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구주 (요4:27-42)
본문
사람이 살아가는데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일생이 좌우된다. 자식은 좋은 부모를 만나야 하고 남자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하고 여자 역시 좋은 남자를 만날 때 행복한 삶을 산다. 학생도 좋은 스승을 만나야 하고 성도 역시도 참된 주의 종을 만나야 한다. 비참한 삶을 살아왔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삶이 달라졌다. 행동이 달라졌고 목소리가 달라졌고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위해서 이 땅에 구주로 오신 것이다. '마9:1
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버림받고 천대받은 사마리아 땅에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나타나셔서 그들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세상의 구주가 예수라는 사실을 믿게 하였다. 사마리아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의 삶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은 시간이 되자.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구주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상의 구주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소리치고 있다 " 와 보라 ! 여기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가 오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 ! 복된 소식인가 ! 당신은 세상 구주 되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27-30절 "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얘기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제자들이 와서 대화가 중단된게 아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할말을 다 해주신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 말씀이 끝난 것을 아시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가지 아니했다. 여인은 이제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히 깨달았다. 내일로 미루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이제 육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는 모습을 의미한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나왔다. 복음을 들었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은 다면 우리는 이제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베드로도 안드레도 예수를 만나고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세리 마태도 예수님을 만나고 세리직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렇다고 직업도 팽개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육을 위해 사는 것을 우선으로 두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육을 위해 사는 자에게 정죄하고 있다. '롬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왜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한다고 했는가 (롬9:13)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 에서는 육을 위해 사는 자였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 버리는 육적인 자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반대로 야곱은 영적으로 사는 자의 모델이다 야곱은 영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자였다. 사마리아 여인 역시 육을 위해 사는 여자였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살았다. 육적인 안락함을 위해서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살았다. 이런 육적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인 여자로 변해졌다. 예배도 이제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법도 예수님께 배웠다. 이 여자는 이제 영적인 세계에 눈이 떠 진 것이다. 이제껏 육을 위해 살아온 자신이 너무나 미련한 삶을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여인은 물이 필요해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영적인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동네로 뛰어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 보시오 동네 사람들 우리 동네에 메시야가 나타났오 어서들 나와 보시오 여기 그리스도가 계시오 어서 나와 보시오 " 동네 사람들은 여자의 소리에 어떻게 했습니까 이때 시간이 낮 12시쯤 되는 가장 더운 날이었다. 모두 다 집에서 휴식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영적인 기쁨에 충만한 여자가 외칠 때 사람들은 더위를 상관 않고 예수께 나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진실로 영적 기쁨에 충만하여 예수를 전한다면 저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고 예수께 나올 것이다. 문제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자 들입니까 우리가 쾌락을 위해서 부귀 영화를 위해서 살던 자들이 이제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도 사마리아 여인 같은 마음입니까 영적 기쁨으로 충만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외쳐야 할 것이다. "와보라 ! 우리의 세상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계신다!"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런 외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혹시 오랜 신앙생활로 영적인 느낌이 무디어지지는 안했는지 . 아니면 영적 세계도 모르고 기쁨도 없는데 외치라고 하니까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끔 대낮에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닭들이 있다. 새벽 시간을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 꼬끼오-는 아름답다. 또 알도 낳지 않았으면서 우는 닭들이 있다. 알을 낳은 닭보다 더 시끄럽게 운다. 그런 닭 울음소리는 주인을 기쁘게 못한다. 예수를 만났는데도 아직도 예수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벙어리 신자가 되기 쉽다. 빨리 입을 열고 전해야 된다. 지체해서는 안된다. 알고도 전하지 않은 것은 부인하는 자와 다를 바 없다. '마10:32-3
