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온 진리 (요3:31-36)
본문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하시고 있는 말씀입니다 27절의 말씀부터 세례 요한의 증거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27절부터 30절까 지의 내용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를 증거하는 사람에 불과하며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지만 신랑의 친구가 더 좋아하는 법이라고 하시면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한다.고 증거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봉독해 드린 31-36절 까지는 그리스도와 자신은 전혀 비교될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는 하늘에서 오신 분이고 나는 땅에서 난 자이며 그는 하늘에 있는 것을 직접목격했고, 보았고, 만드신 분이시지 만 나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의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한 자기 비하나, 자기 겸손이나, 겸양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 신앙, 기독교 진리 가 말하는 것을, 인간은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우리가 상상 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연히라도 생각해 낼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라는 것을 다 루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교리는 다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인간들 에 의해서 조립된 것이지만, 기독교의 진리는 사람에 의해 제조된 것이 아닙니다.A 그러면 왜 기독교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일까요 기독교의 진리 를 인간들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단 한가지인데, 우리 인간은 땅에서 난 자이고 성경 곧 기독교 진리는 하늘에서 났기 때문입니다.A 여러분! 성경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성경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이것을 의심 하시는 분 계세요.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늘로부터 온 거예요. 기독교 진리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한 거예 요.AA 다른 종교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것을 땅에다 대 놓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인 것예요. 일례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무소부재 하신 분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인 언어로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말해야 무소부재하신 분을 다 말할 수 있어요. 불가능합니다.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나 계신 하나님을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라고 믿고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신비로움과 중요함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를 믿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중 에 하나가 요한복음서예요. 이 요한복음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고 있는 문제는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생명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 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너희는 못 알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못 알 아 들을 뿐 아니라 관심 조차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 하시면서 요한복음을 읽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뭔가 신앙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있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을 읽고 어떠한 오해 속에 빠지느냐 하면 '내가 예수를 믿었었노라 신앙의 시작은 나'라고 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착 각에 빠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에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내가 오늘 이 순간 죽는다 하더라도 천국에서 깨어날 것을 확신하는가 와 만 약 확신한다면 그 확신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거는 여 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구원의 확신의 근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성경 말씀에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을 믿고서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나는 구원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확신의 근거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깨끗케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훌륭한 구원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오셔서 구원을 선포하시고 제시하 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선택하였노라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서 믿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본래 나는 선택의 능력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예수를 선택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선택 당해서 기독교인이 되었 다는 것입니다. 자의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게 하신 분이 계셔서 믿게 된 거예요. 이 사실을 본문 31-3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 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여기서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되 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증거 하는데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는 말씀 그대로 죄로 말미암아 이미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을 설득시켜 기독교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택한자들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루려고 죽으시러 오신 것입니다.A EX:전도-설득시켜 기독교인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려진 양을 찾느것이다. 우리가 늘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들이예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을 여러분이 선택하여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믿으면 그 신앙 생활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겨나고 맙니다. 어떤 문제냐 하면, 상황에 따라 구원의 확신에 변동이 생기는 문제예요.
