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니고데모 (요3:1-8)
본문
21절까지 예수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니고데모 질문이 3번이 있고 예수님 답변이 3번이 나온다. 이 질문과 답변을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내용을 깨닫게 된다 2:23에 있는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 오늘 예수를 찾아온 니고데모 역시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지금 밤에 찾아온 것이었다. 3:21절까지 계속되는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 내용은 바로 그런 표적만을 보고 따르는 자들에게 강하게 예수님이 깨닫도록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들의 믿음은 온전치 아니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신다.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고 찾아온 니고데모가 바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거듭남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씀을 니고데모에게 해주셨다. 표적만 보고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거듭난 삶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곧 중생을 말한다 중생은 어느 신학자가 만들어 낸 용어가 아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말씀이다. '딛3: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이 시대 예수를믿으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우리 주위에 많은지 모른다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를 믿는 자 라면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1-2절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 "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직접 목격한 자였다.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메시야로는 믿지 아니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한 분의 선생으로 알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니고데모 "백성의 정복자" 라는 뜻. 바리새인 "구별된 자" 라는 뜻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특별히 구별된 무리들이었다. 당시에 6,000 명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관원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가리킨다 산헤드린은 당시에 유대인들의 최고 종교회의 기관으로 71명으로 구성된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급들이다 유대인들은 의회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최고의 법정이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대법원이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이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이 새벽에 법을 집행했고 예수님을 이들이 죽인 것이다.
유대인 중에서 가장 높은 학식과 지위를 가진 자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니고데모 역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러 온 자였다. 최고의 학식을 가진 자였지만 배우지 못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표적만을 보고 예수께 나아왔다 또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도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수님을 "선생"으로만 보고 있었다. 즉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했다. 또 생각하는 것도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표적만 생각하고 따르는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영적 세계는 그 어떤 학식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표적만을 보고 느꼈다고 해서 영적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백성들과 니고데모는 예수보다는 표적을 보고 따랐고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 표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그 표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표적을 보이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즉 메시야 임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요14:1
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20:30-3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백성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지만 백성들의 믿음은 예수님은 믿지 아니했다. 즉 백성들이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아니었고 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는 보지 못했고 믿지 못했다 표적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의도를 백성들은 전혀 보지 못했다 하나의 위대한 선지자로 알았다 니고데모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벡성들과는 달랐다. 표적만 보고 그치지 않고 예수께 나아왔다는 것이 다르다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예수를 더 알기 원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모저모로 표적을 본 자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표적을 지금도 보고 있다.
그런데 표적만 보고 표적만 좇으면 안된다 표적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 예수를 더 알기 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표적만 보고 멈추어 버린 성도가 된다면 저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니고데모처럼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와야만 한다. 예수께 나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 바로 거듭남이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즉 표적만 보고 좇지 말고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표적만 보았고 받았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했으면 이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왜 이 시대에 믿는 자는 많은데 믿음 있는 자를 보기 힘드는가 한마디로 거듭난 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표적만 쫓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표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표적은 보고난 후가 문제다 표적을 보고 나서 우리가 계속 표적만 쫓는 자들이 된다면 표적을 보여주신 주님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다 우리가 기도 응답 받으며 사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그기도 응답 받기 위해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는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를 응답해주고 표적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표적을 보고도, 기도 응답을 받고도 우리가 예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한다면 응답을 주신 분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다 이 시대 예수를 믿고있는 모습들을 보면 마치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믿는 것 같다 우리의 문제 해결 받는 것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육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영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범사에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의 영혼이 먼저 잘 될 때 또한 우리의 범사도 잘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 받는 것보다는, 표적을 받는 것보다는 내 삶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표적을 보고 멈추지 말고, 응답을 받고 이젠 되었다 ! 하고 멈추지말고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니고데모는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찾아 왔다고 주님께 말했다.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너는 표적에 관심이 있으나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목적이 "하나님 나라" 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비결이 표적이냐 ! 거듭남이냐 ! 하는 것이다
거듭남 헬라어 anwqen(아노덴)의 뜻은
1) 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
2) 다시, 두 번째