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 예수님은 스스로 사마리아 땅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상한 심령을 가지고 사는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다.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의 크신 은혜이다. 더럽고 추한 여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우리들 또한 그런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셨다. 이제 우리는 나만 이 크신 은혜를 받지만 말고 저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주님의 은혜를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살던 때 어떻게 지냈습니까 상한 심령 가지고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살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런 삶속에서 고통 당하며 비참하게 사는 자들이 있다. 나에 옛 모습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 가정과 우리 이웃에 이 민족 위에 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즈음 어려운 경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는가 그들을 찾아가자 ! 그들에게 세상의 구주 되신 예수를 전하자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10대들이 쾌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들의 멸망으로 가는 걸음을 돌릴 수 있는 길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와보라!" 소리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 31-38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로 뛰어가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구해온 음식을 잡수도록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양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구원받을 모습을 제자들에게 비유적으로 말씀하여 주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 34절에서 해석하여 주셨다. 주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이 양식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이었다. 그 뜻과 일이 무엇인가 바로 영혼 구원이다 35절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인데 지금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동네로 뛰어 들어간 여인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멀리서 몰려오는 사마리아인들을 보고 주님은 추수로 비유하고 있다. 36절 거두는 자는 제자들이다.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주님이 뿌려놓은 열매를 이제 거두기만 하면 되었다. 제자들은 아무런 노력을 한 것이 없었다. 38절에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다는 말은 구약의 선지자 및 세례요한을 말한 것이다. 우리 또한 그들의 노력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미리 계획된 속에서 사마리아를 가셨다는 게 느껴진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것도 전혀 우연의 일이 아니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 뜻을 이루러 오신 주님.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이런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어찌 버림받은 사마리아 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천한 한 여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주시고 그 여인은 이제 "와보라! 메시야가 우리 동네에 나타나셨다" 말만 전했다. 여인의 말은 들은 사마리아인들은 지금 모두 예수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사마리아인들을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영혼구원의 추수의 기쁨을 누리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은 뿌린 자들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추수꾼들이었다. 우리 역시 추수꾼들이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영의 양식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신다. 육의 양식을 구하러 동네까지 갔다 온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양식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계신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 신자니라'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어지러운 질문이지만 둘다 사는 것에 먹는다는 것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 인간들이 먹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사는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이 시대가 아닌가 본다. 육체의 배만 채우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먹는 육의 양식은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못하고 즐겁게 하지도 못한다. 인간의 영혼에 힘이 되고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님 일을 해야만 이 된다 그 하나님일 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입각한 일은 영혼 구원이다 . 우리는 보통 영혼 구원하는 게 너무 어려웁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영혼구원을 시키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영혼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우리는 그냥 거두는 추수꾼들일 뿐이다. 우리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렵고 낙심이 오고 실망이 오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어떻게 했는가 그냥 외쳤다 "와 보라!" 고만 했다. 그러나 그 외침은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여인의 영혼이 기뻐서 외치는 영혼의 소리였다. 영혼의 소리로 외쳐야 한다. 예수를 만난 기쁨으로 외쳐야 한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혼의 소리로 외치자 외치고 나서 스스로 추수하려고 하지 말자. 물론 추수까지 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 한 영혼을 택하신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영의 양식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9-42절 ".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동네로 뛰어간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증거 했다. 그러나 여인의 증거로 예수를믿는 것이 아니다. 42절에 주민들의 마음이 기록되었다. "너에 말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의 외침이 있었기에 그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를 정식으로 자기들 집으로 초청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마리아 인들과 이틀을 같이 지냈다는 것은 그 동안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에 갈등을 없애려는 주님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틀을 유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마리아인들이 세상의 구주라고 믿었던 것을 보면 죄인을 구하려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전했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으로 인해서 믿는 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 드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믿음은 그냥 마구 성장 하는 게 아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 믿음으로 말씀으로 함께 해야한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아무리 믿음이 좋은 믿음일지라도 말씀을 듣는 것. 