 사람보다도 더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혼을 안 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될 지경입니다. .병든 세상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병만이 아니라, 우리들 개인 개인들은 또 얼마 나 많은 육체적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모두가 상처를 받아서 속으로 앓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습니다. 베데스다 못가만 병든 사회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병든 사 회입니다. 또하나가, 이 베데스다 못가는 철저한 기회주의자들의 경쟁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1년에 한 차례씩 물이 동하면, 거기에 모여있던 각종 병자들이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먼저 뛰어들려고 아우성을 합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한 사람만 뛰어들려고 합니다. 모두가 아픈 사람들인데 남의 아픔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생각하면 자기가 죽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정도 의리도 친구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그렇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를 이용하고 배반해서라도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일입니다만, 저는 토요일 어떤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좀 뵙기를 원한다. 고 아주 정중하 게 .그러면서 서울에서 제가 잘아는 목사님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래서 한창 설교를 준비하다가 시내까지 나갔습니다. 만났는데 저는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 아내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제 아이들의 나이까지도 알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결국 내놓은 말이 "동아대백 과 사전"을 사달라는 세이즈 맨이었습니다. 괘씸했습니다. 바빠서 설교준비에 정신이 없었는데 , 제가 아는 목사님 의 이름을 대고 목사님을 만나보려고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왔다 해서 나갔는데 생각하니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 습니다. 손님이어서 찻값을 내가 당연히 내려고 했지만, 속으로 내 찻값 만 내고 나는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내가 불쾌한 표정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 더니 이런 변명을 했다. 자기 아버지가 의사인데 작은 부인을 얻어서 미국으로 가고 말았다. 어머니와 3남매가 남았는데 조금 있는 재산은 위의 형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자기는 할 수 없이 세일즈를 하게되었는데 제일 먼저 자기 어머 니 교회의 목사님이 제일 먼저 자기의 책을 사주었다. 그래서 목사들을 상대로 세일즈를 하게 되었다. 목사들이 제일 책을 많이 사더라. 그래서 목사들에게 책을 팔려고 할 때, 그 목사와 연고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 고 또 그 사람의 호구조사를 해서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세상에 목사들이 제일로 순진하더란 것이다. 그 사연을 듣고는 제가 또 약해져서, 찻값은 내가 내고, 서울서 여기까 지 왔다고 해서 두 번째 찻삯-여비까지 3만원을 주어보냈다. 혼자 돌아오면서 참 세상이 무섭고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가 그렇다. 베데스다 못가처럼 병자의 사회요, 철저한 기회주의 적인 경쟁의 사회다. 이러한 베데스다 못가에 38년이나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한 병자가 나온다. 38년이나 병석에 누어있었다니. 이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일생을 병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런 각박하고 처절한 베데스다 못가에 이 38년된 병자는, 사실 나아보겠다고 누어있었지만 실은 도저히 그 경쟁에서 이 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절망적인 운명을 살고 있는 사람 이었다.
그런데 그 각박한 자리에, 베데스다 못가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길 에 이 베데스다 못에 들리셨다."고 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이 곳으로 오셨다고 했는데 이 명절이란 부림절이라는 이스라엘의 해방축제일이다. 파사의 식민지로 있을 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몰살당하려다가 구원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축 제일이었다. 이날 이스라엘에서는 먹고 마시고 춤추는 민족최대의 축제일이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이 축제의 분위기에 들떠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그 축제파티장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성문밖에 있는 이 비참한 사회를 찾으신 것이다. 온갖 환자들 중풍병자, 문둥병자, 소경, 혈기마른자. 반신불수.등 눈물겨운 사연과 신음으로 얼룩진 곳을 찾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보다는 아픔과 고독과 신음과 절망이 있는 곳에 늘 관심이 있으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곳, 자신을 원하는 곳을 주님은 어디든지 이렇게 찾아가신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필요한 곳이면 그 곳에 함께 하신다. 저는 우리교회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우리교회의 특색이 있다.
