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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나 (요20:30-31)

본문

성경은 여러 가지 이름들로 불리워 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1 먼저 바이블(The Bible)이라고 부릅니다. The Bible or Holy Bible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헬라어 타 비블리온(TA BIBLION)이란 단어에서 유래되었고, 그 뜻은 ‘탁월한 서적’이란 의미입니다. 옛날 애굽 사람들은 글을 쓸 때 파피루스(papyrus)의 어원이 되는 동시에, 서적을 뜻하는 BIBLOS 혹은 BIBLIA BIBLION등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 후 기독교 교부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문학으로 승인하면서 그 이름을 타 비블리온(TA BIBLION) 곧 그 책(The Book)으로 불렀는데 그것은 책 중에 ‘가장 으뜸가는 책’이란 뜻입니다. 오늘에 와서 Holy Bible이라고 하므로 거룩한 책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다음에 스크립 츄어(The Sclipture)라고도 부릅니다. 이 말은 라틴어 스크립튜어(scriptura)에서 온 것으로 그 뜻은 ‘성취’ 혹은 ‘무엇에 쓰여져 있는 것’(Something Writen)이란 말입니다.
3 또 하나는 테스타멘트(Testament)라고 부릅니다. 이 말을 라틴어 Testamenton에서 온것으로 유먼(Ones Lestword) 증거 (witness) 또는 서약(make over will)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 또 캐논(Canon)이라고도 부릅니다. ‘정경’이란 뜻인데 이것은 가경(Apocrypha)와 구별 시키는 말로 ‘곧은 막대기’ ‘곧은 잣대’를 뜻합니다. 후대에 와서 ‘규범’이라고 불려졌습니다. 325년 니케야 종교회의 때 정통 교리의 표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4세기 후에는 교회의 책(book of church)이 라고도 불리워 졌습니다. 5 계시 문서라고도 불리워 졌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이하는 사실에서 쓰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책(revelaition)이란 뜻입니다. 우리 함께 ‘성경’에 대하여 생각하고 나와의 관계성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I. 성경은
1.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대하여 잘못 생각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찾고자 노력하여 만들어진 여러 이야기들의 결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 시대 여러 경우들을 통한 사람들의 경험이 쌓여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점점 발전시켜 하나님에게까지 도달한 ‘인간 경험의 기록’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은 말하기를 성경에는 수 없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 것뿐이라고 합니다. 그럼으로 성경은 인간 경험의 결집들이고, 상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사탄의 생각이고, 주장이고 말입니다. 성경은 결코 하나님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직접 자길 나타내신 생명의 계시입니다. 히브리서 1장 1-2절에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셩경의 초인간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1)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존재와, 천지 창조와, 통치와 섭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2) 인간의 창조(기원)와 타락과 구원과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죄인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보내신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절대 권위가 있습니다. 성경 외에는 어느 책이나 글에서도 이 사상을 알 길이 없습니다.
2. 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가르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는
1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2 그리스도 곧 인류의 메시야임을 알려 줌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예수는
(1) 하나님이신 그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화육강세의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람의 형체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사 33년간 사셨다고 하는 사건의 기록입니다. 그는 사람으로 오시되, 죄 없이 오시고, 사시고, 죄인을 영접하고,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친절하고, 부드럽고,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인간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괴로움과 슬픔을 아시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모든 인생고를 대신하였습니다. 그는 마침내 사람의 죄 값인 죽음을 대신하여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는 구약과 자신의 예언대로 죽은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다시 역사 세계의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그는 부활의 왕으로 전 인류에게 소망의 활력이 되셨습니다. 그는 부활한지 40일만에 산 채로 하늘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님의 이름으로 우리 중에 임재하사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 삶의 중심이 되고, 역사의 중심이 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므로 끝날에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황제가 되시고, 불신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의 주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5장 39절에 .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책들과 다른 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진리의 책입니다.
3. 성경은 성령님의 책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라고 한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중심 내용은 예수는 자신의 외아들이요, 우리의 구세주시라는 사실입니다. 이제 이 내용을 ‘기록’이라고 하는 표적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록의 본체가 사람이 아닌 ‘성령님’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님이 오실 때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요한복음 16장 7절에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다. 베드로후서 1장 21절에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받아 말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성령님의 산물’ 곧 하나님 자신이 예수님 자신이 성경이라고 하는 문자적 매체를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헤르만 바빙크(H. Bavik) 박사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 되었다. 이 성육신과 영감은 서로 병행할 뿐 아니라 이 같이 서로 연결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빙크 박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에게 기록을 통하여 문자로 임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화육 사실과 병행하고 있다는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대하고, 만나고, 듣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을 대면하고, 그 음성을 듣는 것이 된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왜 기륵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시는가 그것은,
1 다량의 계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2 정확한 전달과 보존, 계승을 위함이다.
