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요20:1-18)
본문
이 세상에서 아무리 명성을 날리고 기세가 드높았던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인간에게는 예외없이 `묘지 라는 것이 잇습니다.어떤 사람 은 호화로운 묘지에 묻히고,또 어떤 사람은 초라한 무덤에 묻히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은 한평도 되지 않는 땅속에 묻 힌다는 사실에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영국이 자랑하는 셰익스 피어도 그렇고 나폴레옹을 물리친 웰링턴도 묘지가 있으며 그 나 폴레옹도 마찬가지요,심지어는 종교의 창시자요 성인이라 일컫는 석가모니와 공자에게도 예외없이 무덤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한분,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겐 묘지가 없는 것입니다.죽음의 권세를 물리치고,무덤을 깨치시고,살아나셔서 ,`빈무덤 이 됐기 때 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성경말씀이 이러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안식후 첫날 이 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 간 것을 보고서.
그런데 성경은 최초로 빈 무덤을 목격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보도해 줍니다. 그리고 그 빈 무덤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최초로 목격하고 대 화들 나눴던 사람도 바로 그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말씀합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보도하면서 현장 목격자 로서 이 막달라 마리아를 중요한 인물로 거의 빼놓지 않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 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19:2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 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 27:55-56).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 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와또 살로메가 있 었으니 (막15:40). 보은의 여인. 막달라 마리아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그 사형장 골고다 십자가 밑에 남아 예수님의 임종을지켜보았던 네 여인 중에 한사람이요, 부활의 그 새벽에 예수님을 가장 처 음 만났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막달라 마리 아는 이땅에서의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최후의 고통의 순간에 동 참했으며. 가장 영광스런 부활의 감격을 최초로 누리는 영광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어떻게 해서 이같은 영광올 누리게 된 것일까요 우리 역시 우리 생애 가운데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영광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먼저 막달라 마리아의 생애를 추적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 올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부활한 예수님을 최초로 만 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누가는 이 여인의 과거를 간략하게 소개해 줍니다.누가복음 8 장 2-3 절 말씀입니다. 또한 악귀를 쫑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회를 섬기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었던 여인.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심으로 나음을 입었던 여인. 그래서 자기 소유로 평생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 무엇보다도 막 달라 마리아는 보은의 여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어찌 하여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만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 주는 귀중한 열 쇠. 그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를 덧입었 을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줄 아는 여인이었 다는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깨 우쳐 줍니다.생각을 해봅시다.그 당신 예수님한테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 한두명이었습니까막달라 마리아처럼 불치병을 고침받은 사람이 어디 또한사람이었느냐는 말씀입니다.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가 고침받았고,베데스다 연못가에선 3 8 년된 병 자가 나음을 입었고 혈루병을 앓던 여자와 문둥병자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회당장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과 나사로는 예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또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얻어 먹은 사람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5,000 명을 먹여 주셨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는 또 4,000명을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먹여 주 시고,고쳐 주시고,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덧입 은 사람들이 부지기수,헤아릴 수 없이 많고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지가에 죽게 되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도망쳤 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에 남아 있었 습니다.모든 사람이 떠날지라도 나는 예수님 곁에 남겠노라, 죽 으면 죽으리라, 일편단심 은혜를 감사함으로 갚을 줄 아는 한 여인의 애틋하고 옹골진 보은의 절개가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 속에 넘쳤던 것입니다. 은헤를 아는 자의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일곱 귀신 보다도 더 악한사단의 노예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죄인들이었 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인하여 구원받고새생명을 얻게 된 사람들입니다.하거늘.