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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대화 (요3:1-15)

본문

사람은 말을 하는 고등동물입니다. 말을 통하여 사람들의 의사를 표시합니다. 믿음,사상,주의,좋고 나쁜 것까지 말로써 표현됩니다. 말로써 사람들이 주고 받는 것을 대화라고 합니다.대화는 순수하여야 하며 이해관계의 목적 만의 대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생활을 위한 대화, 진리를 위한 대화는 이 세상 끝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화를 통하여 다른 사람을 자기의 주의 사랑에 맞추기 위해서 설득력이 강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화는 일대일의 입장에서 설득이 아니라 이해와 함께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대화가 바르지 못하므로 단절된 시대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는 바르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언제나 개개인 의 생활에서 대화다운 대화가 있을 때에 삶의 의미가 바르게 실현될 수 있 다고 봅니다. 부모자식 간의 대화,부부지간, 형제지간, 친구지간, 이웃과 교인지간의 대화의 내용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서 삶이 과정이 재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날에 와서 참된 대화가 상실된 시대라고 볼 때에 모든 면에 서 정상보다는 비정상이 많고 기쁨보다는 고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는 인생의 깊은 삶의 문제,즉 근본 문제에 대한 대화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이권에 대한 대화가 아닌 영원한 진리에 대한 대화입니다.
1. 니고데모의 인물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문제와 고민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니고데모는 그 이름의 뜻이 '백성의 정복자''승리''백성'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름의 뜻과 함께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관원입니다. 즉 70인 공회원(요즘으로 말하면 국회의원에 해당함)으로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요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 리고 백성의 선생이라고 하였으니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니고데모는 이 세상에서 별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외향적으로는 그에게 부족함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 적인면에서 그는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진리에 대한 문제입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연구, 율법에 의한 선행의 실천, 자기의 공로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코저 했지만 불가능함으로 고민에 쌓였던 것입니다.
2. 예수 앞에 나온 니고데모 대화의 길이 없던 니고데모는 나사렛 청년 예수의 소문을 듣고 능히 예수가 자기의 대답자가 되어 줄 것으로 확신하고 예수님 앞에 찾아나온 것입니다. 소문대로 예수의 가르침이 위대한가 또 권능이 있는가 인생의 문제를 해답할 대담자인가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고 찾아온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대한 선입관이 좋지 않았습니다. 나사렛촌에서의 성 장, 가문과 지식, 지위도 별로 인정할 수 없는 청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니고데모는 자신의 위신과 지위나 학식, 명예 때문에 예수를 너무나 낮 게 평가했습니다. 대화는 대등한 위치에서 그리고 존경할 때 가능합니다. 니고데모는 행여나 하고 예수님을 찾은 것입니다. 니고데모는 대담자 예수님께 '랍비여'하고는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런 고백은 분명히 '구주'라는 그리고 ' 메시야'라는 뜻에서서 아닙니다. 많은 이적기사의 표적을 나타낸 줄 압니다"라고 겸손한 말을 했습니다. 대화를 위해 나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답게 자신의 체면을 차렸습니다. 그러나 그의 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신뢰심이나 존경심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신 예수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선생으로 선지자로 도덕가로만 안 것 같이 니고데모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 심은 전혀 없었따고 할 수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겉치레만으로 예수님과 대 화가 될줄 알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며 깊은 속까지 아는 줄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사이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을 발견케 됩니다. 니 고데모는 사람인데에 반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완전한 참 사람 이시고 참 신이신 예수와는 인격상 다릅니다. 능력도 성품도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 위해 오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오라고 하시며 대담자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하여 인간적인 인사의 말이 오 고 가지를 않았습니다.
