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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적 (요2:1-12)

본문

1 장에서는 예수가 메시야 되심을 세례요한과 처음 제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증거 하였다. 그러나 2장부터는 예수님 자신이 친히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보이고 있다. 사도 요한은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을 이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11절) 하고 있다. 표적이라는 말은 그 사건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표적이다.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을 통해서 자신이 메시야 이심을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언제인가 전도를 하다가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었다. 예수님이 맨 먼저 기적을 나타낸 것이 물로 술을 만들었기 때문에 술은 먹어도 괜찮다고 하는 자의 얘기를 듣고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한참 설명 한적이 있다. 왜 하필 맨 처음 표적을 일으킨 것이 술이었을까요 궁금해 보셨습니까 다른 것으로도 나타내 보일 수 있었는데 왜 하필 술일까요 문제는 혼인 잔치 집에 술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혼인 잔치 집에 술이 떨어졌으니 이것처럼 큰 일은 없는 것이다. 술이 떨어진 잔치 집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흥이 아마 다 깨어져 버릴 것이다. "뭐! 이런 집이 있어!" 하고 손님들이 난리 일 것이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이 바로 그런 잔치 집 같은 상태라는 것이다.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고, 미래도 없는 그런 인생들의 잔치 집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사회적으로 그런 상태였다. 로마 압정에 시달려서 백성들은 기쁨도 잊고 소망도 없이 살고 있었다. 기다리는 메시야는 아무 소식도 없고 종교인들의 타락과 횡포도 심했다. 우리 나라도 요즈음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고 미래가 불확실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술이 떨어진 잔치 집 같은 그런 모습이다. 가나 혼인잔치에 예수님이 안 오셨다면 그 잔치는 잔치 집이 아닌 싸움판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 주님이 안 오셨다면 우리는 아무 소망도 없는 삶들이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것은 단순한 술이 아니다. 그 포도주는 사단의 억압에 눌려 사는 인생들에게 기쁨과 소망을 주는 십자가에서 흘리실 주님의 피였다. 이 포도주가 ! 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 우리 인생의 가는 길에 결코 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사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1-3 절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께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그만 그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지고 말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께 조용히 말했다.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는구나 " 예수께 어떤 기대를 걸고 말을 하고 있다. 5절 말씀을 보면 더욱 마리아의 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는 의미 있는 말이다.
 혼인 잔치 유대인들의 혼인잔치는 저녁에 행해진다. 밤은 영적으로 타락을 의미. 혼인잔치 인간들의 잔치중 가장 기쁜 날이다 그러나 그들의 잔치는 타락된 잔치였다. 더구나 그들은 잔치에서 없어서는 안될 포도주도 떨어졌다. 인간의 기쁨 잔치는 한계가 있다. 타락된 잔치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한 잔치에 우리 예수님이 제자들과 초청을 받은 것이다. 죄악과 타락이 있는 곳에 기쁨이 언제까지 있을 수 없다. 주님은 그 죄인들의 초청에 거절치 아니하시고 기꺼이 응하셨다. 포도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의미. (마26:27-28)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사실 죄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죄가 사함 받는 것이다. 십자가의 피로서만이 우리 죄가 사함 받을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초상집은 울음이 있는 곳이지만 혼인집은 웃음과 기쁨이 있는 곳이다. 우리의 인생이 혼인집처럼 즐거움고 기쁜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마치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 혼인집처럼 불안하고 초조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성도 여러분 이러한 삶 속에 살고 계십니까 우리도 가나 혼인 잔치 집에서 예수를 초청하였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하시기 바란다. 왜 ! 우리가 기쁜 삶을 살지 못합니까 모두가 죄 때문이다. 이 죄악이 우리를 어둠의 세계로 끌고 가기 때문에 인생들은 기쁨이 없고 소망이 없는 삶을 살고있다. 이러한 인생들에게 우리 예수님은 찾아 오셨다. (마9:13)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죄인들의 삶이 아무리 그 생활이 잔치 같을지라도 포도주가 없다면 . 즉 예수의 피가 없다면 그 인생의 잔치는 허무한 잔치일 것이고 비참한 잔치로 끝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이다. 히 9:22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인생에게 무슨 기쁨이 있다한들 그 기쁨이 온전한 기쁨이 될 수없다. 그들에게 평강이 있다한들 잠깐 뿐이고 그 후에는 고통이 있을 뿐이다. 포도주가 없는 그 인생은 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는 인생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포도주가 없는 교회가 있다. 아니 포도주가 있었으나 다 떨어져 버린 교회가 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가 있다. 십자가 피의 능력을 사용 안하고 잊어버리고 있는 교회 역시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부인하는 교회다. 포도주가 다 떨어진 교회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의 심령에 십자가의 뜨거운 피가 있습니까 혹시 저 가나 혼인집의 포도주가 바닥난 것처럼 우리의 심령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사라진지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까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예수의 십자가의 피를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은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생활에 그리스도의 피가 항상 뜨겁게 느껴지는 생활을 하여만 한다. 우리의 심령 속에 날마다 매시간 마다 십자가의 피가 느껴져야만 한다. 우리의 주님의 교회 이 성전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날마다 붉게 물들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대화도 거부하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할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피의 능력이다. 믿으십니까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4-5절 .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라는 말을 듣고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 마리아 역시 5절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거절했지만 반드시 무슨 일을 하실 것을 알고 계셨다. 처음부터 어머니 말에 "예"하고 순종하실 수 있었는데 예수님은 왜 거절했을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잘못 해석하면 예수님이 어머니 말에 불순종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자여 " 우리말 어감으로는 무척 안 좋게 들린다. 그러나 헬라어로 "여자여" (귀나이) 존칭어이다.
