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의 순서 (요삼1:1-2)
본문
인간 생활의 비극은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고 있을 때는 삶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아 주셨기 때문에 전지 전능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해서 사는 삶에 문제가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슬픔과 고통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그 시간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실 일을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해 나가겠다고 성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고 영이 죽었을 때 인간의 모든 비극이 시작 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이후로 범사에도 저주가 임했고 육체도 병들고 죽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 앞에 축복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올바른 순서를 잡아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 삼서 2절은 바로 그 순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잘 안된 이유는 악한 마귀의 꾀를 쫓아서 아담과 하와가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등을 돌리고 자신을 신으로 삼고 자력으로 살려고 한 이것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죄악을 1차적으로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6절로 7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다 예비하고 다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다는 그 조건하에서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렸지만 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의 힘을 믿고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불쌍한 인생들을 건지려고 이천년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대신 당담하게 하여 십자가를 걸머지며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받아 들이고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합니다. 영혼이 잘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떠난 하나님을 다시 찾아 돌아 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고 살도록 지었기 때문에 이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떠나가면 인간은 잘못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신의 악한 마음을 저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그를 섬기고 그를 따르는 이 길이 영혼이 잘되는 1차적인 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짓밟아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 실제적인 신앙생활에 내용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고 내용이 없습니다. 알맹이는 다 빠져 나가버리고 그 안에는 부패와 부정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형식만 가진 것이 아닌 내용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됩니다.
물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계명을 지킴으로 그 대가로 구원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내용인 생활 면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계명은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작정하면 능히 누구든지 다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분수를 저버리고 욕심을 부리면 욕심이 잉태하여 반드시 죄를 낳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정치계와 사회, 경제계가 이렇게 뒤엉킨 것은 모두다 탐욕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는 정치인, 경제인들만 모여 있었다면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상적인 생활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평생 살아야 됩니다.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교회를 열심히 받들고 섬기는 것이고 그 의를 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같이 계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늘 질문해 보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사는 것이 그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교회가 마음에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눈에 보이는 하늘 나라를 잘 받들어 섬겨서 성장하게 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영혼이 잘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랑에 심취하여 교만해 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단은 원래 하나님이 만든 아름다운 천사였지만은 그가 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그만 하나님 보다 높아 지려고 하고 하나님 보좌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쫓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눈을 들어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우리 생사 화복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흠모하고 자랑하면 그는 벌써 파멸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늘 주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활을 하게 해 주시는 우리 주님을 자랑해야 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언제나 주님께만 복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늘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 때 우리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은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며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명을 저버리고 부패하고 부정하고 교만해 질까봐 우리를 시험하고 연단해서 깨뜨리고난 다음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국가 사회가 어지럽고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나오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벌써 우리 가난을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의 가난에서 구속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주로 모시고 섬기고 살면은 예수님이 지불한 그 대가 때문에 우리가 가난에서 해방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에서 우리를 값 주고 사 내었습니다. 저주가 있으면 모든 것이 안 되는데 저주가 떠나가면 모든 일이 형통해져 있는 것입니다. 손으로 수고한 것이 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천신만고를 다 겪으면서 가난의 삶을 살고 십자가에서는 결국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의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시켜서 범사에 잘 되게 살게 하려고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로 12절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게 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나의 모든 하는 일에 하나님 같이 하사 성공과 형통이 나를 따른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시와 엉겅퀴가 꽉들어 차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수 없다, 나는 망한다, 나는 가난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생각을 형통과 긍정적인 성공의식으로 채워 넣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나아진다는 그런 긍정적인 꿈과 환상을 가지고 희망에 차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민이 희망을 잃어 버리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고 싶어도 도울수가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때는 병이 없었고 죽음도 없었습니다. 