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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준행하였더라 (창7:1-5)

본문

말씀대로 여호와 하나님이 노아 600세 되던 해에 드디어 심판을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가정과 정결한 짐승 일곱 쌍, 부정한 동물을 한 쌍씩을 살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완성된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다 준행하였더라’ 해서 노아의 순종을 두 번에 걸쳐 기록하고 있습니다. 6장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방주가 완성되기까지 120년 동안 순종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6:22) 7장에서 하나님은 이제 칠일 후면 하나님이 사십 주야 동안 비를 내려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가족들과 짐승들과 더불어 완성된 방주에 들어가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 때도 노아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7:5)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명령을 그대로 다 준행했습니다. 노아의 순종은 120년에 걸친 순종이었습니다.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하는 순종이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이 안되고 엄두가 안나는 순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불순종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래서는 안되지 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연한 듯 불순종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노아의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어떻게 노아는 그렇듯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까 순종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상황이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야 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1:1-3) 성경은 말씀을 곧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를 찾아오신 분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육신은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다시 말씀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신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살리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살리는 방법이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하나님이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빛이 있었습니다. 있으라 하실 때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제가 앞으로 온몸에 암이 퍼진 어떤 성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저는 말씀을 가르치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온몸에 암이 퍼진 육신이라 할지라도 치료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수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그의 귀에는 말씀이 전파되지만 그의 영과 혼과 육에는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실 것입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는 이 등식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이 등식을 인정할 때 우리는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등식을 인정할 때 우리의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시편 기자가 어떻게 노래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가운데 제일 긴 장이 시편 119편입니다. 장장 176절이나 됩니다. 119편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에 대한 기록입니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 말씀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보시기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을 이기는 능력이 됨을 믿었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2 고난을 통해서라도 말씀을 지키고 배우게 된 것이 축복임을 믿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3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인생을 비춰주는 길잡이임을 인정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4 하나님의 말씀은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119:131) 5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는 일에 가슴아파 했습니다.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시119:136)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궤사한 자를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시119:158) 6 말씀으로 하루를 열고 닫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에 진지한 시편 기자와 여러분 자신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얼마나 진지한 태도와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대하고 있습니까
1. 노아를 살리기 위해서 주신 말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고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대한 순종은 곧 생명이며, 불순종은 사망입니다. 불순종과 순종한 이들의 결과에 대하여 성경의 예를 찾아봅시다. 불순종함으로 저주받은 사람들 1 아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하나님은 아담을 괴롭히기 위해서 이 말씀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불신앙하고 불순종함으로 아담은 결국 죽음에 이르고야 말았습니다.(창5:4-5)
2 롯의 사위들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겼던 롯의 사위들은 하나님이 불과 유황으로 그 성을 멸하실 때에 불타 죽고 말았습니다. 3 에서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25:34)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팥죽 한 그릇에 팔고 말았습니다. 나중에는 축복권도 동생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후 에서의 후손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그 변방에 거하는 에돔 족속이 되어 하나님과 영원한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순종한 사람들 1 갈렙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 오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수14:10-12)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뒤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습니다. 이제 그의 나이 85세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시고자 나를 아직까지 생존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말은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아낙 산지의 사람들이 장대하고 성읍들이 크고 견고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땅이 정복될 것을 그는 믿었습니다.
2 마리아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 가니라”(눅1:38) 마리아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한 것은 파혼당하고 돌에 맞아 죽을 각오를 한 것입니다. 3 시므온 시므온은 주의 그리스도 보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 중에 죽기 전에는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품에 안겨 성전을 찾아온 아기 예수를 보고 시므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눅2:29) 이들은 어떻게 말씀에 이렇듯 자신의 생명을 걸고 또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 말씀이 곧 하나님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말씀이 하나님으로 그렇게 덮쳐왔습니다. 그래서 남들에게는 평범한 말씀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되어 구체적으로 역사하신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대리한 자는 그가 사람이나 천사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님과 같이 말하고 있으며 그들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히브리서 1장 14절을 보면 천사는 믿는 자들을 섬기라고 보낸 후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천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나타나면 하나님처럼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 모세를 불렀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는 엘리야가 지쳐 쓰러졌을 때 다가와 먹고 마실 것을 주었습니다. 역대상 21장에는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했을 때 찾아와 네가 받을 벌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말씀이 하나님으로 역사하고 있는 구체적인 예들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준행한 노아 노아는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셨을 때 나는 이제 죽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살리기 위하여 그 말씀을 주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1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창6:14)
2 가족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창6:18) 3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창6:19) 자신과 가정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하신다는 것을 노아는 알기에 감사함으로 방주를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다 준행하였더라’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창6:22,7:5)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요2:5) 하나님 앞에서는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하나님 앞에서 ‘아니오’를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 아멘하는 사람이 신자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예, 아멘만을 말해야 합니까 내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미련함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의 강함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함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서 하나님 말씀은 틀린 말이지만 맞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은 하나님 앞에서 맞는 말인데 틀린 말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하나님만 남기는 게 신앙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삼상15:22) 순종이 없는 인간의 열심은 그것이 비록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을 네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능력도 있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2 능력은 있으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 3 능력은 없으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4 능력도 없으면서 열심히 일하지도 않는 사람 이중에 제일 나쁜 사람은 능력도 없으면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능력도 없으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일만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운전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열심히 운전하면 사고만 냅니다. 그는 가만히 있는 게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무조건 일하는 열심은 하나님 앞에서도 옳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은 열심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하나님 됨에 대한 인정과 이해가 없는 열심은 헛된 것입니다. 신앙은 자기 포기입니다. 내 능력을 포기하고 예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내 영광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영광만을 따라갑니다. 내 이름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이름만을 의지합니다. 내 판단을 포기하고 주님의 판단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나를 믿지 않고 주님을 믿었기에 120년간 방주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준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상관 관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친히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됨, 말씀의 말씀 됨을 위하여 끝까지 지켜가시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기 위하여 1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6:3) 2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대로 시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2-3)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전11:5) 하나님은 만사를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성취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는 이미 말씀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입니다. 하는 일을 통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100% 성취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많은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심판과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시행하십니다. 그러나 구원이 예비되고 확정된 사람에게는 심판이 두려움이 아닙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인정하고 자신을 부정할 때 가능했던 일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주님의 이름으로 한다는 말씀은 시행의 주체가 하나님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는 전적으로 거부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오직 의인만 상대하십니다. 그 의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예배만 받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배합니다. 날마다 범사에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만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명령을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완전하게 이루는 길입니다. 주님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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