읽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말씀을 듣다가 수 십년동안 마음에 묻어 두었던 아픔과 상처가 치료받고 새 삶을 되찾았듯이 . 지금 사마리아인들도 그 동안 배척 당하고 천대 받아온 자신들의 삶이 이제 메시야를 만나고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긴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에는 여인의 외침에 믿고 나왔다. 그 믿음은 연약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듣고 생긴 믿음은 예수가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한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대하는 태도는 유대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유대인들은 어떻하면 예수를 배척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늘날도 오히려 교회 안에서 믿음 없는 자들의 모습이 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교회 다닌 년수만 많아진 것을 자랑하고 교회 지위만 탐내는 바리새인 같은 자들이 있다. 자신은 구원 받은 자로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지옥 가는 자들로 알고 있는 자들이 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이처럼 뜨겁게 영접하고 믿게된 것은 그들의 마음들이 상한 심령들이었다 그런 상한 심령들을 예수님은 일부러 찾아가신 것이다. 죄 많은 곳에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의인을 부르러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주님은 오셨다. 오늘날은 교회가 죄인을 가장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범한 사람은 교회에서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대접을 받아 교회를 떠나게 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거룩해서 죄인인 자신들은 감히 가까이 갈 수가 없고 그들과는 이야기조차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죄인을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곳이 교회가 되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따사롭게 영접해 주는 죄인들의 소굴로 가고 악인은 악인끼리, 도둑들은도둑들끼리, 창녀들은 창녀들끼리 살자고 한다. 교회에서 추방을 당했다. 과연 교회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교회가 이렇다면 저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아마 주님은 그런 교회를 떠나서 그 죄인들에게로 가실 것이다 교회는 좀 더 죄인에게 넓은 문을 열어 주어야 하고 따사롭게 영접해 주어야 한다. '딤전1:1
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 예 화 ' 어떤 사람이 병이 위독해지자 침대 머리에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아들에게 불러주다 지쳐 목소리가 잠기게 되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아버님 만일을 위해서 이쪽에서 돈을 빌려쓴 사람의 이름도 알아두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힘없는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럴 필요없다. 그쪽에서 제발로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 빚이 있다.
그런데 "빚진 죄인" 보다 "빚진 상전"이 더 많은 것이 요즘 성도들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더럽고 추한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가 나의 구주 되심을 믿으십니까 ' 예 화 ' 지나가던 여학생을 성폭행했던 한 청년이 경찰서에서 조사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격분한 그 여학생의 아버지에게서 닥치는 대로 두들겨 맞았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죽이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 청년은 많이 다쳤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정상참작으로 무죄가 되었다. 이것이 죄인이 당하는 수모다. 또한때는 존경을 받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은밀한 죄가 드러나서 옥에 갇히게 될 때, 누가 이 가증스러운 사람을 동정하겠는가 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죄값을 지는 것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르는데, 온 인류가당할 모든 죄값을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은 어찌 했겠는가 우리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은 아닌지 아니면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인 인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께로 나온 것이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지금 이 시대에도 두 부류가 있다. 당신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습니까 혹시 의인 인줄 알고 신앙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찬양합시다. '결론'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는 싶어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그 날도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이 유명한 일화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는 오늘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종교나 혹은 교회의 이름으로 수없이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형식과 외식으로만 가득한 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없는지 . 이 시대 종교적인 신앙만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하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자주 보인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잊어버린 자들의 모습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아흔 아홉 양을 놓아두고 떠나시는 게 주님의 마음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이다. 내 한 영혼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세상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주님은 그 멸시, 천대, 핍박, 모욕을 몸소 다 당하셨다. 세상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몸 찢고 죽으신 것이다. ' 찬 양 '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세상 죄를 짊어지신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사마리아 땅 같은 우리의 심령에 찾아 오셔서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믿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 하시기 바란다 주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세상 구주 되신 예수를 전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믿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버림받고 천대받은 사마리아 땅에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나타나셔서 그들의 상한 심령을 치료하여 주시고 그들에게 세상의 구주가 예수라는 사실을 믿게 하였다. 