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랑하사 (요3:16-21)
본문
어제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책상에 앉았는데 책상앞 책꽂이에 막내 아이의 어렸을 때 사진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렸을 때의 사진인데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제 아이의 얼굴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굴의 모양도 물론이지만 아이가 짓고 있는 표정까지도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새삼스럽게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속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이 아이에게라면 무엇이든지 다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순간이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보면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당신의 자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시편 2편 7절에 보면 '내가 내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말씀이 있고 히브리서 1장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는 말씀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다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또 이미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을 모두 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때문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했고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와 세상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느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대하여 배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대로 욕심대로 살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주를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와같은 삶을 사는 우리를 탕자라는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세상으로 달려나간 탕자 처럼 우리의 실존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다가 나중에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되어 헤어질 때에도 많은 아픔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경우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가장 나쁜죄가 있다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보다 더 나쁜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그 고통과 아픔을 드린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제 멋대로 살고 싶어서 부모의 사랑을 배반하고 부모를 떠나 정말 제 마음대로 살면서 사는 아이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탕아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부모를 버리고 나와서 생활하는 아이들중에 건전하고 바른 삶을 사는 아이들이 어디있겠습니까 술과 담배와 마약을 서슴없이 하고난잡한 이성교제로 인하여 그 삶이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면서 삽니다. 지존파나 막가파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기득권층중에 잘못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들이 그렇게 파괴당한 것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무조건 기득권층에게 돌리고 복수 하듯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버리고 제 멋대로 사는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어떤 경우는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서슴없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와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그 탕자의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하나님으로 자신의 주를 삼지 아니하고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 지금은 아니라고 하여도 우리는 모두 과거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멋대로 살아왔던 전과가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의 모습 마치 무엇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이상한 모습으로 그리고 비정상적인 생활방법을 가지고 자신과 사회를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거리의 불량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음없이 제 욕심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겉은 젊잖은 것같고 고상한 것 같으나 그 생각하는 것이나 사는 것이 실제로는 거리의 불량배와 똑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하고 인정하여야만 합니다. 성경에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시 22:6)라는 말씀이 있으며 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4)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착각하며 그 착각 때문에 교만하고 제법 고상한척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살지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거듭나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지렁이와 같고 벌레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게 되면 고통과 함께 그에 비례하는 미움이 따라 옵니다. 그래서 그를 보기만 하여도 치가 떨리고 할수만 있다면 그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을 다시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의 경우는 가능하나 그것도 무한정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포기한 자녀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랑해 준다면 탕자는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마져 그를 포기한다면 그에게는 정말 다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과 상처로 인하여 우리를 미워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두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가 다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당신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생명이 있으며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사랑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유럽에 유학을 간 분 하나가 있습니다. 공부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준비하여 간 돈이 다 떨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밥을 굶어야 하리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남에게 구차한 말을 하지 아니하여 그 어려움은 좀처럼 해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누가 전화를 하기만 하면 그냥 계속 울기만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그 소식을 알게 되어 마침 좋은 분 하나가 연결이 되어 매달 생활비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넉달째 생활비를 보내자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하여도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달 정한 날자가 되면 통장에 생활비가 정확히 입금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활기를 되찾았고 웃음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여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외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잘못된 사람을 바르게 합니다. 삭개오는 모든 비난과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생활을 바꾸지 아니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리라'는 말씀 한 마디에 모든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삭개오를 회개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삶은 진리를 알아야만 고칠 수 있지만 사랑이 없는 진리는 사람의 잘못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몰라서 잘못되는 경우보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고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 드리시는 여러분들중에도 그 삶이 힘들고 어렵고 외로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그 고통과 어려움만 바라보시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사 십자가에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생명이 아닌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리고 우리가 배반하였던 그 하나님이 아직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금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그동안의 모든 진홍같고 주홍같은 붉은 죄를 흰 눈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삶을 얽어매고 있는 사슬같은 죄가 있습니다. 생각만하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가 있어서 무슨일을 하던지 떳떳하지 못한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가책이 우리의 삶을 제한하고 무거운 짐과 같이 우리의 삶을 누르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눌림으로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과거의 허물과 죄만 바라보지 마시고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실 때에 그것을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바로 놀라운일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 능력'이라고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그 보혈의 능력을 체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성찬을 받으면서 또 하나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여러분을 힘들게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뿐만 아니라 그도 사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와같은 사람을 사랑하신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그와같은 사람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자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좀 나은 줄 알지만 하나님 앞에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며 더 나아가 미워하는 그 사람들 까지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그 여유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야 어려운 문제들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없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이성으로만은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사랑이 해답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까닭도 사랑이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풀기를 원하시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그 문제를 푸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찬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십시다. 성찬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의 허물과 죄를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거리를 배회하는 부량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옳지 못한 생활과 일을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성찬을 받으시면서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낙심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십자가를 바라보고 새 힘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임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 사랑임을 인정하시고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으로 말미암아 모든 외로운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낙심한 자가 새 소망을 얻으며 죄를 지은자가 회개하고 모든 미움들이 변하여 사랑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습속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상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당신의 자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로 창조하셨습니다.