3) 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의 뜻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기도, 제사, 세례를 행하고 유대교에 개종하면 중생한 자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택받은 유대인 백성들조차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 자체가 새롭게 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중생이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없다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말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란 용어를 34회나 사용하고 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던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러 오신 나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주님은 재판 석상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18:36)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다 그리고 로마제국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서 압제와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을 원했다 말하자면 다윗 왕의 전성시대와 같은 그런 왕국을 원했다 메시야는 그런 왕국을 세우러 오시는 것으로 백성들은 믿고 있었다 제자들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후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행1:6)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그런 왕국을 세우러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내가 세울 나라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나라와는 다른 나라이다. 그 나라는 거듭나야만 들어가는 나라이다 "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들어갈 수 없는 부정적인 면으로 말씀을 하셨다 "거듭나지 아니하면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 성도들에게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확고한 신앙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우리들도 저 유대인들처럼 마치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도 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바라보았던 눈초리로 빨리 우리를 편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 "저 억압하는 로마 군대를 없애 버려 주십시오"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 문제들을 빨리 없애버려 주십시오" 하면서 예수를 바라보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도 표적을 원하는 저 유대인들처럼 사실 우리들도 표적을 너무나 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임하는 게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는 표적을 보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듭남이 있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성도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지 못하는가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새롭게 태어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알아보자 !
1. 거듭남, 즉 중생이 무엇인가 영적 출생을 의미한다. 성도는 출생을 두 번 한다 한 번은 육적 출생으로 부모로 인해서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번은 성령님으로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육적 출생아가 육적 부모의 모습과 피를 받아서 태어나듯이 성령님 안에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은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우리는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예수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1) 하나님에 의해서 거듭난다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짖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새롭게 거듭날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다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1:2
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사람을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중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3) 성령님으로 거듭난다 '고전6:1
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인간이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신다
3. 거듭나면 변화가 온다
1)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
2)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3)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4) 내적, 외적 변화와 성장이 있다 '벧전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엡4:13-1
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5) 회개의 삶을 산다 '시51:2-10'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6) 세상을 이긴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7) 의를 행한다 '요일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라면 반드시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 믿는 것을 육을 위해서 믿게되고 마치 예수님이 해결사가 되는 듯이 간구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적인 문제 해결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육의 문제만 좇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중요함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난 자가 되어야 한다 육보다 영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갈 수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까지 가려고 할 때 홍해와 요단강 두 개의 강을 건너야만 갈 수 있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막막한 아라비아 사막이었지만 요단강을 건넜을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다 홍해가 세례라면 요단강 건넌 것은 곧 중생이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처럼 중생 해야 만이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 4-8절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 .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니고데모의 두 번째 질문이 나오고 예수님 두 번째 답변이 나오고 있다. 주님의 두 번째 답변은 처음보다는 자세히 답변해 주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거듭남에 대해서 거듭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4절에서 니고데모의 질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답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하고 있다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 사람이 모친의 배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재창조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강한 의문이 내포되어 있다. 5절에서 주님의 대답은 역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대답하시고 계신다. 물과 성령님 물을 세 가지를 의미한다
1) 말씀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2) 회개 '사57:1
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
3) 세례 '벧전3:2
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11-6-7절 육으로는 이 거듭남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8절 바람이 헬라어로 pneuma(프뉴마)인데 성령님을 뜻한다 성령님이라는 말과 바람이라는 단어가 동일하다 성령님은 바람이다
그런데 이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성령님을 받은 자도 그 중생 상태를 타인이 의식하지 못하고 그 나타나는 행동으로 안다 그러니까 중생을 본인이 아는 수도 있고 모르는 수도 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다는 말씀에 깜짝 놀랬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놀램이 있어야 한다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다고 " 우리게 강하게 다가와야 할 말씀이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그 나라는 거듭나는 신앙이 있어야만 이 들어갈 수 있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므로 이만 줄인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두 번째 답변에서는 5가지로 답변해 주셨다.
