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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적 (요2:1-11)

본문

예수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유익을 주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유익을 얻었습니다. 말씀, 치유, 평안, 변화, 용기등 입니다.
1. 처음이적 혼인잔치에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우리도 항상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해서 떠나 가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하셨다. 주님은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빛 혹은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유익을 주는 위치에서 살아야 하며 남을 유익케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뭐! 나같은 사람이 무슨유익”을 줄수 있는가라고 생각을 할는지 몰라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가진 달란트 만으로도 유익을 줄 수 있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갖난 아이는 부모님을 향하여 한번 웃는 것으로도 부모 마음을 한없이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고 권세가 있어야 남을 기뻐게 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희생하면 어떤 사람도 남을 유익케 할 수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를 보면 남을 유익케 한 사람들은 돈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돈으로는 열 사람도 섬기기 어렵지만 희생과 사랑은 모든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많은 짐승들 중에서 받으시는 제물을 보세요 유익케 하는 동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소를 보세요! 좋은 살을 제동함으로서 유익을 줍니다. 밭을 갈도록 유익한 봉사를 합니다. 소란 동물은 콩은 사람에게 주고 꽁깍지를 먹습니다. 쌀은 사람에게 주고 볏집을 먹습니다. 그러면서도 살아서 충성하고 죽어서 까지 유익을 줍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짐승을 제물로 요구하셨습니다. 오늘도 남을 유익케 하는 삶은 하나님 앞에 제물이 되는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 믿음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남을 유익케 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한 사람이였습니다. 모세와 같은 사람은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기 동족과 함게 받는 고난을 애굽의 모든 영화 보다 더 큰제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남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올바른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의 곡식도 다 베지 말라! 이삭도 다 줍지 말라!”고 했습니다. 내가 농사를 지었을지라도 배고푼 백성 지나가는 나그네를 위해서 남겨 두라고 했습니다. 내가 거두는 곡식 중에서도 내것이 아닌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현대적으로 해석 해 본다면 우리가 얻은 소득 중에서도 내것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몫을 내가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한다. 남을 유익케 하지 못한 삶은 가난한 자의 몫을 빼앗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지위나 자리에 있던지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를 주면서 산다면 비록 다윗이라도 “당신이 바로 그 악한 사람이다”(삼하12:7)라고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은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 속에서 악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만나는 사람마다 만나는 일마다 내가 어떤 유익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의 처음이적에서 보면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2.제일 먼저 예수님께 의론 했습니다. 포도주사건은 남의 일이요 자신에게 직접 이해 관계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자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를 숭배하는 천주교가 일어날 것을 아시고 미리 그렇게 말씀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을 소유하셨지만, 마리아는 신성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인간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과 인간사이에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무슨일을 만나든지 주님께 먼저 의론 드림이 가장 지혜로움을 보여 줍니다. “안된다” 하고 끝내는 것하고 주님께 기도하고 마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최종 판단자”가 되지 말고 “주님께 판단”을 맡겨야 지헤로운 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빌립:안됩니다. 돈으로도, 시간으로도, 장소로도, 논리적이다.-안드레:나는 안됩니다 마는 주님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요 신앙적이다. 신앙은 내가 판단 할 일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 않하는 것도 좋으나 주님께 기도하고 마치자.
3.
둘째 순종입니다. “무슨말씀을 하던지 그대로 하라!”고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대로 하라!”는 것은 순종에는 내 방법이 개입되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당면한 어떤문제이든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열쇄는 두가지 이다. 믿음과 순종 나사로를 살릴 때 돌을옮겨 놓아라!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아도 안된다.라고 생각을 했다면 불순종하고 예수님보고 웃기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할 수있는 것은 순종하고 믿으면 역사하십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순종을 하게 하십니다. 돌 옮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나 살리는 것은 안되는 일입니다. “돌”을 옮기는 것은 인간이 할 일입니다. “물을 옮기는 것도 역시 인간이 할 일입니다. 돌이나 물을 옮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포도주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조차도 하나님이 하시기를 기대 하지는 말라! 순종은 하기는 어렵습니다. 일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없이는 순종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만 하기 때문에 순종이 귀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린양을 예비해 주신다는 그결과를 알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삭을 죽이러 갈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기를 많이 잡는다는 그 결과를 알았다면 누구나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기 잡힐 줄 알고는 누구나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결과와 축복을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충만의 교훈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명령을 했습니다. 채우지 않고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는 우리들의 마음을 채울 수 없습니다. 지식은 머리에 채우는 것이지 마음에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진리를 채울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채운다고 하는 뜻은 온전케된다는 뜻입니다. 발씻을 물, 천한 물을 채우는 것입니다. 채울 때 예수님의 능력이 드디어 역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5. 믿음의 비밀은 어떤 사람이 알게 됩니까 연회장, 손님은 이 포도주의 비밀을 몰랐습니다. 그러니까 물로 된 포도주를 마시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이 비밀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수고하고 충성하는 사람만이 아는 것입니다. 하인들은 수고하였습니다. 하인들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먹는 사람이 아니고 수고 하는 자가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됩니다. 잘 살고 평안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 같아도 실상은 주님을 위해 땀 흘리고 주님께 순종하고 봉사하는 자가 알게 됩니다. 디모데서에서 교회 집사를 세울때 그 자격을 말하면서 “믿음의 비밀”을 가진자라고 했다. 믿음의 비밀은 바로 충성자에게만 보여지기 때문에 충성자를 세우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신비는 항상 충성자의 손에서 벗겨지고 보여진다. 스데반은 돌로 맞아 순교를 하였습니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만이 하늘에 서서 계시는 주님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복음 전하다가 최후를 마치는 스데반에게 잠깐 하늘의 문을 열어 보게 하신것입니다. 한 자리에 있어도 다른 사람은 몰랐습니다. 한 집에서 먹고 마셔도 다른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물떠온 하인들만 알았습니다. 한 교회에서 있어도 하나님이 이 교회에 베푸신 역사들은 충성자들 만이 알게 하실 것입니다.
6. 다섯번째로 혼인잔치의 연회가 처음보다 나중이 낫습니다. 계시록 2장 19절에 보면 “네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중이 더 나아져야만 합니다. 가롯유다가 처음에는 돈관리를 할 정도로 인정을 받았으나 나중에는 형편없었습니다. 인생평가는 나중을 보아야 합니다. 운동선수도 마지막을 보고 등급을 메기고 상을 주지 않습니까 이 잔치집도 처음에는 대단했습니다. 틀림없이 손님이 예상외로 많았습니다. 나중에 큰일이 생겼고 비극이 될뻔했습니다. 세상은 대개 이렇습니다 처음만 있고 나중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맙시다. 주님은 항상 나중이 처음보다 더 나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는 시간이 갈 수록 사랑도 믿음도 충성도 더 나은 사람이 됩시다. 믿음의 가정은 시간이 갈 수록 은혜를 채워 가는 가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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