사마리아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의 삶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은 시간이 되자.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구주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상의 구주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소리치고 있다 " 와 보라 ! 여기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가 오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소식인가 ! 복된 소식인가 ! 당신은 세상 구주 되신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27-30절 "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과 얘기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제자들이 와서 대화가 중단된게 아니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할말을 다 해주신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 말씀이 끝난 것을 아시고 그대로 자기 집으로 가지 아니했다. 여인은 이제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히 깨달았다. 내일로 미루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이제 육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는 모습을 의미한다.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의 소리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나왔다. 복음을 들었다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외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가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은 다면 우리는 이제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베드로도 안드레도 예수를 만나고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세리 마태도 예수님을 만나고 세리직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그렇다고 직업도 팽개치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육을 위해 사는 것을 우선으로 두지 말라는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육을 위해 사는 자에게 정죄하고 있다. '롬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왜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한다고 했는가 (롬9:13)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 에서는 육을 위해 사는 자였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 권을 팔아 버리는 육적인 자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반대로 야곱은 영적으로 사는 자의 모델이다 야곱은 영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자였다. 사마리아 여인 역시 육을 위해 사는 여자였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살았다. 육적인 안락함을 위해서 남자들을 바꾸어 가며 살았다. 이런 육적인 여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인 여자로 변해졌다. 예배도 이제 영적인 예배를 드리는 법도 예수님께 배웠다. 이 여자는 이제 영적인 세계에 눈이 떠 진 것이다. 이제껏 육을 위해 살아온 자신이 너무나 미련한 삶을 살아온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여인은 물이 필요해서 우물에 물을 길으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보다 더 급한 게 있었다. 영적인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자는 동네로 뛰어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이 보시오 동네 사람들 우리 동네에 메시야가 나타났오 어서들 나와 보시오 여기 그리스도가 계시오 어서 나와 보시오 " 동네 사람들은 여자의 소리에 어떻게 했습니까 이때 시간이 낮 12시쯤 되는 가장 더운 날이었다. 모두 다 집에서 휴식하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영적인 기쁨에 충만한 여자가 외칠 때 사람들은 더위를 상관 않고 예수께 나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진실로 영적 기쁨에 충만하여 예수를 전한다면 저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귀를 기울이고 예수께 나올 것이다. 문제는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자 들입니까 우리가 쾌락을 위해서 부귀 영화를 위해서 살던 자들이 이제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도 사마리아 여인 같은 마음입니까 영적 기쁨으로 충만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외쳐야 할 것이다. "와보라 ! 우리의 세상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여기 계신다!" 외쳐야 할 것이다. 그런 외침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혹시 오랜 신앙생활로 영적인 느낌이 무디어지지는 안했는지 . 아니면 영적 세계도 모르고 기쁨도 없는데 외치라고 하니까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끔 대낮에 닭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시도 때도 없이 우는 닭들이 있다. 새벽 시간을 알려주는 닭 울음소리 꼬끼오-는 아름답다. 또 알도 낳지 않았으면서 우는 닭들이 있다. 알을 낳은 닭보다 더 시끄럽게 운다. 그런 닭 울음소리는 주인을 기쁘게 못한다. 예수를 만났는데도 아직도 예수를 전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벙어리 신자가 되기 쉽다. 빨리 입을 열고 전해야 된다. 지체해서는 안된다. 알고도 전하지 않은 것은 부인하는 자와 다를 바 없다. '마10:32-3
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 예수님은 스스로 사마리아 땅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상한 심령을 가지고 사는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있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다. 우리를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의 크신 은혜이다. 더럽고 추한 여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은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우리들 또한 그런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은혜를 주셨다. 이제 우리는 나만 이 크신 은혜를 받지만 말고 저 사마리아 여인처럼 이 주님의 은혜를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모르고 살던 때 어떻게 지냈습니까 상한 심령 가지고 더러운 죄악 속에서 살았지 않습니까 지금도 그런 삶속에서 고통 당하며 비참하게 사는 자들이 있다. 