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사마리아 여인 (요4:1-26)
본문
2장에서 예수님은 부패한 성전을 청결케 하고 3장에서는 타락한 바리새인 중 유대 관원이었던 니고데모를 변화시키고 4장에서는 이제 가장 천한 지역으로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아온 사마리아 땅에 나타나셔서 그것도 가장 더러운 인생을 살아온 천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고 5장에서는 가장 심한 38년된 병자를 만나시고 그리고 바로 이어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자라고 선포하시게 되는데 이러한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 복음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을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 강해 시작할 때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말했다. '요20:30-3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수많은 다른 것을 기록할 수 있는데도 3장에 니고데모와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의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는가 요한 복음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빈부와 귀천을 초월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있는 자, 없는 자,병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자신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재촉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처럼 목마른 삶을 사는 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셨다. 1-5절 ".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유대 지방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든다는 소문을 바리새인들이 들었다는 것을 예수께서 아셨다. 이 사실을 알게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충돌을 하지 않기 위해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로 작정을 하셨다. 갈릴리를 가시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해서 가기로 하셨다 이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요단강 건너 베뢰아의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유대인들이 꺼려하던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다.
2절에 말씀은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잘못된 소문을 사도 요한은 일부러 밝히고 있다. 오해로 인한 소문은 예수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예수님은 조용히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기로 하셨다 유대에서 갈릴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었다. 요단강 건너 베뢰아로 돌아가는 길 약 6일이 걸리고 직선으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는 길 약 3일이 걸린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중심지역이다 이스라엘 남북이 약 193km 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이 나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 남북지역 유대.2. 북부지역 갈릴리.3. 이 두지역 사이에 중심 지역이 사마리아 였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택하셨다.
왜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지역을 멸시하고 배척했는가 사마리아 지방은 본래 북왕국 이스라엘의 땅이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B.C 722년 앗수르의 왕이 이곳을 점령한 다음부터 역사적 비극이 시작되었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대신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 지역에서 살게 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이방 신을 섬기었고 세월이 지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신앙을 잃어갔고 혈통적으로도 점점 잡혼으로 인해서 유대 민족의 혈통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 민족에게 배척 당했고 멸시와 천대를 당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적, 민족적 장벽을 깨뜨리고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들고 들어 가셨다. 해묵은 관례를 개의치 않고 금기의 지역을 방문하신 예수님의 행동은 구원은 혈통이나 감정을 초월해서 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목적지는 갈릴리가 아니고 사마리아 였던 것이다. 사마리아가 유대로부터 멀어져 있는 게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예수의 삶 전체가 보여 주듯이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은 사람이 가지는 관심하고는 달랐다. 항상 예수의 관심 대상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무관심 받은 자들을 찾아 오셨다. 이 땅에 교회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주위에 사마리아 같은 지역이 있습니까 사마리아 인 처럼 미워하고 배척하고 있는 이웃은 없습니까 형제 친척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런 미움과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신다.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화목 제물로 오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죄로 단절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친히 화목 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 지금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이 수 백년동안 같은 민족이면서도 갈등의 세월을 살아온 유대 민족에게 화목의 길을 열기 위해서 사마리아 땅에 들어오셨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내 주위에 그 어떤 사람과도 불편한 관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화목의 반대는 미움이다 '갈5:20' "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 이런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 땅에 화목을 이루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내 주위에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길을 우리도 가자. 그러할 때 이 땅에 참 평화와 기쁨이 찾아 올 것이다 6-18절 ".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에게서 물을 달라 하시니 . " 여정에 지친 예수님은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다. 우물가에 혼자 계셨던 그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예수님을 그 여인을 보고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물로 시작된 대화는 정작 물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
육시 정오 12시를 가리킨다. 유대 땅에서 정오는 가장 뜨거운 불볕 같은 시간이다. 이때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다 왜 사마리아 여인은 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을까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일부러 택해서 온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사는 여자였다. 예수님이 물로 대화를 시작하신 것은 그 여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은 알고 계셨다. 예수님이 꺼낸 물에 대해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먹는 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물을 생수로 바꾸어서 말씀 하셨다. 생수 성령님을 의미한다. 12절 하나님의 선물 역시 성령님을 의미한다 10절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 요한 복음 예수가 누구인지를 끓임 없이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 누구를 지금 만난 것이다.
