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요5:17-30)
본문
예수께서 안식일날 병자를 고쳤다는 문제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노골적으로 핍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자리를 피했던 예수도 이제 아주 강력하게 자신이 누구인가를 유대인들에게 선포하셨다. 이 선포는 단순한 선포가 아니었다. 청천 벼락같은 선포였다. 유대인들에게는 기절 초풍할 선포였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심판도 하나님께서 예수 자신에게 맡기셨다고 했다. 하나님을 공경하듯이 예수 자신을 공경해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과 예수 자신은 동등한 자라고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속해 있다고 선포하였다. 이 얼마나 놀라운 선포인가 그러나 예수는 너무도 당연한 것을 알리고 계신 것이다. 조금도 가장이 없이 있는 그대로 선포하고 계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에게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 물었다. 그 대답을 예수 자신이 지금 유대인들에게 선포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선포는 조금도 거리낌없이 하고 계신다. 이 선포가 오늘 우리에게도 강하게 느껴지시기를 바란다.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가 누구십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번 더 확실하게 예수에 대해서 깨닫고 오직 예수 신앙을 더욱 뜨겁게 가지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17-18 절 ".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안식일의 문제로 유대인들이 논쟁을 삼은 것을 보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은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자신도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하지 않고 "내 아버지" 라고 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므로 자신도 안식일 날 쉴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하나님이 쉬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7일째 쉬셨다는 것은 자신의 창조 사역으로부터 쉬셨다는 것이지 그 분의 다른 사역에서도 쉬셨다는 것이 아니다 "일하신다" 바로 구원의 일이시다. 구원에 대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셨다.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때문이었다.
1. "내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시고 동등함을 선포했다.
2. 그 동안 안식일을 지켜온 유대인의 율법을 깨뜨렸다. 예수님의 행동은 안식일을 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것이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안식일의 주인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안식일을 무시하고 폐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안식일을 정한 주님이 안식일을 완전케 하려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안식일의 원래 뜻을 저버리고 있었다. 주님은 안식일에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으려고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막2:27-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구약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범하면 죽일지니라 한 것도 사람들을 다 위함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준 안식일이 안식일의 창시자이고 주인이신 예수님께도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안식일에 대한 중요성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다. 안식일날 병자를 고치어 준 것으로 문제를 삼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소리쳤다. (요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눅13:15-17'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 하니라 " 창조때 7일 째 하나님이 쉬셨다고 해서 사람을 위해 만들어준그 안식일날 하나님이 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쉬지도 않고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자신도 일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분이시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 고 소리치고 죽으셨다. 모든 율법을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율법은 보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짓이다.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 구약의 안식일은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완전케 되었다. 우리의 죄가 구약에는 짐승의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했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누구든지 예수께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곧 나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면 우리의 죄는 용서함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율법에 매여 사는 죄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의인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이제 예수가 이 땅에 오시므로 새롭게 재조명 받아야 한 것이다. 안식일은 그림자다. 이제 그 그림자의 실체가 나타나신 것이다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가 안식일 날 병을 고치어 주신 것은 조금도 율법을 어긴 일이 아니었다. 안식일 날 공개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러면 이제 안식일이 필요 없는가 아니다 더욱 필요하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는 주일로 바꾸어 졌다는 것은 교회사가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안식일 개념을 주일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점을 보자.
1. 안식일은 그 주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주일은 그 주 첫날이다.
2.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지만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3.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지만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우 바쁘게 활동하셨다.
4.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이지만. 주일은 구원의 완성을 기념한다.
5. 안식일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지만. 주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주일 날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안에서 편히 안식을 얻는 하루가 되어야 할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일주일에 마지막 날이었던 안식일을 이제 마지막이 아닌 첫 번째 날 주일로 바꾸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안식 후 첫 날 주일이었다. 그 후로도 예수님은 40일 동안 승천하시기 전까지 모두 열 한 차례나 나타나셨는데 그 중 여섯 번은 안식 후 첫 날 주일에 나타나셨다. 이제 구약의 안식일은 일주일이 시작된 주일로 바꾸어져서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야 하고 주님을 위하여 보내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예수로 인해서 완전케 되었으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행하는 믿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율법에 매여 사는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夢學)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예수를 믿는 자는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아버지와 아들 19-23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 예수께서는 이제 더 강하게 자신을 증거 하신다. "아버지께서." 라는 말씀이 무려 4번씩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씀도 자주 나오고 있다. 본문에서만 아버지가 7번. 아들이 8번이 나오고있다.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예수 자신이 다 행하시는데 그렇게 행하실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아들이 이제껏 보아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때 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이다. 유대인들 편에서는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 예수님은 더욱 강하게 유대인들을 몰아 붙이고 있다.