1.대체로 중산층들이 모였다. 대체로 지 식의 수준이 높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것은 자칫하면 많은 중산층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성도들이 그저 평안하고 익명의 안일 속에 빠져 우리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교회가 되기 쉽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만 모여서 예배로 도덕적인 면에 서 대체만족을 하고, 우리끼리 모여서 인사하고 우리끼리 모여서 친교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 주님처럼 저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더 많 은 관심과 헌신이 있어야한다. 더 많이 선교하고 더 많이 구제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더 더러운 곳을 찾아가야 하고 더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누군들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시는 주님의 관심을 우리가 알고 배워야 한다. 저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갈곳 과 안 갈곳을 정하고 사는 발걸음을 주의 해야한다. 이 세상에는 재미만 추구하다가는 우리의 신앙을 죽이는 사탄의 덫이 많이 있다. 저는 어느 이발소를 갔다가 놀랐습니다. 성종이 여러 여자를 좋아해서 부인 윤씨는 투기가 심했다. 너무 투기가 심하여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윤씨를 어떻게 할까 성종은 중신회의에 부쳤다. 이때 우의정 허정은 그 중신회의가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그 중신회의에 빠지려고 입궐을 하다가 일부러 높은 다리에서 떨어 졌다. 다리가 부러지고 몸이 크게 다친 것이다. 그래서 그 중신회의에 빠졌는 데 다음으로 연산군이 등장해서 어머니의 원한을 갚는다고 그 때 중신회의에 참석 한 대신들 42명을 다 죽였다.
그런데 허정은 그 중신회의에 빠졌던 고로 죽음 을 모면했다. 우리는 가야될 곳과 가서는 안될 곳을 잘 알아야한다. 자 주님께서 이 베데스다못가에 가셔서 이 38년이 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 사람에게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에 38년된 병자는 대답한다."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이렇게 있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니, "그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38년된 환자. 그의 운명이 바꾸어진 순간이었습니다. 38년동안 그 모진 운명에 시달린 사람이 그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론 우리가 다 압니다. 그러나 몇가지로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수많은 방법으로 그 운명의 사슬 을 끊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불행한 운명을 바꿔 보려고 몸부림을 다 쳐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불행한 운명의 사슬이 끊겨진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운명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내 운명을 바꾸길 원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나 면 됩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서 그의 운명은 180 도가 바꾸어 졌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마태도 예수를 만 나서 그의 운명이 180도 바꾸어졌습니다. 바울은 박해자였습니다.그런 바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운명이 180도 바꾸어져버렸 습니다. 어거스틴은 술주정뱅이요, 밀교의 섹스에 빠져서 쾌락에 빠진 탕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인생이 180 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김익두는 깡패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나서 목사가 되었 습니다. 김신조는 공비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 의인생이 180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요즘 의적이네 대도네 하는 조세형을 우리가 압니다. 그는 불행 한 사람이었으며 사회의 기생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인생이 180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교회 문장완집사는 아주 순한 사람 입니다. 아주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옛날에는 유명한 깡 패였습니다.그런 그가 예수를 만난 뒤에 저렇게 양이 되었습니다. 양도 아주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그의 운명이 다 바 꾸어지고 맙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었습니다. 소문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정말 관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말-관상이 있지만 관상이 조금 틀리는 것은 골상 때문에, 그래서 골상을 볼 줄 알아야한다고.그래서 관상보다 높 은 것이 골상,,,,,,그러나 골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심상이다. 돈을 벌어서 관상에 체계를 세우고 책을 내고자 했다. 간증 문. 보아주었던 사람들에게 간증문. 대부분이 맞았다. 그러나 몇 사람이 틀렸다. 왜 그럴까 사업실패, 병, 과부, 무자등.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문을 나오다가 교패를 발견. 다시 틀린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아. 그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충신교회에 나가보다가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 고, 상담을 하고 예수를 믿게되었다. 당시 언론 통합으로 기독교방송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의 재산 을 헌납하고 기독교 방송의 이사가 되고 지금은 장로가 되었다. 여러분! 그렇다. 예수는 운명을 바꾸는 분이다. 예수를 믿어라.아니 예수를 만나라. 돈으로도 공부로도 사주팔자 를 보아도 변하지 않은 우리의 운명을 예수를 믿을 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라. 두 번째로 이 사람은 아직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 38년간을 고칠 수 없었다면 이제 포기할 만한 데 아직도 베데스다못가에 누워 있다. 그는 어쩌면 그의 병만큼이나 그의 소망도 끈질긴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여 물이 동할 때에 제가 들어가고자 하지만 누가 넣어줄 사람이 없이 다른 사람 들이 먼저 들어가나이다."고 한다. 이 말을 통해서 그는 아직도 간절히 낫고자 하는 소원과 더불어 38년이 되었는데도 포 기하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몸부림을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소원을 품고 있는 사람을 주님은 알아보십니다. 아니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 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아무리 세상에 절망하고 나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을 지라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변화되어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주님은 반드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화순의 김형기 장로님-의사인데 자기아내가 변하여 왔다. 그래서 자기도.그러나 안된다. 기도원을 가도 부흥회를 가도 다른 사람은 다 된다는데 자기는.
