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질문 (요21:15-17)
본문
어느 목사님이 목회의 위기에 봉착했다. 산에 올라가서 금식기도에 들어 갔다. 결국은 사십일로 이어졌는데 그 첫 날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질문이 있 었다. 그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는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려 기도원에 간 것이었다.
그런데 일어나는 질문은 엉뚱하게도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대답을 피하고 기도에 집중했다. 그러나 질문은 집요하게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되 지 않았다. 결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전은 없으리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해졌다. 사실상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하나님 앞에 나왔지만 결국 생각하는 것은 자기 문제나 잘 해결되고 가족이 잘 되고 잘 사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한다. 고 통의 멍에를 벗고 사랑과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가 위대하니까 조건 없 이 섬기려는게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깊은 교제를 맺고자 한다 면 반드시 이 질문을 만나고야 만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대답 않고 안 으로 들어갈 길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베드로가 목자로서의 사명을 받고 나가기 전에 예수는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고는 다 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세 번째로 그는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맞닥드린 질문이 같은 것이요 그 해답을 통해서 신자는 자기의 이해를 분명히 갖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를 보자.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관심도 쏟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살해되어 땅에 묻혔다. 그가 선포하는 사랑의 말씀은 거절되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힘과 지배와 인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부활하신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에게 귀를 귀울이는 몇 사람의 추종자를 놓고 그중 하나에게 질문하고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친분을 맺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얼마나 권력이 있느냐얼마나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존경하느냐얼마나 가정을 잘 다스렸고 자녀를 잘 키웠느냐" 이 모두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질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뛰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따라서 울고 웃고 하지 않는가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기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묻고 계시는 것이다. 아까 그 목사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40일을 금식하며 보냈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래서 그 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고 나서야 대답이 가능했던 것이다.
2. 하나님을 아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하나님을 아느냐"가 된다. 그 하나님을 알고야 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 의 외롭고 낙심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만 한다. 용서하고 돌보고 치료하는 마음이다. 의심이나 미움이나 신경질은 거기 전혀 없다. 인간의 무서운 고통 그리고 반항으로 인해서 아픈 하나님의 마음이다. 신자가 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 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여러가지 신자의 노력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해야 하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인 것을 알고 단 지 이 사랑만을 확실히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에 숨어들어오는 두려움과 낙심과 고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전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 뻔하고 다 아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이러한 사랑을 아무런 조건이나 한계 없이 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요한은 다른 곳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고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첫번 사랑을 받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신자의 삶을 누린다. 1873년 다미엔은 몰로카이의 하와이 섬으로 선교사로 떠난다. 거기 문둥 이의 섬에 도착한 그는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거의가 일그러진 흉한 모습의 그들은 그를 피해 다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가 나타나면 모두다 사라 졌다. 혼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지 내기를 열 두 해 지치고 외로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부두에 서서 그는 지나간 기간동안의 실패를 생각해 보았다. 배를 기다리 던 그는 자기의 손을 보고 흠칫 놀란다. 심상치 않은 흰 점들과 아무런 감각 이 없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도 문 둥이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다시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교회로 돌아가자 그의 병 소식은 온 섬 안에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펴졌다.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문둥이들이 이제는 모두 몰려왔다. 수백명의 주민 들은 그의 오두막집 밖에 모여섰다. 이제야 그들은 선교사로 온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고통,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그는 참으로 그들과 하나였다. 다음 주일날 교회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마당 에도 사람들 사람들. 그들과 하나였기에 그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가 우리에게 베푸신 일을 알게 된다. 그는 하늘 황 태자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데미안처럼 그는 우리의 모습으로 왔다. 어머 니로부터 태어났고 가난과 외로움과 억울함을 맛본다. 그는 자기의 삶을 우리 에게 주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짊어진다. 그리고 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보통 사람들 간에 경험하는 사랑은 소위 두 번째 사랑이다. 이것은 우리 의 부모나 스승, 배우자나 친구들로부터 받는 모든 좋은 것들 칭찬, 동정, 격 려등의 사랑이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랑에 목말라하지만 여기에는 항상 의심과 좌절이 동반된다. 질투와 배신, 미움과 복수심에 빠지게도 한다. 이 사랑이 얼마나 유한하고 약하며 깨어지기 쉬운 것인가를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 두 번째 사랑은 여러 표현이지만 거기에는 항상 거절이나 취소의 가능 성이 있다. 강요나 협박, 폭력이 동반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영화나 소설이 이런 사랑의 한계와 연약함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결혼이건 우정이 건 공동체건 이러한 두 번째 사랑에서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이 없는 경우는 없다. 아픔과 거부, 배신과 학대가 사람들 마음에 얼룩진 상처로 남아있다.
