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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에 대한 도전 (요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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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라는 질문에 "그럭저럭 지냅니다" 라는 대답을 들어봅니다. 이 세상에 내가 던져진 존재로서 기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살다가 요행이 좋은 일이 있으면 다행이고 그런 일이 없어도 실망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변화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4년 동안 삼덕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와서 느끼고 놀란 사실은 4년 전에는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않았던 분들이 엄청나게 변화되어서 변화된 모습으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과 반면에 변화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은 채 침체되어 그럭저럭 살아가는 분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생활에서나 신앙생활에서 열심이었던 분들이 뒷전에 앉아 계시고 못하던 분들이 앞장을 서 기쁨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어떤 분들은 서서히 변화를 스스로 체험하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의 이야기는 그분은 옛날의 그분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한때 가졌던 변화와 기대를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더이상 기도할 것도 없고, 더이상 열심을 낼 것도 없어 그럭저럭 하루를 보내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퇴보해서 어쩔 수 없이 생활하시는 대부분은 환경에 희생이 되신 분들이고 한때는 변화를 기대하고 내가 좀더 새롭게 되어야지, 내 성격을 좀 고쳐야지, 인생을 좀더 진지하게 살아야지, 우리의 가정도 탄력성있게 꾸려나가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변화되기 위하여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열심도 내 보았으나 얼마 동안 지나고 보아도 변화된 것이 없다고 느껴지고 세상도 옛모습 그대로이며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불가능해.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운명이야. 내 생각도 내 성격도 생활방식도 다 타고난 거야. 이렇게 하는 순간 더이상 기대하지 아니하고 막연하게 "인생은 그런거야"하고 생각하는 사는 분들입니다. 신앙이란 것도 교회에 왔다갔다 하는 뭐 그렇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인생을 달관한 것 같이 보이지만 대부분 환경이 내 자신을 내어던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가는데로, 그저 세월이 약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분들이며, 이런 사람들을 성경에서는 "죽은 사람"이라고 가리키고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위의 환경과 상황의 희생물이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위 환경에 승리자가 될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가 살다가 보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씁니다. 그런 일들을 우리의 삶에서, 주변에서 전부 제거시키고 몰아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 때문에 내 의지가 꺽이고 그런 일 때문에 내 마음이 꺽이고 그런 일 때문에 내 변화를 요구하는 내 마음을 그냥 버리고 그러한 환경 때문에 내 마음과 생각이 꺽이고 압박을 당해서 희생자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위 환경이 어떠하든지 "우리는 정상에 올라 설 수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이며 성경이 가르쳐주신 삶인 것입니다. 심한 좌절에 빠져 있었으나 마침내 인생의 정상에 올라섰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양의 문"이란 문이 있었고 곁에 베데스다란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은 가끔 물이 끓어오르는 간헐천이었습니다. 물이 끓어오르는 그때에 제일 먼저 뛰어드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는 신기한 연못이었습니다. 수많은 각종 병자들이 고침을 받기 위하여 연못 주위에 모여 물이 끓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8년된 병자도 그곳에 누워 있었습니다. 주님은 즉각 그 병자가 오래된 줄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38년된 병자는 "물이 끓어오를 때에 나를 저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내 힘으로 들어가기 전에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가 고침을 받고 나는 이 모양이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를 향하여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라"거 하시자 즉시 그 병자는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쉽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생각이 되어지지만 그러나 이 말씀 배후에 하나님의 길은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이 말씀은 나와는 거리가 먼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세 가지를 발견합니다.
