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찾아오신 예수님 (요21:1-14)
본문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3년 동안 따라다니면서 본 것도 많았고 배운 것도 많았고 얻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을 가장 결정적으로 흥분시킨 것은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꿈 이었습니다. 갈릴리 출신인 어부들로서는 자기들의 스승인 예수가 유대 나라의 새 왕이 된다는 꿈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찬란하던 꿈이 어느 금요일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렸기 때문 이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제자들은 할 일도 없어졌고 두렵기도 했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 요한복음 21:3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3과 21:3사이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날 아침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찾아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도 보았고 머리를 쌌던 수건이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20:19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모여있던 곳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손과 옆구리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21:3을 보면 베드로는 고기잡으러 간다면서 갈릴리 바다로 나갔고 "우리도 함께 가겠다"면서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곳도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는 예루살렘으로부터 96km지점에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는 해발 4000피트나 되는 산들이 솟아 있습니다. 96km라면 240리나 되는 먼 길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만났으면서 240리 길이나 되는 갈릴리까지 갔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제자까지 데리고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예루살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이 지긋지긋 했던 것입니다. 툭 터진 바다. 어영차 뱃노래를 부르면서 노를 저으며 시원하게 그물을 던지던 바다. 드높이 솟은 산들과 파도 출렁이는 바다. 거기가 베드로의 고향입니다. 거기서 자랐고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나서 예루살렘이라는 곳을 드나들게 됐습니다만 베드로는 예루살렘이 싫었습니다. 음모가 있고 술수가 있고 파벌이 있고 싸움이 있고 부패가 있고 타락이 있고 범죄가 있는 예루살렘이 싫었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잔인한 도시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도시를 싫어한 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로 예수님의 사역은 갈릴리가 근거지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몇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그리고는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도시란 언제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도시는 다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서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도시,영원히 살 곳은 새 예루살렘뿐입니다. 그곳 만이 인간이 만든 도시와는 다른 영원한 안정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의 경우는 환멸의 도시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240리 길이나 되는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2) 부활의 확고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고향 갈릴리 바다에 나타난 것은 일종의 도피였습니다. 맨 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갈릴리 바다에서였습니다.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가복음 5:11을 보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배,그물. 부모)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 예수를 따라다니며 사람을 낚는 새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 3년 전에 버렸던 배와 그물을 다시 취하고 고기잡이에 나섰다는 것은 바로 베드로의 "타락"이었고"불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외도였습니다. 그뿐입니까 베드로가 흔들리니까 그를 의지하고 따르던 다른 제자들까지 흔들리게 되었고 그들도 덩달아 "형님이 가시면 우리도 가겠습니다"라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의 신앙이 흔들리면 가정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부모의 신앙이 흔들리면 자녀들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굳게 서야될 사람의 신앙이 흔들리면 따르고 좇는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의 건물을 예로 들어봅시다. 지붕, 천장, 벽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기초가 내려 앉으면 그것들은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말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7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라(기초를 뜻합니다.) 그 위에 세우라 (건축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라"고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하십시다. 흔들리지 마십시다. 환경, 여건, 유혹, 어떤 경우에서라도 흔들리지 마십시다.
2.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3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3년 정도 손을 떼고 쉬었다고 해서 밤새도록 한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고기 잡으러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잡지 못했습니다. 3년 전 제자로 부름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때도 이상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잡히질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고뇌가 있지 않습니까 고기가 안잡힐 것이라고 믿고 바다에 그물을 던질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미국의 어떤 백만장자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돈으로 무엇이나 다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건강, 행복, 가정이었다." 그에겐 주치의가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조깅도 했습니다. 골프도 했고 별장에서 후식도 취했습니다. 좋은 약이 있다면 대만이나 홍콩에까지 가서 구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절대적인 것도 영원하거나 완전한 것도 없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런데 고기가 잡히질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이문 저문, 성공의 문, 출세의 문, 돈버는 문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열리는 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환멸의 도시를 떠난 베드로, 갈릴리 옛고향에 찾아와 낯익은 바다에 그들을 던진 베드로, 고기라도 잡으며 소일하고 먹고 살겠다고 첫번째 던졌던 사업에 실패한 베드로,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3. 그 때 찾아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밤이 가고 날이 새려는 새벽이었습니다. 헛탕치고 돌아와 그물을 씻어서 다시 한 번 더 나가보리라고 생각하고 바닷가로 나오고 있을 때. 바닷가에 우뚝 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없습니다.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예루살렘에서 나타나 내 손과 옆구리를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다시 살았다" 고 말씀하시던 바로 그 주님이셨습니다. 240리길 뒤따라서 그 주님께서 왜 갈릴리까지 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셨을까요 아니면 엣적에 거니시던 제 2의 고향땅이어서 모처럼 들르셨던 길에 제자들의 처량한 모습이 눈에 띄어 도와주러 오셨을까요
4.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뜻이 있습니다.