3. 예수의 사랑을 받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 무엇이 복음인가 이처럼 부족 한 두 번째 사랑만으로 우리가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첫 번 째 사랑의 타락하고 부서진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첫번째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전혀 그림자가 없다는 소식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의 마음을 통해 주어진 것이다. 그의 마음에서부터 이 사랑의 생명수는 흘러들어온다. 그는 외쳤다. "누 가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요 8:37) "무거운 짐에 눌린 사람들 아 너희에게 필요한 쉼은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시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주어지는 질문이 "나를 사랑하느냐"이다. 예수의 이 마음 을 아는 것이 바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의 지식은 바로 이 마음의 지 식이다. 이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그 지식을 나누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고침과 화해와 새로운 삶과 소망을 뿌린다. 샘물이 솟아나오는 것과 같다. 동시에 유명하고 잘나고 싶은 욕망은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서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아하면서도 결단하기는 두려워한다. 어떤 어두운 그늘이 있어서 마치 이단 종교처럼 마음을 사로 잡아 노예로 만들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전혀 그늘이 없다. 베드로 속에서 첫번째 사랑을 확인한 뒤에 예수는 그에게 사명을 깨닫게 한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 속에 신자들은 각자가 목회에 포함되었음을 알게 된다. 신앙은 혼자 잘되자는 것이 아니다. 양들은 언제나 떼를 지어서 있다. 신자들이 혼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반드시 신자는 교회에 참여해야 한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신자는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가 영적으로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형 제들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 치료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예수이다. 진리를 말 하는 이도 내가 아니라 예수이다. 또한 주가 되시는 이도 내가 아니라 역시 예수이다. 이것이 공동체로 함께 모일 때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모 일 때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너무도 분명해 지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신도로서 우리가 경험하는 목회는 교회라는 공동체만의 경험이 아니라 형제자매 상호간의 경험이라는 점이다. 우리 각자는 사실상 치료자가 아니다. 우리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상하고 약한 죄악에 물든 인간이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우리는 서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예수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깨달아지고 더욱 더 분명한 것 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사랑은 더욱 예수다워진다. 우리 각자는 서로가 연 결되어 이 첫번 사랑의 도구로 세상을 향해서 일어선다. 그리고 이 사랑을 비 추는 동안 거기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예수처럼 찟기고 상하고 억울함을 맛보아도 여전히 그 상처나 어둠은 마음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4. 사랑으로 사는가 이제 정리해 보자. 예수께서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단 하나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말하면 "네가 내 마음을 아느냐 그리고 내가 한 모든 일들을 아느냐"고 묻고 계신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해 주신 모든 일들을 안다. 그리고 그가 해주신 모든 일들의 효력은 내 안에 주어져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말씀하신다. "내 양을 먹이라." 이제는 우리가 예수의 일을 할 차 례가 되는 것이다. 메마르고 돈만 아는 파렴치한 세상을 향해서 사랑을 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가치가 있으면 하는 사랑 이 아니다. 내 자신이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었음을 아는 것이다. 신경질이나 냉담함이 아니다. 어린이 같고 바보 같은 마음, 그러나 지혜자의 마음이다. 자신을 들여다 보라. 예수를 사랑한다는 고백이 있다면 양을 먹일 수 있는 세상의 목자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타락과 악을 비난하는 이들 이 많다. 테레사 수녀에게 누가 물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부정의와 악에 대 해서 분노하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사랑할 수 있는데 왜 분노하는 일에 내 에네지를 허비합니까" 그렇다. 