우리는 막 달라 마리아처럼 보은의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은 혜를 갚아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며,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은 아닌지요. 부활절을 맞아 다시금 막달 라 마리아와 같은 보은의 삶을 살기를 새롭게 다짐해야될 줄압니다. 고래로 동방예의지국 이라 일컬어져 오는 우리 민족은 옛부터 인간관계에 있어 보은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쳐왔습니다. 그래서 친우 관계는 물론 부자. 사제 군신 사이에 있어 은혜를 갚는 삶이 강조되어 왔고,그러기에 우리 어르신네들은 가장 못된 인간을 가리켜 받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이러한 미풍양속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인줄 압니다. 우리가 지금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만 마치 세계라는 거대한 정거장의 대합실 같은 런던인지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다가다 이곳을 들르게 됩니다. 요즘 같은 부활 절 휴가철엔 문자 그대로 관광객들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것 같습니다. 히드로공항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옵니다. 어떻게 전화번호는 알게 됐는지.그러면 공항영접으부터 시작해서 숙식제공에다 관광안내 까지,때로는 선물까지 들려서 다시 히드 로공항에서 배웅해 고국으로 보내드리게 됩니다. 더러는 고고맙 다는 편지들 보내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일단 비행 기 타고 떠나면 함흥차사가 됩니다. 엽서 한장 보내오질 않습니다. 대개는 지위가 높고 세도들 부리는 분들 가운데 그런분들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고 큰 교회를 맡았다고 금박명함 내놓는 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 다는 착각이겠지요. 인격이 의심스럽고 저회 아이들 보기에 부 끄럽습니다. 한국에서 훌륭하시다는 분이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 고,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며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적잖습니다. 그럴적이면 자신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덧입은 은혜를 기억 하며 보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오늘의 내가 있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왔던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한없이 크고도 높고도 넓건만 얼마 나 많이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자행자지 하며 살아왔더란 말인가. 그러기에 이런 찬송을 즐겨 부르게 됩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 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찬송가 185장). 다시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본문 11절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무 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 보 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홀로 예수님 묻히신 묘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 니까 무덤이 열렸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렸 습니다. 세상에 이런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막달라 마 리아는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기가 막흰 장면입니다.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공동묘지,거기 소복단장을 한 여인이 외로이 혼자서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이 있습니까 말 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 과 열정 때문에 어떡 하든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거기 때로는 예측할수 없었던 실망과 좌절과 회의와 번 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픔을 맛보고 겪어야만 될 때가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맙 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애통하며 울고 있는 우리를 찾아주시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것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처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위로의 말씀이요. 상처를 싸매주는 말씀이요. 눈물을 씻겨주시는 말씀 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그것은 예수님 말씀의 깊 으신 뜻을 다 헤아린 것이 못됩니다. 이말씀 은 동시에 막달라 마리아의 불신앙에 대해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책망의 말씀 이요. 확고부동한 부활신앙을 촉구하시는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야 되겠습니다. 이 예수님 말씀 속에 두 가지의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인 줄도 모르고 오히려 동산지기인줄로만 착각하고 엉뚱하게 얘기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대답이 바로 15절 하반절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여 당신이(주님의 시신을) 옮겨 갔거든 어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가져가리이다. 예수님 시신이 실종돼서 울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건 언뜻 듣기엔 그럴싸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 해보면 이건 엄청난 희극이 아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 습니까 예수님은 생전에 여러 차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실것 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신이 없어진 것을 목격하게 됐으면 그 즉시로 아하,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 신 게로구나! 아멘, 할렐루야! 마땅히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와야 될 대목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신앙에 이르지 못 한 막달라 마리아는 실종된 시체 때문에 울고 있는 것입니다. 