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과 38년된 병자 (요5:1-16)
본문
예수 그리스도는 이제껏 유대인들과 충동을 자제해 오셨다. 그러나 5장에서는 예수 자신의 모습을 더 강하게 나타내 보이신다. 예루살렘을 두 번째 방문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논쟁을 피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시고 스스로 증거 하신다. 38년된 병자를 고치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는 문제 때문에 유대인들부터 배척 당하게 되는 근본적인 사건이 되고 만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의 하신 행동 속에는 무엇을 알리고자 하시려는 깊은 의도가 깔린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무엇을 알리고자 한 것일까요 고칠 수 없는 38년된 병자의 치료를 알리고자 한 것일까요 아니다. 예수님의 의도는 안식일의 잘못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을 알리고 예수 자신이 누구인지 안식일을 통해서 누구인지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5장 전체 본문에서 예수는 너무나도 강하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스스로 증거하고 계신다. 율법에 얽매여서 사랑도 모르고 자비도 모르고 예수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저 유대인들에게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밝히고 계신다. 요한 복음에서 끓임 없이 들려오는 말씀은 예수가 누구이신 가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 안식일까지 범하면서 병자를 고치어 주신 그 분은 누구 신가 18절에서 그 분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첫 번째:네가 낫고자 하느냐 1-9절 "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38년 된 병자가 있더라 . " 베데스다 연못에 행각 다섯이 있는데 거기에는 많은 병자들이 연못에 물이 동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물이 동할 때 맨 먼저 들어간 자는 병을 치료받는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물이 동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안식일 날 예수님이 그 곳에 나타나신 것이다. 예수님은 다른사람보다도 38년 된 병자를 보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다. 38년 된 병자는 자기에게 묻고 있는 자가 자기 병을 고쳐줄 분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병자는 오직 물이 동하는데 만 모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38년 된 병자에게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하셨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 말대로 그대로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믿어지십니까
베데스다 "은혜의 집" 이 연못은 폭이 50-67m 길이 96m 네 귀퉁이에 행각이 하나씩 있고 가운데 하나가 더 있었다. 38년 된 병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다. 복음 적으로는 예수를 믿기 전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서 저 유대인들하고 38년 된 병자하고 이 두 모습을 살펴보므로 예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자였다. 말이 38년이지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꼼짝 못하는 중병 환자다. 우리들 같으면 어떠할까요 아마 자포자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죽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이 38년 된 병자를 보세요 그 어디에도 죽고자 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더 살려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예수는 그 많은 병자들 중에서 이 병자의 간절한 마음을 본 것이다. 예수는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서 첫마디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물으셨다. 38년 병자에게 얼마나 기쁜 소리인가 그러나 병자는 예수를 몰라보았다.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찾아 왔지만 저들은 예수를 모르고 있었다. 병자가 자기 병을 고쳐주실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예수가 자기들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몰랐다. 오늘날도 이 시대 예수가 우리의 문제 해결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인간들은 38년된 병자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평생을 애쓰며 살아간다. 인간은 어떤 문제 하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인간 스스로 가는 길은 멸망의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은 멸망의 길이었다. 38년 된 병자 혼자서 아무리 물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인간 스스로 아무리발버둥치며 살아도 결국은 절망적인 삶이다 인간은 예수를 만나야만 이 된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삶은 결국은 비참한 삶이 되고 만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38년 된 병자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로마의 속국에 시달리면서 절망적인 가운데 살고 있었다.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다른 모습은 무엇입니까 38년 된 병자는 그 절망 가운데서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나 저 유대인들은 예수 말씀을 무시했고 오히려 말씀을 트집 잡고 어떻게 하면 죽일까 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한 병으로, 가정의 파탄으로 이러한 절망적인 우리에게 예수님은 지금도 찾아오고 계신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다면 그런 자에게 예수님 말씀은 심판이 될 것이다. 순종한 자에게 예수님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 되지만 거부한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의말씀이 될 것이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에 38년 된 병자는 말씀대로 몸을 움직여서 일어났다.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몸을 움직인 것이다.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는 자기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예수라는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말씀에 순종하고 일어났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은 무엇을 먼저 알고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믿는 게 믿음이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이루어 질줄로 믿고 나아가는 게 믿음이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 예수가 누구인지 요모 저모로 따지고 믿었습니까 무조건 우리가 믿었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 지금도 그런 믿음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많을 것이다. 