19절 =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 됨을 의미한다. 19절 =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와 똑같이 동일한 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 행하는 권세를 4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 사랑의 권세 20절 = "더 큰 일을 보이사"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한다.
2. 부활의 권세 21절 =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가 예수께 있다.
3. 심판의 권세 22절 = 심판 주이신 예수이시다.
4. 공경 받을 자 23절 = 경배의 대상은 오직 예수이시다. 청천 벽력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간절히 외치고 있다. 구약의 하나님도 사랑의하나님이셨지만 예수님은 더 큰사랑을 인간들에게 보이셨다. 그 사랑은 바로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20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셨다" 고 하셨다. 십자가의 사랑이 너무 커서 인간들은 기이히 여겼다. 제자들까지도 이해를 못했다. 그 사랑은 너무 커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만이 받는 사랑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세상에 내어 주는 것이었고 아들의 사랑은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죽으신 피의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신 것이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권세와 심판의 권세까지도 아들에게 주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공경 받았던 것처럼 동일하게 공경을 받도록 아버지는 허락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정확히 지금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어느 누가 이 아들의 말씀에 반문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예수와 하나님이 동등한 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죽은 자를 살려주시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 보이셨다. 막5:35절에서 야이로 회장당 딸이 죽었을 때도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하셨다. 요 11장에서도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외치시니까 나사로가 살아 나왔다. '요11:2
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자신이 부활이심을 스스로 증거도 하셨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예수에게 달려 있다. 심판의 권세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셨다. 이러한 아들을 공경치 아니한 것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시고 부활이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심판의 권세까지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다. 심판 받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든 심판의 권세까지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계19: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땅을 철저히 심판하신 모습이 나온다. 그 진노가 너무 커서 마치 포도주 틀을 밟는 것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마지막 날에 심판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 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부자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요15:2
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 '요일2:22-2
3'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만 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권세자와 함께 함으로 권세를 받은 자이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예수의 믿는 자에게는 주님의 권세를 주시지만 예수를 믿지 아니한 자에게는 형벌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는 것은 곧 아버지를 저버리는 결과다. 이 사실을 저 유대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의 권세가 약해져 가고 있다. 예수의 소리가 교회에서 작아지고 있다. 아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그 아들의 권세를 누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십니까 예수의 권세를 세상에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영생과 심판의 기준이 되신 예수 24-30절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 영생과 심판에 대해서 예수님은 강하게 강조하고 계신다. 24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25절에서도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말씀을 앞절의 말을 들었으면 믿으라는 것이다. 믿으면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아니 할 때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심판을 받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주님은 아시기 때문에 다시 영생과 심판에 대해서 강조하고계신 것이다
24절 = 예수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영생임을 강조한다. 25절 = 여기서 "때"는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 인간들은 살아난 다는 것이다. 26절 = 살아나게 하는 권세를 예수가 하나님으로 받았다. 27절 = 살리는 권세도 받았지만 심판하는 권세도 예수께 있다. 28-29절 = 세상의 끝날에 있을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믿는자는 영생을 얻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도 부활하는데 그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부활 할 것이다. 백보좌 심판을 말한다(계20:12) 30절 = 예수의 완전한 순종은 그의 심판이 신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로운 심판이 행해 질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는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 심판은 두 가지 심판이 있을 것이다.
1. 세상을 말끔히 청소해 버리는 심판이다. 세상에 더러운 악과 예수를 믿지 아니한 자들에게 내리는 무서운 심판이다. 이 날은 지구의 종말이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잃어 버렸던 에덴 동산이 천년 동안 이 땅에서 재현 될 것이다.