1. 새롭게 태어나는 근거를 말씀해 주셨다. 그 근거는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남이라는 것이었다 물은 세 가지를 뜻한다고 말했다 말씀, 회개, 세례. 물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거듭나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 물의 단계를 통과하여야만 한다. 이 역시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넘어간다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요한 복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은 오늘 본문 3절 5절 두절에 불과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 왕으로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시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삶이 될 때 우리는 표적만을 쫓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 할 것이다.
3. 6절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성격을 설명해 주셨다 거듭남은 육적인 것이 아닌 오직 영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육은 육으로 끝난다. 육으로는 더 이상 그 무엇이 없다. 육으로 육과 영의 간격을 메꿀수가 없다 육적인 어떤 방법으로도 거듭나게 할 수 없다 오직 성령님으로만이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다
4. 7절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절대성,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거듭나야 하겠다" 이 말씀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성도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거듭나지 못하면 성도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도 못 간다.
5. 8절에서 예수님은 바람을 비유로 성령님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성령님의 역사는 마치 바람처럼 역사 하신다 우리는 바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는 볼 수 있다. 성령님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 하는지 알 수없지만 그 역사의 결과와 효과는 볼 수 있다. '요1:12-1
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결론' 중생이란 말 자체가 영적인 말씀이다. 육적으로는 절대로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으로만이 거듭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아무리 수양을 닦고 도를 닦아도 하나님 성품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육신은 육신이다 오직 성령님으로만이 거듭날 수가 있다 ' 예화 ' 하루는 인도 성자 썬다씽이 어디를 가는데 어느 청년이 길에 서서 손을 들고 있었다. 너무 이상해서 옆에 있는 노인에게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손을 들고 서 있는거요 " 물었다 노인은 "저 사람은 본래 불량배인데 그 손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때리고 살인, 도둑질, 노름을 했기에 지금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 손을 길들인다고 들고 서 있는거요 " 대답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손을 들고 있나요 " 물으니까 벌써 15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썬다씽은 그 사람이 불쌍해서 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청년! 당신이 뉘우치려면 당신 마음을 고치고 예수를 믿으시오! 그 손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 그 청년은 이 소리를 듣고 들었던 손으로 썬다씽을 치면서 "이놈아! 예수가 무엇이냐!" 했다. 이 청년은 15년이나 들고 서있던 손으로 또 다시 사람을 치고 만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행위로도 거듭날 수가 없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이 "성령님을 받았느냐" 고 묻자 그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했다. 교회 다닌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물세례 받았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은사 받았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사울 왕은 예언은 했지만 거듭나지는못했다 예수님은 마 7장 22-23절에서 많은 이적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못 들어온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이단에서는 "당신은 거듭 나셨습니까 그러면 몇 월 며칠 몇 시에 거듭났습니까 " 하고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거듭난 날짜 월 시를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짐작은 하겠지만 언제인지 확실히 아시는 분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한 분뿐일 것이다 거듭난 자의 삶을 못 사니까 미혹하는 세력들이 날 뛰고 있다. 표적을 보았다고, 받았다고 거듭난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거듭난 자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았다고 하면서 변화되지 못하고 예수를 위해서 살지 못한다면 어찌 거듭난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많고 믿는 자 들은 많은데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의 무리가 언제쯤 이 땅에서 무리를 지어지게 될까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거듭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할 때 내 주위부터 거듭난 자들의 무리가 형성되어 질것이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충만하게 거하게 될 것이다.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라면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이 시대 예수를믿으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우리 주위에 많은지 모른다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를 믿는 자 라면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1-2절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 "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직접 목격한 자였다. 그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메시야로는 믿지 아니했다. 하나님이 보내신 한 분의 선생으로 알고 예수님을 찾아왔다.
니고데모 "백성의 정복자" 라는 뜻. 바리새인 "구별된 자" 라는 뜻이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특별히 구별된 무리들이었다. 당시에 6,000 명 바리새인들이 있었다. 관원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가리킨다 산헤드린은 당시에 유대인들의 최고 종교회의 기관으로 71명으로 구성된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급들이다 유대인들은 의회라 불리기도 했다. 당시에 최고의 법정이었다 지금으로 말한다면 대법원이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이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이 새벽에 법을 집행했고 예수님을 이들이 죽인 것이다.