3. 예수님과의 대화 니고데모가 찾아나온 것에 대하여 환영의 표시가 없고 예의적인 면이 없이 즉각적으로 "진실로 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본문 3절)하였습니다. 니고데모의 생각이나 기 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였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 위에서부터 난다''꼭대기에서 처음부터 다시 낳는다'로 표현합니다. 이 말 의 의미는 공간적으로 '위에서' 즉 하나님께로부터, 시간적으로는 '다시'는 새롭게 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생이란 사람의 노력 여하에 있는 것이 아 닙니다. 율법을 행한 자기의 공로가 자신의 죄를 씻거나 그리고 의로워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것임을 말씀합니다. 도덕과 윤리의 높은 수준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은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노력이 아닌 중보자의 공로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의로 가는 것이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그의 보호 인도하심과 축복에 의하여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유대인의 소망의 촛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은 바울의 말대로 로마서 14장 17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말씀과 같이 어떤 사람 들의 노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세워지는 것임 을 밝혀 주시고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말은 옛 사람은 죽고 다시 말하면 니고데모는 명예, 권력, 지 식, 지위, 바리새적인 율법행위의 교만을 버리고 오직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을 때에 다시 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니고데모의 거듭나는 이치는 신앙적이 아니고 육신의 생각 뿐이었습니다. '난다'는 말에서 사람이 늙 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지 않습니까 어리석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신앙의 도가 터지기 전에 거듭난다는 진리를 믿거나 알 수가 없습니다.
4. 대화의 결과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함을 교 훈하였습니다. 이 물에 대한 해석은 성령님 혹은 진리이신 성경말씀으로 해석 합니다. 사람의 변화는 사람들의 힘으로 안됩니다. 오직 성령님으로써만 가능 합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물과 성령님으로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님의 성령님의 세례를 함 께 말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님과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라는 말씀대로 물세례로 죄를 씻음 받고, 성령님의 세례로 영의 변화와 양심과 행동의 변화로써 거듭나야만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변화된 것은 바로 성령님세례로써 사도가 된 것입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 를 해방하였음이라" 성령님의 법이 곧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 라" 성령님의 법이 곧 성령님의 세례가 죄와 사망에서 벗겨 주시고 새로 나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육적인 사고방식으로 거듭나는 이치를 생각지 말라 고 경고 하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님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 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교는 진정으로 영의 세계에서부터 변화가 되어야 합니다. 영의 변화가 없는한 항상 육에 속하여 영원한 진리를 모르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볼 수 없습니다. 거듭남에 대한 신비성을 알기쉽게 교훈합니다.바람에 대하여 비유합니다. 바람은 보지 못했지만 바람은 있다고 말합니다. 또 바람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바람의 존재와 같이 신비합니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존재는 확실합니다. 성령님의 능 력은 하나님이 없다는 사람 그리고 죄를 먹고 마시며 부도덕한 사람들을 향 하여 성령님은 채찍질합니다. 요한복음 16장 6절에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에서 성령님의 활 동은 죄인들의 죄를 회개하게 하며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니고데 모는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기의 신앙과 지식,지혜, 주관으로만 대화코자 하였지만 예수님은 그의 고집과 잘못을 즉각적으로 꺽으시고 회개 시켰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속된 미신과 혼 합된 신앙,그리고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전적으로 믿음의 생활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겉으로 믿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이것도 모르느냐 비단 니고 데모만 아니고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중생의 진리를 모를 뿐 아니고 오해합니다.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는 근본적인 생명의 문제인데 니고데모느 니 이것을 보통 육에 관한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명예나 지위나 지식과 율법의 교사로서의 우월감이 모 두 사라지고 중생하여 겸손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죽 으심에 대하여 니고데모는 슬프게 애통했으며,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합심 하여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인도하였으며 장례를 위해 몰약을 준비하고 최후에 거룩한 봉사자가 된 것입니다. 거듭난 니고데모는 진리를 위한 증인 이 되고 참 제자로서의 사명을 다한 것입니다. 사람은 진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의심하던 자가 확신에 거하며, 불순종 이 순종으로 변하고, 미움이 사랑으로 변할 때에 참 거듭난 자의 생활의 모 습입니다. 믿는체 하는 형식의 사람들은 죄도 그대로 있고 죽음의 불안, 공 포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내게로 오라 하시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갈 때 나는 죽고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살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지위와 권세와 명분을 얻게 됩니다. 거듭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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