그런데 어느 날 부흥회가 끝나고 자기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울면서 나오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다시 교회로.울면서 기도하다가 방언을 하고. 그 뒤로 한 일이 이전에 했던 일보다 많다. 포기하지 말자. 주님은 희망을 가진 사람, 비젼을 가진 사람을 찾아오신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주님 이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이 주님의 두 마디 말씀은 어쩌면 환자를 놀리는 말 같이도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말씀을 간절하게 받아드리고 순종을 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와는 대조적인 사람인 나아만 장군을 볼 수가 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하자 그는 우리나라에 있는 강이 더 좋은데 그런 짓을 해서 낫겠느냐면서 되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말씀의 순종에 기적이 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말씀을 의지하자. 말씀을 순종하자. 결론삼아 이제 고침받은 이 사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맺 자. 14절이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 를 범하지 말라." 우리는 은혜에 감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본래 의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은 것을 잘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회개를 말할 때, 회는 있는데 개가 없다고 한다. 은혜 를 받았으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시 험이 들어올 수 있다. 옛말에 인무원려-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염려를 갖지 않으면 필유근우-가까운 곳에 우환이 닥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영원을 천국에서 살 것인가 지옥에서 살 것인가 하는 염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절제없이 사는 사람은 머지 않아 우환이 닥친다. 여러분! 이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그는 38년의 병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힘으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그의 운명이 바꾸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진정 인간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아픔과 혼돈과 생로병사의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주여! 내가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기만 하면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성격을, 습관을, 가치관을 그리고 운명을 바꾸십니다. 이 병든 세상, 이 각박한 생존경쟁에서 진정 예수를 만남으로 운명이 변화되어지는 우리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가 현대사회를 평 하여 "현대는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치료하기 어려운 복합난치병을 앓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지구는 오염과 환경파괴로 인류의 장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이 지구의 장래가 우리의 후세대가 어떻게 살것인지 예측을 할 수 없는 먹구름으로 덮여있습니다.