1. 왕후를 부를 때나.
2. 여자를 다정스레 부를 때 최대의 존칭어 였다. 다시 말해서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 이 말은 "당신이 내게 대하여 무슨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 즉 "내게 대하여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의 말을 듣고 행동하는 자가 아니었다. "때" 에 따라서 행동 하셨다. 그 "때"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 하셨다. 마리아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말씀하시고 나서 바로 "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때" 지정된 시간을 의미.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때를 말한다.
 비록 어머니의 부탁이었지만 어떤 이적을 일으키는데 인간의 말에 순종할 수 없었다. "때"를 위하여 오신 예수 였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 예수님은 살으셨다. 한 어머니 부탁에 불순종하는 아들로 보면 안된다. "여자여" 라는 최고의 존칭어로 어머니의 인간적인 생각을 예수는 거절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자여 당신이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려는 것밖에 안됩니다. 나는 그것을 위하여 온 자가 아닙니다. 여자여 당신의 요구는 틀렸습니다. 나는 "때"를 위하여 온자 입니다" 이런 말이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우리도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간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병이나 고쳐주고, 우리 문제나 해결해주고' 우리를 부자가 되게 해주고. 그런 차원에서 예수께 간구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물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때" 를 알아야 한다. "때"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십자가의 고난의 때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문제가 혜결받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알아야 한다 (마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십자가를 모르고는 주님을 따를 수도 없고 주님의 인도도 받을 수도 없다. 오늘날 성도들이 고난은 싫어하고 축복만 받으려고 한다. 고난 좋아하는 자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그 "때"를 온전히 알게 된다면 고난이 오는 것 두렵지만은 않다. 예수님은 온전히 하나님의 "때" 에 따라서 살으셨다. 하나님께서 작정된 때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예수님은 때가 차매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막 1: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 십자가의 고난도 때에 따라서 당하셨다. 요 17:1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마리아가 지금 원하고 있는 문제 해결은 인간적인 편에서 생각하고 판단 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편에서 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신 것이다. 십자가를 아는 자는 예수님 편에서 모든 것을 생각한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잔치 집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은 한 낱 인간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그 잔치를 흥겹게 해주려고 하신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예수님의 때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우리 인생 속에 찾아오신 예수는 우리의 인생이 즐겁게 복된 삶을 줄려고만 오신 것이 아니다. 그 "때"를 알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 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그 "때" 를 기억하십니까 예수님이 당하신 그 십자가의 그 처절한 고통과 아픔의 때를 알고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신 때도 알고 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때 될 "때"도 알아야만 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것은 이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위한 작정된 하나님의 계획이다. 마 24: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때"를 모르면 마리아처럼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이 앞서게 된다. 그러면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1. 구원받을 때이다 (고후6:2-2) " 보라 !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2. 자다가 깰 때다.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3. 때 가 악한 때이다. (엡 5:16 )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은 축복과 기쁨의 시작이 아니었다. 그 시작은 예수님의 죽음과 처절한 고통의 시작이었다. 때를 모르면 그 포도주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즐거워할 수밖에 없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안다면 우리는 주님에게 "주시옵소서" 만 하는 성도들이 안될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지만 안다면 주님이 주신 은혜에 "할레루야"만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것만 달라고 한다. 그러나 가난해도 속이 든 아이들은 배고파도 참은다. 먹고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은다. 예수님의 모든 때를 역사적으로 우리는 다 본 자 들이다. 그리고 지금이 어느 때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육적인 것만 추구하는 우리 신앙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이다. 진실로 영적인 자가 필요한 때이다. 이제 예수님의 재림의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다시오 실 예수 그리스도의 때를 알리며 영적인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8 절 .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 즉 아구까지 채우니. 마리아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하신 예수님은 이제 하인들에게 명령을 하셨다. 먼저 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였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자. 이제 그 물을 떠서 갖다 주라고 명령했다. 이적은 나타났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이다.
