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맛보라(Come and Dine) (요21:1-14)
본문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음모에 의하여 잡히시고 십자가상에서 처형당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신변안전을 위하여 다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그래도 다른 제자들보다는 좀 담대한지라, 예수께서 종교재판을 받으시는 대 제사장집 바깥뜰까지 들어가 불을 쪼이며 멀리서 재판 받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 집에서 일하는 여종이 당신도 예수를 따라 다니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을 때, 내가 예수를 안다면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맹세하고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신후 뿔뿔이 헤어졌던 제자들이 한두 명씩 마가 어머니의 다락방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주일날 새벽에 무덤가에 갔던 여인들로부터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오셔서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자기고향인 갈릴리지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2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있었으며 그의 동생 안드레도 함께 있었을 것이고, 세베데의 아들들이란 요한과 야곱보를 말합니다. 나머지 한 명의 제자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빌립이 아니겠는가 하고많은 학자들은 추측을 합니다.
왜냐하면 빌립의 이름은 항상 나다나엘과 함께 성경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중 7명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제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주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9-20절에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연관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신앙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갈릴리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의 공동체 가운데 오셨던 것입니다. 최근 Anthony Laird란 목사님이 Leadership 이란 잡지에 "내가 사표를 내고 떠나기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것들(What I wish I'd known before I quit) 이란 글을 습니다. 레어드 목사님은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교인들의 예배출석율과 자원봉사가 너무나 저조하기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사표를 내고 다른 교회로 옮겨가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레어드 목사님은 사표를 낸후 교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비로소 알게되어 놀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교인들의 예배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교인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와야할 집회에 오지 않고, 이 정도는 헌금을 내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자기의 목회사역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직장생활에 얼마나 고달퍼하는지, 밤늦게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가계부가 적자가 되지 않기위하여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목사님은 사표를 낸 후에야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어드목사님은 교인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이지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사표를 낸 후에야 알게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회를 오래한 어느 목사님은 젊은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있습니다. "교인들은 당신을 자주 실망시킬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혁을 저항할 것이다. 그들은 미식축구시합을 TV로 시청하기 위하여 교회의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을때도 있을것이며, 그들은 자원봉사하겠다는 약속을 깨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부족한 당신의 목회사역을 통하여, 그리고 연약하고 부족한 교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거룩한 뜻과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 공동체를 이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산에서 홀로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랑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섬기고 교제하며 선교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양육되어집니다. 성령님은 우선적으로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자기 고향인 갈릴리에 돌아온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로 고기를 잡으로 가겠다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자 다른 제자들이 우리도 가겠다고 말하며 따라 나서게 되었고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게되었습니다.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성서 주석가들과 부흥사들 가운데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물고기 잡으러 간 것을 믿음이 없는 행위, 복음전파의 사역을 버리고 세상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옛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호수로 간 베드로를 나무래서 아니되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가졌었으나, 주님으로부터 아직 선교의 사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아직 오순절날의 성령님감림으로 인하여 성령님충만함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 .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 . ."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승천하시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아직 성령님의 강림이 임하지 않았으며, 아직 그들이 선교의 사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가하게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어부출신의 제자들은 고기잡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일을 통해 자기들과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게으르게, 한가하게 소일하는 것보다, 땀흘리는 정직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버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것과 속된것의 지나친 구분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나 신부가 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는 직업은 속된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모든 정직한 직업은 다 거룩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의사라면 목자의 심정을 자지고 사랑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유한다면, 나의 일은 거룩한 일,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일이됩니다. 내가 만일 공무원이라면 섬기는 자세에서 시민들을 철저하게 정직하게 봉사한다면, 나의 직장일은 거룩한 일이되며,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게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로,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의 일에 임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P. Loyd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을 오히려 칭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젼이 희미해지고, 어떠한 공백기간이 있을 때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낙심하지 말고, 일상 생활의 과업에 충성하는 것이 좋다. 