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삶의 질을 바꾸시는 그리스도 (사55:1-5,요2:1-12)

본문

오늘은 교회력 마지막 주일인 "왕이신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만물의 으 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로 한 해를 마감하는 것은 그가 결국 하나님의 세계를 모두 통치하실 왕이심을 고백하면서 그의 다스림 아래서 맞게 될 참 평화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는 날 피 조세계 전체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바로 이런 왕되신 그리스도가 이룩하신 변화가 어떤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요한복음에 기록된 첫 번째 기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오늘 우리의 삶의 질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계신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가나의 결혼 잔치에서 일어난 기적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일곱 가지 기적 가운데 첫 번째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은 이 기적 이야기를 요한복음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나타내고 자 하는 기록자의 의도가 있음을 뜻합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요한은 신중하 게 자기의 자료를 선택하여 적절하게 배열하므로 자기가 나타내고자 한 신 학적 의미를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면서 그가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빛을 가져오시는 분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가져오시는 새로운 생명을 율법 종교인 유대교의 굳어진 의식과 대조시키므로 그 생명의 가치를 돋보 이게 하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있었던 기적도 이런 틀 속에서 이 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가나에서 열린 결혼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참석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포도주는 일상 음료로서 잔칫집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음료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그 잔치의 끝을 이야기합니다. 부엌 사정을 들여다본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그 사정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이것을 말한 의도는 그가 가진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여 잔칫집에 필요한 포도주를 공급하고 더 나아가 아 들의 명예와 영광도 아울러 드러내는 것도 좋겠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은 당시의 상황을 적절하게 나타낸 말이었습니다. 포도주는 잔치에 있어서 기쁨을 공급해 주는 원천이 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비단 한 결혼 잔칫집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고 율법종교의 실상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무기력해지고 형식화 되어 사람들에게 기쁨을 공급하는 대신 오히려 무거운 짐만 되고 있는 율법 종교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줄 수 없는 빈 항아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포 도주가 떨어져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런 율법종교의 허상(虛像)을 날 카롭게 지적하면서 그와 대조된 새로운 포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 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가나 혼인 잔치 기적을 행하신 다음에 나오는 성 전 청결 사건에서 이 껍데기만 남은 율법종교의 상징인 성전을 헐어버리라 고 하시면서 그가 사흘만에 다시 짓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율법종교인 유대교는 더 이상 아무 기쁨도 공급할 수 없는 무기력한 종교가 되어버 리고 만 것입니다. 생명을 잃어버린 종교가 되어 걸림돌만 될 뿐이었습니다. 종교가 그 생명을 잃어버리고 껍데기만을 지닌 채 그것만을 자랑하게 될 때 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참 좋은 포도주를 공급하지 못하는 교회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참 포도 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맺혀진 열매로 만들어진 포도주가 교회 마다 가득 차고 넘쳐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그 생명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임없이 새로운 포도주를 공급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포도주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 ― 이 말은 오늘날 이 지구적인 환경에서 들려오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20세기가 끝나 가는 이 시점에서 그 동안 우리가 흥청 대며 써왔던 모든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외쳐대고 있는 것입니다. 맑은 공기를 공급하던 지구의 허파인 삼림들이 마구 잘려나가고, 자동차를 비롯하여 인간들이 마구 쏟아내는 이 산화탄소에 의해 지구 온난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여러 가지 천재지변이 일 어나고 있으며,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물과 지하 자원들이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다. 바닥이 드러나고 있는 위기 상황 앞에서 자연을 보호하고 자원을 아끼자고 소리를 높여 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리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앞 으로만 달려온 결과 필요 이상으로 개발하였고, 너무 과속으로 달려 온 결 과 이 지구의 생명을 단축시키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수 백년 내지 수 천 년을 써야할 자원을 20세기 단 백년 안에 다 써버린 것입니다. 사람들은 포 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취하였고, 취한 상태에서 앞뒤를 분간치 못한 채 마구 흥청대며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 나라 상황은 이런 지구적 상황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경제성장을 위하여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려왔고, 가난을 벗어나면서 벼락부자나 된 것처럼 흥청망청 마구 써버린 결과 이제는 돌이 킬 수 없는 벼랑 앞에 몰리게 된 것입니다. 거기에다 남북간의 대치로 인한 소모적인 전쟁으로 우리의 자원 고갈은 더욱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북쪽이나 남쪽이 다같이 지금 포도주가 떨어져 버린 것입니다. 앞으 로 아무리 경제가 회복된다 하더라도 물질적 풍요를 통한 기쁨을 맛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원이 바닥을 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만 족을 추구해온 삶의 형태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가난해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한 어머니 마리아는 어쩌면 그 시대를 대표하여, 아니 오늘 고갈되어 가는 대지의 어머니로써 예수님에게 "포도주가 떨어졌 다"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 인류는 아직도 미몽(迷夢) 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해 보겠다고 안간 힘을 쓸 것이 아니라 이제는 겸손히 마리아처럼 예수님에게 나가 솔직하게 우리의 실상을 드러내어 고백할 때인 것입니다. "주님,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마련된 새 포도주 마리아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셨 습니다. 