 유대인의 결레 유대인들은 식사 전후에나 .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손을 씻는 풍속이 있다. 돌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벧전 2:4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물 말씀을 뜻.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어떤 화가가 가나 혼인잔치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을 보고 한 사람이 탄성을 질렀다 와! 저 물 항아리 좀 봐 ! 진짜 같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화가는 그 자리에서 물 항아리을 지어 버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보라는 것은 물 항아리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 했다고 한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조심해야 할 것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보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분은 돌 항아리 6개에 초점을 맞추어서 성경을 해석하기도 한다. 지금 예수님이 전하고 싶어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혼인 잔치 흥을 안 깨기 위함입니까 손님들의 기분을 안 상하게 할려는 것입니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이시고 왜 이 땅에 오셨는가를 보이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적이라고 하지 않고 표적이라고 했다.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신 가를 보이시기 위한 표적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 메시야가 오셨구나 !"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다. 9절 자기들이 먹는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지만 그들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교회에 나오는 것 십자가보다는 내 문제가 더 급하고. 영적인 면보다는 육적인 것이 더 급하십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관심이 없다. "빛이 어두움에 비쳤는데도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예수를 만나시길 원하십니까 물은 말씀이라고 했다. 오늘 듣고 있는 이 말씀이 변하여 예수가 되어야 한다.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 심령 속에 임할 때 뜨거운 십자가 피로 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이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돌 항아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심령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만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내 마음속에 모시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심령 속에 물을 채워야만 한다. 물은 말씀이라고 했다. 말씀을 배우고, 듣고, 읽고, 가득히 채워야만 한다. 물을 어디까지 채웠습니까 아구까지 채웠다. 말씀으로 충만한 삶이 되어야 한다. 요3:5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물로, 말씀으로 거듭난 삶이 되어야만 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때 어떻게 했습니까 하인들이 예수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다. 성도 여러분 !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맛보고 싶으십니까 말씀을 배우고 . 열심히 듣고, 읽으시기 바란다. 말씀을 아구까지 채우시기를 바란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임한 말씀이 지식적인데서 끝나지 않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혈액형이 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은 예수 피로 혈액형이 바꾸어져야 한다. 여러분 무슨 혈액 형 입니까 예수 피로 우리 피가 체질 개선이 된다면 우리는 예수를 위해서 살고 죽을 수 있을 것이다. 날마다 뜨거워서 예수를 위해 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세상 것들을 조금도 틈타지 못할 것이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으시기를 바란다.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자는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수 없다.    말씀의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하지 않은다. 오늘날 말씀을 아는 자는 많이 있다.
그런데 왜 정작 십자가의 피의 복음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가 말씀에 순종치 않고 말씀의 지식만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씀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오직 예수를 위한 삶들이 되어야만 한다. 말씀만 지식적으로 가득찬 저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 말씀만 알고 말씀에 순종치 않고 사는자들 . 불법을 행하면 사는 자들이다. 믿지 않은 자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다. 예수님은 마 7:22-23 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어디로 갈 것인지 말씀 하셨다.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십자가 피가 없는 그 심령에 무엇이 거하고 있겠는가 십자가    무슨 기쁨이 있겠는가 십자가 능력이 없는 자에게 어떤 능력이 거하고 있겠는가 십자가 피가 증거 되지 않은 교회에 무엇이 날뛰겠는가 십자가 피를 모르는 가정에 무엇이 잡고 있겠는가 십자가를 부인하는 이 세상에 무엇이 날 뛰고 있는가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듯이 말씀의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으로 변하여 당신의 죄가 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히 사함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전하시기 바란다. 이 땅에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러 오신 예수! 우리는 그 예수의 피를 맛 본 자들이다. 그 피의 능력을 아는 자들이다. 이 세상을 잡고있는 저 원수 마귀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십자가 피의 능력으로 덧입어져야만 한다. 포도주를 자기들의 흥을 돋구기 위하여 먹고있는 저 혼인 잔치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십자가의 복음을 내 육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우리 또한 저들과 다를 바가 없다. 십자가 피가 퇴색 되어가고 있다.  아픔이 멀리 느껴지는 시대에 살고있다.  고통이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는 시대이다. 사도바울처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흔적을 가졌노라" 외치시기를 축원합니다.