2. 백보좌 심판이다. 천년 왕국이 끝나고 이제껏 죽었던 모든 자들은 주님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계20:12-1
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 예수를 믿고 죽었던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믿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상급 심판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형벌의 심판이다. 이 심판에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기준이 예수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었느냐 ! 안 믿었느냐 ! 에 따라서 심판의 기준은 정해 질 것이다. 예수를 얼마나 뜨겁게 믿었느냐 ! 적당히 믿었느냐! 에 따라서도 상급은 주어 질 것이다. 형벌의 심판도 얼마나 악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죄 값이 가볍고 무거울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이왕에 믿기 시작했으면 그 날에 큰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 형식으로 적당주의로 신앙생활 하지 말고 마음과 뜻을 다해서 믿음생활 하기를 바란다. 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무엇을 감출 수 있겠는가 각 사람의 행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우리에게 행함이 없다면 그 날에 부끄럼을 받을 것이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우리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 '약2:1
4' " 내 형제들아 !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어찌 죽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미리 예언하셨다. 주님이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을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 '눅18:8'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믿음이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시대가 된 것 같다. 믿는자는 많은데 믿음 있는 자는 보기 힘든 시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만 보이는 교회가 아닙니까 ! 영생과 심판의 모든 기준이 예수께 달려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자. 오직 예수 ! 신앙만이 마지막 때에 반드시 필요하다. 오직 예수만이 여러분 삶에 전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존 번연은 "심판의 날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열매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그 날에는 "너는 믿었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너는 실천자였느냐, 아니면 수다쟁이에 불과했느냐"는 질문을 들을 것이다. '현신애 권사님 간증' 권사님이 하늘 나라에 갔다 오셨다. 그 분은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었고 또 신유의 은사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분을 능가할 분이 없을 정도로 큰 은사를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분이었다. 기도도 많이 한 분이고 주님 앞에 외견적으로는 충성을 다 한 분이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 가보니 그 분에게 배당된 집은 개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님 나를 아시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하셨다. 또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을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분이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재산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 선교원에 몇 십억을 기증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면 존경받는다. 성결하게 살면 사람들 눈에 돋보인다. 성경이 말한대로 살면 존경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이 잘못하다가는 어느 권사님의 경우처럼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 라는 결론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심판대 앞에서는 순간 밝은 빛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말 것이다. 얼마나 이 시대에 예수가 받을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내가 드러나기를 원하는 우리의 추한 모습은 없습니까 온전히 예수만을 위한 삶이 될 수 없을까 예수만를 위해 살아갈 수 없을까 주여 !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매일 울려 퍼져 나와야 할 기도 소리다. 예수가 우리의 전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 17-18 절 ".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안식일의 문제로 유대인들이 논쟁을 삼은 것을 보고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은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에 자신도 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하지 않고 "내 아버지" 라고 하셨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므로 자신도 안식일 날 쉴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자신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하나님이 쉬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7일째 쉬셨다는 것은 자신의 창조 사역으로부터 쉬셨다는 것이지 그 분의 다른 사역에서도 쉬셨다는 것이 아니다 "일하신다" 바로 구원의 일이시다. 구원에 대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제까지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계셨다. 예수를 죽이려 한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때문이었다.
1. "내 아버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시고 동등함을 선포했다.
2. 그 동안 안식일을 지켜온 유대인의 율법을 깨뜨렸다. 예수님의 행동은 안식일을 폐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것이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안식일의 주인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마1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안식일을 무시하고 폐하려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안식일을 정한 주님이 안식일을 완전케 하려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안식일의 원래 뜻을 저버리고 있었다. 주님은 안식일에 잘못된 개념을 바로 잡으려고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정하신 것은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막2:27-28'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구약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범하면 죽일지니라 한 것도 사람들을 다 위함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준 안식일이 안식일의 창시자이고 주인이신 예수님께도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안식일에 대한 중요성을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다. 안식일날 병자를 고치어 준 것으로 문제를 삼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소리쳤다. (요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눅13:15-17'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 하니라 " 창조때 7일 째 하나님이 쉬셨다고 해서 사람을 위해 만들어준그 안식일날 하나님이 쉴 필요가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쉬지도 않고 지금까지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자신도 일하신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분이시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실 때 "내가 다 이루었다" 고 소리치고 죽으셨다. 모든 율법을 예수님의 그림자이다. 율법은 보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짓이다. '골2:16-17'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평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 구약의 안식일은 이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완전케 되었다. 우리의 죄가 구약에는 짐승의 죽여서 피를 제단에 뿌리고 했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찢고 죽으심으로 우리가 누구든지 예수께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곧 나의 죄 때문이라고 고백하면 우리의 죄는 용서함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율법에 매여 사는 죄인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의인들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이제 예수가 이 땅에 오시므로 새롭게 재조명 받아야 한 것이다. 안식일은 그림자다. 이제 그 그림자의 실체가 나타나신 것이다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가 안식일 날 병을 고치어 주신 것은 조금도 율법을 어긴 일이 아니었다. 안식일 날 공개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신 주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러면 이제 안식일이 필요 없는가 아니다 더욱 필요하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는 주일로 바꾸어 졌다는 것은 교회사가 증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안식일 개념을 주일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안식일과 주일의 차이점을 보자.
1. 안식일은 그 주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주일은 그 주 첫날이다.
2.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지만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3.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안식하셨지만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우 바쁘게 활동하셨다.