왜냐하면 구원을 자신의 선택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 불분명해 지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혼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시에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던 것에 힘이 빠져나가게 되고 내가 제대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의심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확신에 결함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므로 심히 피곤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과오는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소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데서 기인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예로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하는 자유 의지가, 도대체 어느 만큼 조화가 되는 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그 하나님께서 어느 경계선까지 인내와 자비를 베푸시는지 우리는 그 범 위를 잘 모릅니다. 또한, 공의와 심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심판의 범위 가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시편 90:11절에 모세의 기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신 분이신지, 죄에 대하여 얼마만큼 화내 시는 분이신지, 우리는 사실 그 분량을 잘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한없으 신 사랑과 긍휼의 깊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 은 참고, 무엇은 용서하지 않으시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 놓기가 어렵 습니다. 이렇게 일이 생길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선택하여 믿었 다는 것이 혼동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3장 사이에서 예수님을 내가 알아보고 믿었다고 생각하는 자 들에게 혼동을 가져다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요1:10-11절에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 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 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 을 영접치 않은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나는 이 말씀대로 예수님을 영접하겠노라 고 다짐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이 현명한 선택에 대하여 안도의 감격이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13절에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므로 앞의 생각을 뒤엎어 놓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요3:16절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는 말씀에서 구원의 선택이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결단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 의 믿음을 다시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다시 요3:33절에 이르면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여기서 하나님의 증거를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받는 이라고 했 습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즉,'예수님 을 믿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의 어두운 영안을 밝히 열어 주셔서, 받아들이게 하시고 우리가 마음과 입으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인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완전한 은혜요, 100% 자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의 결단이 기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구원을 당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차이점으로서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를 따지는 것보다 더 깊은 시금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옳으냐 세상이 옳으냐 하는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는 이 신앙고백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고 이것만큼 훌륭 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경험이요, 자랑스러운 경험이요, 어디에 꺼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 앞에서 칭반받을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 의 결단의 싸움으로 우리가 남 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단은 하나님 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피할 수 없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 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들어가서 아무 저항 없이 일어나는 믿음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게 된것은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 인 역사의 결과라고 보아야 정확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단에 집 착하는 것보다 결단의 사건을 당한 후의 삶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믿음의 길이란 마음으로 하나님을 옳다고 보느냐 세상을 옳다고 보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가, 세상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가의 싸움이에요. 이 싸움에서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을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A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옳으시냐 세상이 옳으냐의 싸움이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보고서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으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면목없는 기독교인이 되고 부끄럽게 사는 신앙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오해는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믿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제시한 것들을 읽고 관찰하고 조사하고 이해하여 선택하였다는 망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어느 순간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1이 생기게 되면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살펴서 이해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자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 게 된 것은 내가 관찰하고 노력하여서가 아니라,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이미 일어나 마침내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굴복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때에는 이해가 안되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가 되고 믿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A 여러분 !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보고 안다는 것 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알고 계셔서 항상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임을 이 시간 믿 으시고 이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것을 거부하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영접하시고 세상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요청만을 따라 사셔서 영원히 복된 성도들이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늘로부터 온 거예요. 기독교 진리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임한 거예 요.AA 다른 종교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것을 땅에다 대 놓고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 능한 일인 것예요. 일례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에나 계신 분이십니다. 무소부재 하신 분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이것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도록 객관적 인 언어로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말해야 무소부재하신 분을 다 말할 수 있어요. 불가능합니다. 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나 계신 하나님을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무소부재 하신 분이라고 믿고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기독교의 신비로움과 중요함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예수를 믿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들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중 에 하나가 요한복음서예요. 이 요한복음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루고 있는 문제는 "영생"입니다.
그런데 이 영원한 생명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성경은 뭐라고 말하 고 있습니까 그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너희는 못 알아 듣는다'는 것입니다. 못 알 아 들을 뿐 아니라 관심 조차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 하시면서 요한복음을 읽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뭔가 신앙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있지요. 그래서 요한복음을 읽고 어떠한 오해 속에 빠지느냐 하면 '내가 예수를 믿었었노라 신앙의 시작은 나'라고 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착 각에 빠지기가 쉬운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순간에 다시 한번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내가 오늘 이 순간 죽는다 하더라도 천국에서 깨어날 것을 확신하는가 와 만 약 확신한다면 그 확신의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거는 여 러 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구원의 확신의 근거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나는 성경 말씀에 예수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을 믿고서 예수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나는 구원받을 것을 확신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확신의 근거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깨끗케 되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훌륭한 구원의 증거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오셔서 구원을 선포하시고 제시하 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을 선택하였노라고 말하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말로는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고서 믿는다고 말해야 하는데, '본래 나는 선택의 능력이 전혀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예수를 선택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니라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선택 당해서 기독교인이 되었 다는 것입니다. 자의로 믿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게 하신 분이 계셔서 믿게 된 거예요. 이 사실을 본문 31-3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 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여기서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하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고 이해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되 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하나님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증거 하는데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를 못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하는 말씀 그대로 죄로 말미암아 이미 알아 볼 수 있는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을 설득시켜 기독교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택한자들을 대신하여 죄값을 치루려고 죽으시러 오신 것입니다.A EX:전도-설득시켜 기독교인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려진 양을 찾느것이다. 우리가 늘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들이예요. 여러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들어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을 여러분이 선택하여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믿으면 그 신앙 생활에는 심각한 문제가 생겨나고 맙니다. 어떤 문제냐 하면, 상황에 따라 구원의 확신에 변동이 생기는 문제예요.
