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상처 (요20:24-29)
본문
어린 아이가 잠을 자다 가위 눌렸다. 소리를 지르며 울자, 아빠가 달려 들어왔다. 아빠는 아이를 안아주며 아무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는 여전히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웠다. 방은 어두웠 고 창문에는 달빛이 어른 거리며 나무 그늘이 흔들렸다. 얼마후 아빠는 떠나면서 말했다. "자 이제 혼자 자거라. 아빠가 가도 여호와 하나님이 널 지켜 주시니까 무서워하지 말거라." 아빠가 떠나자 아이는 혼자말로 했다. "나는 아빠처럼 몸이 있는 하나님이 필요한데." 어린 아이가 느끼기에 하나님은 너무 멀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보고 경험할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뿐 아니라 모습을 조각하거나 그리지도 못하게 하신다. 왜곡된 이해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육신에 속한 인간들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 예수시다. 그는 순전히 인간의 몸으로 와서 스스로 인간의 문제를 짊어지는 하나님이 되어 주셨다. 보라! 인간이 얼마나 살기 위해 고통하는가. 그러기에 예수는 말씀하 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해 주겠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하나님이 되어주는 것처럼 정 처없이 헤매는 모든 인간들에게 아버지로 오신 이가 예수였다. 그가 와서 무슨 일을 했던가 그가 인간의 짐을 짊어졌다. 그 짐 은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그 근원은 단 한 가지, 죄이다. 하나님과 관 계가 끊어진 것이 바로 죄요 하나님과 담이 세워져서 통하지 않는 것 이 죄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
그러므로 인간 은 악하다. 그리고 또 약하다. 병들어 망해가는데도 치료할 생각을 하 지 않고 악한 존재임에도 변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얼마나 세상에서 고통을 맛보며 사는 것이 인간인가! 그 눈물과 한숨을 전부 단다면 바다물처럼 넘칠 것이다. 그 무의미함과 실패가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더러움과 악함을 달아본다면 사하라 사막처럼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장차 당할 영원 한 멸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것, 그것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돈을 벌고 명 예를 쌓고 그리고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얻으면 얻을수록 더욱 더 불안하기만 하다. 돈많고 권세많으면 평안하고 행복할줄 아는가. 그것 들은 사는 방편일뿐이지 절대로 평안도 행복도 아니다. 그럴수록 더욱 더 같은 방법에 전력투구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겠는 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짊어지러 오신 하나님이 예수시다. 장차 짊어진다는 말인 가 아니다. 이미 짊어지셨고 계속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짐을 짊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짊어지신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짊어지신다.(시 68:19) 이것만 확실하게 안다고 하면 우리의 모든 짐 은 즉시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이던가! 어떤 깡패가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자기 친구 중에 가장 흉악한 자를 전도했다. 깡패들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교회에 갈 수 없다." 그 이유는 "내 얼 굴의 흉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 서기가 두렵다." 그때 회개한 깡 패가 말했다. "우리는 너보다 더 험한 흉터 가진 이를 따르고 있다." 그 흉터가 무엇을 말하는가 깡패의 흉터는 자기의 잘못을 자기 몸에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흉터는 정 반대이다. 그것은 나 의 잘못을 자기 몸에 담당한 증거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확실한 표적 이 되는 것이다. 그 흉터 하나 씩을 살펴보라.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가. 그것은 내가 당할 무서운 일이 그에게 갔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형벌이 없다. 그의 비명이 신음이 증명한다. 그가 대신 받았음을. 그의 상처와 쏟아지는 피가 증명한다. 무서 운 벌을 그가 대신 받았음을. 그의 죽음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내 대신에 죽었음을 말하지 않는가. 나는 언제나 하나님을 배신하면서 살 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받을 형벌을 자기 몸에 받아버렸다. 확실한 것은 이것뿐이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관념이나 철학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역사 속에 객관적인 사건으로 모두 가 보도록 나타난 그의 고난. 그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났다. 그는 밤새도록 매를 맞았다. 그리고 끌려다녔다. 모든 사람이 그를 배신 했다. 물론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 없다. 항상 배신하니까. 모든 사람 이 그의 수치와 모욕을 보았다. 모두가 그 아픔을 보았다. 피가 쏟아지고 그의 근육이 비틀리고 못에 몸이 걸려있는 것을 모 두가 보았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그리고 무덤에 내려져서 매장되고 인봉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어찌 부정하랴. 주는 말씀을.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라. 내 등판을 만져보아라. 내 상한 얼굴을 보아라. 그 리고 믿어라. 네 짐이 내게 얹혀졌음을. 그래서 네가 구원받았음을." 이제 내게 확실한 것 단 하나. 세상이 변하고 인간들이 변해도 땅이 변해 바다가 되어도 너무도 확실한 것 하나. 그의 상처자국이다. 그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그 흉터는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말한다. 