4. 안식일은 창조의 완성이지만. 주일은 구원의 완성을 기념한다.
5. 안식일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지만. 주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주일을 거룩한 날로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주일 날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안에서 편히 안식을 얻는 하루가 되어야 할것이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일주일에 마지막 날이었던 안식일을 이제 마지막이 아닌 첫 번째 날 주일로 바꾸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안식 후 첫 날 주일이었다. 그 후로도 예수님은 40일 동안 승천하시기 전까지 모두 열 한 차례나 나타나셨는데 그 중 여섯 번은 안식 후 첫 날 주일에 나타나셨다. 이제 구약의 안식일은 일주일이 시작된 주일로 바꾸어져서 주일을 거룩하게 보내야 하고 주님을 위하여 보내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의 모든 율법이 예수로 인해서 완전케 되었으므로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행하는 믿음을 보여야 할 것이다.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고 율법에 매여 사는 율법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다. (갈3:24-25)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夢學)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예수를 믿는 자는주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아버지와 아들 19-23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 예수께서는 이제 더 강하게 자신을 증거 하신다. "아버지께서." 라는 말씀이 무려 4번씩 강조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씀도 자주 나오고 있다. 본문에서만 아버지가 7번. 아들이 8번이 나오고있다.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예수 자신이 다 행하시는데 그렇게 행하실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아들이 이제껏 보아 왔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조때 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신 것이다. 유대인들 편에서는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안식일을 범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 예수님은 더욱 강하게 유대인들을 몰아 붙이고 있다.
19절 =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버지와 아들과 하나 됨을 의미한다. 19절 =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와 똑같이 동일한 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 행하는 권세를 4가지로 말씀하고 있다
1. 사랑의 권세 20절 = "더 큰 일을 보이사"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한다.
2. 부활의 권세 21절 = 죽은 자를 살리시는 권세가 예수께 있다.
3. 심판의 권세 22절 = 심판 주이신 예수이시다.
4. 공경 받을 자 23절 = 경배의 대상은 오직 예수이시다. 청천 벽력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여러분은 믿으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다. '빌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이 무엇을 못하겠는가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간절히 외치고 있다. 구약의 하나님도 사랑의하나님이셨지만 예수님은 더 큰사랑을 인간들에게 보이셨다. 그 사랑은 바로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20절에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셨다" 고 하셨다. 십자가의 사랑이 너무 커서 인간들은 기이히 여겼다. 제자들까지도 이해를 못했다. 그 사랑은 너무 커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만이 받는 사랑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세상에 내어 주는 것이었고 아들의 사랑은 그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죽으신 피의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신 것이다.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권세와 심판의 권세까지도 아들에게 주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공경 받았던 것처럼 동일하게 공경을 받도록 아버지는 허락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정확히 지금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어느 누가 이 아들의 말씀에 반문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예수와 하나님이 동등한 분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도 죽은 자를 살려주시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 보이셨다. 막5:35절에서 야이로 회장당 딸이 죽었을 때도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고 하셨다. 요 11장에서도 나사로가 죽어서 나흘이 되었는데 예수님은 그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외치시니까 나사로가 살아 나왔다. '요11:2
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 자신이 부활이심을 스스로 증거도 하셨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예수에게 달려 있다. 심판의 권세도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셨다. 이러한 아들을 공경치 아니한 것은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시고 부활이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심판의 권세까지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알고 있다. 심판 받을 때도 하나님 앞에서 받을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든 심판의 권세까지도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계19:1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이 땅을 철저히 심판하신 모습이 나온다. 그 진노가 너무 커서 마치 포도주 틀을 밟는 것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마지막 날에 심판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요일5:12' "아들이 있는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 되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그 부자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요15:2
3'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 '요일2:22-2
3'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만 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권세자와 함께 함으로 권세를 받은 자이다. (눅10:19)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예수의 믿는 자에게는 주님의 권세를 주시지만 예수를 믿지 아니한 자에게는 형벌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 '눅10:16'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 " 예수를 대적하고 저버리는 것은 곧 아버지를 저버리는 결과다. 이 사실을 저 유대인들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예수의 권세가 약해져 가고 있다. 예수의 소리가 교회에서 작아지고 있다. 아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그 아들의 권세를 누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계십니까 예수의 권세를 세상에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영생과 심판의 기준이 되신 예수 24-30절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 영생과 심판에 대해서 예수님은 강하게 강조하고 계신다. 24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25절에서도 진실로 진실로 말씀하고 계신다. 주님의 말씀을 앞절의 말을 들었으면 믿으라는 것이다. 믿으면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아니 할 때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계신다. 주님은 한 영혼이라도 심판을 받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주님은 아시기 때문에 다시 영생과 심판에 대해서 강조하고계신 것이다
24절 = 예수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영생임을 강조한다. 25절 = 여기서 "때"는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영적으로 죽은 상태인 인간들은 살아난 다는 것이다. 26절 = 살아나게 하는 권세를 예수가 하나님으로 받았다. 27절 = 살리는 권세도 받았지만 심판하는 권세도 예수께 있다. 28-29절 = 세상의 끝날에 있을 심판을 말씀하고 있다. 믿는자는 영생을 얻은 생명의 부활로. 불신자도 부활하는데 그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부활 할 것이다. 백보좌 심판을 말한다(계20:12) 30절 = 예수의 완전한 순종은 그의 심판이 신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의로운 심판이 행해 질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에게는 반드시 심판의 날이 올 것이다. 그 심판은 두 가지 심판이 있을 것이다.
