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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요1:9-13)

본문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여호와 하나님은 이 땅에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했다. 세상은 어두움의 세력이 완전히 뒤덮고 있었다. 타락이 판을 치고 진리는 찾아 볼수 없는 세상이었다 그러한 이 세상에 빛을 주시기 위하여 먼저 그 빛을 증거 하는 자 세례요한을 보내셨다. 그리고 참 빛 되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되었다는 내용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 빛이 왔는데도 너무 어두워서 전혀 깨닫지 못했다.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창조주 이신 참 빛이 이 땅에 오셨는데도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가 오셨는데도 이 땅에 백성들은 그를 영접하기는 커녕 알아보지도 못했다. 모두다 소경이었고 귀먹어거리 였다. 참 빛을 영접 한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칭호와 권세가 주어지는 데도 저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관심조차 없었다. 오늘날 이시대도 그 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지 아니해서 악했지만 오늘날은 곳곳에 주의 종들과 말씀이 곳곳에서 증거 하는데도 이렇다면 우리는 더 악한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될 것이다.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참 빛" 예수 그리스도을 뜻한다. 이 빛만이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비추어주는 참 빛이다. 빛이란 것은 어두움에 비추이면 어둠이 물러가야만 참 빛인 것이다. 빛이라는 것이 비추었는데도 어둠이 물러가지 아니 한다면 그것은 거짓 빛이지. 참 빛이 아니다.
 여기서 "참" 은 불완전 한 것을 완전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참 빛이 세상에 왔다. 온 이유는 사람들에게 비추어 줄려고 이것은 곧 구원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을 어둠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는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칠흑같은 어두운 이 세상에 예수는 빛으로 오셨다. 그렇게 거룩하던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을 섬긴다는 제사장들은 다 타락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잘 안다는 서기관들조차 다 타락했고 말씀을 가르친다는 바리새인들도 다 타락했다 다시 말해서 그 거룩한 하나님을 믿던 그들이 모두 타락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다 타락했으니 세상은 어떠 하겠는가 어느시대나 종교가 타락하면 세상은 자연히 타락한다. 그러한 시대에 예수께서 참 빛으로 오신 것이다. 가장 암흑의 시대에 주님이 빛으로 오신 것이다. 400년 동안 하나님이 선지자를 보내지 않으신 이 세상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타락한 것이다 그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님 은 이 땅에 빛으로 오신 것이다. 요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이 참 빛으로 오신 예수는 지금도 우리에게 빛으로 찾아 오셔서 우리를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이 빛이 없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 빛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빛을 받지 않은 자는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다시 말해서 인생을 방황만 하다가 생을 마치고 만다. 그들의 삶은 결국은 내가 무엇하며 이제껏 살아 왔는가 허무한 삶을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면서비통해 할것이다. 오늘 본문에 각 사람에게 빛이 비추어 주었다고 했다.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들어본다. "누가 한 번도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적이 없었다고. 그래서 난 예수를 안 맏었다 " 고 말한다 아니다. 있었다. 한 번도 아니고 더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빛의 소리를 들을 때는 그 사람이 너무 어둠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주님의 빛은 각 사람에게 골고루 비추어 주었다. 어둠이 깨닫지 못한 것이다. 빛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예수의 빛은 세상에 비추고 있다. 그 빛은 구원 소리로 .  말씀으로 . 성령님으로 . 세상에 비추고 있건만 저들은 모르고 있다.
사 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 성경은 이런 자들에게 무지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무지가 빛을 외면하고 깨닫지 못한 것이다. (엡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렘4: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각 사람에게 비추어 주신 이 참 빛을 내가 온전히 받아 들여서 가는곳 마다 예수의 빛을 비추어야 할 것이다. 이 빛이 있는 한 어둠의 세력은 마음대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이 참 빛의 능력을 과소평가 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 빛 앞에서는 그 어떤 귀신의 어둠이 세력도 버틸 수가 없다. 베드로가 나면서 부터 앉은뱅이 된 자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가 온전히 예수의 빛을 나타내자 평생을 앉은뱅이로 살며 구걸하던 거지가 어둠의 세계를 벗어났다. 이 빛 앞에서는 그 어떤 권세도 명예도 굴복하고 만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이 빛 앞에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다. 그렇게도 포악하고 악독한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빛 때문이었다. 이 빛 앞에는 나 자신을 던져 버릴수 밖에 없다. 이 참 빛이 여러분에게는 임했습니까 이 구원의 빛이  임했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예수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살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우리는 어둠의 세력에 지금 잡혀 있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것이다. 각 사람에게 비추어진 이 빛을 우리는 받아야 한다. 사 60:1 일어나라 ! 빛을 발하라 !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주님은 이 빛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이 빛이 없이는 우리는 이 어두운 흑암의 세력을 헤쳐 나갈 수도 없고 , 이길 수도 없다. 이 빛을 온전히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옆으로 비스듬히 서있지 마시고. 정면으로 빛 앞에 서서 오! 주여 !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저를 빛의 도구로 쓰시옵소서 !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0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그" 라는 단어가 3번 나온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그분이 바로 창조주 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가 지었는데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좀 이상한 말씀이죠 다시 말해서 세상이 마땅히 그 분을 알아보아야 하는데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바로 죄 때문이다. 이 죄가 눈과 귀를 다 가리고 막아 버리게 했다.
