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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과 예수님 (요3:22-30)

본문

오늘 봉독한 말씀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한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대하여 벌써 몇번 증거한 일이 있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에서는 본문의 증거가 세 번째입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대한 첫 번째 증거는 요한1:26에 나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께 대한 두 번째 증거는 요한1:29에 나옵니다. "보라.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다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세례요한은 자기 자신과 예수님을 대조해가면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당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지방, 그러니까 이스라엘 나라의 남쪽 지방에 제자들과 함께 가셔서 얼마 동안 머물면서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아직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고 살렘 가까운 곳 애논에 있었는데, 거기 물이 많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나셨고, 요단강 옆 광야에 거하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세례요한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을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세례요한보다 예수님의 인기가 점점 커가는 것을 보면서 못내 아쉬워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았습니다. 본문 26절에 보면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조금도 마음의 동요가 없이, 시기심이 일어나지도 않고,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런 경쟁심도 가지지 않고 세례요한은 네 가지로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1.자기는 땅에서 온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고 증거하였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라가는 것은 하늘에서 오신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말씀하시기를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늘에서 오신 분으로 자신과는 비교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은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이란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베드로의 고백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고백은 "하나님"이란 고백과 마찬가지입니다.
2.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예수께서 그리스도 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본문 28절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를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었습니다. 이때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두 번째 물었습니다.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아냐" 그러자 세례요한은 좀 더 짧게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세 번째 다시 물었습니다. "네가 그 선지자냐" 그러자 세례요한은 아주 짧게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세례요한의 대답을 자세히 보면 아주 단호한 데가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I am not the Christ.) "나는 아니라." (No,I am not!) "아니라" (No!) 그러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다시 세례요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이 모두가 다 아니라고 하면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세례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여 소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광야에서 웨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 사도는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20:31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3.자기는 신랑이 아니고 신랑의 친구일 뿐 , 예수님께서 신랑이 되신다 고 증거하였습니다. 본문 29절에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신부는 믿는 성도들.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신부로 상징하였고(사54:5, 렘3:20, 호2:7, 말2:11), 신약 성경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 상징되었습니다(엡5:32, 계19:7). 세례요한은 자신은 신랑이 아니고 신랑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 유대나라의 습관은 신랑의 친구는 신랑과 신부의 중매하는 역할과, 신부를 신랑에게 인도하는 역할, 결혼식에서 신랑의 들러리 역할, 그리고 결혼 잔치를 주관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신랑의 친구로서 신랑을 위하여 봉사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세레요한은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알리는 선구자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다함으로 기쁨을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점점 더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고, 자기 자신은 점덤 덜 중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증거했습니다. 본문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레요한의 이 한 마디 말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의, 위대한 선지자로서의 그를 돋보이게 하는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나야 하겠고, 나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점점 더 줄어들어야 하겠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례요한을 따르던 제자들까지도 그를 떠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요한과 안드레가 원래는 세례요한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세레요한의 자기의 수는 줄어들게 하였고, 예수의 수는 증가하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까지 헤롯의 칼에 목베여 순교했습니다. 이것은 선구자 요한의 운명인 동시에 모든 성도들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태양이 떠오르면 뭇 별들은 사라지듯이 의의 태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모든 불완전한 자들은 자취를 감추어야 합니다. 유명한 선교사 윌리엄 캐리는 인도의 선교사로서 고난과 역경 속에서 인도 백성을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마지막 순간에 그를 존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그 입술에서 나올 마지막 막을 기다리고 있을 때 윌리엄 캐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내가 죽거든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마십시오. 윌리엄 캐리라는 말 대신에 윌리엄 케리의 주님에 대해서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로교를 창설한 요한 칼빈 선생님도 죽을 때 "나를 위하여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정신은 "저는 흥하여가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던 세례요한의 정신이기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기의 분수를 알고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일했던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높임으로 벅찬 감격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전하는 것으로 벅찬 감격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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