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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주와 인삼주 (요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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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9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제 10월로 접어들면 본격 적인 가을에 들어섭니다. 가을은 영혼을 살찌우는 계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보기 기에 아름다운 영혼이 되도록 믿음의 넉넉함 속에서 강건한 생활하시길 기 원합니다. 지난 한주는 명절을 맞이하고 보내기 위하여 분주했습니다. 별탈 없었습 니까 즐겁고 화목한 명절을 보내셨는지요. 괜히 식구들에게 역정내고 친 지들과 소원했던 적은 없었습니까 차안에서 아내에게, 남편에게 짜증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큰소리 치지는 않았습니까 그리고 부모님은 건강하십니까 아울러 성묘를 다녀는 오셨는지요 벌초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산소를 찾아가지 않는 것은 좀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고향 교회의 목사님은 찾아뵈었는지요. 옛날의 목사님이 아니라 모르는 목사님이라고 해서 발길을 끊는다면 첫신앙을 상실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찾아갔다고 하면 얼마나 목회에 힘을 얻겠습니까 얼 마나 고맙고 감사하겠습니까 이번 추석은 경황이 없어 그냥 지나쳤다고 하면 다음 기회에 꼭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고 인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이번 추석에 핵가족이든, 대가족이든 가족들이 모여서 음식을 함 께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주부들은 뒤치닥 거리고 설거지 하느라 꽤 고생이 많았겠지요.여러번 상을 차리는 것도 지겨웠을 것입니다. 혹 그릇을 깨뜨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늘은 그릇과 연관되고 음식과 연관되고 잔치와 연관되는 말씀을 드리 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침례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후 드디어 복음을 전하 기 시작했는데, 바로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첫 이적을 보이였습니다. 맹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든 놀라운 사건 속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볼 것은 그 자리에 항아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항아리가 없었다고 한다면-만약이긴 하지만 어쩌면 예수님은 기적을 행 하지 않으셨을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항아리는 있어야 할 물건이었고, 있어 야 할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있어야 할 곳에 준비된 그릇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우리를 예수님이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실지 모르기 때문 입니다. 항아리가 놓여있었기에 예수님은 7절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사람들은 가득 채웠습니다. 이제 오늘 여러분과 함께 '항아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릇 가게에 가보면 많은 그릇들이 있습니다. 무엇을 살 것인지 망설이게 합니다. 가격도 각각이고 여러 가지 모양과 재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용도도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릇의 가격이나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고 모양의 생김새가 아니라 그 그릇안에 무엇을 담을까 하는 용도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값이 나가고 좋은 재료로 만들고 아름다운 모양을 자랑한다 고 하더라도 사용할 때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 씀씀이는 달라지기 때 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값비싼 도자기가 있다고 합시다. 거기에 사탕을 담아 놓으 면 아이들이 건드려서 깨뜨리기 십상입니다. 또한 간장을 담아 놓으면 말 그대로 간장 그릇입니다. 그러나 단돈 몇천원에 사온 볼품없는 그릇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 보석을 담아 놓으면 보석 단지가 됩니다. 여러분을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어떤 그릇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저는 당 연히 보물 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시한 그릇이 아닙니다. 물론 형 편없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볼 때 싸구려 플라스틱 그릇이지만, 내 안에 다이아몬드 같은 보물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보배 그 릇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 보면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 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바와같이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은 잘 깨어질 수 있고 가치없는 그릇에 불과하지만 질그릇에 보물을 담았으니 그 그릇은 보 물스런 그릇이 되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보물'이란 것은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셨기 때문에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야지 엉뚱하게도 다른 것이 나온다고 한다면 결국 우리는 쓸모 가 없어져서, 우리의 주인인 하나님이 다시 사용하기 위해 불같은 시련으 로 달구든지, 아니면 산산조각 내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담아서 귀히 사용 당하는 주님의 그릇이 되시 길 축원합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어떤 동네의 혼인 잔치에 가셨는데 육 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의 제자들도 함께 청함을 받았습니다. 잔치가 어 느 정도 무르익어 가는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요즈음으로 따진다면 한참 피로연을 하고 있는데 국수가 동이 나버리고 만 것입니다. 