그런데도 소수의 몇 사람들만 깨어서 걱정들을 하지,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나 몰라라하고 더욱 소비의 쾌락과 방탕의 낭떠러지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그런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이미, 서구사회에는 성의 문 란, 마약중독, 알콜중독이 심각한 사회의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서양에서는 결혼한 사람들 중 2쌍중 한 쌍이 이혼을 합니다. 이제 이혼을 한 사람이 안 한 사람보다도 더 많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혼을 안 한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될 지경입니다. .병든 세상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병만이 아니라, 우리들 개인 개인들은 또 얼마 나 많은 육체적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는 지 모릅니다.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느라, 모두가 상처를 받아서 속으로 앓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지 알 수 없습니다. 베데스다 못가만 병든 사회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가 병든 사 회입니다. 또하나가, 이 베데스다 못가는 철저한 기회주의자들의 경쟁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1년에 한 차례씩 물이 동하면, 거기에 모여있던 각종 병자들이 자기의 병을 고치기 위 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먼저 뛰어들려고 아우성을 합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자기 한 사람만 뛰어들려고 합니다. 모두가 아픈 사람들인데 남의 아픔을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남을 생각하면 자기가 죽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정도 의리도 친구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도 그렇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를 이용하고 배반해서라도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지난 일입니다만, 저는 토요일 어떤 낯선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좀 뵙기를 원한다. 고 아주 정중하 게 .그러면서 서울에서 제가 잘아는 목사님의 이름을 댔습니다. 그래서 한창 설교를 준비하다가 시내까지 나갔습니다. 만났는데 저는 전혀 알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 아내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 제 아이들의 나이까지도 알고 있었다. 깜짝 놀랐지만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아서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결국 내놓은 말이 "동아대백 과 사전"을 사달라는 세이즈 맨이었습니다. 괘씸했습니다. 바빠서 설교준비에 정신이 없었는데 , 제가 아는 목사님 의 이름을 대고 목사님을 만나보려고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왔다 해서 나갔는데 생각하니 불쾌했습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 습니다. 손님이어서 찻값을 내가 당연히 내려고 했지만, 속으로 내 찻값 만 내고 나는 나가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내가 불쾌한 표정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 더니 이런 변명을 했다. 자기 아버지가 의사인데 작은 부인을 얻어서 미국으로 가고 말았다. 어머니와 3남매가 남았는데 조금 있는 재산은 위의 형이 사업을 하다가 망하고 자기는 할 수 없이 세일즈를 하게되었는데 제일 먼저 자기 어머 니 교회의 목사님이 제일 먼저 자기의 책을 사주었다. 그래서 목사들을 상대로 세일즈를 하게 되었다. 목사들이 제일 책을 많이 사더라. 그래서 목사들에게 책을 팔려고 할 때, 그 목사와 연고가 있는 사람을 알아보 고 또 그 사람의 호구조사를 해서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세상에 목사들이 제일로 순진하더란 것이다. 그 사연을 듣고는 제가 또 약해져서, 찻값은 내가 내고, 서울서 여기까 지 왔다고 해서 두 번째 찻삯-여비까지 3만원을 주어보냈다. 혼자 돌아오면서 참 세상이 무섭고도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회가 그렇다. 베데스다 못가처럼 병자의 사회요, 철저한 기회주의 적인 경쟁의 사회다. 이러한 베데스다 못가에 38년이나 병들어 신음하고 있는 한 병자가 나온다. 38년이나 병석에 누어있었다니. 이처럼 비참한 운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또 있을까! 일생을 병으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이런 각박하고 처절한 베데스다 못가에 이 38년된 병자는, 사실 나아보겠다고 누어있었지만 실은 도저히 그 경쟁에서 이 길 수 없는 사람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절망적인 운명을 살고 있는 사람 이었다.
그런데 그 각박한 자리에, 베데스다 못가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성경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길 에 이 베데스다 못에 들리셨다."고 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이 곳으로 오셨다고 했는데 이 명절이란 부림절이라는 이스라엘의 해방축제일이다. 파사의 식민지로 있을 때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에 의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몰살당하려다가 구원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축 제일이었다. 이날 이스라엘에서는 먹고 마시고 춤추는 민족최대의 축제일이었다. 지금 예루살렘에는 이 축제의 분위기에 들떠 있는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그 축제파티장에 가시는 것이 아니라, 이 성문밖에 있는 이 비참한 사회를 찾으신 것이다. 온갖 환자들 중풍병자, 문둥병자, 소경, 혈기마른자. 반신불수.등 눈물겨운 사연과 신음으로 얼룩진 곳을 찾으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곳보다는 아픔과 고독과 신음과 절망이 있는 곳에 늘 관심이 있으신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필요한 곳을 찾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으신 것이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곳, 자신을 원하는 곳을 주님은 어디든지 이렇게 찾아가신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 주님은 누구든지 주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필요한 곳이면 그 곳에 함께 하신다. 저는 우리교회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았다. 우리교회의 특색이 있다.