보고 믿으려는 저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믿음도 어느 날 부터 유대인 같은 믿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했다. 무엇을 따지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무조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그런 믿음을 예수님은 역사 하신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예수님 말씀에 베드로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성도 여러분 ! 38년된 병처럼 고질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문제가 해결 받기를 바란다면 저 유대인들처럼 미련하고 악한 자가 될 것이다. '요14:2
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이 나타났다. 우리의 삶 속에도 말씀의 순종이 뒤따를 때 놀라운 기적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이 날은 안식일 9-16절 "이 날은 안식일이니 . " 예수님이 안식일을 모르고 베데스다 연못에 가신 것이 아니다 안식일인줄 알고 가셨다. 알고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고의적으로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시에 이러한 예수님 행동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안식일을 범하면 돌로 쳐죽이라고 민15:35에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으셔야 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은 것 보다 안식일을 범한 자가 누구냐에 더 관심을 가졌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안식일의 개념을 깨뜨리는 예수님 말씀이다.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행위가 "제 7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말씀에 걸린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피했지만 병자에게는 성전에서 만나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다. 유대인들에게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죄와 멀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을 몰랐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어야 하는 걸로 알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사람이 율법을 위하여 살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막2:27-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음식도 만들지 못했다. 불도 피우지 못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으로 알았다. 안식일에 주인을 모르는 저 유대인들은 예수를 핍박할 수밖에 없는 우매한 자들이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었지만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안된다" 고 말렸다. 그러나 병자는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유대인들은 율법만을 쫓고 있는데 38년 된 병자는 "나를 낫게 한 그" 바로 예수를 쫓고있다. 율법이 우리에게 불필요 한 게 아니다. 율법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율법주의자가 되어 버리면 안된다.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夢學)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더욱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살도록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했다. 율법을 지켜야 의로워 진다는 것이 곧 율법주의자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예수님은 안식일의 율법을 깨뜨리신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 의로워 질려는 저들의 행위가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통해서 저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했다. 38년 된 병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고 하신 것은 개인적인 권면의 뜻도 있지만 유대인들처럼 다시는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도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왜 말씀을 주었습니까 오늘날도 유대인들처럼 오직 말씀이면 최고로 알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분명히 알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왜 우리에게주었는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말씀이라면 이미 그 말씀은 하나님 손에서 떠난 말씀일 것이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요5: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 성경에 모든 내용은 예수를 나타내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정작 율법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었지만 모르고 있는 무식한 자들이었다. '요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 유대인들은 머리로만 율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도 믿지 않고 있었다. '요5:46-47'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 하시니라 " 38년 된 병자는 예수를 성전에서 만나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하는 담대함까지 얻었다. 요즈음 이단들이 설교를 기가 차도록 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거기에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예수가 없는 설교는 좋은 연설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을 살리고 깨우는 말씀을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성전에서 예수를 만나고 교회에서 신앙이 자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신앙만이 예수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예수를 위해 살고 죽을 것이다. 예수가 없는 신앙이 아무리 강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것은 속 알맹이가없는 빈 껍데기 일 뿐이다. 유대인들의 신앙이 사람들 보기에는 대단한 신앙 같었지만 예수님 보기에는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성경 공부를 왜 하는가 신앙 생활을 왜 하는가 기도를 왜 하는가 능력을 왜 받는가 모두가 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이고 예수를 위함이다.