내가 대신했다. 내가 대신 했다. 네 것을 대신했다. 다른 것은 믿지 말아라. 이것만이 확실한 것이다. 이 위에 믿음을 세워라. 이 위에 네 확신을 세워 흔들리지 말라. 이 흉터를 가진 사람에게 형벌은 없다. 댓가가 확실하게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망함이 없다. 저주 자체가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망하 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행을 많이 하거나 교회에 열심히 나와 서 저주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 기도를 오래해도 만약 이 상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다면 절대로 확실한 믿음은 갖지 못할 것이다. 이 상처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 상처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고귀한 몸을 주고 있다는 증거를 보 여준다. 그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가 주신 것을 통해서 강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 우리는 강하다. 그의 상처를 볼 때마다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우리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그의 자 녀가 되고 그의 권세를 받았다. 그와 함께 유업을 누린다. 한 어린이가 고아가 되어 할머니와 살았다. 어린이는 잘 생겼지만 외로웠다. 어느날 그 집에 불이 났다. 할머니는 밖에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이가 사는 이층에서 곧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 렸다. 그리고 창문으로 조그마한 머리가 보였다. 그러나 입구는 이미 불길로 인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 낯선 남자 하나가 집 뒤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이층으로 연 결된 파이프가 있었다. 그러나 이 파이프는 이미 뜨거웠다. 이것을 잡 고 그는 고통스럽게 올라갔다. 얼마 후에 이층 창문에 나타났다. 아이 를 목에 매달고 그는 더욱 뜨거워진 파이프를 잡고 내려왔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아이를 할머니에게 주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뒤에 이 아이를 입양시키는 회의가 동네에서 있었다. 모두들 자기가 왜 그 아이의 부모로 합당한지 설명하게 하였다. 한 사람은 나 가서 말했다. "나는 농장이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자연이 필요하지요. 그러니 내가 적격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교사입니다. 어 린이에게는 책이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적격입니다." 부자가 나섰다. "나는 농장도, 책도, 그밖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사회자는 말했다. "다른 분은 없습니까" 이 때 어떤 점잖은 사람 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앞에 서있는 그 아이에게로 다가 갔다. 그와 아이는 얼마동안 마주 보았다. 그는 손을 내 밀었다. 아. 그 손 그리고 팔 전체에 무서운 흉터. 아이는 그를 알아보았다.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그 손. 아이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모두들 그 자리를 떠났다. 농부도. 교사도. 부자도. 그 상처자국은 놀라운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예수의 얼굴이나 최후의 만찬이나 성모 마리아의 아기 예수 를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늘 확인하고 싶은 것은 흉터뿐이다. 그 의 찢겨진 이마. 그 손과 발의 굵은 못자국, 그리고 옆구리에 흉칙하 게 갈라진 상처, 그리고 온 몸을 상한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채 찍자국들이다. 나는 이 흉터를 명상하고 그 효력을 누리리라. 그것이 권능이다. 모든 문제에 이 상처를 내 놓으라. 그것으로만 승리하라.
그러므로 인간 은 악하다. 그리고 또 약하다. 병들어 망해가는데도 치료할 생각을 하 지 않고 악한 존재임에도 변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다. 얼마나 세상에서 고통을 맛보며 사는 것이 인간인가! 그 눈물과 한숨을 전부 단다면 바다물처럼 넘칠 것이다. 그 무의미함과 실패가 얼마나 더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인간의 더러움과 악함을 달아본다면 사하라 사막처럼 한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장차 당할 영원 한 멸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세상의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것, 그것이 바로 지옥인 것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돈을 벌고 명 예를 쌓고 그리고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얻으면 얻을수록 더욱 더 불안하기만 하다. 돈많고 권세많으면 평안하고 행복할줄 아는가. 그것 들은 사는 방편일뿐이지 절대로 평안도 행복도 아니다. 그럴수록 더욱 더 같은 방법에 전력투구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문제가 해결되겠는 가.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을 짊어지러 오신 하나님이 예수시다. 장차 짊어진다는 말인 가 아니다. 이미 짊어지셨고 계속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짐을 짊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짊어지신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그는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짊어지신다.(시 68:19) 이것만 확실하게 안다고 하면 우리의 모든 짐 은 즉시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이 무엇이던가! 어떤 깡패가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자기 친구 중에 가장 흉악한 자를 전도했다. 