조용하게 물고기 잡으로 간 제자들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그는 반문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전직 어부들은 노련한 경험을 살려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 한밤에 배를 타고 갈릴리호수에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힘써 애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밤새 노력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날이 거의 다 새게 되었을 때 어느 낮선 사람이 해변가에서 그들을 행해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랴"고 질문할 때,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솔직하게 "못 잡았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언론인이었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Malcolm Muggeridge는 "실패란 인생에 있어 가장 창의적인 현상이라고"말한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진보나 발전이 이루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을 살펴볼수 있게 만듭니다. 어떠한 점에서 옳았고, 어떠한 면에서 잘못되었는지를 기독교는 실패를 성화시켜왔다고 말합니다. 실패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며,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게되며,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안에서 크게 들아나게됩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1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으로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표준새번역)"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못한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낮선 사람의 말대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본문말씀을 3절 후반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 . .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밤에 아무것도 잡지못하였더니 날이 새어 갈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 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제자들 가운데 요한은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물고기를 비롯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깊은곳에 있는 물고기를 그들의 그물속으로 몰아넣을 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요한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라는 말에 정열적인 베드로는 벗은 몸에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을 향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헤엄쳐 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장 빠른 속도로 헤엄을 쳐서 해변가에 서 계시는 예수님께 왔고, 다른 제자들은 배를 몰고 늦게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제자들이 해변가에 도착해보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숯불을 피어놓으셨고, 숯불위에 생선이 놓여있었고 빵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 와서 아침을 먹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빵을 집어 나누어 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헛수고한 제자들은 몹시도 피곤하였을 것이고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또한 땀흘려 일한 까닭에 새벽의 차가운 공기로 인하여 몸도 추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나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 간구합시다. 빌립보서 4:19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숯불위에 올려놓은 생선은 한마리였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생선을 다 준비하여 구워놓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와 동역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우리와 함께 동역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작은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그것을 통하여 그의 구원의 역사를 펼쳐나가십니다. 아트 부치왈드라는 언론인이 친구와 함께 뉴욕시내에서 어느날 택시를 탔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말했습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을 아주 점잖케 잘하시는군요." 이 말을 들은 택시기사는 순간적으로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은 혹시 도를 닦는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그저 추케세우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교통 체증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운전하시는 것이 감탄스러워 드린 말뿐입니다. " 아, 그래요." 그 말을 남기도 택시 운전사는 차를 몰고 갔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한 말을 했느냐고 언론인이 친구에게 묻자, "뉴욕에 사랑을 심기 위한 내 노력의 일환이라네, 이런 식으로 해야 뉴욕을 구할 수가 있네."라고 친구는 말하더랍니다. 친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까 그 택시 기사가 하루에 20명의 승객을 태운다고 가정해보세. 그 기사가 기분이 좋으면 20명의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지. 그러면 20명의 승객도 기분이 좋아져 회사 사람이랑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지. 그러면 20명의 승객도 기분이 좋아져 회사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전파되면 적어도 100명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겠나 그 정도면 적은 숫자는 아니지.그러하기에 나는 날마다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10명에게 기분 좋은 말 한마디씩 해주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나 때문에 10명중 3명만 이라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결과적으로 3000명의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을 갖지 않겠나"라고 친구는 말했다고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언론인이 자기 친구에게 묻자, 그는 "효과가 없더라도 손해볼일은 아니지 않는가 남에게 수고한다고, 고맙다고 한 마디 말하는 것이 돈이나, 시간 들이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아트 부치왈드와 친구는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5명의 인부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참 대단한 일들을 하십니다. 공사장 일이란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겠죠. 인부들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친구를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언제 완공되나요 6월이요. 인부 한사람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친구는 멋진 건물을 짓고 계십니다. 매우 자랑스럽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못 생긴 여자 한사람이 지나가는데 친구는 윙크를 보내면서 " 저 여성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오늘 저 선생님 반의 아이들은 신나는 하루를 보내겠지라고 말하면서 친구는 주장하기를, 나는 혼자서 뉴욕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것이라네, 뉴욕사람들이 모두가 친절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일세.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단 한 사람이라도 동참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일세라고 친구는 말하더랍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일에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친절한 말 한마디,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하나가 주님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한그릇 대접하는 것을 주님은 귀하게 부시며 그러한 친절을 통해 그의 나라를 오늘도 확장시키십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으신후 뿔뿔이 헤어졌던 제자들이 한두 명씩 마가 어머니의 다락방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주일날 새벽에 무덤가에 갔던 여인들로부터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모여있는 곳에 오셔서 부활하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시며,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자기고향인 갈릴리지역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2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데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있었으며 그의 동생 안드레도 함께 있었을 것이고, 세베데의 아들들이란 요한과 야곱보를 말합니다. 나머지 한 명의 제자는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빌립이 아니겠는가 하고많은 학자들은 추측을 합니다.
