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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의 예수 (요4:1-4)

본문

'거리가 가까운 길', '질러서 통과하는 길', 혹은 '첩경', '첩로' 등을 가리 켜 '지름길'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먼길을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목적하는 일의 효과 면에서 중대 한 의미와 내용을 갖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본문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지름길'을 택하신 그의 복음 행로를 보게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북쪽 갈릴리로 가시고자 하셨을 때 사마리 아를 거쳐서 갈릴리로 가시는 행로를 택하신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하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I. 그 길은 막혀 버린 사마리아의 길을 뚫으신 지름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사셨던 팔레스타인은 남북의 길이가 약 120마일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땅은 세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었습니다. 북쪽은 갈릴리지방이었고, 남쪽은 유대지방이었고, 그 가운데 사마리아지방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로 갈 때에 그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사 마리아를 통행함이 결정적인 지름길이었습니다. 이 방법을 택할 경우 당시 도보 로 사흘길이면 충분했습니다. 또 다른 길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쪽을 걸어서 요단강을 건너 강 동쪽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사마리아 북쪽에서 다시 요단강 을 건너 갈릴리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사마리아로 통행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이나 먼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사마리아 통행의 길은 꽉 막혀버렸습니다.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길을 사용하지 않아서 막혀 버렸 습니다. 철조망이나 그 어떤 장애물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장애물보다 더 무섭고 어려운 불화의 장벽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비극은 적어도 수백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비극적 죄악의 역사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찾아 볼 수 있는 사마리아는 여호수아 시대에 에브라임과 므 낫세 반 지파에 배당된 지역입니다(수 16-17장).
그 다음 이스라엘 열 지파가 반란을 일으킨 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지방인 에브라임 산지에 세 겜을 건축하고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저 금송아지 우상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낸 신이라고 말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시온산 예배의 길을 막아 버렸습니다 (왕상 12:25-29). 그런 역사적 비극이 있은 후 북조 이스라엘은 앗수르 왕의 침략을 받아 망했 습니다. 앗수르 왕은 여러 이민족(異民族)을 데려다가 이 사마리아 지역에 살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이방인과 더불어 혼혈이 되었습니다. 또한 종교적으로도 유대교의 율례와 동방 우상 종교들이 혼합을 이루고 말 았습니다(왕하 17:32-33, 17). 그 결과 사마리아에 살던 이스라엘 원주민들은 이교도화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유대인들도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으나 70년만에 해방을 받아 예루살렘 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예루살렘성과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그때 사마리아인들이 협력을 자청했으나 저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종교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조 유대는 이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여기에 격분한 사마리아인들은 결국 유대인들의 성전공사를 방해하기에 이르 렀고, 또 그리심산에 따로 성전을 지어 예루살렘 성전을 대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에 세운 그리심산 성전은 나중에 유대인들에 의해 다시 피괴된 일도 있 었습니다(B.C. 128). 그래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종교적으로 혈통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대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역사적 비극 곧 혈통적, 종교적 비극이 예수 당시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저들은 서로 상종치 않았고, 원수관계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와 사마리아는 서로 꽉 막혀 버렸습니다. 종교적으로 막혀 버렸 습니다. 혈통적으로 막혀 버렸습니다. 정치적으로 막혀 버렸습니다. 마음이 막 히고, 언어가 막히고, 만남과 교제가 막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에서 사마리아로 가는 길은 있지만, 서로의 통행이 없어 막혀버린 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Ⅱ. 지름길로 가는 예수를 봅니다. 예수께서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 새(요 4:3), 사마리아를 통행하 여야 하겠는지라(요 4:4)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사마리아로 통행하던 중 갈릴리로 가는 지름길의 분기점이 되는 수가성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요 4:5).
그렇다면 예수께서 택한 이 지름길이 어떤 지역적이고 지리적인 불가피성 때 문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 택하신 그 지름길은 위대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사적 경륜을 성취시키는 길이었습니다. 그 지름길은,
1. 정해진 길이었습니다. 예수께서(요 4:2)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요 4:3)! 이 말씀은 하나님이 경륜하신 길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만 되는 주님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한 목적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께서 정해 놓으신 길을 걸어가셔야만 된다는 주님의 행동이 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을 행하려고 이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아 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의지(뜻)나 말이나 행동 은 오직 아버지께서 계획하고 목적하신 바를 이루어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 6:38-39).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마리아 통행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 을 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예수 사마리아 통행의 필연성은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을 찾아 인도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요 10:16). 바로 거기 사마리아에도 구원의 추수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었습니다. 밭이 희 어져 주인의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요 4:35). 그래서 주님은 그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사마리아인이라고 하는 종족적 편견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여자라 고 하는 성적(性的) 편견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요 4:9). 조상 야곱의 우물이 라고 하는 전통에도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요 4:12-13). 남편이 다섯이라고 하는 과거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요 4:16-18). 사마리아 그리심산의 예배에서도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요 4:19-20). 그녀는 그래도 메시야를 대망하는 미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오시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주님은 그녀에게 자신이 메시야임을 알려 주었습니다(요 4:25-26). 그녀는 눈이 열렸고,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 결과 구원의 생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마리아 전역에 구원의 생수를 나누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구원의 사마리아, 복음의 사마리아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요 4:35-42). 저들은 예수가 세상의 구주이신 줄을 믿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 사마리아 통행의 궁극적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갈릴 리로 가시던 예수의 사마리아 지름길은 저들 사마리아인들에게 새로운 생명의 지름길을 알려 주신 생명의 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장벽을 허는 통일의 새 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2절 하반절에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마리아인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본방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새 생명의 지름길을 얻게 된 것입니다(엡 1:10, 2:11-16).
