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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말 (요3:16)

본문

오늘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듣고자 한다. 물론 그 말은 성경에 있다. 놀라운 말들이 성경에 나타난다. 그 말들은 세상의 지식을 주는게 아니다. 세상의 지식은 잠간 유익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죄 를 용서하거나 죽음에서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장 놀라운 말이라고 할 때는 세상의 수준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준다는 뜻이다. 사실 이 말씀은 너무 많이 들어서 그 엄청난 의미를 지나칠 수 있다. 전 문가들은 언제나 보물을 일상적인 장소에 감추어둔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 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 말씀도 늘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자세히 본다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내용이 포함된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별로 유익이 되지 않는 말에 유혹 당하는 습관이 있다. 여성들에 게 아름답다는 말은 달콤한 설탕과 같다. 존경한다거나 훌륭하다는 칭찬을 얼마든지 듣고 싶어한다. 자기를 비판하는 말에는 견디지 못해도 잘났다는 말은 좋아한다. 어느 누구나 사람이라면 아첨의 말을 좋아한다.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생판 거짓말인줄 알면서도 그렇게 좋아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우리를 유익하게 하지 못한다. 아름답다거나 훌륭하 다는 말을 듣고 믿는다고 더 아름다워지거나 훌륭해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 믿는다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들으려고 귀를 귀우리는게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 말을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뭐든지 아끼지 않고 별로 그런 말을 안하는 사람은 아무리 충실히 해도 아무 것도 없다.
오늘 말씀은 그런게 아니다. 잠시 기분만 좋게하는게 아니다. 들으면 공 허하게 없어지는 사탕발림이 아니다. 몇 번 읽으면 지겨워지는 세상의 명작 도 아니다. 그말을 듣고 믿는 사람은 엄청난 유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효력은 세상의 칭찬처럼 사라지는게 아니라 점점 더 강해진다. 어느 작품이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고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잃지 않고 빛을 발하던가! "여호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여기 몇 가지의 내 용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태도, 죄에 대한 태도, 그 외아들에 대한 태도, 그아들을 믿는 이들에 대한 태도, 그의 아들을 대적하거나 무관 심한 자들에 대한 태도가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다고 한다. 이것은 세상에 없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세상에도 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 한 의미에서 사랑이 아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흔히 자신만의 쾌락을 얻는데 사용된다. 순전한 이기심이고 저열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한 여인이 마음을 바꾼다면 남자는 칼로 찌르든지 모욕을 할 것이다. "그를 너무 사랑했기에 죽였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전혀 사랑이 아니다. 아내를 사랑해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이가 있다. 얼마전에 변 심한 애인을 찾아가서 애인과 부모까지 무참히 살해한 사건이 신문에 났었다. 남자는 말했다. "사랑했기에 죽였다." 세상의 사랑은 더 이상 자기에게 쾌락이 주어지지 않으면 미움과 저주로 바뀌고 만다. 이런 모든 일은 세상이 사랑에 굶주려 있다는 말도 된다. 아내나 남편은 때때로 확인하려 한다. 그래서 묻는다. "나를 사랑해" 그래서 그 대답이 시 원하지 않으면 심통을 부린다. 사실 우리가 사랑한다는 그것이 얼마나 강한 것인가 내 몸 아프고 피곤하면 다 귀찮아지는걸. 서로 그런 존재들이 서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데 세상에 어디 참된 영원한 사랑이 있겠는가! 진정한 사랑은 상대만을 좋게 해준다.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떠나서 사랑하는 이의 이익을 위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향해서 가진 태도 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되 거기 있는 사람 하나 하나를 극진히 사랑 하고 계신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그래서 나에 게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행복하게 해주기를 원하신다. 만약 옆의 교회의 교인 하나가 오늘 예배를 마치고 차사고를 당해 죽었 다고 치자. 우리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저 압구정동 거리 를 걸으며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찾아보라. 붐비는 거리에서 모 두 낯선 사람들일뿐이다. 고속터미날에 나가 보라.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내게 관심 쏟는 사람은 하나도 없구만!" 이것이 우리의 고백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대하 면서 사랑하신다. 얼마 전에도 돈 칠백만원을 빼앗기 위해선지 다른 이유에 서인지 할머니와 중년 여인을 망치로 머리를 박살내 죽인 사건이 있었다. 세상은 이처럼 잔인하고 죄악에 가득차 있다. 조금만 틈을 보이면 해를 주고 돈을 빼앗는다. 이러한 세상에서 하나님은 나 한 사람을 직접 사랑하신다. 경상도 산 속에서 전도할 때였다. 어느 교사의 아내가 아주 굳은 표정으 로 맞았다. 아무리 전도해도 듣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말했다. "부디 행복하 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러자 반응이 왔다. "세상에 날 사랑하는 이는 아무도 없어요. 부모도 남편도 날 사랑 안해요.하나님은 당신을 일대일로 사랑하십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기 원하십니다." 그 여인은 말했다. "난 남편이 성경책을 사오면 사오는대로 다 갈기갈기 찢었어요. 교회 옆에 지날 때는 침을 뱉았어요.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 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일대일로 사랑하십니다." 그때 그녀의 얼굴은 흔들렸다. 나는 기도를 하고 떠나왔다. 그날 저녁 그 여인은 교회에 나왔다. 하나님의 개인적인 사랑을 드디어 알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그분의 죄에 대한 증오와 잘 대조가 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한없이 사랑하신다. 그러나 그만큼 죄에 대해서는 증오하신다. 