제자들을 동네로 보내고 우물가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태양이 불볕 가는 그 시간에 멀리서 물동이를 머리에 얹고 우물가로 걸어오는 여인을 보았을 것이다. 걸어오는 여인을 보고 이미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우물가에 가까이 와서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기르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요구 하셨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신 것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다. 물을 달라하는 예수님 말씀에 놀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서서히 밝히고 있다. 대화가 점점 깊어질수록 여인은 점점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처음에는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유대인으로 보았다. 그 다음은 선지자로소이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에게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도 밝히지 않은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히셨다. 왜 하찮은 천한 여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셨을까 유대인들에게는 위협을 느껴서 신분을 감추셨고 이 여인에게는 아무런 위험도 없기 때문에 밝히셨을까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 사마리아 여인의 심령은 상할 대로 상한 심령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얻지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가슴 아파하며 지내온 불쌍한 여인 이였다. 예수님은 장엄한 설교중 하나를 불쌍한 여인 하나를 놓고 하셨다. 그리고 그 상한 여인의 마음을 치료하여 주셨다. 그 치료는 생수로 하셨다. 즉 성령님으로 치료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나 먼저 이 여인의 죄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했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가장 아픈 곳, 가장 부끄러운 곳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목이 심히 말라 있습니다. 먹어도 목마르지 않은 물이 있다면 내게 주옵소서" 여인은 예수님께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수를 바로 줄 수 없었다. 그 여인의 죄를 알고 있는 예수님은 여자의 죄를 먼저 혜결해야만 하셨던 것이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 이 말씀은 과거의 삶을 이제 청산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 말씀에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여인은 대답했다. 여자의 대답에 예수님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남편이 없다는 말이 참되다 " 하셨다. 여자는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쾌락을 위해서 남자들을 갈아 치웠다. 다섯 명의 남편은 이 여자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아마 이 남자는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던 같다. 예수님은 여자가 남자를 5명이나 갈아치우면서 어떤 삶을 살아온 것까지 알고 계셨고 그 더러운 삶을 이제 정리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남편이 없단 말이 참되다고 예수님은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여인의 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참 남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줄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54: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은 사마리아인들의 잡혼을 하면서 더러워진 그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은 바로 우리들이 예수를 믿기전 더러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전에 무엇을 의지하고 지내 왔던가 세상에 명예인가 권력인가 돈인가 쾌락인가 나 자신인가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알게 되었다 그 모든 남자들이 자기의 만족을 못 채워 준다는 것을 안 이 여인은 이제 좌절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늦게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 여인은 지금 같이 살고있는 남자에게서 만족을 채우려 하지 않고 갈급한 심령을 안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예수가 이 여인을 찾아 온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이 여인처럼 만족함을 채워 보려고 얼마나 우리가 애쓰며 살아 왔습니까 이제 그 만족함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우리들이다 알고 계십니까 생수가, 먹어도 먹어도 목이 마르지 않은 물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죠 혹시나 아직도 갈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말고 다른 곳에서 만족함을 찾으려고 아직도 수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한 심령 가지고 그 모습 그대로 예수께 나오자.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심령의 문을 노크하고 계신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19-26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 예수가 자신의 과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깨달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영감을 받은 선지자라고 본 것이다. 선지자로 안 여인은 가장 자신이 궁금해 왔던 문제를 예수께 질문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받으시고 여인의 예배 장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고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메시야다" 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선지자 백성들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도록 인도한다. 예수가 선지자라고 믿은 여인은 왜 예배 문제를 질문했을까 여인은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회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회복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에 예배 드리는 장소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리심산에 임재 하신다고 말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머무르신다고 했다. 22절에서 사마리아인들이 드린 예배는 참되지 못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본질적인 정신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을 경전으로 삼고 예배를 드렸다 또 그들은 이방잡신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겼다.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 유대인의 예배를 뜻한다. 