이것이 바로 양을 먹이는 일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면 우리 속에는 뜨거운 용광로가 들어와 있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그 용광로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제자신에게서 이 사랑이 항상 나오도록 훈련해야 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 사실을 확인 하고 평생을 사랑의 사도로 살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제 만물을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브로드웨이의 스타 매리 마틴이 어느 날 [남태평양]이란 뮤지칼을 공연하 기 위해 무대에 오르려는 참이었다. 한 편지가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오스카 헤머스타인이란 노 배우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불러주고 병상에서 숨이 넘어갔다고 한다. "사랑하는 매리, 종은 울리기까지 종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당신이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아닙니다." 계속된 내용은 이것이었다. "사랑은 마음에 품어 두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여, 재능의 사람이여, 그 사랑을 남에게 주어 버 리기까지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 사랑을 뿜어내기 바랍니다." 그날 밤 공연이 그치자 사람들은 모두다 무대 뒤로 몰려 갔다. 그리고 외쳤다. "매 리, 매리, 우린 그렇게 압도적이고 신들린 연기는 평생 처음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헤머스타인의 글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밤, 나는 사랑을 내주었을뿐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제 그 사랑을 뿜어내기 바란다. 그 사랑으로 내 마음이 생명을 얻게 만들고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생기 있게 만들자. 그 사랑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다시 한 번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런데 일어나는 질문은 엉뚱하게도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대답을 피하고 기도에 집중했다. 그러나 질문은 집요하게 마음 속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되 지 않았다. 결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진전은 없으리라는 것이 너무도 명백해졌다. 사실상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고 있었다. 비록 하나님 앞에 나왔지만 결국 생각하는 것은 자기 문제나 잘 해결되고 가족이 잘 되고 잘 사는 것을 원하고 있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한다. 고 통의 멍에를 벗고 사랑과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가 위대하니까 조건 없 이 섬기려는게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깊은 교제를 맺고자 한다 면 반드시 이 질문을 만나고야 만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대답 않고 안 으로 들어갈 길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왜 중요하단 말인가 베드로가 목자로서의 사명을 받고 나가기 전에 예수는 그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리고는 다 시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세 번째로 그는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가 맞닥드린 질문이 같은 것이요 그 해답을 통해서 신자는 자기의 이해를 분명히 갖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예수를 보자. 아무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관심도 쏟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살해되어 땅에 묻혔다. 그가 선포하는 사랑의 말씀은 거절되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힘과 지배와 인기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부활하신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자기에게 귀를 귀울이는 몇 사람의 추종자를 놓고 그중 하나에게 질문하고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친분을 맺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너는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느냐얼마나 권력이 있느냐얼마나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너를 존경하느냐얼마나 가정을 잘 다스렸고 자녀를 잘 키웠느냐" 이 모두가 자기 자신과 관련된 질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의 대답을 얻기 위해서 불철주야로 뛰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따라서 울고 웃고 하지 않는가 사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기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묻고 계시는 것이다. 아까 그 목사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위해서 40일을 금식하며 보냈다. 예수가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는지 그래서 그 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알고 나서야 대답이 가능했던 것이다.