유대인 중에서 가장 높은 학식과 지위를 가진 자가 예수님을 만나러 왔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니고데모 역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러 온 자였다. 최고의 학식을 가진 자였지만 배우지 못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표적만을 보고 예수께 나아왔다 또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도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예수님을 "선생"으로만 보고 있었다. 즉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했다. 또 생각하는 것도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표적만 생각하고 따르는 백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것은 바로 영적 세계는 그 어떤 학식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표적만을 보고 느꼈다고 해서 영적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 백성들과 니고데모는 예수보다는 표적을 보고 따랐고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 표적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필요하다 그러나 그 표적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표적을 보이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즉 메시야 임을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요14:1
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20:30-3
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백성들은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다고 했지만 백성들의 믿음은 예수님은 믿지 아니했다. 즉 백성들이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었다고는 했지만 그들의 믿음은 예수님이 아니었고 표적이었다. 다시 말해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기는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는 보지 못했고 믿지 못했다 표적을 보여주신 예수님의 의도를 백성들은 전혀 보지 못했다 하나의 위대한 선지자로 알았다 니고데모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벡성들과는 달랐다. 표적만 보고 그치지 않고 예수께 나아왔다는 것이 다르다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예수를 더 알기 원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이모저모로 표적을 본 자들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표적을 지금도 보고 있다.
그런데 표적만 보고 표적만 좇으면 안된다 표적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 예수를 더 알기 원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신 것이다. 표적만 보고 멈추어 버린 성도가 된다면 저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악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니고데모처럼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와야만 한다. 예수께 나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 바로 거듭남이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즉 표적만 보고 좇지 말고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표적만 보았고 받았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했으면 이제 거듭나야만 하는 것이다. 왜 이 시대에 믿는 자는 많은데 믿음 있는 자를 보기 힘드는가 한마디로 거듭난 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표적만 쫓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표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표적은 보고난 후가 문제다 표적을 보고 나서 우리가 계속 표적만 쫓는 자들이 된다면 표적을 보여주신 주님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다 우리가 기도 응답 받으며 사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그기도 응답 받기 위해서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면 우리는 잘못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를 응답해주고 표적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표적을 보고도, 기도 응답을 받고도 우리가 예수를 위한 삶이 되지 못한다면 응답을 주신 분의 뜻을 모르는 자들이다 이 시대 예수를 믿고있는 모습들을 보면 마치 문제를 해결 받으려고 믿는 것 같다 우리의 문제 해결 받는 것 필요하고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육을 위해 사는 것보다는 영을 위해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범사에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우리의 영혼이 먼저 잘 될 때 또한 우리의 범사도 잘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 받는 것보다는, 표적을 받는 것보다는 내 삶이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표적을 보고 멈추지 말고, 응답을 받고 이젠 되었다 ! 하고 멈추지말고 예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예수를 위해 살아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3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니고데모는 "당신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찾아 왔다고 주님께 말했다. 주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주님의 대답은 "너는 표적에 관심이 있으나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온 목적이 "하나님 나라" 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비결이 표적이냐 ! 거듭남이냐 ! 하는 것이다
거듭남 헬라어 anwqen(아노덴)의 뜻은
1) 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
2) 다시, 두 번째
3) 위에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의 뜻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기도, 제사, 세례를 행하고 유대교에 개종하면 중생한 자라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선택받은 유대인 백성들조차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이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 자체가 새롭게 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중생이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없다 하나님 나라에 참예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나라 천국을 말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란 용어를 34회나 사용하고 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던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러 오신 나라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주님은 재판 석상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18:36) 말씀하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 했다 그리고 로마제국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서 압제와 빈곤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이 세상에 속한 왕국을 원했다 말하자면 다윗 왕의 전성시대와 같은 그런 왕국을 원했다 메시야는 그런 왕국을 세우러 오시는 것으로 백성들은 믿고 있었다 제자들까지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후에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 물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행1:6)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그런 왕국을 세우러 오신 것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다 "아니다 내가 세울 나라는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나라와는 다른 나라이다. 그 나라는 거듭나야만 들어가는 나라이다 "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은 들어갈 수 없는 부정적인 면으로 말씀을 하셨다 "거듭나지 아니하면물과 성령님으로 나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 성도들에게 얼마나 하나님 나라에 확고한 신앙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우리들도 저 유대인들처럼 마치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보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도 저 유대인들이 예수를 바라보았던 눈초리로 빨리 우리를 편하게 해달라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 "저 억압하는 로마 군대를 없애 버려 주십시오" 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괴롭히는 이 문제들을 빨리 없애버려 주십시오" 하면서 예수를 바라보고, 믿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도 표적을 원하는 저 유대인들처럼 사실 우리들도 표적을 너무나 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임하는 게 아니라고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는 표적을 보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듭남이 있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성도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 살지 못하는가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새롭게 태어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거듭남에 대해서 알아보자 !
