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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지금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요21:1-14)

본문

주님은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인류문화의 발상은 강(물)을 통해서 이루어 졌습니다. 그래서 천지창조시 건설한 에덴동산에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네개의 강이 있었습니다(창세기 2:10-14). 고대나 현대문명이 다 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 문화는 유브라데강과 디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애굽의 문화는 나일강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이스라엘의 문화는 요단강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요단강의 수원은 갈릴리에 있는 디베랴 호수입니다. 주님은 이 호수를 중심으로 구원사역을 시작했으며, 이곳에서 사역을 마감했습니다. 주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이며, 이곳 주변에서 많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사명을 저버린 베드로의 모습을 봅시다. 본문 3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3)라고 했습니다. 왜 그밤에 고기를 잡지 못했는가 그는 물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낚는 어부입니다(마태복음 4:19).
그런데 그에게 무서운 병이 들었습니다. 그 병은 추한 풍토병도 아니고, 악성 종양이나 에이즈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령의 병이었습니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망했다”는 자포 자기한 낙심의 병입니다. 이 병은 어떠한 약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입니다. 주님은 이 병을 치료하려 그를 찾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중에 쓰임받은 종들을 다 실패의 쓴잔을 마셨던 삶의 흔적과 자국들을 가진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베드로같은 자들은 다 실패한 경험들이 있습니다. 인생에게는 누구나 디베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디베랴는 실패의 쓴잔을 마시고 서성거리는 자들의 삶의 현주소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베드로는 본전 밑진 인생입니다. 3년전만 해도 여기서 한몫을 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전과 달랐습니다. 자신의 어장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물은 다 상했고, 쇠붙이는 녹설었고, 배는 다 썪었습니다. 그나마 기술도 이전 같지를 않았습니다. 주님이 이곳을 찾았을 때 이미 이곳에 일곱 제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 패가 망신한 인간 패인들로 보였습니다. 밤새도록 자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수고했으나 얻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전에 많이 들었던 음성입니다. 그분은 다름 아닌 부활하신 주님이었습니다.
첫째: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읽을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5) 주님은 가까이 와서 “애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1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고기의 의미가 무엇일가 물론 갈릴리 바다에서 잡은 고기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음성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질 때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산업의 현장에 있는 자들에게 고기는 자본이요, 돈일 것입니다. 정치판에 들어선 자들에게 고기는 곧 표요, 권력일 것입니다. 학문하는 자들에게 고기는 학위요, 지식일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의 그물과 배에는 한 마리의 고기도 없었습니다.
2 그러면 왜 고기를 잡지 못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고기 잡을 자들이 아닙니다. 고기를 잡아서 안될 사람이 고기 잡으려 간 것이 문제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부름받았을 때 이 일은 청산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마가복음 1:17). 다시말해서 하나님을 등지고, 언약을 불신하고, 사명을 저버린 자들에게 하나님이 절대로 고기를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요나의 사건은 기억해야 합니다. 요나의 사건은 사명자들에게 좋은 거울입니다(요나 1:4).
3 당신도 지금 디베랴에서 서성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디베랴에 머무는 것은 아까운 세월을 허송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5:16). 하루빨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능력 받기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사도행전 1:4).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하루에는 삼천명, 오천명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둘째: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읽을말씀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6) 주님은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1 이 말씀은 당신의 삶의 방향을 오른쪽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사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진 자들이 왼쪽에만 던졌겠는가 오른쪽 왼쪽 동서남북 다 던졌을 것입니다. 자신의 이전의 경험과 기술을 총동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주님은 찾아가서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말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오는 오른편에 의미는 단순한 방향과 지역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는 말씀과 같이 이제부터는 너의 이성적인 지각이나 판단에 사로잡혀 인생을 살 것이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의 장중에 붙들려 의롭게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 이 말씀은 주님은 고기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지난밤까지 그곳에 고기가 없었으나 지금 그물을 내려보라 내가 그곳에 고기를 불러 모으리라는 것입니다. 바다와 고기를 창조하신 분도 주님이시고, 고기를 모으고, 흩어지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당신의 그물에 고기를 몰아 넣을 분도 주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3 이 말씀은 역사는 순종할 때에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얻으리라”는 말씀은 순종할 때 고기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을 통하여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고,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앞길에 칠흙같이 어두운 먹구름이 가로놓여 있어도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가면 주님이 역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셋째: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 하신대”(10) 고기를 잡은 제자들은 고기에 감격해서 정신을 잃고 있습니다. 그때 주님은 “지금 잡은 생선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1 지금 잡은 생선을 주님께 가져갑시다. 기독교는 지금 이 시간의 종교입니다. 지나간 어제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다가올 미래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오늘 현재 지금 내게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조금 전에 일어난 과거의 잘못이라도 묻지를 않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고 했습니다. 그는 지나간 과거를 배설물처럼 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앞만 보고 달려간 것입니다(빌립보서 3:7-14).