'다같이' '마17:8' "오직 !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 오직 예수 ! '결론'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기독교도가 어떤 방에 들어갔더니 먼지가 한자나 쌓였는데 한 소년이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법석을 떠니까 먼지는 뽀얗게 방안에 자욱하다가 도로 바닥에 가라앉았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율법이라고 안내자는 말했다. 다음 방은 같은 먼지를 소녀가 나와서 물을 뿌리고 깨끗이 씻어냈다. 그것은 은혜라고 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 은혜를 입고 절망적인 삶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저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먼지 같은 삶을 살수밖에 없었다. 38년 된 병자도 예수를 만났고 저 타락한 유대인들도 만났다. 인간의 눈으로는 38년된 병자가 더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누가 더 축복을 받은 자인가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혹시 지식적으로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지금 내가 절망적인 고난 속에 있다고 자포자기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예수님은 두 쪽 다 찾아가실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이다. "네가 문제 해결 받기를 원하느냐 지금 있는 곳에서 일어나 교회로 들어오라"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이 네 마음속에 거하지 않구나 어서 성전에 와서 마음을 열고 말씀을 마음에 담아라" 당신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요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베데스다 "은혜의 집" 이 연못은 폭이 50-67m 길이 96m 네 귀퉁이에 행각이 하나씩 있고 가운데 하나가 더 있었다. 38년 된 병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다. 복음 적으로는 예수를 믿기 전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기서 저 유대인들하고 38년 된 병자하고 이 두 모습을 살펴보므로 예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병자였다. 말이 38년이지 생각해 보세요. 그것도 꼼짝 못하는 중병 환자다. 우리들 같으면 어떠할까요 아마 자포자기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죽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이 38년 된 병자를 보세요 그 어디에도 죽고자 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더 살려는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예수는 그 많은 병자들 중에서 이 병자의 간절한 마음을 본 것이다. 예수는 38년 된 병자에게 다가가서 첫마디에 " 네가 낫고자 하느냐 " 물으셨다. 38년 병자에게 얼마나 기쁜 소리인가 그러나 병자는 예수를 몰라보았다. 이스라엘 땅에 예수가 찾아 왔지만 저들은 예수를 모르고 있었다. 병자가 자기 병을 고쳐주실 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예수가 자기들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몰랐다. 오늘날도 이 시대 예수가 우리의 문제 해결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인간들은 38년된 병자처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평생을 애쓰며 살아간다. 인간은 어떤 문제 하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인간 스스로 가는 길은 멸망의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가고 있는 길은 멸망의 길이었다. 38년 된 병자 혼자서 아무리 물로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갈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인간 스스로 아무리발버둥치며 살아도 결국은 절망적인 삶이다 인간은 예수를 만나야만 이 된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삶은 결국은 비참한 삶이 되고 만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38년 된 병자는 절망적인 상태에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로마의 속국에 시달리면서 절망적인 가운데 살고 있었다.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의 모습과 이스라엘의 다른 모습은 무엇입니까 38년 된 병자는 그 절망 가운데서 예수의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나 저 유대인들은 예수 말씀을 무시했고 오히려 말씀을 트집 잡고 어떻게 하면 죽일까 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이 절망적인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중한 병으로, 가정의 파탄으로 이러한 절망적인 우리에게 예수님은 지금도 찾아오고 계신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기적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을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다면 그런 자에게 예수님 말씀은 심판이 될 것이다. 순종한 자에게 예수님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 되지만 거부한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의말씀이 될 것이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에 38년 된 병자는 말씀대로 몸을 움직여서 일어났다. 예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몸을 움직인 것이다. 성도 여러분 ! 38년 된 병자는 자기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예수라는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 말씀에 순종하고 일어났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은 무엇을 먼저 알고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알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무조건적인 순종으로 믿는 게 믿음이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이루어 질줄로 믿고 나아가는 게 믿음이다.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것 예수가 누구인지 요모 저모로 따지고 믿었습니까 무조건 우리가 믿었지 않았습니까 성도 여러분 ! 지금도 그런 믿음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많을 것이다. 보고 믿으려는 저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믿음도 어느 날 부터 유대인 같은 믿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라고 했다. 무엇을 따지고 믿는 믿음이 아니라 무조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그런 믿음을 예수님은 역사 하신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그물을 오른편에 던져라" 예수님 말씀에 베드로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았다. 성도 여러분 ! 38년된 병처럼 고질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문제가 해결 받기를 바란다면 저 유대인들처럼 미련하고 악한 자가 될 것이다. '요14:2