1.대체로 중산층들이 모였다. 대체로 지 식의 수준이 높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것은 자칫하면 많은 중산층 지식인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교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우리성도들이 그저 평안하고 익명의 안일 속에 빠져 우리자신들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적인 교회가 되기 쉽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끼리만 모여서 예배로 도덕적인 면에 서 대체만족을 하고, 우리끼리 모여서 인사하고 우리끼리 모여서 친교하는 그런 교회가 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진정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 주님처럼 저 우리보다 못한 사람들, 어려운 이웃을 향하여 더 많 은 관심과 헌신이 있어야한다. 더 많이 선교하고 더 많이 구제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더 더러운 곳을 찾아가야 하고 더 아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 누군들 예루살렘에서 열리는 축제에 가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가시는 주님의 관심을 우리가 알고 배워야 한다. 저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시대는 우리가 갈곳 과 안 갈곳을 정하고 사는 발걸음을 주의 해야한다. 이 세상에는 재미만 추구하다가는 우리의 신앙을 죽이는 사탄의 덫이 많이 있다. 저는 어느 이발소를 갔다가 놀랐습니다. 성종이 여러 여자를 좋아해서 부인 윤씨는 투기가 심했다. 너무 투기가 심하여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윤씨를 어떻게 할까 성종은 중신회의에 부쳤다. 이때 우의정 허정은 그 중신회의가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일부러 그 중신회의에 빠지려고 입궐을 하다가 일부러 높은 다리에서 떨어 졌다. 다리가 부러지고 몸이 크게 다친 것이다. 그래서 그 중신회의에 빠졌는 데 다음으로 연산군이 등장해서 어머니의 원한을 갚는다고 그 때 중신회의에 참석 한 대신들 42명을 다 죽였다.
그런데 허정은 그 중신회의에 빠졌던 고로 죽음 을 모면했다. 우리는 가야될 곳과 가서는 안될 곳을 잘 알아야한다. 자 주님께서 이 베데스다못가에 가셔서 이 38년이 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 사람에게 물으셨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에 38년된 병자는 대답한다."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 이렇게 있나이다." 그러자 주님이 그 사람을 보고 다시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니, "그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38년된 환자. 그의 운명이 바꾸어진 순간이었습니다. 38년동안 그 모진 운명에 시달린 사람이 그 운명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론 우리가 다 압니다. 그러나 몇가지로 다시 정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 수많은 방법으로 그 운명의 사슬 을 끊어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 불행한 운명을 바꿔 보려고 몸부림을 다 쳐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불행한 운명의 사슬이 끊겨진 것입니다. 예수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운명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인생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내 운명을 바꾸길 원하는 사람은 예수를 만나 면 됩니다.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서 그의 운명은 180 도가 바꾸어 졌습니다.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마태도 예수를 만 나서 그의 운명이 180도 바꾸어졌습니다. 바울은 박해자였습니다.그런 바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운명이 180도 바꾸어져버렸 습니다. 어거스틴은 술주정뱅이요, 밀교의 섹스에 빠져서 쾌락에 빠진 탕아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인생이 180 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김익두는 깡패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나서 목사가 되었 습니다. 김신조는 공비였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 의인생이 180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요즘 의적이네 대도네 하는 조세형을 우리가 압니다. 그는 불행 한 사람이었으며 사회의 기생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도 예수를 만나서 그의 인생이 180도 바꾸어져버렸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교회 문장완집사는 아주 순한 사람 입니다. 아주 착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도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옛날에는 유명한 깡 패였습니다.그런 그가 예수를 만난 뒤에 저렇게 양이 되었습니다. 양도 아주 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그의 운명이 다 바 꾸어지고 맙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서울에 유명한 관상쟁이가 있었습니다. 소문이 나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정말 관상이 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말-관상이 있지만 관상이 조금 틀리는 것은 골상 때문에, 그래서 골상을 볼 줄 알아야한다고.그래서 관상보다 높 은 것이 골상,,,,,,그러나 골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심상이다. 돈을 벌어서 관상에 체계를 세우고 책을 내고자 했다. 간증 문. 