2. 하나님을 아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하나님을 아느냐"가 된다. 그 하나님을 알고야 사랑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 의 외롭고 낙심이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만 한다. 용서하고 돌보고 치료하는 마음이다. 의심이나 미움이나 신경질은 거기 전혀 없다. 인간의 무서운 고통 그리고 반항으로 인해서 아픈 하나님의 마음이다. 신자가 되는 것은 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하 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여러가지 신자의 노력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해야 하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은 사랑인 것을 알고 단 지 이 사랑만을 확실히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에 숨어들어오는 두려움과 낙심과 고독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전혀 아님을 아는 것이다. 이 말은 너무 뻔하고 다 아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이러한 사랑을 아무런 조건이나 한계 없이 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요한은 다른 곳에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고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 첫번 사랑을 받은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만이 신자의 삶을 누린다. 1873년 다미엔은 몰로카이의 하와이 섬으로 선교사로 떠난다. 거기 문둥 이의 섬에 도착한 그는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거의가 일그러진 흉한 모습의 그들은 그를 피해 다녔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가 나타나면 모두다 사라 졌다. 혼자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시작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렇게 지 내기를 열 두 해 지치고 외로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부두에 서서 그는 지나간 기간동안의 실패를 생각해 보았다. 배를 기다리 던 그는 자기의 손을 보고 흠칫 놀란다. 심상치 않은 흰 점들과 아무런 감각 이 없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자기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도 문 둥이가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다시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교회로 돌아가자 그의 병 소식은 온 섬 안에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펴졌다. 전에는 보이지도 않던 문둥이들이 이제는 모두 몰려왔다. 수백명의 주민 들은 그의 오두막집 밖에 모여섰다. 이제야 그들은 선교사로 온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고통,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그는 참으로 그들과 하나였다. 다음 주일날 교회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마당 에도 사람들 사람들. 그들과 하나였기에 그는 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가 우리에게 베푸신 일을 알게 된다. 그는 하늘 황 태자의 모습으로 오지 않았다. 데미안처럼 그는 우리의 모습으로 왔다. 어머 니로부터 태어났고 가난과 외로움과 억울함을 맛본다. 그는 자기의 삶을 우리 에게 주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짊어진다. 그리고 말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보통 사람들 간에 경험하는 사랑은 소위 두 번째 사랑이다. 이것은 우리 의 부모나 스승, 배우자나 친구들로부터 받는 모든 좋은 것들 칭찬, 동정, 격 려등의 사랑이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랑에 목말라하지만 여기에는 항상 의심과 좌절이 동반된다. 질투와 배신, 미움과 복수심에 빠지게도 한다. 이 사랑이 얼마나 유한하고 약하며 깨어지기 쉬운 것인가를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이 두 번째 사랑은 여러 표현이지만 거기에는 항상 거절이나 취소의 가능 성이 있다. 강요나 협박, 폭력이 동반되기도 한다. 거의 모든 영화나 소설이 이런 사랑의 한계와 연약함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결혼이건 우정이 건 공동체건 이러한 두 번째 사랑에서 나타나는 긴장과 갈등이 없는 경우는 없다. 아픔과 거부, 배신과 학대가 사람들 마음에 얼룩진 상처로 남아있다.
3. 예수의 사랑을 받았는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좋은 소식이 무엇인가 무엇이 복음인가 이처럼 부족 한 두 번째 사랑만으로 우리가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첫 번 째 사랑의 타락하고 부서진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첫번째 사랑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전혀 그림자가 없다는 소식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예수의 마음을 통해 주어진 것이다. 그의 마음에서부터 이 사랑의 생명수는 흘러들어온다. 그는 외쳤다. "누 가든지 목마른 자는 내게 와서 마셔라."(요 8:37) "무거운 짐에 눌린 사람들 아 너희에게 필요한 쉼은 세상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는 것이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시는 사실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을 알아야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 주어지는 질문이 "나를 사랑하느냐"이다. 예수의 이 마음 을 아는 것이 바로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의 지식은 바로 이 마음의 지 식이다. 이 지식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그 지식을 나누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고침과 화해와 새로운 삶과 소망을 뿌린다. 샘물이 솟아나오는 것과 같다. 