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이 나타났다. 우리의 삶 속에도 말씀의 순종이 뒤따를 때 놀라운 기적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이 날은 안식일 9-16절 "이 날은 안식일이니 . " 예수님이 안식일을 모르고 베데스다 연못에 가신 것이 아니다 안식일인줄 알고 가셨다. 알고 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고의적으로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당시에 이러한 예수님 행동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안식일을 범하면 돌로 쳐죽이라고 민15:35에 기록되었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으셔야 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은 것 보다 안식일을 범한 자가 누구냐에 더 관심을 가졌다.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안식일의 개념을 깨뜨리는 예수님 말씀이다.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행위가 "제 7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출20:10) 말씀에 걸린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을 피했지만 병자에게는 성전에서 만나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셨다. 유대인들에게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죄와 멀어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대인들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을 몰랐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어야 하는 걸로 알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사람이 율법을 위하여 살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막2:27-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음식도 만들지 못했다. 불도 피우지 못했다.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으로 알았다. 안식일에 주인을 모르는 저 유대인들은 예수를 핍박할 수밖에 없는 우매한 자들이었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었지만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안된다" 고 말렸다. 그러나 병자는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유대인들은 율법만을 쫓고 있는데 38년 된 병자는 "나를 낫게 한 그" 바로 예수를 쫓고있다. 율법이 우리에게 불필요 한 게 아니다. 율법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율법주의자가 되어 버리면 안된다.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夢學)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율법은 더욱 우리가 예수 안에서 살도록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했다. 율법을 지켜야 의로워 진다는 것이 곧 율법주의자다.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 예수님은 안식일의 율법을 깨뜨리신 것이 아니다. 율법으로 의로워 질려는 저들의 행위가 올바르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통해서 저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깨닫지 못했다.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지 못했다. 38년 된 병자에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고 하신 것은 개인적인 권면의 뜻도 있지만 유대인들처럼 다시는 살아서는 안된다는 뜻도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 왜 말씀을 주었습니까 오늘날도 유대인들처럼 오직 말씀이면 최고로 알고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분명히 알어야 할 것이다. 말씀을 왜 우리에게주었는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함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한 말씀이라면 이미 그 말씀은 하나님 손에서 떠난 말씀일 것이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 (요5: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 성경에 모든 내용은 예수를 나타내기 위하여 기록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정작 율법을 안다고 하는 자들이었지만 모르고 있는 무식한 자들이었다. '요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 유대인들은 머리로만 율법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말씀도 믿지 않고 있었다. '요5:46-47'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 하시니라 " 38년 된 병자는 예수를 성전에서 만나고 예수를 믿게 되었고 유대인들에게 가서 예수를 전하는 담대함까지 얻었다. 요즈음 이단들이 설교를 기가 차도록 전한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이 좋아도 거기에 예수가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예수가 없는 설교는 좋은 연설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영혼을 살리고 깨우는 말씀을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은 성전에서 예수를 만나고 교회에서 신앙이 자라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신앙만이 예수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예수를 위해 살고 죽을 것이다. 예수가 없는 신앙이 아무리 강하고 좋다 할지라도 그것은 속 알맹이가없는 빈 껍데기 일 뿐이다. 유대인들의 신앙이 사람들 보기에는 대단한 신앙 같었지만 예수님 보기에는 독사의 새끼들이었다. 성경 공부를 왜 하는가 신앙 생활을 왜 하는가 기도를 왜 하는가 능력을 왜 받는가 모두가 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서 이고 예수를 위함이다.
'다같이' '마17:8' "오직 !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 오직 예수 ! '결론'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기독교도가 어떤 방에 들어갔더니 먼지가 한자나 쌓였는데 한 소년이 빗자루로 먼지를 쓸고 법석을 떠니까 먼지는 뽀얗게 방안에 자욱하다가 도로 바닥에 가라앉았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율법이라고 안내자는 말했다. 다음 방은 같은 먼지를 소녀가 나와서 물을 뿌리고 깨끗이 씻어냈다. 그것은 은혜라고 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 은혜를 입고 절망적인 삶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저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면서도 먼지 같은 삶을 살수밖에 없었다. 38년 된 병자도 예수를 만났고 저 타락한 유대인들도 만났다. 인간의 눈으로는 38년된 병자가 더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누가 더 축복을 받은 자인가 성도 여러분 ! 우리가 혹시 지식적으로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은지요 아니면 지금 내가 절망적인 고난 속에 있다고 자포자기하고 있지는 않은 지요 예수님은 두 쪽 다 찾아가실 것이다. 그리고 말씀하실 것이다. "네가 문제 해결 받기를 원하느냐 지금 있는 곳에서 일어나 교회로 들어오라"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씀이 네 마음속에 거하지 않구나 어서 성전에 와서 마음을 열고 말씀을 마음에 담아라" 당신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요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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