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계시는 가정을 (요2:1-11)
본문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며, 교회의 보루이자 사회와 국가의 기초이다. 그러므로 가정의 파괴는 이 모든 것들의 파괴라고 해도 그르지 않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말세의 현상은 이 가정의 파괴에서 시작되고 사탄의 전략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최근의 가정들의 파괴는 결코 신앙의 입 장에서 가볍게 봐 넘길 성질의 것이 아니다.
'1'가정은 구원의 공동체 최초의 아담에게 있어서의 에덴(낙원, Paradise)이 가정이었고 그의 자손들인 인류에게 있어서는 가정이 낙원(Paradise)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된 공 동체는 사탄의 계교로 무너지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회복인 구원의 문제도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다.
1죄악의 땅이었던 출애굽을 위한 속죄양도 가정 단위로 잡게 되었고 출12: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 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 절 양으로 잡고"
2축복의 땅 가나안의 정착도 가정 단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민33:54"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 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
3구원 의 약속도 가정을 단위로 하고 있다. 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4초기의 교회 형태도 집으로 시 작 된 흔적들을 발견 할 수 있다. 고전16: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 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 절히 문안하고" 몬1:2"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5OT, NT 공히 구원의 역사도 개인에 게서 시작하여 가정으로 연결되어 지고 있다. '창7: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 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 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6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눅19:9"예수께서 이르 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2'가정은 신앙 양육의 공동체 OT에서 신앙 교육이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서 명령되어 졌다. (신6: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 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 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 이러한 OT의 양육 원리의 전통은 그대로 전승되어졌다. 행12:12"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 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뿐만 아니라 교회 속의 중책을 맡아야 할 일군들의 자격은 반드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며 자신의 가정을 잘 다 스릴 줄 아는 자들에게 한정되었다. 딤전3:4-5"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 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이러한 모습 들을 볼 때 가정은 우리의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는 훈련 현장이다. 디모데 같은 훌륭한 교회의 일군은 가정에서 신앙으로 잘 양육을 받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행16:1"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 라" 딤후1: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 신하노라" 뿐만 아니라 교회나 천국이 곧잘 집으로 비유되고 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딤전3: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 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이니라" 히3: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렇게 가정은 신앙에 있어서도 결코 약화시킬 수 없는 귀중한 터전이 된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주님께서 최초의 이적을 가정을 이루는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이라는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다가 피곤하실 때에 나사로의 가정을 찾으신 것도 의미를 둘 수 있다(요11:).
그런데 오늘의 발달한 산업 사회는 바로 이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고 신앙의 가정들조차도 세속 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오늘의 가정은 더 이상 'home sweet home'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고 하는데도 파탄이 오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거리 가 되는 것은 분명히 가정을 구원의 도구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비극이다. 오늘 본문에는 분명한 가정 회복의 원리가 주어지 고 있음을 확신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것은 행복의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으로 모시는 것이다.
1.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셔야만 한다. 오늘 본문의 가정은 시작 부터 비극을 맞고 있으니 축복 받을 가정의 시작인 혼인 잔치에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바닥 나 버린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잔치의 기쁨을 지속 해 가는 것은 술이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도주는 시104:15"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잠31:6"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세속의 사람들에게 맹 물과 함께 떡을 먹으라고 하면 그 잔치에 오래 머무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혼인 잔치 집에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위기도 언제 나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는 Happy Maker시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들의 가정에 예수님만 계시다면 어떠한 위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님은 양식이 떨어진 빈들에서도 모두를 행복하도록 먹여 주셨고, 풍랑 만난 바다 위에서도 위기를 모면케 하셨고,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죽은 자를 살려 주셔서 행복을 회복시키신 분이시다. 그분이 계시면 행복과 선을 위하여 안되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뿐 만 아니라 온통 공동묘지로 끝날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분이시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위기가 있다면 주님을 찾아야 할 때이다. 마8: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 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8:2"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 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8:6"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15: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17: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 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오늘 본문의 마리아의 주문에도 응하셧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는 어떤 일 이 있는가 어느 부르짖음이라도 주님은 외면치 않으신다. 믿는가 오늘의 위기의 가정들에 주님을 모셔야만 한다.
2.맹물 같은 맛없는 가정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으로 물맛을 바꿔야만 한다. 술이 있어야만 한다. "정신 나갔나"하겠지만 사실이다. 전10:19"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
1술이 있어야 노래가 있고,
2술이 있어야 춤이 있고,
3술이 있어야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4술이 있어야 대담해 지며,
5술이 있어야 고민도 근심도 없어진다.