시편 2편 7절에 보면 '내가 내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말씀이 있고 히브리서 1장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는 말씀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다 주실 수 있으십니다. 그리고 또 이미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을 모두 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때문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부담스러워했고 싫어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와 세상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이 말씀하시느대로가 아니라 내 마음대로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살고 싶어 했으며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으면 네가 스스로 하나님이 되리라는 사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대하여 배반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대로 욕심대로 살기 시작하였으며 하나님으로 자신의 아버지와 주를 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사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와같은 삶을 사는 우리를 탕자라는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세상으로 달려나간 탕자 처럼 우리의 실존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탕자와 같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죄인들인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괴로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참으로 많은 아픔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살아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다가 나중에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되어 헤어질 때에도 많은 아픔과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일방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는 경우처럼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은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죽음보다 더한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가장 나쁜죄가 있다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보다 더 나쁜죄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 그 고통과 아픔을 드린 것입니다. 제 마음대로 제 멋대로 살고 싶어서 부모의 사랑을 배반하고 부모를 떠나 정말 제 마음대로 살면서 사는 아이들이 세상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탕아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부모를 버리고 나와서 생활하는 아이들중에 건전하고 바른 삶을 사는 아이들이 어디있겠습니까 술과 담배와 마약을 서슴없이 하고난잡한 이성교제로 인하여 그 삶이 완전히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순식간에 떨어져 버리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만으로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면서 삽니다. 지존파나 막가파가 바로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물론 이 세상의 기득권층중에 잘못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들이 그렇게 파괴당한 것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무조건 기득권층에게 돌리고 복수 하듯 무고한 사람을 살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를 버리고 제 멋대로 사는 아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다. 어떤 경우는 평생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서슴없이 주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와같은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어른들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그 탕자의 본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들 중에는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면서도 하나님으로 자신의 주를 삼지 아니하고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따라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 지금은 아니라고 하여도 우리는 모두 과거에 하나님을 배반하고 제 멋대로 살아왔던 전과가 있는 사람들 입니다. 그때와 지금의 우리의 모습 마치 무엇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이상한 모습으로 그리고 비정상적인 생활방법을 가지고 자신과 사회를 파괴하면서 살아가는 거리의 불량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믿음없이 제 욕심을 따라 사는 모든 사람들은 겉은 젊잖은 것같고 고상한 것 같으나 그 생각하는 것이나 사는 것이 실제로는 거리의 불량배와 똑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으며 지금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하고 인정하여야만 합니다. 성경에 보면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시 22:6)라는 말씀이 있으며 또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41:14)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착각하며 그 착각 때문에 교만하고 제법 고상한척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살지만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 거듭나지 못하고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지렁이와 같고 벌레와 같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게 되면 고통과 함께 그에 비례하는 미움이 따라 옵니다. 그래서 그를 보기만 하여도 치가 떨리고 할수만 있다면 그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선을 악으로 갚은 사람을 다시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부모의 경우는 가능하나 그것도 무한정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도 포기한 자녀가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라도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사랑해 준다면 탕자는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마져 그를 포기한다면 그에게는 정말 다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반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반을 당하시고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과 상처로 인하여 우리를 미워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얼마든지 복수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두 죄와 허물을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가 다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배신하고 당신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준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거기에 우리의 생명이 있으며 거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은 약한 사람을 강하게 합니다. 사랑은 외롭고 소외된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학교에서 교사를 하다가 유럽에 유학을 간 분 하나가 있습니다. 