(1)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무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팽개쳐 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요한복음 14: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파도 소리만 출렁 출렁 들려오는 갈릴리 바다에 고아들처럼 버려둘 수가 없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외로운 제자들,절망으로 예수를 떠난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실 수가 없어서 찾아오셨습니다. 고독한 분이 있습니까 망망한 바다에서 흔들리는 배 한 척처럼 아슬 아슬한 삶을 사는 분이 있습니까 안심하십시오, 주께서 찾아오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독과 절망과 좌절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나를 사랑하셔서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2)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성령님 받아 거기서부터 복음 운동 즉 사람 낚는 일을 시작해야 됩니다. 예루살렘이 죄가 많고 타락했고 환멸의 도시이고 썩었고 냄새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도시이기 때문이며 바로 거기가 어장이고 복음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낚아야될 사람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겠다고 그물을 던 지고 있으니 데리러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방황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내가 할일은 안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가 전도 하고 있을 때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로마를 잠시 떠나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교인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로마 시가지를 벗어나 교외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다시 찾아오신 분이 있었는데 주님이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자신의 망명길을 돌이켜 로마로 들어가 순교 하엿였습니다. 자기 사명을 회피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룻밤의 헛수고가 끝났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왜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을 까요 오른편은 언제나 올바른 방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믿고 순종한다면 헛수고가 변하여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 방법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외로운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 이시간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주님을 영접합시다. 그리고 풍요와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 찬란하던 꿈이 어느 금요일 산산조각으로 깨어져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버렸기 때문 이었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제자들은 할 일도 없어졌고 두렵기도 했고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과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1. 요한복음 21:3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3과 21:3사이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날 아침에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에 찾아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습니다. 세마포가 놓여 있는 것도 보았고 머리를 쌌던 수건이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20:19이하를 보면 제자들이 모여있던 곳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손과 옆구리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21:3을 보면 베드로는 고기잡으러 간다면서 갈릴리 바다로 나갔고 "우리도 함께 가겠다"면서 다른 제자들도 따라 나섰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빈 무덤이 있는 곳은 예루살렘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곳도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바다는 예루살렘으로부터 96km지점에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 북서쪽에는 해발 4000피트나 되는 산들이 솟아 있습니다. 96km라면 240리나 되는 먼 길입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만났으면서 240리 길이나 되는 갈릴리까지 갔겠습니까 그것도 다른 제자까지 데리고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예루살렘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이 지긋지긋 했던 것입니다. 툭 터진 바다. 어영차 뱃노래를 부르면서 노를 저으며 시원하게 그물을 던지던 바다. 드높이 솟은 산들과 파도 출렁이는 바다. 거기가 베드로의 고향입니다. 거기서 자랐고 거기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고 나서 예루살렘이라는 곳을 드나들게 됐습니다만 베드로는 예루살렘이 싫었습니다. 음모가 있고 술수가 있고 파벌이 있고 싸움이 있고 부패가 있고 타락이 있고 범죄가 있는 예루살렘이 싫었습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잔인한 도시가 싫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도시를 싫어한 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주로 예수님의 사역은 갈릴리가 근거지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몇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그리고는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도시란 언제 어느 곳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들이 만든 도시는 다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뉴욕, 런던, 파리, 도쿄, 서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도시,영원히 살 곳은 새 예루살렘뿐입니다. 그곳 만이 인간이 만든 도시와는 다른 영원한 안정이 있고 평화가 있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의 경우는 환멸의 도시 예루살렘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240리 길이나 되는 갈릴리 고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2) 부활의 확고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고향 갈릴리 바다에 나타난 것은 일종의 도피였습니다. 맨 처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도 갈릴리 바다에서였습니다. 물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고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누가복음 5:11을 보면 "모든 것을 버려두고(배,그물. 부모)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3년간 예수를 따라다니며 사람을 낚는 새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 3년 전에 버렸던 배와 그물을 다시 취하고 고기잡이에 나섰다는 것은 바로 베드로의 "타락"이었고"불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외도였습니다. 그뿐입니까 베드로가 흔들리니까 그를 의지하고 따르던 다른 제자들까지 흔들리게 되었고 그들도 덩달아 "형님이 가시면 우리도 가겠습니다"라는 입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의 신앙이 흔들리면 가정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부모의 신앙이 흔들리면 자녀들의 신앙이 흔들립니다. 굳게 서야될 사람의 신앙이 흔들리면 따르고 좇는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의 건물을 예로 들어봅시다. 지붕, 천장, 벽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것들입니다. 기초가 내려 앉으면 그것들은 모조리 무너져 내리고 말게 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2:7에서 말씀하십니다.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라(기초를 뜻합니다.) 그 위에 세우라 (건축입니다) 그리고 믿음에 굳게 서라"고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하십시다. 흔들리지 마십시다. 환경, 여건, 유혹, 어떤 경우에서라도 흔들리지 마십시다.
