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사랑 교회사랑 (요21:15-18)
본문
오늘의 성경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일곱 번째로 게네사렛 호수 디베리아 바닷가에서 행해진 베드로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이 대화를 요약해서 정리하면 대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질문(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과
2)대답(주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3)명령(내 양을 먹이라)입니다. 이 대화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매우 심오한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질문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예수님의 질문의 의미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은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예수님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는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27세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파리에서 에펠 탑에 올라가 파리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말할 대상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 자기와 처지가 똑같은 금발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서로 얘기할 수 있는 대상, 기쁠 때 서로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84년 미국의 한 교도소의 심리학 교수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흉악범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이 대상이 없는,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의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입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창 2:18절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민망하고 딱한 사람입니다. 바로 아담입니다. 아담이 왜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쓸쓸하고 외로웠을까요 범죄 이전에 에덴 동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까 하나님도 보시니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탄한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아담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없었던 것입니다(창 2:18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어 그에게 데리고 갈 때 아담이 그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라고 절규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오시어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과 고백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허물을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며 남에게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고 고백해라 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시다.
1) 그럼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번씩이나 반복했을까요 이는 베드로의 지난 날의 실수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난 날 많은 고백을 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 마 17:1-4-변화산의 실패
(2) 마 26:40-43-겟세마네의 기도의 실패
(3) 마 26:69-75-빌라도의 뜰에서의 실패 이상의 실패는 모두 반복되는 실패였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실패를 상기시키기 위해 세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같은 말을 세번씩이나 반복하신 질문 속에는 베드로의 불변의 사랑의 고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불변의 사랑이란 ‘아가파오’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처음 두번은 ‘아가파오’란 말을 썼으나 세 번째는 베드로의 대답처럼 ‘필레오’란 단어를 썼습니다. 헬라어의 사랑에 대해 네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1)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입니다.
(2) 스토르게는 동족간, 혈연적 사랑입니다.
(3) 필레오는 뜨거운 정적 사랑입니다.
(4) 아가페는 조건 없는 절대적 사랑입니다. 주님은 아가페의 질문을 했는데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인간적 사랑은 조건적이요 가변적이요 시간적이요 상대적이요 가시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요, 불변적이요, 영원적 이요, 절대적이요, 불가시적 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엡 6:24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변함이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2. 베드로의 대답 베드로의 대답은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입니다. 또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 이 사랑은 고백적 사랑입니다. 남자와 사랑을 고백할 때 결혼이 성립됩니다. 믿음도 고백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때 세례를 베풀고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순종입니다. 17절에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조건이 변하면 사랑도 변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실패도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여! 믿음은 결코 기분이나 감정에 근거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제 앞으로는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미래를 주께만 맡긴다는 의지와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결단 그리고 주님만을 순종하겠다는 자신의 속마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3. 교회 사랑에 대한 주님의 명령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할 진데 그 사랑으로 주님의 양의 무리(교회)를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댓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은 관대하고 관용합니다. 사랑은 용서합니다(눅 23:34).
1)내 어린 양의 필요를 채우라(공급하라) 이것은 출산과 신생아에 대한 수고를 의미합니다.
2)양의 모든 활동을 돌보며 지도하라. 이것은 지도와 양육과 교육적 수고를 의미합니다.
3)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풍성하게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시 23:3) 오늘의 목회는 혼자서 목회하는 과거의 목회가 아닙니다. 오늘의 목회는 더불어 함께 하는 목회입니다. 영국 교회의 명예 목사요 성경강해의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존 스토트 목사는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모든 교인이 하나처럼 뭉쳐서 목회자처럼 일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가정에 있을 때는 가정 목회자, 직장에 있을 때는 직장 목회자, 교회에 있을 때는 교회 기관 목회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정신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순종할 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전도 공동체, 봉사 공동체, 교육 공동체, 예배 공동체가 됩니다.