깡패들은 자기가 악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교회에 갈 수 없다." 그 이유는 "내 얼 굴의 흉터 때문에 나는 사람들 앞에 서기가 두렵다." 그때 회개한 깡 패가 말했다. "우리는 너보다 더 험한 흉터 가진 이를 따르고 있다." 그 흉터가 무엇을 말하는가 깡패의 흉터는 자기의 잘못을 자기 몸에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흉터는 정 반대이다. 그것은 나 의 잘못을 자기 몸에 담당한 증거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확실한 표적 이 되는 것이다. 그 흉터 하나 씩을 살펴보라.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가. 그것은 내가 당할 무서운 일이 그에게 갔음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더 이상 형벌이 없다. 그의 비명이 신음이 증명한다. 그가 대신 받았음을. 그의 상처와 쏟아지는 피가 증명한다. 무서 운 벌을 그가 대신 받았음을. 그의 죽음이 무엇을 말하는가. 그는 내 대신에 죽었음을 말하지 않는가. 나는 언제나 하나님을 배신하면서 살 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받을 형벌을 자기 몸에 받아버렸다. 확실한 것은 이것뿐이다. 이것은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관념이나 철학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이다. 역사 속에 객관적인 사건으로 모두 가 보도록 나타난 그의 고난. 그것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일어났다. 그는 밤새도록 매를 맞았다. 그리고 끌려다녔다. 모든 사람이 그를 배신 했다. 물론 우리도 그들과 다를 것 없다. 항상 배신하니까. 모든 사람 이 그의 수치와 모욕을 보았다. 모두가 그 아픔을 보았다. 피가 쏟아지고 그의 근육이 비틀리고 못에 몸이 걸려있는 것을 모 두가 보았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그리고 무덤에 내려져서 매장되고 인봉되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어찌 부정하랴. 주는 말씀을.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라. 내 등판을 만져보아라. 내 상한 얼굴을 보아라. 그 리고 믿어라. 네 짐이 내게 얹혀졌음을. 그래서 네가 구원받았음을." 이제 내게 확실한 것 단 하나. 세상이 변하고 인간들이 변해도 땅이 변해 바다가 되어도 너무도 확실한 것 하나. 그의 상처자국이다. 그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그 흉터는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말한다. 내가 대신했다. 내가 대신 했다. 네 것을 대신했다. 다른 것은 믿지 말아라. 이것만이 확실한 것이다. 이 위에 믿음을 세워라. 이 위에 네 확신을 세워 흔들리지 말라. 이 흉터를 가진 사람에게 형벌은 없다. 댓가가 확실하게 지불되었기 때문이다.
망함이 없다. 저주 자체가 없다. 우리가 노력해서 망하 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행을 많이 하거나 교회에 열심히 나와 서 저주가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 기도를 오래해도 만약 이 상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다면 절대로 확실한 믿음은 갖지 못할 것이다. 이 상처보다 확실한 증거는 없다. 그 상처는 그리스도가 자기의 고귀한 몸을 주고 있다는 증거를 보 여준다. 그 희생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그 가 주신 것을 통해서 강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 우리는 강하다. 그의 상처를 볼 때마다 그 아픔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우리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 그의 자 녀가 되고 그의 권세를 받았다. 그와 함께 유업을 누린다. 한 어린이가 고아가 되어 할머니와 살았다. 어린이는 잘 생겼지만 외로웠다. 어느날 그 집에 불이 났다. 할머니는 밖에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이가 사는 이층에서 곧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 렸다. 그리고 창문으로 조그마한 머리가 보였다. 그러나 입구는 이미 불길로 인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이 때 낯선 남자 하나가 집 뒤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이층으로 연 결된 파이프가 있었다. 그러나 이 파이프는 이미 뜨거웠다. 이것을 잡 고 그는 고통스럽게 올라갔다. 얼마 후에 이층 창문에 나타났다. 아이 를 목에 매달고 그는 더욱 뜨거워진 파이프를 잡고 내려왔다. 사람들의 박수 속에 아이를 할머니에게 주고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뒤에 이 아이를 입양시키는 회의가 동네에서 있었다. 모두들 자기가 왜 그 아이의 부모로 합당한지 설명하게 하였다. 한 사람은 나 가서 말했다. "나는 농장이 있습니다. 아이에게는 자연이 필요하지요. 그러니 내가 적격입니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 "나는 교사입니다. 어 린이에게는 책이 많이 필요합니다. 내가 적격입니다." 부자가 나섰다. "나는 농장도, 책도, 그밖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사회자는 말했다. "다른 분은 없습니까" 이 때 어떤 점잖은 사람 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앞에 서있는 그 아이에게로 다가 갔다. 그와 아이는 얼마동안 마주 보았다. 그는 손을 내 밀었다. 아. 그 손 그리고 팔 전체에 무서운 흉터. 아이는 그를 알아보았다. 자기의 생명을 구해준 그 손. 아이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모두들 그 자리를 떠났다. 농부도. 교사도. 부자도. 그 상처자국은 놀라운 힘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예수의 얼굴이나 최후의 만찬이나 성모 마리아의 아기 예수 를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늘 확인하고 싶은 것은 흉터뿐이다. 그 의 찢겨진 이마. 그 손과 발의 굵은 못자국, 그리고 옆구리에 흉칙하 게 갈라진 상처, 그리고 온 몸을 상한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채 찍자국들이다. 나는 이 흉터를 명상하고 그 효력을 누리리라. 그것이 권능이다. 모든 문제에 이 상처를 내 놓으라. 그것으로만 승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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