왜냐하면 빌립의 이름은 항상 나다나엘과 함께 성경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11명의 제자들중 7명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제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주님께 대한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한 신앙 공동체를 이루며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8:19-20절에 보면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연관성과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신앙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갈릴리로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공동체를 이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의 공동체 가운데 오셨던 것입니다. 최근 Anthony Laird란 목사님이 Leadership 이란 잡지에 "내가 사표를 내고 떠나기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것들(What I wish I'd known before I quit) 이란 글을 습니다. 레어드 목사님은 작은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교인들의 예배출석율과 자원봉사가 너무나 저조하기 때문에 의기소침하여 사표를 내고 다른 교회로 옮겨가게 되면서 깨닫게 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레어드 목사님은 사표를 낸후 교인들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가를 비로소 알게되어 놀라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교인들의 예배 참여율이 저조한 것은 교인들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교인들이 와야할 집회에 오지 않고, 이 정도는 헌금을 내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것은 자기의 목회사역을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직장생활에 얼마나 고달퍼하는지, 밤늦게까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들의 가계부가 적자가 되지 않기위하여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목사님은 사표를 낸 후에야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레어드목사님은 교인들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열심을 내지 못하는 것이지 자기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음을 사표를 낸 후에야 알게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목회를 오래한 어느 목사님은 젊은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있습니다. "교인들은 당신을 자주 실망시킬 것이다. 그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개혁을 저항할 것이다. 그들은 미식축구시합을 TV로 시청하기 위하여 교회의 주일예배에 나오지 않을때도 있을것이며, 그들은 자원봉사하겠다는 약속을 깨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부족한 당신의 목회사역을 통하여, 그리고 연약하고 부족한 교인들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그의 거룩한 뜻과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희미하게 보였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고 한 공동체를 이루며 기다리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산에서 홀로 묵상하며 기도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한 사랑의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으며 함께 기도하고, 함께 섬기고 교제하며 선교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양육되어집니다. 성령님은 우선적으로 신앙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자기 고향인 갈릴리에 돌아온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앞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로 고기를 잡으로 가겠다고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자 다른 제자들이 우리도 가겠다고 말하며 따라 나서게 되었고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밤이 새도록 고기를 잡게되었습니다. 3절에 보면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성서 주석가들과 부흥사들 가운데는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물고기 잡으러 간 것을 믿음이 없는 행위, 복음전파의 사역을 버리고 세상일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옛생활로 돌아간 것으로 생각하며 이것은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고기를 잡으러 갈릴리호수로 간 베드로를 나무래서 아니되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가졌었으나, 주님으로부터 아직 선교의 사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아직 오순절날의 성령님감림으로 인하여 성령님충만함을 받지 못했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 . .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 . ."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승천하시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아직 성령님의 강림이 임하지 않았으며, 아직 그들이 선교의 사명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한가하게만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어부출신의 제자들은 고기잡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일을 통해 자기들과 가족들의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이 게으르게, 한가하게 소일하는 것보다, 땀흘리는 정직한 일을 해서 생활비를 버는 것은 매우 정당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것과 속된것의 지나친 구분을 할 때가 많습니다. 목사나 신부가 하는 일은 거룩한 하나님의 일이요,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는 직업은 속된것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모든 정직한 직업은 다 거룩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의사라면 목자의 심정을 자지고 사랑으로 환자들을 진료하고 치유한다면, 나의 일은 거룩한 일,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일이됩니다. 내가 만일 공무원이라면 섬기는 자세에서 시민들을 철저하게 정직하게 봉사한다면, 나의 직장일은 거룩한 일이되며, 나는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게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로, 복음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나의 일에 임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수 있게 될것입니다. P. Loyd는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을 오히려 칭찬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젼이 희미해지고, 어떠한 공백기간이 있을 때 우리는 게으름을 피우거나 낙심하지 말고, 일상 생활의 과업에 충성하는 것이 좋다. 조용하게 물고기 잡으로 간 제자들이야 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가라고 그는 반문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포함한 7명의 전직 어부들은 노련한 경험을 살려 물고기를 잡기에 가장 좋은 시간인 한밤에 배를 타고 갈릴리호수에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힘써 애섰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밤새 노력했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날이 거의 다 새게 되었을 때 어느 낮선 사람이 해변가에서 그들을 행해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랴"고 질문할 때,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솔직하게 "못 잡았습니다."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언론인이었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영접한 Malcolm Muggeridge는 "실패란 인생에 있어 가장 창의적인 현상이라고"말한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진보나 발전이 이루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패는 우리로 하여금 나 자신을 살펴볼수 있게 만듭니다. 