2.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3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3년 정도 손을 떼고 쉬었다고 해서 밤새도록 한마리도 고기를 잡지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이 있으니까 고기 잡으러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잡지 못했습니다. 3년 전 제자로 부름받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 때도 이상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잡히질 않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인간의 고뇌가 있지 않습니까 고기가 안잡힐 것이라고 믿고 바다에 그물을 던질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미국의 어떤 백만장자는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돈으로 무엇이나 다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건강, 행복, 가정이었다." 그에겐 주치의가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조깅도 했습니다. 골프도 했고 별장에서 후식도 취했습니다. 좋은 약이 있다면 대만이나 홍콩에까지 가서 구해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절대적인 것도 영원하거나 완전한 것도 없는 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 그물을 던집니다.
그런데 고기가 잡히질 않습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이문 저문, 성공의 문, 출세의 문, 돈버는 문을 열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열리는 문이 없습니다. 그래서 낙심하고 절망하고 심지어 삶을 포기하기까지 하게 됩니다. 환멸의 도시를 떠난 베드로, 갈릴리 옛고향에 찾아와 낯익은 바다에 그들을 던진 베드로, 고기라도 잡으며 소일하고 먹고 살겠다고 첫번째 던졌던 사업에 실패한 베드로, 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3. 그 때 찾아오신 분이 있었습니다. 실패와 절망의 밤이 가고 날이 새려는 새벽이었습니다. 헛탕치고 돌아와 그물을 씻어서 다시 한 번 더 나가보리라고 생각하고 바닷가로 나오고 있을 때. 바닷가에 우뚝 서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없습니다.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예루살렘에서 나타나 내 손과 옆구리를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다시 살았다" 고 말씀하시던 바로 그 주님이셨습니다. 240리길 뒤따라서 그 주님께서 왜 갈릴리까지 오셨을까요 그리고 왜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셨을까요 아니면 엣적에 거니시던 제 2의 고향땅이어서 모처럼 들르셨던 길에 제자들의 처량한 모습이 눈에 띄어 도와주러 오셨을까요
4.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뜻이 있습니다.
(1)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갈릴리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무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무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냥 내팽개쳐 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미 요한복음 14: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고 이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파도 소리만 출렁 출렁 들려오는 갈릴리 바다에 고아들처럼 버려둘 수가 없어서 찾아오신 것입니다. 외로운 제자들,절망으로 예수를 떠난 제자들을 그냥 버려두실 수가 없어서 찾아오셨습니다. 고독한 분이 있습니까 망망한 바다에서 흔들리는 배 한 척처럼 아슬 아슬한 삶을 사는 분이 있습니까 안심하십시오, 주께서 찾아오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독과 절망과 좌절과 싸워서 이기는 길은 나를 사랑하셔서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2)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기도하고 성령님 받아 거기서부터 복음 운동 즉 사람 낚는 일을 시작해야 됩니다. 예루살렘이 죄가 많고 타락했고 환멸의 도시이고 썩었고 냄새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던 도시이기 때문이며 바로 거기가 어장이고 복음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낚아야될 사람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겠다고 그물을 던 지고 있으니 데리러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서 방황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내가 할일은 안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찾아오십니다. 베드로가 로마에 들어가 전도 하고 있을 때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로마를 잠시 떠나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교인들의 권유도 있고 해서 로마 시가지를 벗어나 교외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다시 찾아오신 분이 있었는데 주님이었습니다. 거기서 베드로는 자신의 망명길을 돌이켜 로마로 들어가 순교 하엿였습니다. 자기 사명을 회피하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늘도 찾아오십니다.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룻밤의 헛수고가 끝났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물을 들어 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잡혔습니다. 왜 오른 편에 던지라고 하셨을 까요 오른편은 언제나 올바른 방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믿고 순종한다면 헛수고가 변하여 엄청난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내 방법을 포기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방법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외로운 갈릴리 해변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오늘 이시간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의 눈을 뜨고 주님을 영접합시다. 그리고 풍요와 축복을 받으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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