1)질문(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과
2)대답(주여!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3)명령(내 양을 먹이라)입니다. 이 대화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매우 심오한 진리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 주님이 베드로에게 질문하신 질문의 의미부터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예수님의 질문의 의미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은 받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나 예수님은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는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27세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파리에서 에펠 탑에 올라가 파리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그 아름다운 광경을 말할 대상을 달라고 기도하던 중 자기와 처지가 똑같은 금발의 여인을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서로 얘기할 수 있는 대상, 기쁠 때 서로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사랑을 받고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984년 미국의 한 교도소의 심리학 교수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흉악범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사랑이 대상이 없는,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사랑의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주지 못한 사람입니다. 누구를 사랑한다고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없는 사람입니다. 창 2:18절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민망하고 딱한 사람입니다. 바로 아담입니다. 아담이 왜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쓸쓸하고 외로웠을까요 범죄 이전에 에덴 동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까 하나님도 보시니 매우 좋은 곳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감탄한 곳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 아담에게는 사랑의 대상이 없었던 것입니다(창 2:18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들어 그에게 데리고 갈 때 아담이 그를 보고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라고 절규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이 베드로에게 가까이 오시어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네!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질문과 고백이 있어야 될 줄 압니다. 허물을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남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며 남에게 사랑 받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남을 사랑하지 못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한다고 고백해라 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시간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시다.
1) 그럼 왜 주님은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세번씩이나 반복했을까요 이는 베드로의 지난 날의 실수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난 날 많은 고백을 했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 마 17:1-4-변화산의 실패
(2) 마 26:40-43-겟세마네의 기도의 실패
(3) 마 26:69-75-빌라도의 뜰에서의 실패 이상의 실패는 모두 반복되는 실패였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은 실패를 상기시키기 위해 세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2) 예수님께서 같은 말을 세번씩이나 반복하신 질문 속에는 베드로의 불변의 사랑의 고백을 듣기 위함이었습니다. 불변의 사랑이란 ‘아가파오’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처음 두번은 ‘아가파오’란 말을 썼으나 세 번째는 베드로의 대답처럼 ‘필레오’란 단어를 썼습니다. 헬라어의 사랑에 대해 네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1) 에로스는 이성간의 사랑입니다.
(2) 스토르게는 동족간, 혈연적 사랑입니다.
(3) 필레오는 뜨거운 정적 사랑입니다.
(4) 아가페는 조건 없는 절대적 사랑입니다. 주님은 아가페의 질문을 했는데 베드로는 ‘필레오’로 대답했습니다. 인간적 사랑은 조건적이요 가변적이요 시간적이요 상대적이요 가시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요, 불변적이요, 영원적 이요, 절대적이요, 불가시적 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엡 6:24에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변함이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2. 베드로의 대답 베드로의 대답은 “주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입니다. 또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니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1) 이 사랑은 고백적 사랑입니다. 남자와 사랑을 고백할 때 결혼이 성립됩니다. 믿음도 고백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때 세례를 베풀고 성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사랑은 순종입니다. 17절에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사랑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조건이 변하면 사랑도 변하고 맙니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실패도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성도들이여! 믿음은 결코 기분이나 감정에 근거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제 앞으로는 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께 맡기고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주께서 나의 모든 것을 아시나이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미래를 주께만 맡긴다는 의지와 주님만을 따르겠다는 결단 그리고 주님만을 순종하겠다는 자신의 속마음이 다 들어 있습니다.
3. 교회 사랑에 대한 주님의 명령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께서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할 진데 그 사랑으로 주님의 양의 무리(교회)를 먹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댓가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고통이 있습니다. 사랑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사랑은 관대하고 관용합니다. 사랑은 용서합니다(눅 23:34).
1)내 어린 양의 필요를 채우라(공급하라) 이것은 출산과 신생아에 대한 수고를 의미합니다.
2)양의 모든 활동을 돌보며 지도하라. 이것은 지도와 양육과 교육적 수고를 의미합니다.
3)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풍성하게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시 23:3) 오늘의 목회는 혼자서 목회하는 과거의 목회가 아닙니다. 오늘의 목회는 더불어 함께 하는 목회입니다. 영국 교회의 명예 목사요 성경강해의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존 스토트 목사는 지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모든 교인이 하나처럼 뭉쳐서 목회자처럼 일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가정에 있을 때는 가정 목회자, 직장에 있을 때는 직장 목회자, 교회에 있을 때는 교회 기관 목회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은 정신을 바로 이해하고 바로 순종할 때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전도 공동체, 봉사 공동체, 교육 공동체, 예배 공동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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