이 말씀은 어머니조차도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대해서 간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는 그가 십자가를 지신 후 부활하시어 다시 하나님 우편으로 오르실 때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취할 영광은 사람들에게 어떤 기적을 나타내 보이므로 얻을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 완전 하게 순종하심으로 얻을 영광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의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씀을 단순히 그 잔칫집의 포도주가 떨어진 것으로만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 집에 포도주가 떨 어진 것으로 보시면서 그것을 채우실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 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퍼다 붓게 하시 므로 새 포도주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 기적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려 하심이 아니라 때가 이를 때 나타날 보다 더 큰 기적과 영광을 상징적으로 미리 나타내 보여 주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을 통해서 나타날 생명의 풍성함을 포도 주 사건에서 예시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유대인의 정결 예법에 쓰이는 돌 항아리 여섯 개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여섯이란 수는 불완전수입니다. 이것은 의식적인 물로 전형화 되어 있는 유대교 불완전함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불완전한 유대 종교, 이미 포도주가 다 떨어져 버린 종교에 예수님은 새로이 물을 퍼다 부어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의식적으로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할 수 밖에 없는 옛 율법종교의 빈곤함과 대조적으로 인간의 죄를 근본부터 정결 케 하며 동시에 참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룩되는 새로운 신앙 의 풍성함을 비교하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무기력한 율법종교 대신에 새롭게 진정한 교회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몸을 내주시어 우리의 양식을 삼으시며 우리의 음료가 되게 하시므로 우리 속에 참된 생명을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4-55 예수 그리스도는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 되게 하시어 사람 을 기쁘게 해 주었으나 때가 이르렀을 때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그 피로 우리의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로 마시게 하시므로 우리 속에 참된 생명을 주셨고, 이 때문에 우리는 마르지 않는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영적 생명을 풍성케 하는 "좋은 포도주" 예수님이 주신 새 포도주는 "좋은 포도주"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에 서는 예수님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시므로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포도주 를 공급하여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분, 그래서 그가 주시는 생명은 시들거나 마르거나 죽지 아니하고 영원한 것임을 이 세상의 생명과 대조하여 적고 있습니다.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 4:13-14 여기서도 이 땅의 물과 대조되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을 공급하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록하면서 모든 사람을 배부르게 할 하늘의 양식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그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요 6:27 이 땅의 썩을 양식과 대조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바로 그리스도께서 주실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생명은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생명 과 근본적으로 그 질에 있어서 다른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소모적이며 유 한하며 결국 소멸될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은 영원한 것 입니다. 병들거나 약하여지거나 소멸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풍성해 지고 점점 더 완전해지는 생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속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어 가는 이 땅의 삶과는 대조적으 로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명입니다. 오늘 과학기술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결국은 그 문명은 소비하는 문 명이며, 따라서 이 땅의 모든 자원을 고갈시켜 버리는 문명이며, 결국은 그 자원의 고갈과 더불어 소멸될 수밖에 없는 문명입니다. 과학문명에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까지 과학 문명을 따라 살아왔던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그 문명과 더불어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하나님의 나라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문명을 따라 살던 육적인 삶의 방식을 버리고 이제는 영적인 삶의 방식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육적인 욕망을 억제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그 영의 양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좋은 포도주"는 우리의 육적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음료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삶을 위해 준비된 음료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예배당에 열심히 나와 우리의 육적인 삶의 만족을 위하여 기도하여도 그것은 헛된 수고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새 포도주는 그것을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가 주시는 좋은 포도주의 참맛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바꾸어 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땅의 삶은 최소화하고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며 노력하여야 할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 시는 생명의 포도주를 통하여 우리의 영이 날마다 새로워지며, 하늘 나라 잔치에 참여한 참 기쁨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 여러분의 가정에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포도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여 그가 주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의 포도주를 마련하시기 바랍니다. 소멸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삶에 미련을 둘 것이 아니라 날마다 새로 워지는 영적인 삶을 위해 참 기쁨의 포도주를 여러분의 불완전한 삶의 항아 리 속에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소멸되어 가는 이 땅의 문명에 미 련을 두고 거기에 기대를 걸 것이 아니라 점점 우리 앞에 분명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거기에 기대를 걸고 그 잔치에 참여하 기 위하여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시는 생명의 포도주를 여러분의 삶 속에 가득하게 받아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기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50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