만약 하나님이 죄에 대해서 증오하지 않았다면 속죄를 요구하지도 않고 세상 사람 들 전체를 다 구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철저하게 증 오하신다. 그리고 그 댓가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고 싶어하신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이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세상의 모든 면에 서 우리는 무서운 죽음의 경고를 본다. 사실상 지옥의 뚜껑은 어디에나 열려 져 있고 무서운 화살은 마구 흐르고 있다. 사람들이 지옥에 빠지고 화살에 맞는 것은 시간 문제이지 누구나 다 해당된다. 늙은이라고 먼저 당하고 몸이 약하다고 먼저 맞는게 아니다. 사실상 인간처럼 불안한 삶이 어디 있는가. 사람들은 질문한다. "왜 하나님은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게 만들었는 가왜 하나님은 그렇게 잔인하신가사랑의 하나님은 왜 지옥을 만드셨는가왜 악인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왜 세상이 이렇게 슬프게 하셨는가" 지금 그 모두를 대답할 시간은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은 인간의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요 하나님은 그것을 해결하려고 외아들을 보내셨다. 사실상 인간의 구원보다 더 시급한 일을 세상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멋 대로 놀아났지만 여호와는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사 53:6) 아 들은 자기 몸에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구원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다.
십자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죄에 대한 증오를 동시에 보여준다. 사랑하신다고 하나님이 죄에 대해 눈감아 주고 용납하실 것으로 착각하 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기심과 거짓말 하는 것을 미워하신다. 술취하고 더러운 말하는 것,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것 야비한 것, 게으르고 나태한 것을 역겨워하신다. 거짓말하는 사람들, 부정한 여인을 정직한 사람 들이 증오하는 정도도 크지만 하나님의 진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부모된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자신의 아들을 어떻게 대하는가 외아들이 라면 어떻게 겠는가 나도 아들이 하나이다. 우리 모두 자식을 말할 수 없이 사랑한다. 우리 자신은 힘들고 천해져도 자식들은 잘 살기를 원하지 않는가 우리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것에 비하면 아 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천사들 위에 뛰어난 존재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위해 그 아들을 주셨다. 창세전부터 자신의 기쁨이었던 아들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보냈다. 그곳이 어딘가 죄가 판치는 곳이요 고통의 울음이 떠나지 않는 곳이다. 아들은 이 험악한 세상에 내려와서 비참하게 살았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셨다. 자기 아들이 찢어지게 가난하게 지내는 것을. 항상 천하게 억울한 대접받는 것을.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멸시를 받았다. 그는 슬픔의 사람이었다. 성경 에 보니까 그는 배고팠고 그는 외로웠다. 여우도 머리 둘 곳이 있었으나 그는 누울 장소도 없었다. 모두를 사랑했지만 모두에게 배신당한다. 재판장의 입으로도 형 집행하는 이의 입으로도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란 소리를 들었 지만 그는 군중들에 의해서 조롱 당하면서 이리 저리 끌려 다녔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낱낱이 보셨다.
그가 가장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받으며 처형당하는 장면을. 나체로 강도들 사이에서 나무에 못이 박혀 극도의 고 통으로 죽을 때까지 매달려야 하는 모습을 보셨다. 하나님도 견디지 못해 온 하늘을 어둡게 하고 천둥을 울렸다. 고요한 가운데 아들은 소리쳤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엄청난 댓가였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끝이 없는 사랑이요 죄에 대해서는 끝이 없는 증오요, 자기 아들에 대해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그를 우리를 위해서 죽도록 내주셨다. 이 사실을 믿고 받는 이에게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영원한 생명이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따지지 않는 하나님이 시다. 하지만 믿지 않는 자에 대한 그의 태도는 영원한 멸망일뿐이다. 이제 우리 삶을 점검해 보자.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이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요 주위 의 가족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그만큼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으로 살 수 있는 위대한 것이다. 그러기 에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내가 이 믿음에 들어서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보라. 내가 이 하나님의 아들을 내 영혼에 받아들였는가 내가 그를 의지하고 살고 있는가 이 바람처럼 흘러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그 힘으로 살고 있는가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해 놓은 모든 일들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그 힘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아직도 내 자신의 힘으로 목적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를 심판한 빌라도는 그가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바로 눈 앞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면서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줄 알면서도 믿지 않았다. 그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로부터 생명을 받지도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고 곧 세상 의 생각에 잡혔다. 황제에게 보고도 하고 진급도 하고 돈도 더 모으고.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은 속히 하라. 흐르는 화살에 맞기 전에 하 라. 지금하라. 예수를 영접했어도 분명치 않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라.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위해서 한 일들을 낱낱이 살펴보라. 그 댓가를 누리라. 그리고 그 힘으로 살 기를 결심하라. 가장 아름다운 말을 거부하면 가장 무서운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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