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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오신 예수 (요3: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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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왔습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주간이기도 합니다. 대강절이란 주님이 오심을 크게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기도 합니다. 벌써 성급한 곳에서는 성탄장식이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1월 말 경 미국 뉴욕집회를 위하여 갔을 때 벌써 호텔이나 백화점에는 크리스마스 장 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커다란 성탄목에는 여러 가지 색색의 전등이 깜박거리 고 있었고 들리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마음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제가 머물렀 던 호텔 로비에는 피아노가 있었는데 종업원이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캐롤을 연주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그가 쓴 '그리스도인의 354일'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묻는다, '그리스도는 무슨 말을 하였는가'라고, 그들이 토론하고, 이의를 내고, 탐구하고, 증명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조금. 아 아, 현자들이여, 그대들의 시리아 말과 그리스 말을 버려라! 그대들이 찾는 지 식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스도가 말한 것은 세상의 공통어-사랑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사랑으로 오셔서 사랑을 보이시다 사랑으로 죽으 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을 사랑하시사 인간구원을 위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간 사랑,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도 하였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사 죄에서 구원 하시사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려고 아들을 보내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8절에 보면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닫고자 하는 사람 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에 인간을 만드신 후 그곳에다 인간들이 먹고 살 많은 과일들이 있 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먹어서는 안될 선악을 알게하는 과일도 있었습니다. 일 명 선악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것을 거기에 있게 하셨을까를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였고 학자들이 연구를 하였습니다. 거기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 이 들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였습니다. 그렇다고 기계같은 인간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지만 인간은 당당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자원하여 사랑으로 섬기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기대하는 관계는 노예적인 굴종의 관계가 아니라 온 전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 이하에 보면 길 가시던 중 만난 한 율법사의 질문과 답 이 나옵니다. 율법사가 계명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크냐고 물었습니다. 계명이 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갖기 위하여 지켜야 할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답하시면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을 원하시는 것이지 억압에 의한 굴종이나 기계적인 따름을 바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은 사랑의 의미 를 바로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대상을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강하면 강할 수록 그는 더욱 사랑하는 대상을 본받게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비록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도 손자를 사랑하게 되면 손자처럼 기어다니며 손자처럼 갖추어 지지 않은 단어로 말하는 것도 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유치하게 보이거나 우스광스러운 행동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자신은 진정 손자를 사랑하셔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닮으신 것이 아니라 아예 인간이 되시사 그 사랑을 나타내시고자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마태 복음 1장 23절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 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사람 가운데 계시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 국 사람을 사랑하시사 마침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도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 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 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사람이 되게 하시고 세상에 보내신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억만 죄악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하심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18절에서는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 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빋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 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아들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그 아들 을 믿는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하만슈타인의 시 간운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 아니다. 노래는 부를 때까 지 노래가 아니다. 사랑은 표현할 때까지 사랑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종이 있어도 울리지 않으면 있으나 마나요 ,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가 담긴 악보라고 하더라도 불려지지 않으면 노래라고 할 수 없으며,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 다고 하더라도 표현이 없다면 그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날 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한국 신학대학 학장을 지내셨고 연세대학 연합 신학원 원장을 지내신 김정 준 박사도 그의 저서 '약하지만 강하다'라는 글에서 사랑을 설명하면서 사랑은 말보다 행동이 앞선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진정한 사랑이란 '그대는 나의 태 양'이라느니 '그대 없는 세상은 사막'이라는 등의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런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심을 구체적으로 행동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들 을 사람되게 하시사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요 나타내심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리고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셔서 아들 을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사랑을 구체적으로 행동하시사 아들을 세상에 사람되어 보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값을 지불하도록 제물을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인간 사랑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사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시사 범죄한 인간들을 심판하시고 벌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아들로 죄값을 지 불하게 하시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분명한 의도에서 아들을 세상 에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 으로 오신 분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성탄의 계절에 사랑 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잡하여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을 깨닫고 그 안에서 충 만한 삶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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