시76:1절에 하나님은 유다에 알린바 되셨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유대인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는 것은 아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예배가 종교 혼합주의 예배 였다면 유대인들의 예배는 율법적인 예배였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예배를 "아는 것을 예배하는 자" 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참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인 보다 완전한 계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유대인인 예수 자신을 통해서 구원이 완성될 것을 가리킨다. 23절 "참으로 예배하는 자" 지금까지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니고 참 것의 그림자에 불과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것이 참 예배인지 여인에게 가르쳐 주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참 예배라는 것이다. 신령 영적인 예배를 뜻한다. 진정 진실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의 예배가 어떤 형식에 어떤 교리에 매여서 드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까 죄를 깨달은 여인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소원하고 있다. 예배는 곧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 21절, 23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가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는데 장소와 방법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이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 대상이 하나님에서 아버지로 바꾸어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이신 지 밝히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큰 일이 난다는 정도밖에는 하나님을 몰랐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자 하나님이 누구인 줄을 알게 되었다. 신령한 예배 .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다. 영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 자만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놀라운 말에 사마리아 여인은 더 말을 못하고 메시야가 오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그 아버지가 지금 너 앞에 있다는 것을 말씀 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여러분 같으면 이 말이 믿어지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율법적으로 하나님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자들을 지금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지금 밝히고 있다. 아버지께 나오는 마음으로 이 시간 나오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아버지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아버지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아버지 사랑을 아십니까 우리가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를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 알고 계십니까 '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원래 우리의 아비가 마귀였다는 것 아십니까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진실한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우리의 예배가 영적 예배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나의 더러운 죄를 사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사마리아인들처럼 거짓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유대인들처럼 율법적으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께 참 예배를 드릴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이 때는 바로 예수를 통해서 아버지를 알게된 바로 이때가 우리가 아버지께 참 예배를 드릴 때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자. '결론' 상할 대로 상한 한 여인의 심령에 주님은 소망을 심어주고 그 여인의 신앙을 회복 시켜 주셨다. 예배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어떤 예배가 참 예배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3장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깨닫지 못하는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가 진전 될 수록 이 여인의 영적인 면이 마구 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니고데모에게는 예수님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아니했지만 이 천한 여인에게는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하늘의 비밀을 깨닫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참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의 비밀을 주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 나올때마다 상한 심령으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상한 심령은 곧 가난한 심령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다. 상한 심령, 가난한 심령으로 드린 예배가 바로 영적 예배이고 참 예배인 것이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님은 구주가 되어 주시고 메시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다 천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엄청난 사건이다. 벌레만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주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 되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이제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상한 심령 가지고 살아가지 마시고 예수께 열심을 내고 나오는 자가 되자.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달라졌다.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신도 예수님을 만난자 아닙니까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수많은 다른 것을 기록할 수 있는데도 3장에 니고데모와 4장에 사마리아 여인의 대조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는가 요한 복음 기록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빈부와 귀천을 초월해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있는 자, 없는 자,병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자신은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재촉하시는 예수님의 행동을 당신은 알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처럼 목마른 삶을 사는 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찾아 오셨다. 1-5절 ".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유대 지방에서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든다는 소문을 바리새인들이 들었다는 것을 예수께서 아셨다. 이 사실을 알게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충돌을 하지 않기 위해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기로 작정을 하셨다. 갈릴리를 가시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해서 가기로 하셨다 이때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요단강 건너 베뢰아의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유대인들이 꺼려하던 사마리아 길을 택하셨다.