1) 이 병자는 철저하게 과거에 얽매여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38년간 병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알 수가 없으나 이미 38년간 병을 앓았다는 것은 그가 80을 산다면 그의 절반 인생은 질병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 병자를 보았을 때 그 병자는 오랫동안 그 곳에 누워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병자는 고정된 물건이나 석고상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대답은 그가 38년간 병으로 고생했다는 사실과 그 장소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며 그의 모든 것은 과거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얽메여 있으며 그들에게는 "현재"도 과거의 복사판일 따름입니다.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단지 과거만이 계속 반복되어지는 것 뿐입니다. 작년의 인생 그대로, 작년의 사고방식 그대로 어제의 내 행동 그대로 반복해서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언제나 과거가 좋았고 과거뿐이고 과거만 회상하는 마치 38년된 병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구속된 사람들입니다. 어느 칼럼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립학교 교장 자리가 비어 있었고 생각지도 않는 자가 교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기가 최고 고참이어서 교장이 되리라고 믿고 있던 고참 선생님이 가만을 털어 놓았습니다. "나는 이 한에 20년간 봉직했는데 교장이 되면 내가 되어야지 엉뚱한 자가 교장이 되는가"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학교 재단 이사장은 대답하기를 "내 생각은 선생님의 생각과 다릅니다. 당신은 20년간 이 학교에 근무했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는 당신은 일년을 20번 반복하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학교에 근무한 것은 20년이 아니고 1년밖에 안 되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삶의 정상에 올라서고 싶습니까 우선 과거의 수속에서 뛰쳐 나와야 합니다. 과거에 관한 책을 덮어버려야 합니다. 좋고 나쁜 것을 떼어버리고 새로운 것의 가능성을 구하기 위하여 떠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과거에서 빨리 떠나라고 우리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제라는 것에 묶여 있는한 오늘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오늘 14절 말씀에 예수께서 그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니까 그 병자는 나았고, 나중에 그 병자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병이 나았으니다시는 더 심한 것이 걸리지 않도록 죄를 범하지 말아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다시는 죄 짓지말고 살아라 하시는 이 말씀에 감동을 느낍니다. 죄짓지 않고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빅톨 프랭크린은 이 말씀을 "다시는 인생으로부터 도피하지 말아라.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말아라. 다시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아라"고 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가리키는 죄가 무엇입니까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이 가리키는 회개가 무엇입니까 과거에서 뛰쳐나오는 것이 회개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살아가고 신앙생활 하는 동안 실수하고 죄짓고 부족함을 느낍니다. 그때 그 부족, 그 실수, 그 죄, 그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죄인 것입니다. 그러나 순간 순간 그 실수, 그 죄, 그 과거 속에서 뛰쳐나올 수 있어 내일을 향하여, 가능성을 향하여,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하여 과거를 헌신짝처럼 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를 이 같이 버리지 아니하면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2) 가능성을 그 병자에게 주셨습니다. 38년간 투병 중인 병자에게 주님은 이상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 우리가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 중이라고 해봅시다. 그때 누가와서 "당신 낫고자 원합니까"라고 물으면 "나같은 것이 어떻게 나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만 되풀이하던 38년간 앓아 누웠던 이 병자에게 예수님은 가능성을 불러넣어 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 38년은 길고 지루하고 실망을 주는 무서운 세월이었습니다. 분명히 그 병자는 그 병 초기에는 낫고자 하는 크나큰 희망을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병자가 물에 뛰어들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자기 차례가 돌아올 것이고 그때에는 자기도 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5년 10년이 흐르고 드디어 38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으나 그는 여전히 병자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그는 낫게 된다는 희망을 포기해버렸고 이제는 병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실 때에 그는 체념한 말투로 "주여! 나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는 환경을 탓했고 다른 이를 탓했고 세상을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낫지 못함은 나를 그곳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낫지 못하고 있다고, 이웃과 세상을 탓하고 주위의 환경을 탓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체념해버린 이 환자에게 우리 주님은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라고 계속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동안 앓은 환자에게 "무슨 병에 걸렸느냐", "증세가 어떠냐", "얼마나 괴로우냐"라고 물으시지 않았습니다. 병의 증상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시고 그 병자의 병에 대한 태도를 일깨워주시고 변화시켜 쥐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이나 의학은 그 문제의 징후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의 증상을 치료하시기 보다는 오히려 그 병에 대해 태도를 바꾸어 주시므로서 인생을 바꾸어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너는 38년된 병자이지만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너는 자금 상태로 머물러있지 않을 수가 있다. 너는 다른 상태의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이 바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본질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강조하기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향하여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화시켜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따라갈 때 더 나은 인생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어무 빨리 "그것은 불가능해"라고 말해버립니다. 그렇게 변화될 수 없다고 우리는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위 환경에 대하여 승리자가 되기 보다는 희생자가 되어 버립니다. 많은 성도들이 하기 쉬운 말로 "목사님! 저는 믿음이 적어서."라는 말을 제일 쉽게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 중에는 믿음 없는 분은 한 분도 없고 다만 너무나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엄청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믿음은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었고, 나는 좀더 새롭게 될 수 없다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그럭저럭 살다가 죽으리라는 믿음을 얼마나 강하게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믿음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부정적인 믿음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부정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잘못된 믿음이 우리를 과거에 집착하도록 만들어 놓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날 개구리 한 마리가 한길에서 뛰면서 놀랐습니다. 비온 후 차가 지나간 자리에서 개구리는 펄쩍펄쩍 뛰다가 깊은 바퀴자국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날 바퀴 자국에 빠졌던 개구리가 노래를 부르면서 친구 개구리가 있는 곳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니 네가 어떻게 나왔니. 너는 뛰쳐나올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았니!" 그때 그 개구리가 말하기를 "그래! 나는 나올 수가 없었지.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저 쪽에서 커다란 트럭이 오지 않겠니. 내가 뛰어나오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나는 살았지" 오늘날 우리 속에 "나는 참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하는 강렬한 욕구가 있으면 여러분은 반드시 변화받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재산이 얼마나 증식되어져 있고, 내가 재산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고, 내 사업이 얼마나 잘되느냐에 관심 보다도 하나님은 내가 어떤 존재로 변화되어가고 있느냐에 최대의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나는 틀렸어요"라는 우리에게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 우리에게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변화되기를 그치고 새롭게 되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자인 것입니다. "오 주여! 좀더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이것이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38년된 병자에게 가능성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변화에 대한 욕망이 솟아나오도록 "네가 낫고자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가장 깊은 마음 가운데서 지금의 내 삶에서 좀더 나아지고, 변화되어 지기를 원합니다. 좀더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 모양 이 꼴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같은 강력한 욕구를 여러분 속에서 불러 일으켜 지기를 원하십니다.