왜냐하면 구원을 자신의 선택으로 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은 것이 불분명해 지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혼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시에는 하나님을 붙잡고 있던 것에 힘이 빠져나가게 되고 내가 제대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지에 대하여 스스로 의심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확신에 결함이 생기게 되는데 이런 상황이 심심찮게 일어나므로 심히 피곤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은 과오는 결국 인간이란 스스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증거를 받아들일 수 없는 소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데서 기인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 예로서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다 하는 자유 의지가, 도대체 어느 만큼 조화가 되는 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인내하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그 하나님께서 어느 경계선까지 인내와 자비를 베푸시는지 우리는 그 범 위를 잘 모릅니다. 또한, 공의와 심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심판의 범위 가 어느 정도인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시편 90:11절에 모세의 기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의로우신 분이신지, 죄에 대하여 얼마만큼 화내 시는 분이신지, 우리는 사실 그 분량을 잘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의 한없으 신 사랑과 긍휼의 깊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 은 참고, 무엇은 용서하지 않으시는지에 대하여 분명한 경계선을 그어 놓기가 어렵 습니다. 이렇게 일이 생길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선택하여 믿었 다는 것이 혼동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3장 사이에서 예수님을 내가 알아보고 믿었다고 생각하는 자 들에게 혼동을 가져다주는 말씀이 반복하여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요1:10-11절에서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 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 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 권세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은 예수님 을 영접치 않은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 나는 이 말씀대로 예수님을 영접하겠노라 고 다짐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뻐하고 감격합니다. 다시 말해 나의 이 현명한 선택에 대하여 안도의 감격이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13절에서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하므로 앞의 생각을 뒤엎어 놓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선택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요3:16절에 이르러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 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는 말씀에서 구원의 선택이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은 결단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자신 의 믿음을 다시 가다듬습니다. 그러나, 다시 요3:33절에 이르면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여기서 하나님의 증거를 선택했다는 것이 아니라 받는 이라고 했 습니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즉,'예수님 을 믿습니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치시는 사역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의 어두운 영안을 밝히 열어 주셔서, 받아들이게 하시고 우리가 마음과 입으로 '믿습니다!'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인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완전한 은혜요, 100% 자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의 선택이나 의지의 결단이 기여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구원을 당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인과 불신앙인의 차이점으로서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 를 따지는 것보다 더 깊은 시금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옳으냐 세상이 옳으냐 하는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습니다"는 이 신앙고백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고 이것만큼 훌륭 한 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분명한 경험이요, 자랑스러운 경험이요, 어디에 꺼내 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 앞에서 칭반받을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느냐 안 믿느냐 의 결단의 싸움으로 우리가 남 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단은 하나님 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은혜로 인하여 우리가 피할 수 없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 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들어가서 아무 저항 없이 일어나는 믿음의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가지게 된것은 나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적 인 역사의 결과라고 보아야 정확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결단에 집 착하는 것보다 결단의 사건을 당한 후의 삶에 대하여 더 큰 관심을 가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믿음의 길이란 마음으로 하나님을 옳다고 보느냐 세상을 옳다고 보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가, 세상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가의 싸움이에요. 이 싸움에서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을 옳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A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옳으시냐 세상이 옳으냐의 싸움이 중요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보고서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으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면목없는 기독교인이 되고 부끄럽게 사는 신앙인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오해는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믿었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오해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내가 선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제시한 것들을 읽고 관찰하고 조사하고 이해하여 선택하였다는 망상을 가지게 됩니다. 이래서 어느 순간 하나님에 대하여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1이 생기게 되면 '나는 아직도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스스로의 함정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살펴서 이해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본 자들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심을 안다는 것입니다. 이렇 게 된 것은 내가 관찰하고 노력하여서가 아니라, 나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이미 일어나 마침내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굴복하게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에 대해서 어떤 때에는 이해가 안되고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가 되고 믿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A 여러분 !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눈을 뜬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보고 안다는 것 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알고 계셔서 항상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임을 이 시간 믿 으시고 이 믿음으로 세상이 주는 것을 거부하고 하늘의 신령한 것을 영접하시고 세상의 요구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요청만을 따라 사셔서 영원히 복된 성도들이 되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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