공부하는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준비하여 간 돈이 다 떨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밥을 굶어야 하리만큼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남에게 구차한 말을 하지 아니하여 그 어려움은 좀처럼 해결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이 참 좋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고 누가 전화를 하기만 하면 그냥 계속 울기만 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연히 그 소식을 알게 되어 마침 좋은 분 하나가 연결이 되어 매달 생활비를 보내 드리게 되었습니다. 넉달째 생활비를 보내자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전화를 하여도 울지 않게 되었습니다. 매달 정한 날자가 되면 통장에 생활비가 정확히 입금이 되는 것을 보면서 그는 활기를 되찾았고 웃음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여도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을 것이며 외롭지도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잘못된 사람을 바르게 합니다. 삭개오는 모든 비난과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의 생활을 바꾸지 아니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지나가시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보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리라'는 말씀 한 마디에 모든 잘못된 삶을 청산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삭개오를 회개하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삶은 진리를 알아야만 고칠 수 있지만 사랑이 없는 진리는 사람의 잘못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몰라서 잘못되는 경우보다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잘못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고 그 십자가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 드리시는 여러분들중에도 그 삶이 힘들고 어렵고 외로워 하루 하루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분들이 계십니까 그 고통과 어려움만 바라보시지 마시고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사 십자가에 돌아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위로와 힘을 얻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심으로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생명이 아닌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그리고 우리가 배반하였던 그 하나님이 아직도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금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우리의 그동안의 모든 진홍같고 주홍같은 붉은 죄를 흰 눈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삶을 얽어매고 있는 사슬같은 죄가 있습니다. 생각만하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죄가 있어서 무슨일을 하던지 떳떳하지 못한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다. 그 양심의 가책이 우리의 삶을 제한하고 무거운 짐과 같이 우리의 삶을 누르고 있습니다. 죄에 대한 눌림으로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과거의 허물과 죄만 바라보지 마시고 그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바라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을 받으실 때에 그것을 느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은 죄에서 자유함을 얻는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게 되실 것입니다.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건중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바로 놀라운일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게함은 보혈의 능력'이라고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해서 그 보혈의 능력을 체험해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주님의 성찬을 받으면서 또 하나 깊이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여러분을 힘들게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뿐만 아니라 그도 사랑하고 계신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 어떻게 하나님이 그와같은 사람을 사랑하신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그와같은 사람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그 사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자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보다 좀 나은 줄 알지만 하나님 앞에 나나 그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를 미워하거나 싫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성찬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며 더 나아가 미워하는 그 사람들 까지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정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을 깨닫고 인정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그 여유를 가지고 문제를 풀어야 어려운 문제들이 풀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없이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이성으로만은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습니다. 사랑이 해답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까닭도 사랑이 모든 문제의 유일한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풀기를 원하시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예수님처럼 사랑으로 그 문제를 푸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성찬을 헛되이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십시다. 성찬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우리의 허물과 죄를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거리를 배회하는 부량아와 같은 삶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솔직히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기 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옳지 못한 생활과 일을 하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성찬을 받으시면서 회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 때문에 낙심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있다면 십자가를 바라보고 새 힘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좋아하지 아니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그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임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결이 사랑임을 인정하시고 여러분들도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찬으로 말미암아 모든 외로운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낙심한 자가 새 소망을 얻으며 죄를 지은자가 회개하고 모든 미움들이 변하여 사랑이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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