1. 거듭남, 즉 중생이 무엇인가 영적 출생을 의미한다. 성도는 출생을 두 번 한다 한 번은 육적 출생으로 부모로 인해서 태어나는 것이고 또한 번은 성령님으로 영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육적 출생아가 육적 부모의 모습과 피를 받아서 태어나듯이 성령님 안에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는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 인간은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해 우리는 그 형상을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예수 안에서, 성령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한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1) 하나님에 의해서 거듭난다 '요일3:9'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짖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은혜가 아니고는 우리가 새롭게 거듭날 수 없는 것이다
2)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다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벧전1:2
3'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 사람을 예수의 생명으로 거듭나고 중생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다.
3) 성령님으로 거듭난다 '고전6:1
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님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인간이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감정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신다
3. 거듭나면 변화가 온다
1)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 '고전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
2)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3)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님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4) 내적, 외적 변화와 성장이 있다 '벧전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 '엡4:13-1
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5) 회개의 삶을 산다 '시51:2-10'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 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6) 세상을 이긴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7) 의를 행한다 '요일 2:29'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라면 반드시 우리는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육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예수 믿는 것을 육을 위해서 믿게되고 마치 예수님이 해결사가 되는 듯이 간구하는 자가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우리의 육적인 문제 해결 받으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육의 문제만 좇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 중요함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거듭난 자가 되어야 한다 육보다 영을 위해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 거듭나야 한다 거듭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 갈 수가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까지 가려고 할 때 홍해와 요단강 두 개의 강을 건너야만 갈 수 있었다 홍해를 건넜을 때는 막막한 아라비아 사막이었지만 요단강을 건넜을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다 홍해가 세례라면 요단강 건넌 것은 곧 중생이다 요단강을 건너야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처럼 중생 해야 만이 천국에 입성할 수 있다. 4-8절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 .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님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 니고데모의 두 번째 질문이 나오고 예수님 두 번째 답변이 나오고 있다. 주님의 두 번째 답변은 처음보다는 자세히 답변해 주고 있는 것을 보게된다. 거듭남에 대해서 거듭 강하게 강조하고 있다 본문에서도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4절에서 니고데모의 질문은 예수님의 첫 번째 답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하고 있다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 사람이 모친의 배속에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것처럼 인간 재창조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는 강한 의문이 내포되어 있다. 5절에서 주님의 대답은 역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있다고 대답하시고 계신다. 물과 성령님 물을 세 가지를 의미한다
1) 말씀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
2) 회개 '사57:1
5'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
3) 세례 '벧전3:2
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11-6-7절 육으로는 이 거듭남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8절 바람이 헬라어로 pneuma(프뉴마)인데 성령님을 뜻한다 성령님이라는 말과 바람이라는 단어가 동일하다 성령님은 바람이다
그런데 이 바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성령님을 받은 자도 그 중생 상태를 타인이 의식하지 못하고 그 나타나는 행동으로 안다 그러니까 중생을 본인이 아는 수도 있고 모르는 수도 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다는 말씀에 깜짝 놀랬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놀램이 있어야 한다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갈 수 있다고 " 우리게 강하게 다가와야 할 말씀이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 나라에 소망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그 나라는 거듭나는 신앙이 있어야만 이 들어갈 수 있다 앞에서 자세히 살펴보았으므로 이만 줄인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두 번째 답변에서는 5가지로 답변해 주셨다.