 9-12절 ". 예수께서 이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 ."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은 밖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또 그들은 그 포도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무지한 자들이다.
 연회장 세상이라고 볼 수 있다. 알지 못하되 무지함을 뜻한다. 신랑을 불렀다 이들은 누가 그렇게 한지도 몰랐다. (요1:10-11)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표적 어떤 목적을 두고 한 것이 표적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표적을 행하신 것이다. 우매한 자들을 위해서 표적을 나타내 보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잔치 속에 깊이 빠져있는 자는 예수님의 하신 일을 볼 수도 없고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세상과 동 떨어져서 살수는 없다. 그러나 세상 잔치 속에 빠져 있지는 말어야 한다. 세상 것들 노는데에 우리의 마음이 같이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세상에 빠져있는 자들은 예수의 피가 무엇이고 예수가 누구이고 . 표적을 일으킨 게 관심이 없다. 저들은 자기들의 입만 배만 즐겁게 해주는 걸로 만족한다. (빌3: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육체의 이 배통이 저희의 신이라고 했다. 오늘날 먹는데 에 인간들이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른다. 예수도 자기들 먹는데 에 이용하고있다. 그들은 먹기 위해 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이다. 예수는 그런 자들의 배를 채워주기 위해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우매한 자들을 위해 예수는 이 땅에 오셨고 그들을 깨닫기 하기 위해서 물을 변하여 포도주로 만드신 것이다. 그래서 11절 끝에서 "표적" 이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예수님은 표적을 사용하셨다. 사도요한은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의 많은 표적중 7가지 표적을 기록하고 있다.
1. 물이 변하여 포도주. (2:1-11) 대속의 은혜.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6-54) 영적 치유.
3. 38년된 병자를 고치심 (5:1-16) 약한 자를 강하게.
4. 5,000명을 먹이심 (6:1-13) 영적 기아를 치유.
5. 물위를 걸으심 (6:16-21) 자연의 세계를 다스림. 6.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심 (9:1-7)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 7. 나사로를 살리심 (11:1-44) 사망에서 생명으로 인도. 이 모든 표적에는 예수가 메시야라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한 뜻이 들어있는 표적들이다. 곳곳에서 수많은 표적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죽을 병 걸린 자가 살아나고 있고 그러나 그런 이적들을 보고도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의 육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보여준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우와! 이 포도주는 처음 것보다 맛있는데" 떠드는 자들처럼 . 오늘날도 자기들에게 보여준 기적 같은 십자가의 능력을 저들은 깨닫지 못하고 육적인 삶을 위해서 더 추구하고 있다. 물론 다 그렇지는 않은다 제자들처럼 예수를 더욱 믿는 자들도 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이 표적 우리는 역사적으로 직접 본 자들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3일만에 부활 하셨다. 이 어떤 표적보다도 이 보다 더 큰 표적은 없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큰 표적을 보고도 여전히 먹고 마시고 노는데 만 온통 시간을 다 허비 하고있다. 잔치 자리에서 이제 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유대인의 속담에 "포도주가 없으면 기쁨도 없다" 라는 말이 있다.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예수의 피가 없이는 잠시도 살수 없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십자가 피가 있었기에 나의 더러운 죄가 사함 받았다. 그 십자가 피가 있었기에 주님의 표적이 무엇을 뜻한지 알게 되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찾아오신 예수 ! 그 예수가 우리 인생 속에도 찾아 오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이 능력으로 변하게 해주셔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시고 십자가의 피의 능력을 주시고 악한 원수 마귀와 싸울 수 있는 능력도 주셨다. 이제 우리 모두 세상 연회장에만 주저앉아 있지 말고 주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데 동행하시기 바란다. 12절을 다같이 . 유대인의 혼인잔치는 일주일 혹은 그 이상도 치러진다 성도 여러분 !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아직도 세상 속에 남아서 육을 즐기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12절의 사람들처럼 예수를 따라 가시겠습니까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고도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예수를 떠났다. 표적을 볼 때뿐이었고, 먹을 때뿐이었다. 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도 가려느냐 "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어디로 가오리이까" 말씀을 여러분의 심령 아구까지 채우시기를 축원합니다.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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