"점점" 그렇다! 알코올로 된 술은 육체적 쾌락을 주는데는 그만이다. 성경에서는 술은 "성령님"에 곧잘 비유된다. 행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 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5"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 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앞의 이야기를 다시 번역을 하면
1성령님에 취해(충만)야 찬양이 있고,
2성령님에 취해(충만)야 희락의 몸짓인 사랑이 충만하고,
3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부끄러움 없이 봉사하고,
4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담대히 전도하고,
5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미래와 세상의 걱정 근심을 잊는다. '성령님에 취해(충만)야' 가정이 교회가 천국이 된다. 믿으시기를
3.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더욱 행복해 진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 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 었도다 하니라"(10)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 을 내거늘" 이것은 전형적인 세상의 원리다. 그러나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 를 두었도다" 즉 처음에는 별로 였었는데 다중에는 점점 좋아지는 원리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원리다. 예수님이 없는 가정은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가 있지만 나주에는 시고 맛없는 포도주로 점점 변한다. 범죄 하기 전의 아담이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하더니 범죄 후에는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소위 여자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짐스러운 관계로 변한 것처럼 처음에는 죽고 못사느니, 사랑이니, 깨소금이니 하다가 결국은 미워한다느니 방구냄새가 독하다느니 하다가 결국은 싸움과 이혼으로 치닫는다. 그럭저럭 좋을 때는 아이 하나 낳고서는 '신의 선물' 이라느니 하던 자녀는 "아휴 저 녀석만 없었다면"이라며 '원수'로 여긴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가정은 처음에는 맹물처럼 별맛을 모르다가 나중에는 더욱, 더욱 기쁨으로 넘치게 된다. 예수님을 가장으로 모시면 결코 기쁨이 바닥나지 않는다. 이런 가정의 싸움은 서로 먼저 봉사하고, 좋은 일 먼저 하려다 다투는 것뿐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지 못한 가정은 분명히 말로는 예수님이 가장 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아닌 가정이 분명하다. 오늘의 점점 위기로 가는 가정의 마지막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누굴 모시면 된다구요-예수님-그렇습니다.
4.결론. 가정은 늘 잔치하는 곳이다. 기뻐서 슬퍼서. 우리의 가정들에 맛있는 술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모셔야 흥겨운 가정이 된다. 신령한 술과 같은 성령님은 반드시 예수님을 모신 곳에만 역사 한다. 사55: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시4: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의미 없이 삭막한 의무의 가정, 맛을 찾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한다. 세상의 알코올로 달래던 것을 신령한 술 성령님으로 취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보 다 마지막이 더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 가시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1'가정은 구원의 공동체 최초의 아담에게 있어서의 에덴(낙원, Paradise)이 가정이었고 그의 자손들인 인류에게 있어서는 가정이 낙원(Paradise)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복된 공 동체는 사탄의 계교로 무너지게 되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의 회복인 구원의 문제도 가족 단위로 이루어진다.
1죄악의 땅이었던 출애굽을 위한 속죄양도 가정 단위로 잡게 되었고 출12:21"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 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양을 택하여 유월 절 양으로 잡고"
2축복의 땅 가나안의 정착도 가정 단위 중심으로 이루어 졌다. 민33:54"너희의 가족을 따라서 그 땅을 제비뽑아 나눌 것이니 수가 많 으면 많은 기업을 주고 적으면 적은 기업을 주되 각기 제비 뽑힌 대로 그 소유가 될 것인즉 너희 열조의 지파를 따라 기업을 얻을 것이니라"
3구원 의 약속도 가정을 단위로 하고 있다. 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4초기의 교회 형태도 집으로 시 작 된 흔적들을 발견 할 수 있다. 고전16: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 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안에서 너희에게 간 절히 문안하고" 몬1:2"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5OT, NT 공히 구원의 역사도 개인에 게서 시작하여 가정으로 연결되어 지고 있다. '창7: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 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 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행16:31"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6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눅19:9"예수께서 이르 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2'가정은 신앙 양육의 공동체 OT에서 신앙 교육이 가정에서 부모에 의해서 명령되어 졌다. (신6:6)"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 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 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 할지니라" 신약 시대의 교회에서 이러한 OT의 양육 원리의 전통은 그대로 전승되어졌다. 행12:12"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 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뿐만 아니라 교회 속의 중책을 맡아야 할 일군들의 자격은 반드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며 자신의 가정을 잘 다 스릴 줄 아는 자들에게 한정되었다. 딤전3:4-5"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 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딤전3: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이러한 모습 들을 볼 때 가정은 우리의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키우는 훈련 현장이다. 디모데 같은 훌륭한 교회의 일군은 가정에서 신앙으로 잘 양육을 받은 전형적인 인물이다. 행16:1"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 라" 딤후1:5"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 신하노라" 뿐만 아니라 교회나 천국이 곧잘 집으로 비유되고 있다. 고전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딤전3: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 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 이니라" 히3:6"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이렇게 가정은 신앙에 있어서도 결코 약화시킬 수 없는 귀중한 터전이 된다. 오늘 본문의 사건도 주님께서 최초의 이적을 가정을 이루는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것이라는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시다가 피곤하실 때에 나사로의 가정을 찾으신 것도 의미를 둘 수 있다(요11:).
그런데 오늘의 발달한 산업 사회는 바로 이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고 신앙의 가정들조차도 세속 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오늘의 가정은 더 이상 'home sweet home'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딱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고 하는데도 파탄이 오고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거리 가 되는 것은 분명히 가정을 구원의 도구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비극이다. 오늘 본문에는 분명한 가정 회복의 원리가 주어지 고 있음을 확신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것은 행복의 창조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으로 모시는 것이다.