2절에 말씀은 예수가 세례를 주었다는 잘못된 소문을 사도 요한은 일부러 밝히고 있다. 오해로 인한 소문은 예수님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그런 예수님은 조용히 유대를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기로 하셨다 유대에서 갈릴리 가는 길은 두 길이 있었다. 요단강 건너 베뢰아로 돌아가는 길 약 6일이 걸리고 직선으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가는 길 약 3일이 걸린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 중심지역이다 이스라엘 남북이 약 193km 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이 나라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 남북지역 유대.2. 북부지역 갈릴리.3. 이 두지역 사이에 중심 지역이 사마리아 였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꺼려하는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택하셨다.
왜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 지역을 멸시하고 배척했는가 사마리아 지방은 본래 북왕국 이스라엘의 땅이었다.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가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B.C 722년 앗수르의 왕이 이곳을 점령한 다음부터 역사적 비극이 시작되었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 땅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간 대신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 지역에서 이방인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 지역에서 살게 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섬기던 이방 신을 섬기었고 세월이 지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신앙을 잃어갔고 혈통적으로도 점점 잡혼으로 인해서 유대 민족의 혈통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마리아 지역의 유대인들은 같은 유대 민족에게 배척 당했고 멸시와 천대를 당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역사적, 민족적 장벽을 깨뜨리고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을 들고 들어 가셨다. 해묵은 관례를 개의치 않고 금기의 지역을 방문하신 예수님의 행동은 구원은 혈통이나 감정을 초월해서 전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목적지는 갈릴리가 아니고 사마리아 였던 것이다. 사마리아가 유대로부터 멀어져 있는 게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예수의 삶 전체가 보여 주듯이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은 사람이 가지는 관심하고는 달랐다. 항상 예수의 관심 대상은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무관심 받은 자들을 찾아 오셨다. 이 땅에 교회가 어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 주위에 사마리아 같은 지역이 있습니까 사마리아 인 처럼 미워하고 배척하고 있는 이웃은 없습니까 형제 친척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이런 미움과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라고 하신다. (마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화목 제물로 오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가 죄로 단절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친히 화목 제물로 이 땅에 오셨다. 지금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이 수 백년동안 같은 민족이면서도 갈등의 세월을 살아온 유대 민족에게 화목의 길을 열기 위해서 사마리아 땅에 들어오셨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시키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기억한다면 내 주위에 그 어떤 사람과도 불편한 관계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화목의 반대는 미움이다 '갈5:20' "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 이런 일을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다. 이 땅에 화목을 이루러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내 주위에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그 사람과 화목한 관계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잠10: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 화목을 이루기 위하여 사마리아 땅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의 길을 우리도 가자. 그러할 때 이 땅에 참 평화와 기쁨이 찾아 올 것이다 6-18절 ".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에게서 물을 달라 하시니 . " 여정에 지친 예수님은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다. 우물가에 혼자 계셨던 그 우물가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예수님을 그 여인을 보고 물을 좀 달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은 이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물로 시작된 대화는 정작 물이 필요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 자신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
육시 정오 12시를 가리킨다. 유대 땅에서 정오는 가장 뜨거운 불볕 같은 시간이다. 이때는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다 왜 사마리아 여인은 이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을까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일부러 택해서 온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를 받고 사는 여자였다. 예수님이 물로 대화를 시작하신 것은 그 여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주님은 알고 계셨다. 예수님이 꺼낸 물에 대해서 사마리아 여인은 물을 먹는 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그 물을 생수로 바꾸어서 말씀 하셨다. 생수 성령님을 의미한다. 12절 하나님의 선물 역시 성령님을 의미한다 10절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다면 . 요한 복음 예수가 누구인지를 끓임 없이 말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 누구를 지금 만난 것이다.
