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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앞에 드리는 참예배 (요4:23-24)

본문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
4). 우리는 매 주일마다 시간을 따라서 예배를 드립니다. 솔로몬은 예배드릴때 하나님앞에서 큰 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고보서 5:17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 10장12절에는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고하되 이스라엘 목전에서 가로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매.”태양을 멈추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참된 예배는 이것처럼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능력이 함께 하는 예배를 우리는 어떻게 드릴수 있을까요 본문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이르렀을 때, 야곱의 우물곁에서 그곳으로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했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우물가에 앉으셨을 때 한 사마리아여인이 물을 길르러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본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 어찌 사마리아 여자인 자기에게 물을 달라 하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인들과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 지정해주신 예배의 장소가 어딘가 하는 문제로 심각한 논쟁을 벌여오고 있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그리심산을 축복의 산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참으로 예배드려야 할곳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 할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인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장소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이라고 단정짖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드리는 자는 어디에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어디에나 계십니다. 문제는 예배드릴 장소가 아니라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바로 이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예배란 단지 예배의식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드리는 마음의 태도입니다.
 윌리암 템플은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의식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로 마음을 풍성케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요, 하나님의 목적에 뜻을 바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우리를 주관하시는 실재자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생명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배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빛(영광)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의 빛에 완전히 쌓여 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시기 때문에 예배는 신령한 주권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의 불에 의해 점화되어야합니다. 예배의 대상은 물론 하나님이십니다. 십게명의 제 일계명에서도 분명히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것은 그가 누구이신가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실 수있는 위대한 일을 하신분이기 때문에 예배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선 순위는 봉사보다 찬양, 감사, 경배로 점화되는 예배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곳 그가 활동하시는 곳에좀더 깊이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보다 진실된 예배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배를 위한 준비는 언제나 '거룩한 기대'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초대교회에서는 이러한 거룩한 기대가 매우 강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예배를 위해 모이는 곳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준비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서 늘 훈련으로 되어쟈 합니다. 우리의 매일 매일의 삶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재하심을 느끼고 그의 현존을 경험하는 사람은 언제나 예배할 때 그러한 경험의 기초에서거룩한 기대를 가지고 예배에 임하게 됩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인가를 말씀을 통해 상고하고자 합니다.
첫째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구약 시대에는 예배를 제사라고 하였고,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하나님께 경배하려 갈 때면 절대자인 여호와 앞에 불완전하고 죄인인 인간들이 먼저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제물을 제단에 드렸습니다. 그 제물은 예배자의 죄를 대신 지고 속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물은 날짐승이나 혹은 양, 염소,황소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체를 대신 드리는 것은 인간이 생명체이기 때문에 피의 생명체를 피의 생명체가 대신해야 한다고 하는 생각에서 짐승이 대속의 제물이 되어 피흘려 희생된것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가 속량되지 못했습니다. 피는 생명으로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는 의미가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오는 자는 비둘기라도 잡아 대속의 피의제물을 바쳐야 했고, 1년에 한번은 대제사장이 민족 전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황소를잡아 대속제를 지내곤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드릴 속죄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구약은 인류의 속죄 제물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그 속죄 제물에 대한 모형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그 예언의 속죄제물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흘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속죄제의 제물이 되셔서 피흘려 속량했기 때문에 이제는 피의 제사가 필요없게 된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피를 흘리게 될때 제사의 본당이었던 예루살렘의 지성서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지성소라고 하는 곳은 대제사장이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1년에 한 번 황소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장소였습니다. 이것은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량으로 허물어 짐으로써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죄 때문에 내 대신 제사장이 피를 가지고 들어갈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직접 경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의용서를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합니다. 예배는 감격적인 것자체입니다. 감사의 태도입니다. 환희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인간의 지극한 경건과 정성을 드려야 합니다. 옛날에 제사는 두려움이었으나 오늘의 예배는 감격과 감사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예배 하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요4:23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오늘 이 시간에 찾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계시록 1:14절에 불꽃같은 눈으로 그의 백성들을 살피시며 계시록 2:18절에 불꽃 같은 눈으로 두아디라 교회를 살피시고 19:12 심판하실 그 눈이 불꽃 같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 하시면서 우리에게 축복 하시기 위하여 찾고계십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살펴 보고계십니다. 우리에게 응답이 없는 것은 주님이 거짓입니까, 우리가 잘못 구한것입니까. 만나야 합니다. 사라에게 내쫒김을 받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대성통곡을 하며 하나님을 찾았을때 만나주셨습니다 그 위기에서 그들의 모자를 구원하고 그 아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80세나 되어진 노령의 모세가하나님을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만났을때 청년의 힘을 얻고 그의 백송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들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것을 만나서 낭패를 당한 사람도 많이 봅니다. 여리고로 내려 가던 사람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목숨까지 잃을뻔 했습니다.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났던것입니다. 열왕기상 16장 29-34절에 아합왕은 이방여인 이세벨을 만나 갖가지 우상을 만들고 신당을 지어 그 앞에 절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살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눈에 만나 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3. 예배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여호와를 위하여 드려야 합니다. 내가 간구 하기 위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우리가 찬송을 기도를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삼하24: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셔서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치고 구원 의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사사기 6장24절에는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쌓았을때 3백명으로서 모래알 같은 미디안 군사와의 싸움에서 승리 할수 있었습니다. 대상21:22 다윗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니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쳤습니다. 대상21:26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여호와를 위하여 우리의 정성된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계획하고 계신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례미야 29장1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불꽃같은 눈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는 주님에게 찾아지는 귀한 역사가 일어 나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네 찬송이라면 네 기도라면 네 제물이라면 내가 네게 응답 하겠다 하는 그런 귀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승리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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