어떠한 점에서 옳았고, 어떠한 면에서 잘못되었는지를 기독교는 실패를 성화시켜왔다고 말합니다. 실패는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연약함,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며,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을 더욱더 의지하게되며,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안에서 크게 들아나게됩니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12장 9절-10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하게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려고,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으로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표준새번역)"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도 잡지못한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실패를 인정하고 낮선 사람의 말대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본문말씀을 3절 후반부터 6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 . .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밤에 아무것도 잡지못하였더니 날이 새어 갈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 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제자들 가운데 요한은 이러한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는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물고기를 비롯한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깊은곳에 있는 물고기를 그들의 그물속으로 몰아넣을 실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요한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라는 말에 정열적인 베드로는 벗은 몸에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내려 예수님을 향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헤엄쳐 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가장 빠른 속도로 헤엄을 쳐서 해변가에 서 계시는 예수님께 왔고, 다른 제자들은 배를 몰고 늦게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제자들이 해변가에 도착해보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숯불을 피어놓으셨고, 숯불위에 생선이 놓여있었고 빵도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 와서 아침을 먹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빵을 집어 나누어 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밤새도록 노력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헛수고한 제자들은 몹시도 피곤하였을 것이고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또한 땀흘려 일한 까닭에 새벽의 차가운 공기로 인하여 몸도 추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형편과 사정을 아시고 예수께서는 숯불을 피워 놓으셨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준비해놓으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나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주님께 간구합시다. 빌립보서 4:19절에 보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영광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며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숯불위에 올려놓은 생선은 한마리였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하여 생선을 다 준비하여 구워놓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와 동역하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그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데 우리와 함께 동역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작은것이라도 주님께 드리면 그것을 통하여 그의 구원의 역사를 펼쳐나가십니다. 아트 부치왈드라는 언론인이 친구와 함께 뉴욕시내에서 어느날 택시를 탔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친구가 운전기사에게 말했습니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을 아주 점잖케 잘하시는군요." 이 말을 들은 택시기사는 순간적으로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은 혹시 도를 닦는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그저 추케세우는 것이 아니라 꽉 막힌 교통 체증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운전하시는 것이 감탄스러워 드린 말뿐입니다. " 아, 그래요." 그 말을 남기도 택시 운전사는 차를 몰고 갔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한 말을 했느냐고 언론인이 친구에게 묻자, "뉴욕에 사랑을 심기 위한 내 노력의 일환이라네, 이런 식으로 해야 뉴욕을 구할 수가 있네."라고 친구는 말하더랍니다. 친구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아까 그 택시 기사가 하루에 20명의 승객을 태운다고 가정해보세. 그 기사가 기분이 좋으면 20명의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지. 그러면 20명의 승객도 기분이 좋아져 회사 사람이랑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겠지. 그러면 20명의 승객도 기분이 좋아져 회사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친절하게 대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전파되면 적어도 100명의 사람들에게 전파되지 않겠나 그 정도면 적은 숫자는 아니지.그러하기에 나는 날마다 다른 종류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10명에게 기분 좋은 말 한마디씩 해주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나 때문에 10명중 3명만 이라고 기분이 좋아진다면 결과적으로 3000명의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을 갖지 않겠나"라고 친구는 말했다고 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언론인이 자기 친구에게 묻자, 그는 "효과가 없더라도 손해볼일은 아니지 않는가 남에게 수고한다고, 고맙다고 한 마디 말하는 것이 돈이나, 시간 들이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아트 부치왈드와 친구는 건물을 짓고 있는 공사장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5명의 인부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참 대단한 일들을 하십니다. 공사장 일이란 무척 힘들고 위험한 일이겠죠. 인부들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친구를 바라보았다고 합니다. 언제 완공되나요 6월이요. 인부 한사람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친구는 멋진 건물을 짓고 계십니다. 매우 자랑스럽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못 생긴 여자 한사람이 지나가는데 친구는 윙크를 보내면서 " 저 여성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오늘 저 선생님 반의 아이들은 신나는 하루를 보내겠지라고 말하면서 친구는 주장하기를, 나는 혼자서 뉴욕을 바꾼다고 생각하지 않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것이라네, 뉴욕사람들이 모두가 친절해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일세.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단 한 사람이라도 동참한다면 희망이 있을 것 일세라고 친구는 말하더랍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일에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십니다. 우리의 친절한 말 한마디,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 하나하나가 주님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한그릇 대접하는 것을 주님은 귀하게 부시며 그러한 친절을 통해 그의 나라를 오늘도 확장시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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