1. 세상을 말끔히 청소해 버리는 심판이다. 세상에 더러운 악과 예수를 믿지 아니한 자들에게 내리는 무서운 심판이다. 이 날은 지구의 종말이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잃어 버렸던 에덴 동산이 천년 동안 이 땅에서 재현 될 것이다.
2. 백보좌 심판이다. 천년 왕국이 끝나고 이제껏 죽었던 모든 자들은 주님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계20:12-1
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 예수를 믿고 죽었던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믿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상급 심판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받을 심판은 형벌의 심판이다. 이 심판에 어느 누구도 불공평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판의 기준이 예수에 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었느냐 ! 안 믿었느냐 ! 에 따라서 심판의 기준은 정해 질 것이다. 예수를 얼마나 뜨겁게 믿었느냐 ! 적당히 믿었느냐! 에 따라서도 상급은 주어 질 것이다. 형벌의 심판도 얼마나 악한 짓을 했느냐에 따라서 죄 값이 가볍고 무거울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이왕에 믿기 시작했으면 그 날에 큰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 형식으로 적당주의로 신앙생활 하지 말고 마음과 뜻을 다해서 믿음생활 하기를 바란다. 의로운 심판대 앞에서 무엇을 감출 수 있겠는가 각 사람의 행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우리에게 행함이 없다면 그 날에 부끄럼을 받을 것이다.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 '고후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우리가 과연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성경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증거하고 있다 '약2:1
4' " 내 형제들아 !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어찌 죽은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미리 예언하셨다. 주님이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을 보기 힘들다고 하셨다. '눅18:8'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 주님이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믿음이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미 그러한 시대가 된 것 같다. 믿는자는 많은데 믿음 있는 자는 보기 힘든 시대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교회 표어가 무엇입니까 오직 예수만 보이는 교회가 아닙니까 ! 영생과 심판의 모든 기준이 예수께 달려있다. 우리가 얼마나 예수를 뜨겁게 사랑하고 예수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자. 오직 예수 ! 신앙만이 마지막 때에 반드시 필요하다. 오직 예수만이 여러분 삶에 전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존 번연은 "심판의 날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열매에 따라서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그 날에는 "너는 믿었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너는 실천자였느냐, 아니면 수다쟁이에 불과했느냐"는 질문을 들을 것이다. '현신애 권사님 간증' 권사님이 하늘 나라에 갔다 오셨다. 그 분은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었고 또 신유의 은사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분을 능가할 분이 없을 정도로 큰 은사를 받았다고 일컬어지는 분이었다. 기도도 많이 한 분이고 주님 앞에 외견적으로는 충성을 다 한 분이었다.
그런데 하늘 나라에 가보니 그 분에게 배당된 집은 개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님 나를 아시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하셨다. 또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을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그 분은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분이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재산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 선교원에 몇 십억을 기증했다. 우리가 깨끗하게 살면 존경받는다. 성결하게 살면 사람들 눈에 돋보인다. 성경이 말한대로 살면 존경받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선이 잘못하다가는 어느 권사님의 경우처럼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 라는 결론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심판대 앞에서는 순간 밝은 빛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다 드러나고 말 것이다. 얼마나 이 시대에 예수가 받을 영광을 가로채고 있는지 모른다. 예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내가 드러나기를 원하는 우리의 추한 모습은 없습니까 온전히 예수만을 위한 삶이 될 수 없을까 예수만를 위해 살아갈 수 없을까 주여 !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 우리의 심령 속에서 매일 울려 퍼져 나와야 할 기도 소리다. 예수가 우리의 전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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