3 보다 효과적인 복음 선교를 위함이다. 책은 어디든지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4. 성경은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 역사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고 하였다. 이 말씀은 성경 말씀이 단순한 기록 전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 인격을(지.정.의) 변화시키는 역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현재성입니다. 다시 바빙크 박사의 말을 빌리면 ‘기록된 성경은 언제나, 하늘과 땅 사이를 연결짓고 예수님의 음성이요 그의 피조물에게 주신 편지이다’고 하였습니다. 벵겔(Bengel)은 말하기를 ‘성경은 기록될 때만 하나님께서 저자들에게 감동하신 것이 아니요 그것을 읽을 때에도 영감을 주고 있는데 성경을 그 때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기운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로-드라체스터(Lord Rochester)는 교만한 반기독주의자였다. 그가 성경을 반대하려고 성경을 읽다가 이사야 53장을 읽는 도중에 회개하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과 성경의 무오성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태리의 문호 기오바니 파리니(Giobami Pappinni)는 무정부주의자요, 무신론자요, 허무주의자였고, 반기독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파괴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다가 주의 영을 받고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화의 왕이시요, 구주시요, 기름부음 받은 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사람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200년전에 영국에 유명한 두 학자 길버트 웨스트(sir Gilvert West)와 릿텔톤(Lest Lytedton)이란 두 학자는 서로 약속하기를 성경 중에 믿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해 보자고 하고 이 일에 착수하였습니다. 웨스트는 예수님의 부활을 팃텔톤은 회심 사건을 연구하였습니다. 후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는 이미 불신자가 아닌 신자가 되어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을 연구했던 팃텔톤은 말하기를 ‘이는 불신자가 답변할 수 없는 것이다’하였습니다. 세계의 최대 문하자 세익스피어(Shakespeare)는 성경을 깨닫고 말하기를 ‘나는 내 영혼을 나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맡긴다. 나의 구주 그리스도의 공로로 나는 영생에 참예하는 자 된줄을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데이비드 흄(David Hume)(18세기)은 신약 성경을 절반도 못 읽고 스스로 증거하기로 “나는 성경을 몰랐기 때문에 의심과, 어두움 가운데서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철학으로 말미암아 빠지게 된 고독으로 인하여 깜짝 놀라며, 정신이 어찔해 진다. 나의 속을 들여다보면 의심과 무식밖에 없다.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났는가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이런 문제들로 아찔해져 버린다. 내가 내 자신을 생각해 보니 사방에 어두움으로 둘러싸인 비참한 상태에 있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모친은 그의 철학 때문에 회의주의자가 되어서 죽으면서 위안을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들아 네 철학은 임종에 위안을 주지 못한다. 나는 지금 절망이다. 이제는 임종에 위안이 되는 글을 쓰라”고 하였습니다. Henry Van Dyke씨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동방에서 태어나, 동양의 옷을 입은 성경은 다정한 걸음으로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 각국을 순방한다. 성경은 인간의 마음과 대화하기 위하여 수 백 수 천개의 언어를 배웠다. 어린이들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성경 이야기를 듣고, 지식인들은 생활의 교훈으로 받아들인다. 악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은 성경의 경고에 떨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참회하는 사람은 사랑스러운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들려준다. 성경은 사랑, 우정, 동정, 헌신, 추억, 희망 등의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혀 준다. 이 성경이란 보물을 얻는 사람은 아무도 가난하거나 고독하지 않다. 대지가 어둠에 덮였을 때 성경을 손에 든 순례자는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그 성경은 친구들에게 ‘안녕!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해 주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말하기를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니다. 반대하는 모든것은 정복하는 능력을 가진 생명체 이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18세 때 교회에 나아가서 수난주간 수요일 밤에 전도사님께서 이사야 53장 말씀을 읽고 설교하던 시간에 생전처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체험적인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깍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5-7)고 하신 말씀을 듣는 중에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경험했던 은총 체험이 지금도 나의 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에 처음으로 나는 죄인임을 깨달았고 예수님이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나에게 역사하고 있는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 역사입니다.
Ⅱ. 나는 성경을 믿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나에게 믿으라고 요구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생을 얻으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성경은 나에게 믿음을 요구합니다. 연구하라, 사색하라고 하지 아니합니다. 믿으라고 요구합니다. 그 결과는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는 보아야 믿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나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는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경을 믿는가
그렇다면 성령님을 받은 자입니다. 구원받은 자 입니가. 그래서 그 사람을 복이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성령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성경은 예수님 자신의 임재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믿는다는 말은 성령님을 받았다는 사실과 직결하고 성령님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과 직결하고 성령님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과 직결하고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과 직결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성경과 나는 불가분리의 관계성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관계는 생명적 관계입니다. 차원적 관계입니다. 본질적 관계이고, 궁극적 관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눈으로 읽고 입으로도 읽어야 합니다. 귀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행동으로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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