2 잡은 고기에 눈이 어두워지지 말고, 고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당신의 어리석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을 주시면 받은 복에 눈이 가리워져서 복을 주신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물에 가득찬 고기를 세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153마리를 세느라고 많은 시간이 흘렀을 것이니다. 그때 주님은 잡은 생선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당신도 주님이 생선을 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3 당신은 지금 고기를 잡고 있는가 사명자는 바로 지금 사명의 현장에서 고기를 잡아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을 남기고”(마태복음 25:16)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받고 사명을 깨닫았으면 바로 가야 하니다. 서성거리면서 세월을 허송하지 맙시다. 주님이 당신에게 주신 그것이면 족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나 다윗의 물멧돌이나 바울의 붓이면 족합니다. 당신에게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바로 지금 영원히 남을 복음장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넷째:와서 조반을 먹으라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12) 주님은 그들과 마주 앉아서 잡은 생선을 구워서 조반을 먹었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1 이 말씀은 긍휼이 풍성하신 자비의 음성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하고 지친 그들에게 고기를 구워서 주린 배를 채워 주신 것입니다. 디베랴의 당신은 목자의 음성이 싫어서 제 갈길로 갔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가시와 엉컹퀴에 걸려서 죽음 직전에 놓인 양입니다. 그러나 목자되신 주님은 사망의 음침한 계곡인 갈보리까지 달려가서 당신을 건져 주신 것입니다누가복음 15:3-7). 당신은 주인의 장중을 벗어나서 어둠컴컴한 죄악의 세상에서 물질의 종이되어 녹설어 가는 무가치한 은전이었습니다. 어두운 마루바닥에서 녹설어 가고 있을 때 주님은 당신을 찾기 위해서 불을 밝히고 찾아오신 것이니다(누가복음 15:8-10). 당신이 아비의 집을 박차고 나갔을 때도 아비는 언제나 문전에서 당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거지가 되어 돼지인생이 되어 돌아오는 당신을 행해 주님은 달려와서 당신을 얼싸 안고 집으로 맞이했습니다(누가복음 15:11-32). 이것이 주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2 이 말씀은 주님은 친히 생명의 떡이라 말입니다. 주님은 오실 때에도 구유에 누이신 천한 자들의 밥으로 오셨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마태복음 2:7)고 했습니다. 구유는 짐승이 먹는 먹이통입니다. 짐승같이 천한 자라도 주님을 먹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천하고 못난 나에게도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6:35)고 했습니다. 당시 주님을 따라 다녔던 무리들을 주님은 항상 배불리 먹여 주었습니다. 주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서 먹여 주신 것입니다. 최후에는 자신의 몸까지 던졌습니다. “저희가 떡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태복음 26:26)고 했습니다.
3 주님은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18)고 했습니다. 식탁에는 풍성한 대화가 있습니다. 먹고 힘을 얻은 그들에게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 16, 17)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디베랴는 실패한 당신의 삶의 현주소입니다. 이곳에 주님이 당신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요,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하나님이 직접 찾아 나선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 곁에 오셔서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고 하시고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한 그들의 그물에 고기가 충만했고 잡은 고기로 조반을 먹고 힘을 얻어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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