1.우리의 곁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셔야만 한다. 오늘 본문의 가정은 시작 부터 비극을 맞고 있으니 축복 받을 가정의 시작인 혼인 잔치에 흥을 돋우는 포도주가 바닥 나 버린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이나 잔치의 기쁨을 지속 해 가는 것은 술이다.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도주는 시104:15"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잠31:6"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세속의 사람들에게 맹 물과 함께 떡을 먹으라고 하면 그 잔치에 오래 머무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 혼인 잔치 집에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하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어떠한 위기도 언제 나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는 Happy Maker시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들의 가정에 예수님만 계시다면 어떠한 위기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님은 양식이 떨어진 빈들에서도 모두를 행복하도록 먹여 주셨고, 풍랑 만난 바다 위에서도 위기를 모면케 하셨고,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는 죽은 자를 살려 주셔서 행복을 회복시키신 분이시다. 그분이 계시면 행복과 선을 위하여 안되는 것은 더 이상 없다. 뿐 만 아니라 온통 공동묘지로 끝날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십자가를 지신 분이시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 위기가 있다면 주님을 찾아야 할 때이다. 마8:25"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 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마8:2"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 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8:6"가로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15: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17:15"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 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오늘 본문의 마리아의 주문에도 응하셧다.
지금 여러분의 가정에는 어떤 일 이 있는가 어느 부르짖음이라도 주님은 외면치 않으신다. 믿는가 오늘의 위기의 가정들에 주님을 모셔야만 한다.
2.맹물 같은 맛없는 가정 생활을 하고 있다면 예수님으로 물맛을 바꿔야만 한다. 술이 있어야만 한다. "정신 나갔나"하겠지만 사실이다. 전10:19"잔치는 희락을 위하여 베푸는 것이요 포도주는 생명을 기쁘게 하는 것."
1술이 있어야 노래가 있고,
2술이 있어야 춤이 있고,
3술이 있어야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4술이 있어야 대담해 지며,
5술이 있어야 고민도 근심도 없어진다.
"점점" 그렇다! 알코올로 된 술은 육체적 쾌락을 주는데는 그만이다. 성경에서는 술은 "성령님"에 곧잘 비유된다. 행2: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 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행2:15"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엡5: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 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 앞의 이야기를 다시 번역을 하면
1성령님에 취해(충만)야 찬양이 있고,
2성령님에 취해(충만)야 희락의 몸짓인 사랑이 충만하고,
3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부끄러움 없이 봉사하고,
4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담대히 전도하고,
5성령님에 취해(충만)야 미래와 세상의 걱정 근심을 잊는다. '성령님에 취해(충만)야' 가정이 교회가 천국이 된다. 믿으시기를
3.처음보다 나중이 더욱 더욱 행복해 진다.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 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 었도다 하니라"(10)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 을 내거늘" 이것은 전형적인 세상의 원리다. 그러나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 를 두었도다" 즉 처음에는 별로 였었는데 다중에는 점점 좋아지는 원리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원리다. 예수님이 없는 가정은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가 있지만 나주에는 시고 맛없는 포도주로 점점 변한다. 범죄 하기 전의 아담이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2:23)하더니 범죄 후에는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 소위 여자 때문에 자신이 죽게 되었다는 짐스러운 관계로 변한 것처럼 처음에는 죽고 못사느니, 사랑이니, 깨소금이니 하다가 결국은 미워한다느니 방구냄새가 독하다느니 하다가 결국은 싸움과 이혼으로 치닫는다. 그럭저럭 좋을 때는 아이 하나 낳고서는 '신의 선물' 이라느니 하던 자녀는 "아휴 저 녀석만 없었다면"이라며 '원수'로 여긴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가정은 처음에는 맹물처럼 별맛을 모르다가 나중에는 더욱, 더욱 기쁨으로 넘치게 된다. 예수님을 가장으로 모시면 결코 기쁨이 바닥나지 않는다. 이런 가정의 싸움은 서로 먼저 봉사하고, 좋은 일 먼저 하려다 다투는 것뿐이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그렇지 못한 가정은 분명히 말로는 예수님이 가장 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아닌 가정이 분명하다. 오늘의 점점 위기로 가는 가정의 마지막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누굴 모시면 된다구요-예수님-그렇습니다.
4.결론. 가정은 늘 잔치하는 곳이다. 기뻐서 슬퍼서. 우리의 가정들에 맛있는 술이 필요하다. 예수님을 모셔야 흥겨운 가정이 된다. 신령한 술과 같은 성령님은 반드시 예수님을 모신 곳에만 역사 한다. 사55:1"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시4:7"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의미 없이 삭막한 의무의 가정, 맛을 찾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한다. 세상의 알코올로 달래던 것을 신령한 술 성령님으로 취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보 다 마지막이 더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 가시는 나와 여러분 되시기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