잔치하는 집은 손님이 얼마만큼 올 것이라는 계산을 하여 음식과 술을 준 비하는데, 준비가 부족했던지 아니면 손님이 너무 왔는지 알수는 없지만 잔치 도중에 포도주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잔치하면 술 대접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술 이 없어 애태우고 있을 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와서 포도주가 떨어졌 음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은 4절에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 까 아직도 나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묘한 대답을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보고 '여자여'라고 했으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불효막심하게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도 '이 여자가'하는 것이 얼마나 상스럽게 들리고 있습니까 주석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 석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나름데로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 애를 시작하면서 가족에 대한 출가의 선언이 아닌가 합니다. 자기 자신을 확인하고 그 어머니에게 '나는 이제 당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이다'라는 선언으로 생각해 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밖에 있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신후 그것을 떠다가 잔치를 맡은 사람, 쉽게 표현해서 지배인에게 가져다 주라 고 합니다. 지배인은 술이 떨어져 안절부절 하고 있다가 일꾼들이 가져온 항아리에 든 술의 맛을 보고 그맛이 일품인지라 신랑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랑은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집도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아버지 회갑연을 마련했습니다. 사회적 명당도 있고 해서 예상외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는 인삼주를 담아 잔치를 하고 있었는 데, 곧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냥 막걸리나 소주를 내 갈 수 없어 잠시 고 민을 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람을 시켜 소주와 인삼차 를 아무도 몰래 사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 숨어서 인삼가루를 소주 에 넣고 분말이 다 녹을 때까지 흔들게 합니다. 이제 술은 아무런 표시가 나질 않고 인삼 냄새가 납니다. 마시는 사람은 감쪽 같이 속아서 귀하고 좋은 술이라 여기고 기분좋게 마십니다. 그들이 속아서 인삼주를 마셨다는 사실을 알면 다시는 상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속인 사람은 돈을 조금 들여서 잔치를 했다고 가족들과 즐거워할지 모 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방법을 알려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 여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여 당사자의 근심을 사라지게 하십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이 잔치집 마당에 놓여있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대 해서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항아리는 곧 여러분과 저의 모습이 기 때문입니다. 잔치집에 놓여있던 항아리는 우리나라에 장을 담을 때 사용하는 항아리처 럼 비교적 큰 것이었습니다. 물이 세통이나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지 역은 덥고 건조한 지역이어서 먼지가 많은 곳입니다. 그래서 외출했다가 들어오게 되면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양말없이 맨 발로 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에 방에 들어갈 때는 먼지투성이의 발을 닦 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도 손으로 식사하기 때문에 대문 옆 에 있는 물 항아리에서 손과 발을 씻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한번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다가 바리새인들 과 서기관들이 '어찌하여 저 사람은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느냐, 부정한 것이 입속으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비난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다가 대야에 물을 떠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경우도 우리는 그 당시의 풍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는 항상 문 옆에 물통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집은 잔치집이었습니다. 많은 손님을 맞이하려고 큰 물통을 여섯 개나 준비한 것입니다. 물이 많이 담긴 항아리는 주인과 손님에게 유익을 주지만, 빈 항라리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럽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1) 속이 텅 빈 항아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겉모양은 아릅답게 화장을 했고, 모양을 내고, 멋지게 잘 입었지만 실질 적으로 그 속에 담긴 것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멋있게 아무리 아름답게 잘 생겼고 그럴 듯 하게 뵌다 할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고 그 사람의 신앙의 속을 들어가 보고 그 사람의 인격의 깊이를 들여다보았을 때 아무 것도 없는 속이 빈 강정처럼 살아가는 사람 이라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 앞에서 빈 항아리의 모습 그대로 그냥 앉아 있는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빈 항아 리가 가득 채워져있습니까 속이 빈 그릇이 소리가 크게 납니다.
(2) 속이 텅 빈 항아리는 거추장 스럽습니다. 아무 곳에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은 한쪽에 가만히 있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나갈 때 문 옆에 항아리가 여섯 개씩이 나 놓여있으면 사람들에게 거추장 스럽습니다. 차라리 한쪽으로 치우는 것 이 낫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일컬어 "이런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좋 을뻔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사람 은 다른 사람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도리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못을 박고 어디에 가서도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가정과 사회에 어떤 사람입니까 문제만 일으키는 거추장스런 존재는 아닐런지요 여러분이 모이는 어떤 모임이나 직장에서 문제를 일으 키는 장본인이 아닌지요 아니면 문제를 덮어가게 하고 남에게 기쁨과 즐 거움을 선사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까 속이 텅 빈 항아리는 소리만 큽니다. 