동시에 유명하고 잘나고 싶은 욕망은 서서히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우리의 욕망은 우리의 모든 힘을 다해서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할 것이 없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좋아하면서도 결단하기는 두려워한다. 어떤 어두운 그늘이 있어서 마치 이단 종교처럼 마음을 사로 잡아 노예로 만들까봐 두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는 전혀 그늘이 없다. 베드로 속에서 첫번째 사랑을 확인한 뒤에 예수는 그에게 사명을 깨닫게 한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 속에 신자들은 각자가 목회에 포함되었음을 알게 된다. 신앙은 혼자 잘되자는 것이 아니다. 양들은 언제나 떼를 지어서 있다. 신자들이 혼자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누구나 알 것이다. 반드시 신자는 교회에 참여해야 한다.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신자는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가 영적으로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 형 제들과 함께 기도해야 한다. 치료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예수이다. 진리를 말 하는 이도 내가 아니라 예수이다. 또한 주가 되시는 이도 내가 아니라 역시 예수이다. 이것이 공동체로 함께 모일 때 명확히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모 일 때 우리가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너무도 분명해 지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평신도로서 우리가 경험하는 목회는 교회라는 공동체만의 경험이 아니라 형제자매 상호간의 경험이라는 점이다. 우리 각자는 사실상 치료자가 아니다. 우리는 화해자도 아니요 생명을 주는 자도 아니다. 우리는 단지 상하고 약한 죄악에 물든 인간이요 우리가 돌보아야 할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다. 우리는 서로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주고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예수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깨달아지고 더욱 더 분명한 것 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 사랑은 더욱 예수다워진다. 우리 각자는 서로가 연 결되어 이 첫번 사랑의 도구로 세상을 향해서 일어선다. 그리고 이 사랑을 비 추는 동안 거기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없을 것이다. 예수처럼 찟기고 상하고 억울함을 맛보아도 여전히 그 상처나 어둠은 마음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4. 사랑으로 사는가 이제 정리해 보자. 예수께서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단 하나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말하면 "네가 내 마음을 아느냐 그리고 내가 한 모든 일들을 아느냐"고 묻고 계신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우리에게 해 주신 모든 일들을 안다. 그리고 그가 해주신 모든 일들의 효력은 내 안에 주어져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말한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말씀하신다. "내 양을 먹이라." 이제는 우리가 예수의 일을 할 차 례가 되는 것이다. 메마르고 돈만 아는 파렴치한 세상을 향해서 사랑을 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가치가 있으면 하는 사랑 이 아니다. 내 자신이 사랑의 사람으로 바뀌었음을 아는 것이다. 신경질이나 냉담함이 아니다. 어린이 같고 바보 같은 마음, 그러나 지혜자의 마음이다. 자신을 들여다 보라. 예수를 사랑한다는 고백이 있다면 양을 먹일 수 있는 세상의 목자가 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타락과 악을 비난하는 이들 이 많다. 테레사 수녀에게 누가 물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부정의와 악에 대 해서 분노하지 않으십니까" 그녀는 대답했다. "사랑할 수 있는데 왜 분노하는 일에 내 에네지를 허비합니까" 그렇다. 이것이 바로 양을 먹이는 일이다. 예수를 사랑한다면 우리 속에는 뜨거운 용광로가 들어와 있다.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바로 그 용광로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이제자신에게서 이 사랑이 항상 나오도록 훈련해야 한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이 사실을 확인 하고 평생을 사랑의 사도로 살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제 만물을 다른 눈으로 보아야 한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브로드웨이의 스타 매리 마틴이 어느 날 [남태평양]이란 뮤지칼을 공연하 기 위해 무대에 오르려는 참이었다. 한 편지가 그녀에게 전달되었다. 그것은 오스카 헤머스타인이란 노 배우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불러주고 병상에서 숨이 넘어갔다고 한다. "사랑하는 매리, 종은 울리기까지 종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당신이 부르지 않으면 노래가 아닙니다." 계속된 내용은 이것이었다. "사랑은 마음에 품어 두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사랑을 받은 이여, 재능의 사람이여, 그 사랑을 남에게 주어 버 리기까지는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 사랑을 뿜어내기 바랍니다." 그날 밤 공연이 그치자 사람들은 모두다 무대 뒤로 몰려 갔다. 그리고 외쳤다. "매 리, 매리, 우린 그렇게 압도적이고 신들린 연기는 평생 처음입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헤머스타인의 글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밤, 나는 사랑을 내주었을뿐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이들이여, 이제 그 사랑을 뿜어내기 바란다. 그 사랑으로 내 마음이 생명을 얻게 만들고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생기 있게 만들자. 그 사랑이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이다. 다시 한 번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