병과 죽음이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생겨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주로 오셨을 때 주님께서는 바로 지은 죄와 병은 한 가지에서 나온 열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의 세계 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나 죄를 용서하는 사역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은 바로 죄의 가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죄 사함을 주실때는 주께서 병도 고치시고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보게 되면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당할 때 반드시 죄와 함께 우리의 질병도 대신 짊어 지고 가신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3장 4절에는 "그는 실제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사야서 53장 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서 53장 10절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전재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근복적으로 우리가 병 앓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기를 원치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근복적인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죄를 미워하고 병을 미워합니다. 얼마나 미워했기에 예수님을 통해서 그 병을 다 짊어지게 하고 그 죄를 다 짊어지게 하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확연하게 용서의 샘이 넘쳐나고 치료의 샘이 넘쳐 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 믿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확실한 명령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이유는 병을 고치라고 세워 놓은 것입니다. 장로들을 세워 놓은 것은 대접만 받으라고 세워 놓은 것이 아니라 장로들은 다니면서 심신의 병든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서 병을 고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으면 우리가 건강을 보존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건강을 주셨으면 우리는 음식을 먹더라도 기름 진것은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고단백질, 저 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주일날에는 꼭 안식을 해서 주님을 섬기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유지하고 그렇게 살면 건강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주신 것이라도 우리가 보호를 잘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도 도로 빼앗아 가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삶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으면 우리의 삶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일을 하나님이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이 잘되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서 영혼이 잘 됨은 범사에도 잘 되게 되고 또한 자연적으로 강건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안 들어 주셔서 우리가 그렇게 못되는 것이 아니고 귀가 둔하여 우리 기도 안 들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은 누구 못지 않게 먼저 나와서 우리를 돌보아 주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는 소원은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이 소원을 오늘 우리가 받아 들여서 우리의 삶에 순서를 반드시 정해야 됩니다. 먼저 영혼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일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가 영혼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잘 안된 이유는 악한 마귀의 꾀를 쫓아서 아담과 하와가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서 등을 돌리고 자신을 신으로 삼고 자력으로 살려고 한 이것이 모든 비극의 근원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배반한 죄악을 1차적으로 회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6절로 7절에 보면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때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서 모든 일을 다 예비하고 다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는다는 그 조건하에서 모든 하나님의 축복을 다 누렸지만 그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자기를 섬기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의 힘을 믿고 하나님을 배반했을 때 비극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불쌍한 인생들을 건지려고 이천년전에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인간이 저지른 죄악을 대신 당담하게 하여 십자가를 걸머지며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받아 들이고 하나님께로 돌아 와야합니다. 영혼이 잘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떠난 하나님을 다시 찾아 돌아 오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믿고 살도록 지었기 때문에 이 삶의 근본적인 자세를 떠나가면 인간은 잘못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 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이 잘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신의 악한 마음을 저버리고 주님께로 돌아와서 그를 섬기고 그를 따르는 이 길이 영혼이 잘되는 1차적인 길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죄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짓밟아 버리고 살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하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 실제적인 신앙생활에 내용이 없습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고 내용이 없습니다. 알맹이는 다 빠져 나가버리고 그 안에는 부패와 부정이 꽉 들어 차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형식만 가진 것이 아닌 내용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됩니다.
물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계명을 지킴으로 그 대가로 구원받는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의 내용인 생활 면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십계명은 그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며 살려고 작정하면 능히 누구든지 다 지키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분수를 저버리고 욕심을 부리면 욕심이 잉태하여 반드시 죄를 낳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정치계와 사회, 경제계가 이렇게 뒤엉킨 것은 모두다 탐욕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자기 분수를 지키는 정치인, 경제인들만 모여 있었다면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평상적인 생활에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을 평생 살아야 됩니다. 그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교회를 열심히 받들고 섬기는 것이고 그 의를 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같이 계시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를 늘 질문해 보고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을 사는 것이 그 의를 구하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 언제나 교회가 마음에 중심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눈에 보이는 하늘 나라를 잘 받들어 섬겨서 성장하게 하고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할 때 영혼이 잘되지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랑에 심취하여 교만해 지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사단은 원래 하나님이 만든 아름다운 천사였지만은 그가 자기의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그만 하나님 보다 높아 지려고 하고 하나님 보좌를 빼앗으려고 하다가 쫓겨난 것입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눈을 들어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우리 생사 