속이 텅 비어서 자기 마음대로 모 든 일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과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주님께서는 일꾼들에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워라" 이 명령에 일꾼들은 열심히 물을 길어다가 채웠습니다. 그 당시의 우물은 상수도 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펌프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야곱 의 우물을 생각할 때 집에서 아주 멀리 있었을 것이고 깊은 우물이었을 것 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순응해서 일일이 두레박을 퍼 올렸을 것 입니다. 힘들게 가득 물을 채웠습니다. 결국 일꾼들만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는 복을 받지 않았습 니까 오늘날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나 어디서든 지 말을 많이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엄 청난 복을 받았듯이 전적으로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서 여러분의 삶의 하나 하나가 모두 은혜와 감사로 채워지길 예수님의 이름으 로 축원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을 듣고 자기의 모든 체면을 버리고 요단강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강복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기적은 여러분의 생각이나 경험 이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 앞에 무릎 꿇었을 때 바로 그 장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 제 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는 소리나는 빈 항아리가 아니며 거추장 스러 운 그릇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잔치 손님은 거의 다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물은 필요하질 않습니다. 빈 항아리-채워지긴 채워졌는데 무엇으로 채워졌느냐가 중요합니다. 항아리 같은 인생-우리는 무엇으로 채우고 있습니까 정욕으로 채워졌습니까(욕망,불만,질투,사치,허영,위선) 아니면 사랑으로 채워졌습니까(믿음,칭찬,겸손,여유,근면,감사) 여러분의 모습을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우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욕심, 욕망, 불만, 질투, 사치, 허영, 위선으로 채워진 사람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득 채워지고 성령님과 사랑으로 충만해지기를 우리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 있으나 그 집에는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포도 주였습니다. 물은 맛도 없습니다. 냄새도, 색깔도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 찬송들고 교회에 왔다 갔다 하지만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는 맹물 같은 신자의 모습입니다. 마지못해서 교회는 다니고는 있지만 은혜가 뭔지, 성령님이 뭔지, 은사가 뭔지, 기쁨이 뭔지, 구원이 뭔지, 하나님의 강복이 뭔지를 모르고 감사하라 고 하지만 감사가 뭔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행복이 뭔지를 알 지 못하는 맹물같은 존재는 아닐런지요 예수안에서 기쁨, 예수 안에 있는 사랑, 예수가 주는 소망, 예수와 함께 하는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맹물같은 신자입니다. 물 항아리가 포도주 항아리로 변했습니다. 잔치집에 쓸모없는 물로 가득 차 있던 그 항아리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 해서 일을 한 하인들의 숨은 봉사가 있었기에 맛 좋은 포도주 항아리가 되 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지배인에게 가져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은 물통에다가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시더니 주문을 외운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기도하신 것도 아닌데 물을 떠다가 지배인에게 가져다 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인격, 자기 경험, 자기 지식, 을 하나님 의 능력보다 앞세우기 때문에 그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을 떠다가 지배인에게 주어라" 이 말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일꾼 들은 내 지식에는 안 맞지만, 내 경험에는 맞질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지배인에게 가져다 주었을 때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한 좋은 술맛 의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맛이 좋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맹물 같은 신자, 맹물 같은 인생이 변화되면 얼굴 모습이 바뀌게 됩니다. 마음 자세도 생각도 바뀝니다. 그리고 세상의 어느 것보다 좋은 결과로 주 님은 복을 내려 주십니다. 물 항아리가 포도주 항아리로 변화되어 모든 사람이 기쁨을 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질그릇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무엇이 담겨지 느냐가 중요합니다. 빈 그릇에 물을 담는 것은 사람의 수고가 있으면 얼마 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 열심만 있으면 지식도 채우고, 돈도 채우고, 명예도 채울 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채워서는 우리 인생은 가득 채울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모자랍니다. 다 부질없는 맹물같 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한 것은 주님의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듯이 여러분 과 제 심령이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지금까지 살아왔던 낡은 생각과 행동은 모두 버리시고 기쁨이 충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놀라운 항아리가 되도록 예수로만 가득 채우 시길 바랍니다. 빈 항아리가 쓸데없는 것으로 채워진 항아리가 아니라 이제는 성령님으로 가득 채워진 항아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놀라운 체험과 복을 받는 우리 믿음의 식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숙제를 내면서 오늘의 설교를 마칩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항아리에 물 없이 포도주를 채우지 않고 물로 항아리를 채운 뒤 포도주를 만들었을까요 일주일간 생각하셔서 다음 주에 저에게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좋은 답변을 해주신 분께는 조그만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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