제자들을 동네로 보내고 우물가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태양이 불볕 가는 그 시간에 멀리서 물동이를 머리에 얹고 우물가로 걸어오는 여인을 보았을 것이다. 걸어오는 여인을 보고 이미 예수님은 그 여인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다. 우물가에 가까이 와서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을 기르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요구 하셨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신 것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다. 물을 달라하는 예수님 말씀에 놀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서서히 밝히고 있다. 대화가 점점 깊어질수록 여인은 점점 예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처음에는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유대인으로 보았다. 그 다음은 선지자로소이다. 그 다음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인에게 예수님은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도 밝히지 않은 자신의 신분을 직접 밝히셨다. 왜 하찮은 천한 여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셨을까 유대인들에게는 위협을 느껴서 신분을 감추셨고 이 여인에게는 아무런 위험도 없기 때문에 밝히셨을까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 사마리아 여인의 심령은 상할 대로 상한 심령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얻지 못하고 한 많은 세월을 가슴 아파하며 지내온 불쌍한 여인 이였다. 예수님은 장엄한 설교중 하나를 불쌍한 여인 하나를 놓고 하셨다. 그리고 그 상한 여인의 마음을 치료하여 주셨다. 그 치료는 생수로 하셨다. 즉 성령님으로 치료하시기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나 먼저 이 여인의 죄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했기에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가장 아픈 곳, 가장 부끄러운 곳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다. "저는 목이 심히 말라 있습니다. 먹어도 목마르지 않은 물이 있다면 내게 주옵소서" 여인은 예수님께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생수를 바로 줄 수 없었다. 그 여인의 죄를 알고 있는 예수님은 여자의 죄를 먼저 혜결해야만 하셨던 것이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 이 말씀은 과거의 삶을 이제 청산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예수님의 음성이었다. 남편을 불러오라는 예수님 말씀에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여인은 대답했다. 여자의 대답에 예수님은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지금 남편이 없다는 말이 참되다 " 하셨다. 여자는 자기의 만족을 위해서 쾌락을 위해서 남자들을 갈아 치웠다. 다섯 명의 남편은 이 여자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를 만났는데 아마 이 남자는 남편으로 여기지 않고 있었던 같다. 예수님은 여자가 남자를 5명이나 갈아치우면서 어떤 삶을 살아온 것까지 알고 계셨고 그 더러운 삶을 이제 정리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남편이 없단 말이 참되다고 예수님은 말씀했는데 이 말씀은 여인의 말에 동조한 것이 아니라 참 남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줄려고 말씀하신 것이다 '사54:
5'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 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은 사마리아인들의 잡혼을 하면서 더러워진 그들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은 바로 우리들이 예수를 믿기전 더러운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전에 무엇을 의지하고 지내 왔던가 세상에 명예인가 권력인가 돈인가 쾌락인가 나 자신인가 사마리아 여인은 이제 알게 되었다 그 모든 남자들이 자기의 만족을 못 채워 준다는 것을 안 이 여인은 이제 좌절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늦게 이런 사실을 깨달은 이 여인은 지금 같이 살고있는 남자에게서 만족을 채우려 하지 않고 갈급한 심령을 안고 눈물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예수가 이 여인을 찾아 온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이 여인처럼 만족함을 채워 보려고 얼마나 우리가 애쓰며 살아 왔습니까 이제 그 만족함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고있는 우리들이다 알고 계십니까 생수가, 먹어도 먹어도 목이 마르지 않은 물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죠 혹시나 아직도 갈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 말고 다른 곳에서 만족함을 찾으려고 아직도 수고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한 심령 가지고 그 모습 그대로 예수께 나오자.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 주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의 심령의 문을 노크하고 계신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19-26절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 예수가 자신의 과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깨달은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가 영감을 받은 선지자라고 본 것이다. 선지자로 안 여인은 가장 자신이 궁금해 왔던 문제를 예수께 질문했다. 예수님은 이 질문을 받으시고 여인의 예배 장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고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까지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놀라운 비밀을 말씀하셨다. "내가 바로 메시야다" 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선지자 백성들의 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도록 인도한다. 예수가 선지자라고 믿은 여인은 왜 예배 문제를 질문했을까 여인은 자신의 죄를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회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회복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에 예배 드리는 장소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리심산에 임재 하신다고 말했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머무르신다고 했다. 22절에서 사마리아인들이 드린 예배는 참되지 못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한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무지하다는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예배의 본질적인 정신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을 경전으로 삼고 예배를 드렸다 또 그들은 이방잡신들과 함께 하나님을 섬겼다.