Ⅲ. 예수는 하늘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여로에는 먼길과 가까운 지름길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먼길 을 가깝게 질러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까운 길을 옆에 두고도 먼길로 돌아 가고 있습니다. 옛날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은 불과 몇 주일이면 갈 수 있었던 가나안의 여로를 40년이나 걸려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물론 거기에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있었습니다. 인류역사는 우리에게 길에 대한 많은 교훈들을 남겨주고 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먼길과 가까운 길을 반복하였습니다. 사람의 지혜가 발달하면서부터 먼길을 가까이 그리고 빨리 다니기를 시작하였 습니다. 우선 교통수단이 그러했습니다. 산 때문에 돌아서 걸어다니던 먼길을 산에 굴을 뚫어 가깝게 그리고 빠르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물 때문에 멀리 돌아 다니던 길에 다리를 놓아 가깝게, 빠르게 해 버렸습니다. 여러 종류의 육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도를 위시하여 포장된 도로와 고속도로가 전국을 일일권내로 가깝고 빠르게 단축시키고 말았습니다. 생각도 못했던 항로는 비행기를 통하여, 해로는 해로대로 기계의 힘을 이용하여 빠르게, 가깝게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통신수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엔 인편으로 긴 시간을 들여 소식이 전해졌 습니다. 그 후에는 우표 한 장을 붙이면 전국 어디에나 편지를 보내어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전화시대가 되어 우표(편지)시대가 무기력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우주인이 달나라에 왕래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앞에 서 직감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른바 회선통신시대를 맞아 문자나 숫자를 전기신호로 바꾸어 도선(導線)을 통하여 보내는 전신통신시대가 왔습니다. 또한 말소리를 전파나 전류로 바꾸어 먼 곳으로 보내어 다시 음파로 환원하여 통화하는 전화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컴퓨터와 전화를 연결하는 이른바 PC(Personal Computer)통신 그리고 팩시밀리(Facsimile; Fax)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근거리 통신망(LAN; Local Area Network), 광역 통신망(WAN; Wide Area Network), 그리고 인터넷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합정보통신망 (ISDN;Integrated Services Digital Network)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람 이 전화(음성)를 하면서 동시에 인터넷(Data)을 하거나, 전화를 하면서 화상회 의(Video)를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예기되는 미래의 통신 수단은 정말 예측불능일 만큼 급속도로 지름길 세상을 만들고 말 것입니다. 정말 통신 요지경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참으로 먼 곳을 가깝게 만들고, 긴 시간을 짧게 만들고, 어렵고 까다롭고 불 편스러웠던 일들이 인간문명의 발달과 함께 개선되는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첩경(지름길)의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예언한 종말의 징조 중에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지혜가 시간과 공간을 단축하면서 초시간, 초공간의 개념과 함께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를 도전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사람이 참된 지름길을 모르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인생이 찾아야 될 본질적인 지름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이 돌아가야 할 영생의 첩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만이 구원의 첩경(지름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예수만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결코 구원은 인생 고행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의 산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 믿는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엡 2:8).
그러므로 구원의 길은 멀리 있지 않고 예수에게 있습니다. 예수만이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입니다(요 14:6). 그 이름 외에는 구원얻을 이름이 없 다고 하였습니다(행 4:12). 예수 안에서 부모를 공경함이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는 축복의 첩경이라고 하 였습니다(출 20:12). 십일조 헌금생활이 물질 축복의 첩경이라고 하였습니다(말 3:10). 부부간의 사랑과 순종이 가정행복의 첩경이라고 하였습니다(엡 5:22-25). 구원의 길, 잘 사는 길, 복 받는 길, 행복하게 되는 길이 멀리 있는 것이 아 닙니다. 예수 안에 모두 다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축복의 첩경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1998년 12월 6일입니다. 금년의 마지막 시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누가 잘 되고 잘 사는 축복의 지름길을 걸어왔던가 예수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걸음입니다. 누가 지름길을 걸어온 사람인가 사마리아 통행의 필요성을 절감한 사람입니다. 이 세상을 지나가는 자기 존재의 필요성을 아는 자입니다. 바로 그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길입니다. 죄인을 찾아 구원하는 길입니다. 죄의 장벽을 뚫고 그리스도와 하나되게 하신 길입니다. 꽉 막혀 버린 죄인의 마음을 예수 구원의 복음으로 뚫어내는 걸음이야말로 최첨단의 지름길을 걷는 사람들의 걸음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적 삶이 지름길 인생의 여로입니다. 바로 믿어야 합니다. 들러가지 말고, 돌아가지 말고, 예수를 바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잘 되는 길입니다. 잘 사는 길입니다. 복 받는 길입니다. 승리의 길입니다. 영광의 길입니다. 영생의 길, 구원의 길입니다. 아니 주 예수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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