화복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지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흠모하고 자랑하면 그는 벌써 파멸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늘 주님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생활을 하게 해 주시는 우리 주님을 자랑해야 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언제나 주님께만 복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늘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려고 애를 쓰며 열심히 기도하는 그런 삶을 살 때 우리 영혼이 잘되는 삶을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은 우리가 잘되고 형통하며 복을 받고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명을 저버리고 부패하고 부정하고 교만해 질까봐 우리를 시험하고 연단해서 깨뜨리고난 다음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사업이나 국가 사회가 어지럽고 안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생활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범사에 잘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고 나오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벌써 우리 가난을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우리의 가난에서 구속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구주로 모시고 섬기고 살면은 예수님이 지불한 그 대가 때문에 우리가 가난에서 해방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주에서 우리를 값 주고 사 내었습니다. 저주가 있으면 모든 것이 안 되는데 저주가 떠나가면 모든 일이 형통해져 있는 것입니다. 손으로 수고한 것이 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님께서 천신만고를 다 겪으면서 가난의 삶을 살고 십자가에서는 결국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저주를 받은 것은 우리의 가난과 저주에서 해방시켜서 범사에 잘 되게 살게 하려고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절로 12절은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게 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 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나의 모든 하는 일에 하나님 같이 하사 성공과 형통이 나를 따른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시와 엉겅퀴가 꽉들어 차서 "나는 못한다. 나는 안된다, 나는 할수 없다, 나는 망한다, 나는 가난하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능히 하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생각을 형통과 긍정적인 성공의식으로 채워 넣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 '내일은 오늘보다, 다음 달은 이번 달보다 나아진다는 그런 긍정적인 꿈과 환상을 가지고 희망에 차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민이 희망을 잃어 버리고 좌절하고 낙심하고 뒤로 물러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고 싶어도 도울수가 없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가 강건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지음을 받았을때는 병이 없었고 죽음도 없었습니다. 병과 죽음이라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생겨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구주로 오셨을 때 주님께서는 바로 지은 죄와 병은 한 가지에서 나온 열매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는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죄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예수님의 세계 속에서 분명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곳에 가나 죄를 용서하는 사역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시키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을 고치셨습니다. 병은 바로 죄의 가지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죄 사함을 주실때는 주께서 병도 고치시고 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보게 되면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통당할 때 반드시 죄와 함께 우리의 질병도 대신 짊어 지고 가신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3장 4절에는 "그는 실제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사야서 53장 5절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서 53장 10절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전재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짊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는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근복적으로 우리가 병 앓기를 원치 아니합니다. 병으로 고생하다가 죽기를 원치 아니한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근복적인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죄를 미워하고 병을 미워합니다. 얼마나 미워했기에 예수님을 통해서 그 병을 다 짊어지게 하고 그 죄를 다 짊어지게 하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 그 대가를 지불하도록 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확연하게 용서의 샘이 넘쳐나고 치료의 샘이 넘쳐 나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때문에 치료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 믿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확실한 명령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절로 18절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에 장로들을 세운 이유는 병을 고치라고 세워 놓은 것입니다. 장로들을 세워 놓은 것은 대접만 받으라고 세워 놓은 것이 아니라 장로들은 다니면서 심신의 병든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서 병을 고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을 주셨으면 우리가 건강을 보존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건강을 주셨으면 우리는 음식을 먹더라도 기름 진것은 너무 많이 먹지 말고 고단백질, 저 칼로리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고 주일날에는 꼭 안식을 해서 주님을 섬기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유지하고 그렇게 살면 건강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주신 것이라도 우리가 보호를 잘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주신 것도 도로 빼앗아 가지 않겠습니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삶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으면 우리의 삶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우리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일을 하나님이 예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예비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예비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혼이 잘되는 것이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성령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서 영혼이 잘 됨은 범사에도 잘 되게 되고 또한 자연적으로 강건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의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안 들어 주셔서 우리가 그렇게 못되는 것이 아니고 귀가 둔하여 우리 기도 안 들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올바른 신앙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은 누구 못지 않게 먼저 나와서 우리를 돌보아 주기를 원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원하는 소원은 우리가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시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이 소원을 오늘 우리가 받아 들여서 우리의 삶에 순서를 반드시 정해야 됩니다. 먼저 영혼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일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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