웃어야 될 대목인데 오히려 울고 있다면 이게 희극이 아니고 무 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자화상 아.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자화 상은 야니겠는지요. 없어진 예수님 시신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울 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 역시우리가 열심히 추구하던 허 상이 사라질 때 슬픔에 잠기게 되고 울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최초로 빈 무덤을 목격한 사람이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보도해 줍니다. 그리고 그 빈 무덤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최초로 목격하고 대 화들 나눴던 사람도 바로 그 막달라 마리아였다고 말씀합니다.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사건을 보도하면서 현장 목격자 로서 이 막달라 마리아를 중요한 인물로 거의 빼놓지 않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 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요19:2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 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 27:55-56).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 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와또 살로메가 있 었으니 (막15:40). 보은의 여인. 막달라 마리아 그러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실 때. 그 사형장 골고다 십자가 밑에 남아 예수님의 임종을지켜보았던 네 여인 중에 한사람이요, 부활의 그 새벽에 예수님을 가장 처 음 만났던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막달라 마리 아는 이땅에서의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최후의 고통의 순간에 동 참했으며. 가장 영광스런 부활의 감격을 최초로 누리는 영광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어떻게 해서 이같은 영광올 누리게 된 것일까요 우리 역시 우리 생애 가운데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영광의 사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해서 그와 같은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먼저 막달라 마리아의 생애를 추적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 올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다가 마침내 부활한 예수님을 최초로 만 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막달라 마리아. 그녀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던가 누가는 이 여인의 과거를 간략하게 소개해 줍니다.누가복음 8 장 2-3 절 말씀입니다. 또한 악귀를 쫑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회를 섬기더라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었던 여인. 예수님께서 치유해 주심으로 나음을 입었던 여인. 그래서 자기 소유로 평생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 무엇보다도 막 달라 마리아는 보은의 여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어찌 하여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만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 주는 귀중한 열 쇠. 그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으로부터 넘치는 은혜를 덧입었 을 뿐만 아니라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보답할줄 아는 여인이었 다는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성경은 우리에게 귀한 것을 깨 우쳐 줍니다.생각을 해봅시다.그 당신 예수님한테 은혜를 입은 사람이 어디 한두명이었습니까막달라 마리아처럼 불치병을 고침받은 사람이 어디 또한사람이었느냐는 말씀입니다. 나면서 부터 소경된 자가 고침받았고,베데스다 연못가에선 3 8 년된 병 자가 나음을 입었고 혈루병을 앓던 여자와 문둥병자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심지어 죽었던 회당장의 딸과, 나인성 과부의 아들 과 나사로는 예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또 예수님으로부터 떡을 얻어 먹은 사람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수님은 벳세다 광야에서 5,000 명을 먹여 주셨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는 또 4,000명을 먹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먹여 주 시고,고쳐 주시고,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은혜를 덧입 은 사람들이 부지기수,헤아릴 수 없이 많고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지가에 죽게 되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도망쳤 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예수님 곁에 남아 있었 습니다.모든 사람이 떠날지라도 나는 예수님 곁에 남겠노라, 죽 으면 죽으리라, 일편단심 은혜를 감사함으로 갚을 줄 아는 한 여인의 애틋하고 옹골진 보은의 절개가 막달라 마리아의 영혼 속에 넘쳤던 것입니다. 은헤를 아는 자의 마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은혜를 덧입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일곱 귀신 보다도 더 악한사단의 노예가 되어 죽을 수밖에 없었던 불쌍한 죄인들이었 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인하여 구원받고새생명을 얻게 된 사람들입니다.하거늘.우리는 막 달라 마리아처럼 보은의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말씀입니다. 은 혜를 갚아드리기는 커녕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며,주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은 아닌지요. 부활절을 맞아 다시금 막달 라 마리아와 같은 보은의 삶을 살기를 새롭게 다짐해야될 줄압니다. 고래로 동방예의지국 이라 일컬어져 오는 우리 민족은 옛부터 인간관계에 있어 보은을 가장 높은 덕목으로 쳐왔습니다. 그래서 친우 관계는 물론 부자. 