1. 새롭게 태어나는 근거를 말씀해 주셨다. 그 근거는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남이라는 것이었다 물은 세 가지를 뜻한다고 말했다 말씀, 회개, 세례. 물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듯이 거듭나고자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 물의 단계를 통과하여야만 한다. 이 역시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넘어간다
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요한 복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은 오늘 본문 3절 5절 두절에 불과 하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예수님을 하나님 나라 왕으로 곳곳에서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번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개념이 흐려지고 있는 시대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마6:33)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 삶이 될 때 우리는 표적만을 쫓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 할 것이다.
3. 6절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성격을 설명해 주셨다 거듭남은 육적인 것이 아닌 오직 영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육은 육으로 끝난다. 육으로는 더 이상 그 무엇이 없다. 육으로 육과 영의 간격을 메꿀수가 없다 육적인 어떤 방법으로도 거듭나게 할 수 없다 오직 성령님으로만이 영적인 일을 할 수 있다
4. 7절에서 예수님은 거듭남의 절대성, 필요성을 강조하셨다. "거듭나야 하겠다" 이 말씀은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성도는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 거듭나지 못하면 성도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도 못 간다.
5. 8절에서 예수님은 바람을 비유로 성령님의 역사를 말씀하셨다 성령님의 역사는 마치 바람처럼 역사 하신다 우리는 바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결과는 볼 수 있다. 성령님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역사 하는지 알 수없지만 그 역사의 결과와 효과는 볼 수 있다. '요1:12-1
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결론' 중생이란 말 자체가 영적인 말씀이다. 육적으로는 절대로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으로만이 거듭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아무리 수양을 닦고 도를 닦아도 하나님 성품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육신은 육신이다 오직 성령님으로만이 거듭날 수가 있다 ' 예화 ' 하루는 인도 성자 썬다씽이 어디를 가는데 어느 청년이 길에 서서 손을 들고 있었다. 너무 이상해서 옆에 있는 노인에게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손을 들고 서 있는거요 " 물었다 노인은 "저 사람은 본래 불량배인데 그 손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때리고 살인, 도둑질, 노름을 했기에 지금은 뉘우치는 마음으로 그 손을 길들인다고 들고 서 있는거요 " 대답했다. "언제부터 저렇게 손을 들고 있나요 " 물으니까 벌써 15년이나 되었다고 했다. 썬다씽은 그 사람이 불쌍해서 그 사람에게 가서 "여보시오 청년! 당신이 뉘우치려면 당신 마음을 고치고 예수를 믿으시오! 그 손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 그 청년은 이 소리를 듣고 들었던 손으로 썬다씽을 치면서 "이놈아! 예수가 무엇이냐!" 했다. 이 청년은 15년이나 들고 서있던 손으로 또 다시 사람을 치고 만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행위로도 거듭날 수가 없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울이 "성령님을 받았느냐" 고 묻자 그들은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했다. 교회 다닌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물세례 받았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은사 받았다고 거듭난 것이 아니다 사울 왕은 예언은 했지만 거듭나지는못했다 예수님은 마 7장 22-23절에서 많은 이적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못 들어온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이단에서는 "당신은 거듭 나셨습니까 그러면 몇 월 며칠 몇 시에 거듭났습니까 " 하고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거듭난 날짜 월 시를 알 수 있겠습니까 물론 짐작은 하겠지만 언제인지 확실히 아시는 분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한 분뿐일 것이다 거듭난 자의 삶을 못 사니까 미혹하는 세력들이 날 뛰고 있다. 표적을 보았다고, 받았다고 거듭난 것으로 착각하지 말자 거듭난 자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받았다고 하면서 변화되지 못하고 예수를 위해서 살지 못한다면 어찌 거듭난 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많고 믿는 자 들은 많은데 진정으로 거듭난 자들의 무리가 언제쯤 이 땅에서 무리를 지어지게 될까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거듭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이다 그러할 때 내 주위부터 거듭난 자들의 무리가 형성되어 질것이고 이 땅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충만하게 거하게 될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