나에 옛 모습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우리 가정과 우리 이웃에 이 민족 위에 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요즈음 어려운 경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는가 그들을 찾아가자 ! 그들에게 세상의 구주 되신 예수를 전하자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10대들이 쾌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들의 멸망으로 가는 걸음을 돌릴 수 있는 길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와보라!" 소리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 31-38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사마리아 여인은 동네로 뛰어가자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구해온 음식을 잡수도록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가르치셨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느니라" 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양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이 구원받을 모습을 제자들에게 비유적으로 말씀하여 주었다.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 34절에서 해석하여 주셨다. 주님의 양식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그것이 양식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양식이었다. 그 뜻과 일이 무엇인가 바로 영혼 구원이다 35절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인데 지금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동네로 뛰어 들어간 여인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멀리서 몰려오는 사마리아인들을 보고 주님은 추수로 비유하고 있다. 36절 거두는 자는 제자들이다.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시다. 제자들은 주님이 뿌려놓은 열매를 이제 거두기만 하면 되었다. 제자들은 아무런 노력을 한 것이 없었다. 38절에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다는 말은 구약의 선지자 및 세례요한을 말한 것이다. 우리 또한 그들의 노력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은 미리 계획된 속에서 사마리아를 가셨다는 게 느껴진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것도 전혀 우연의 일이 아니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 뜻을 이루러 오신 주님.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이런 일을 하러 이 땅에 오신 예수가 어찌 버림받은 사마리아 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천한 한 여인을 통해서 복음을 전해주시고 그 여인은 이제 "와보라! 메시야가 우리 동네에 나타나셨다" 말만 전했다. 여인의 말은 들은 사마리아인들은 지금 모두 예수께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사마리아인들을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영혼구원의 추수의 기쁨을 누리고 계신 것이다. 제자들은 뿌린 자들이 아니었다. 제자들은 추수꾼들이었다. 우리 역시 추수꾼들이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영의 양식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계신다. 육의 양식을 구하러 동네까지 갔다 온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양식이 무엇인지 가르치고 계신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 신자니라'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어지러운 질문이지만 둘다 사는 것에 먹는다는 것이 연관되어 있다. 우리 인간들이 먹는 것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서 사는 짐승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이 시대가 아닌가 본다. 육체의 배만 채우고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먹는 육의 양식은 우리의 영혼을 배부르게 못하고 즐겁게 하지도 못한다. 인간의 영혼에 힘이 되고 즐겁게 하는 것은 하나님 일을 해야만 이 된다 그 하나님일 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본문에 입각한 일은 영혼 구원이다 . 우리는 보통 영혼 구원하는 게 너무 어려웁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영혼구원을 시키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영혼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우리는 그냥 거두는 추수꾼들일 뿐이다. 우리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렵고 낙심이 오고 실망이 오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어떻게 했는가 그냥 외쳤다 "와 보라!" 고만 했다. 그러나 그 외침은 그냥 소리가 아니었다. 여인의 영혼이 기뻐서 외치는 영혼의 소리였다. 영혼의 소리로 외쳐야 한다. 예수를 만난 기쁨으로 외쳐야 한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영혼의 소리로 외치자 외치고 나서 스스로 추수하려고 하지 말자. 물론 추수까지 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 한 영혼을 택하신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 영의 양식을 위해서 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39-42절 ".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동네로 뛰어간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증거 했다. 그러나 여인의 증거로 예수를믿는 것이 아니다. 42절에 주민들의 마음이 기록되었다. "너에 말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나 사마리아 여인의 외침이 있었기에 그들이 예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를 정식으로 자기들 집으로 초청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세상의 구주라는 사실을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마리아 인들과 이틀을 같이 지냈다는 것은 그 동안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에 갈등을 없애려는 주님의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틀을 유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어떤 말씀이었을까요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사마리아인들이 세상의 구주라고 믿었던 것을 보면 죄인을 구하려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전했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으로 인해서 믿는 자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 드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믿음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믿음은 그냥 마구 성장 하는 게 아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 믿음으로 말씀으로 함께 해야한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아무리 믿음이 좋은 믿음일지라도 말씀을 듣는 것. 읽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될 수 없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 말씀을 듣다가 수 십년동안 마음에 묻어 두었던 아픔과 상처가 치료받고 새 삶을 되찾았듯이 . 