사제 군신 사이에 있어 은혜를 갚는 삶이 강조되어 왔고,그러기에 우리 어르신네들은 가장 못된 인간을 가리켜 받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놈이라 했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이러한 미풍양속은 변할 수가 없는 것인줄 압니다. 우리가 지금 런던에 살고 있습니다만 마치 세계라는 거대한 정거장의 대합실 같은 런던인지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오다가다 이곳을 들르게 됩니다. 요즘 같은 부활 절 휴가철엔 문자 그대로 관광객들이 홍수처럼 밀려드는 것 같습니다. 히드로공항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옵니다. 어떻게 전화번호는 알게 됐는지.그러면 공항영접으부터 시작해서 숙식제공에다 관광안내 까지,때로는 선물까지 들려서 다시 히드 로공항에서 배웅해 고국으로 보내드리게 됩니다. 더러는 고고맙 다는 편지들 보내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일단 비행 기 타고 떠나면 함흥차사가 됩니다. 엽서 한장 보내오질 않습니다. 대개는 지위가 높고 세도들 부리는 분들 가운데 그런분들이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고 큰 교회를 맡았다고 금박명함 내놓는 분들 가운데 적지 않은 것을 보게 됩니다.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 다는 착각이겠지요. 인격이 의심스럽고 저회 아이들 보기에 부 끄럽습니다. 한국에서 훌륭하시다는 분이 어쩜 그럴 수가 있느냐 고,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며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가 적잖습니다. 그럴적이면 자신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나는 과연 덧입은 은혜를 기억 하며 보은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오늘의 내가 있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으면서 살아왔던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한없이 크고도 높고도 넓건만 얼마 나 많이 그 은혜를 망각하고 자행자지 하며 살아왔더란 말인가. 그러기에 이런 찬송을 즐겨 부르게 됩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 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찬송가 185장). 다시 성경을 보시겠습니다. 본문 11절말씀입니다. 마리아는 무 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 보 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는 홀로 예수님 묻히신 묘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 니까 무덤이 열렸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온데간데 없어져버렸 습니다. 세상에 이런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막달라 마 리아는 울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기가 막흰 장면입니다. 채 어둠이 걷히지 않은 공동묘지,거기 소복단장을 한 여인이 외로이 혼자서 하염없이 울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슴이 메어지는 아픔이 있습니까 말 로 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까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특별히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 과 열정 때문에 어떡 하든지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거기 때로는 예측할수 없었던 실망과 좌절과 회의와 번 민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아픔을 맛보고 겪어야만 될 때가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맙 시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애통하며 울고 있는 우리를 찾아주시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것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처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위로의 말씀이요. 상처를 싸매주는 말씀이요. 눈물을 씻겨주시는 말씀 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만 생각하면 그것은 예수님 말씀의 깊 으신 뜻을 다 헤아린 것이 못됩니다. 이말씀 은 동시에 막달라 마리아의 불신앙에 대해 예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책망의 말씀 이요. 확고부동한 부활신앙을 촉구하시는 권면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겨야 되겠습니다. 이 예수님 말씀 속에 두 가지의 질문이 들어있습니다.
첫째 질문입니다. 어찌하여 우느냐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말씀하시는 분이 예수님인 줄도 모르고 오히려 동산지기인줄로만 착각하고 엉뚱하게 얘기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대답이 바로 15절 하반절에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여 당신이(주님의 시신을) 옮겨 갔거든 어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가져가리이다. 예수님 시신이 실종돼서 울고 있다는 얘깁니다. 이건 언뜻 듣기엔 그럴싸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 해보면 이건 엄청난 희극이 아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렇 습니까 예수님은 생전에 여러 차례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실것 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신이 없어진 것을 목격하게 됐으면 그 즉시로 아하,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부활하 신 게로구나! 아멘, 할렐루야! 마땅히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와야 될 대목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신앙에 이르지 못 한 막달라 마리아는 실종된 시체 때문에 울고 있는 것입니다. 웃어야 될 대목인데 오히려 울고 있다면 이게 희극이 아니고 무 엇이겠습니까 우리들의 자화상 아.
그런데 이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 자신의 자화 상은 야니겠는지요. 없어진 예수님 시신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울 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처럼 우리 역시우리가 열심히 추구하던 허 상이 사라질 때 슬픔에 잠기게 되고 울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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