3) 그 병자에게 변화를 이룩하도록 부르고 계셨습니다. 변화에 대한 욕망을 이룩하도록 주께서는 환자에게 몇가지 명령을 하셨는데
1. 일어나라.2. 네 자리를 들어라.3. 걸어가라. 이 병자는 누군가가 와서 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남을 원망하지 말고 남의 도움을 기다리지 말고 네가 스스로 일어나, 네 스스로 자리를 들고, 네 스스로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인생이 어떤 정상에 올라서는 중요한 방법이요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주위상황에 찌들려서 누군가가 다가와서 자기를 일으켜 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도 더 나은 인생이 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스스로 그러기 위해서 무엇인가 원하고 있으나 그렇게 되도록 하지는 않고 연못가에 환자처럼 누군가 와서 자기를 도와주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와주지 않으면 원망이나 하고 가정을 원망하고 남편을 원망하고 교회를, 세상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가능성을 현실로하여 우리는 스스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내가 좀더 예수 잘 믿고, 좀더 변화되고, 가정도 새롭게 되어지고, 내 인생도 좀더 새롭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원하기만 하는 것이지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 태반이 넘는 줄 압니다. 개구리가 우유통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 중에 한 마리는 조금 움직여보아야 별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미끄러운 우유통 속에서 애써봤자 별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린 그 개구리는 체념하고 죽어버렸습니다. 다른 한 마리는 주변상황을 바랍자 역시 올가능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 상황은 절망을 가져 볼 충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인가 노력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끊임없이 두 다리를 움직였고 헤엄을 쳤습니다. 밤이 새도록 우유를 휘저었습니다. 그동안 액체였던 우유가 버터로 변하였고 그 단단한 버터를 딛고 뛰어 올라 우유통을 뛰쳐 나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38년된 병자에게 주님은 처음으로 말씀하신 것이 "일어나라" 이었습니다. 자기 연민 속에, 자기 체념에 빠져있던 그 환자였습니다. 우리도 변화되는 것을 바라기는 하면서 동정을 구하는 것을 이제는 포기하고 내 자신이 변화되기를 위하여 무엇인가 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병자에게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너에게 자리를 들 수 있는 힘을 주었는데 그 힘을 사용하여라"라는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모든 절망같이 보이고, 어려워 보이는 상황 속에서 우리 인생을 더 아름답게 변화 하면서 환경을 바꾸어가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더 새롭고 변화된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변화된 삶, 새로운 삶을 살도록 갖가지로 우리에게 힘을 주셨고 그 힘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힘을 얼마나 사용했습니까 변화되기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며 얼마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굴복시키셨습니까 그것없이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들어봅시다. "내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대처해 나갈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교회를,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힘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어떤분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 힘을 합쳐서도 어쩔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여러분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자리를 들라"고 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 힘을 변화되기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다음에 병자에게 주님은 걸어가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자리를 드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무엇인가 해야 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 속에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변화되기를 원하는 강렬한 욕구가 여러분에게 있으면 변화되기 위하여 무엇인가 하시어야 합니다. 이 큰 교회가 일주일에 낮 1일, 밤 2일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습니다. 참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성전에 나와서 무릎을 꿇는 순간 이미 변화가 여러분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겠습니다. 어떤이는 변화를 얻기 위하여 산 속에서 기도하고 어떤이는 변화를 자기 속에 가져오기 위하여 변화받았던 사람들의 간증을 읽어서 변화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변화받기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분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변화를 주시는 분이 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정상에 서려면 자기 연민의 자리에서 변화라고 하는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오래 전 38년간 병으로 앓은 그 환자에게 변화를 주신 주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도 같은 변화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얻고 천국은 빼앗는 자가 차지하느니라." 천국은 침노하고 공격하는 자만이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하시며 놀라운 변화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변화를 주십니다. 변화되고 저하는 간절한 욕망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변화되기 위하여 일어납시다. 변화되기 위하여 자리를 듭시다. 주님이 주신 그 놀라운 능력을 사용하여 일어나 걸어갑시다. 주님은 분명코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오늘보다 내일이 더 변화되고 내일보다 그 다음날이 금년보다 10년 후가 더 새롭게 변화되고 젊었을 때 보다 중년층이 더 아름다워지고 중년보다는 노년층이 더 아름다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우리가 변화되어 우리의 육체가 죽는 순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온전히 변화하여 그 분과 함께 변화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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