지금 사마리아인들도 그 동안 배척 당하고 천대 받아온 자신들의 삶이 이제 메시야를 만나고 그 말씀을 듣는 가운데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긴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처음에는 여인의 외침에 믿고 나왔다. 그 믿음은 연약한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듣고 생긴 믿음은 예수가 세상의 구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으로 성장한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대하는 태도는 유대인들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유대인들은 어떻하면 예수를 배척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었다. 오늘날도 오히려 교회 안에서 믿음 없는 자들의 모습이 있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처럼 교회 다닌 년수만 많아진 것을 자랑하고 교회 지위만 탐내는 바리새인 같은 자들이 있다. 자신은 구원 받은 자로 착각하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 지옥 가는 자들로 알고 있는 자들이 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이처럼 뜨겁게 영접하고 믿게된 것은 그들의 마음들이 상한 심령들이었다 그런 상한 심령들을 예수님은 일부러 찾아가신 것이다. 죄 많은 곳에 오히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의인을 부르러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이 땅에 주님은 오셨다. 오늘날은 교회가 죄인을 가장 용납하지 못한다. 그래서 죄를 범한 사람은 교회에서 어딘지 모르게 싸늘한 대접을 받아 교회를 떠나게 된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너무 거룩해서 죄인인 자신들은 감히 가까이 갈 수가 없고 그들과는 이야기조차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죄인을 가장 용납하지 못하는 곳이 교회가 되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들을 따사롭게 영접해 주는 죄인들의 소굴로 가고 악인은 악인끼리, 도둑들은도둑들끼리, 창녀들은 창녀들끼리 살자고 한다. 교회에서 추방을 당했다. 과연 교회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교회가 이렇다면 저 바리새인들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아마 주님은 그런 교회를 떠나서 그 죄인들에게로 가실 것이다 교회는 좀 더 죄인에게 넓은 문을 열어 주어야 하고 따사롭게 영접해 주어야 한다. '딤전1:1
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 예 화 ' 어떤 사람이 병이 위독해지자 침대 머리에서 돈을 빌려간 사람들의 이름과 금액을 아들에게 불러주다 지쳐 목소리가 잠기게 되었다.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아버님 만일을 위해서 이쪽에서 돈을 빌려쓴 사람의 이름도 알아두었으면 하는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힘없는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럴 필요없다. 그쪽에서 제발로 찾아올 테니까 말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진 빚이 있다.
그런데 "빚진 죄인" 보다 "빚진 상전"이 더 많은 것이 요즘 성도들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더럽고 추한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십니까 예수가 나의 구주 되심을 믿으십니까 ' 예 화 ' 지나가던 여학생을 성폭행했던 한 청년이 경찰서에서 조사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격분한 그 여학생의 아버지에게서 닥치는 대로 두들겨 맞았다. 주위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으면 죽이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 청년은 많이 다쳤습니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정상참작으로 무죄가 되었다. 이것이 죄인이 당하는 수모다. 또한때는 존경을 받던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은밀한 죄가 드러나서 옥에 갇히게 될 때, 누가 이 가증스러운 사람을 동정하겠는가 죄인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죄값을 지는 것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르는데, 온 인류가당할 모든 죄값을 다 지시고 십자가에 당하신 예수님의 고통은 어찌 했겠는가 우리의 믿음이 유대인들의 믿음은 아닌지 아니면 사마리아인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죄인 인줄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상한 심령을 가지고 주께로 나온 것이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지금 이 시대에도 두 부류가 있다. 당신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습니까 혹시 의인 인줄 알고 신앙 생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찬양합시다. '결론'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는 싶어하는 곳이 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다. 그 날도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었다. 이 질문이 유명한 일화로서 지금까지 남아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는 오늘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하고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는 종교나 혹은 교회의 이름으로 수없이 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형식과 외식으로만 가득한 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없는지 . 이 시대 종교적인 신앙만을 가지고 신앙 생활 하는 자들이 우리 주위에 너무 자주 보인다. 세상의 구주로 오신 예수를 잊어버린 자들의 모습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영혼 구원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서 아흔 아홉 양을 놓아두고 떠나시는 게 주님의 마음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이다. 내 한 영혼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인류를 구원시키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세상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주님은 그 멸시, 천대, 핍박, 모욕을 몸소 다 당하셨다. 세상의 구주가 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몸 찢고 죽으신 것이다. ' 찬 양 ' 나 위하여 십자가의 중한 고통 받으사 대신 죽은 주 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 흘려 영영 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 우리 어찌 찬양 안 할까 세상 죄를 짊어지신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사마리아 땅 같은 우리의 심령에 찾아 오셔서 세상의 구주가 되심을 믿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 하시기 바란다 주님 오시는 그 순간까지 세상 구주 되신 예수를 전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믿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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