보아주었던 사람들에게 간증문. 대부분이 맞았다. 그러나 몇 사람이 틀렸다. 왜 그럴까 사업실패, 병, 과부, 무자등.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문을 나오다가 교패를 발견. 다시 틀린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아. 그 사람들이 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호기심으로 충신교회에 나가보다가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 고, 상담을 하고 예수를 믿게되었다. 당시 언론 통합으로 기독교방송이 위기에 빠졌을 때 자신의 재산 을 헌납하고 기독교 방송의 이사가 되고 지금은 장로가 되었다. 여러분! 그렇다. 예수는 운명을 바꾸는 분이다. 예수를 믿어라.아니 예수를 만나라. 돈으로도 공부로도 사주팔자 를 보아도 변하지 않은 우리의 운명을 예수를 믿을 때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라. 두 번째로 이 사람은 아직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람, 38년간을 고칠 수 없었다면 이제 포기할 만한 데 아직도 베데스다못가에 누워 있다. 그는 어쩌면 그의 병만큼이나 그의 소망도 끈질긴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주여 물이 동할 때에 제가 들어가고자 하지만 누가 넣어줄 사람이 없이 다른 사람 들이 먼저 들어가나이다."고 한다. 이 말을 통해서 그는 아직도 간절히 낫고자 하는 소원과 더불어 38년이 되었는데도 포 기하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몸부림을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소원을 품고 있는 사람을 주님은 알아보십니다. 아니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 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아무리 세상에 절망하고 나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을 지라도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변화되어야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주님은 반드시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화순의 김형기 장로님-의사인데 자기아내가 변하여 왔다. 그래서 자기도.그러나 안된다. 기도원을 가도 부흥회를 가도 다른 사람은 다 된다는데 자기는.
그런데 어느 날 부흥회가 끝나고 자기는 안 된다는 생각에 울면서 나오는데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다시 교회로.울면서 기도하다가 방언을 하고. 그 뒤로 한 일이 이전에 했던 일보다 많다. 포기하지 말자. 주님은 희망을 가진 사람, 비젼을 가진 사람을 찾아오신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이다. 주님 이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 이 주님의 두 마디 말씀은 어쩌면 환자를 놀리는 말 같이도 들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말씀을 간절하게 받아드리고 순종을 했습니다. 우리는 구약에서 이와는 대조적인 사람인 나아만 장군을 볼 수가 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하자 그는 우리나라에 있는 강이 더 좋은데 그런 짓을 해서 낫겠느냐면서 되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가 있다. 말씀의 순종에 기적이 있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다. 말씀을 의지하자. 말씀을 순종하자. 결론삼아 이제 고침받은 이 사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맺 자. 14절이다."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 를 범하지 말라." 우리는 은혜에 감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본래 의 생활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우리가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은 것을 잘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는 회개를 말할 때, 회는 있는데 개가 없다고 한다. 은혜 를 받았으면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시 험이 들어올 수 있다. 옛말에 인무원려-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염려를 갖지 않으면 필유근우-가까운 곳에 우환이 닥친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영원을 천국에서 살 것인가 지옥에서 살 것인가 하는 염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절제없이 사는 사람은 머지 않아 우환이 닥친다. 여러분! 이 베데스다 못가의 38년된 병자-그는 38년의 병상에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보려고 몸부림 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힘으로는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그의 운명이 바꾸어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예수를 만나면 이렇게 운명이 바꾸어집니다.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진정 인간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아픔과 혼돈과 생로병사의 문제를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예수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주여! 내가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기도하기만 하면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변화시키십니다. 여러분의 성격을, 습관을, 가치관을 그리고 운명을 바꾸십니다. 이 병든 세상, 이 각박한 생존경쟁에서 진정 예수를 만남으로 운명이 변화되어지는 우리 성도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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