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 유대인의 예배를 뜻한다. 시76:1절에 하나님은 유다에 알린바 되셨다고 하셨다. 그렇다고 유대인의 예배가 참된 예배라는 것은 아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예배가 종교 혼합주의 예배 였다면 유대인들의 예배는 율법적인 예배였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의 예배를 "아는 것을 예배하는 자" 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참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사마리아인 보다 완전한 계시를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유대인인 예수 자신을 통해서 구원이 완성될 것을 가리킨다. 23절 "참으로 예배하는 자" 지금까지 예배는 참 예배가 아니고 참 것의 그림자에 불과 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떤 것이 참 예배인지 여인에게 가르쳐 주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참 예배라는 것이다. 신령 영적인 예배를 뜻한다. 진정 진실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뜻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우리의 예배가 어떤 형식에 어떤 교리에 매여서 드려져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마리아 여인처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까 죄를 깨달은 여인은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를 소원하고 있다. 예배는 곧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올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본문 21절, 23절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얼마나 충격적인 말인가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는데 장소와 방법과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이 문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그 대상이 하나님에서 아버지로 바꾸어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예배 드릴 때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이신 지 밝히러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큰 일이 난다는 정도밖에는 하나님을 몰랐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시자 하나님이 누구인 줄을 알게 되었다. 신령한 예배 .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했다. 영으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 자만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놀라운 말에 사마리아 여인은 더 말을 못하고 메시야가 오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더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그 아버지가 지금 너 앞에 있다는 것을 말씀 하셨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여러분 같으면 이 말이 믿어지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율법적으로 하나님으로 드리는 예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은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자들을 지금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 드리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가 신령과 진정한 예배가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지금 밝히고 있다. 아버지께 나오는 마음으로 이 시간 나오셨습니까 예수님은 그 아버지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아버지 사랑이 어떤 것입니까 독생자 예수를 아낌없이 보내주신 아버지 사랑을 아십니까 우리가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데 예수를 보내 주셔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 알고 계십니까 '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원래 우리의 아비가 마귀였다는 것 아십니까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진실한 아버지라는 것을 보여 주셨다. (마23:9)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우리의 예배가 영적 예배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나의 더러운 죄를 사해주신 그 은혜에 감사해서 진실된 마음으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사마리아인들처럼 거짓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유대인들처럼 율법적으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께 참 예배를 드릴 때가 바로 이 때이다. 이 때는 바로 예수를 통해서 아버지를 알게된 바로 이때가 우리가 아버지께 참 예배를 드릴 때이다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자. '결론' 상할 대로 상한 한 여인의 심령에 주님은 소망을 심어주고 그 여인의 신앙을 회복 시켜 주셨다. 예배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고 어떤 예배가 참 예배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3장에서 니고데모는 예수님과 대화를 통해서 깨닫지 못하는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가 진전 될 수록 이 여인의 영적인 면이 마구 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니고데모에게는 예수님 자신의 비밀을 말하지 아니했지만 이 천한 여인에게는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었다. 하늘의 비밀을 깨닫은 자에게만 주어진다. 참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하늘의 비밀을 주어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께 나올때마다 상한 심령으로 나오시기를 축원합니다 상한 심령은 곧 가난한 심령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다. 상한 심령, 가난한 심령으로 드린 예배가 바로 영적 예배이고 참 예배인 것이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는 자에게 주님은 구주가 되어 주시고 메시야로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실 것이다 천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은 엄청난 사건이다. 벌레만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은 우주적인 사건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 되심을 믿으십니까 믿으신다면 이제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상한 심령 가지고 살아가지 마시고 예수께 열심을 내고 나오는 자가 되자.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달라졌다.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당신도 예수님을 만난자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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