 "그" 가 세상에 계셨으며 초림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다 "그" 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며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다 "그"를 알지 못함 인간들의 무지함이다. 주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무시를 당한 것이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것만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백성들의 무지함도 무지함이지만 더욱 더 무지 한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무지함이 더 심각한 문제 였다.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리키는 바리새인들 말씀을 매일 기록하는 서기관들 매일 성전에서 경배 드리는 제사장들. 모두가 헛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타락된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이 무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헤롯 왕이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나겠느냐 그들은 정확히 미 5:2 장 예언된 곳을 말했다.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말씀을 알면서도 타락하는 이 타락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몰라서 타락하는 것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지만 그러나 말씀을 알고 타락하는 것은 무서운 죄악을 짖는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을 알고 있는 자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 사탄이 얼마나 말씀을 잘 아는지 모른다. 우리가 말씀만 알고 끝나 버린다면 사탄은 나를 사탄의 도구로 사용할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연약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면 그만큼 우리에게 애통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애통함도 없이 우리가 매일 말씀을 듣고 먹고 살면서도 내 죄를 모르고 산다면 이것처럼 비극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말씀으로 찾아오신 것은 내 삶이 빛을 위해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어둠에 속한 나에게 찾아오신 것이다. 예수께서 그렇게 이 땅을 오셨것만 저들은 지금 모두 모르고 있다. (사43:8) 눈이 있어도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귀머거리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 (사42:18)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그 분이 이 세상에 계신 것을 안 자 들이다. 세상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은 것을 안 자 들이다. 우리는 그 분이 누구이신 지 잘 알고 있다. 믿습니까 우리는 소경이 아니고, 귀머거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 머리로만 믿고있던 저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머리로 믿는 신앙. 이것처럼 무서운 신앙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머리로 믿는 신앙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더 나아가서는 예수 까지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짓을 서슴없이 하고 만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란다. 이 시대 듣기만 많이 들어서 머리만 커져 가지고 몸을 제대로 움직이는 못한 비정상적인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런 신앙을 가진 자는 나를 죽이고 내 가족까지 죽이고 더 나아가서는 교회 안에까지 가라지를 뿌리는 자가 되고 만다. 잘 들어보세요 ! 예수를 믿고 있는데 . 그 예수를 모르고 있다는 것 . 큰 문제 아닙니까 모른다는 말을 잘 새겨들으세요. 머리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예수가 이 땅에 오신 것을 내가 확실히 알고 그 예수를 확실히 안다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 ! 그 예수를 만났는데도 내 삶은 전혀 예수를 모르는 삶처럼 산다면 저 유대인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역사 이래로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삶이 변화 되게 되어 있다. 왜 ! 그 분이 참 빛이시기 때문에. 그 악한 사울이 예수를 만나서 사도 바울이 되었다. 무식한 고기 잡는 어부들이 예수를 만나서 사도들이 되었다.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를 만나자 그 삶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변했다.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음란한 수가성 여인이 예수를 만나자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욕심쟁이 부자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자 그 삶이 예수를 위해 살았다. 깡패였던 김익두 목사가 예수를 만나자 부흥사가 되었다. 이런 얘기는 오늘밤을 새어서 말해도 끝이 없을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변하지 않습니까 사울보다 우리가 더 악한가요 사마리아 여인보다 우리가 더 더러운 자들인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그 분이 누구이신 지 잘 압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은 너무 모르고 있는 삶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예수를 만난 자라면 지금부터라도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자라게끔 창조 되어있다. 우리의 신앙도 자라야 된다. 자라지 못하면 이것처럼 큰 비극은 없다. ' 예화 '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병졸들 중의 한 병사가 알렉산더라는 왕과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병사는 대단히 게으르고난폭하여 군대내 동료들간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대왕이 어느 날 그 병사를 찾았다. 그리고 이렇게 명령했다. "네 이름을 바꾸어라. 바꾸기 싫거든 네 삶을 바꾸어라. 그래서 그 이름의 오욕을 씻어라." 우리 주변에는 성도라 불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 성도라는 이름이 모독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 보라. 그 이름에 합당하게 삶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으나 주님 자신이 지은 땅에 주님 자신이 지은 인간들에게 오셨지만 철저하게 배척을 당하셨다. 자기 땅. 자기 백성. 깊은 의미를 던져 주는 말이다. 성경에서 가장 슬픈 구절이다.
 자기 땅 이 땅이 예수 것이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 백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영접지 아니했다 배척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태어나실 때부터 배척 당하셨다. 세상에서 사는 동안도 배척만 당하셨다. 인간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았다. 마침내 그 배척은 예수를 십자가 에 못박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배척 한 것은 아니었다 본문에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 하였으나 . 이 말은 영접하는 자가 있다는 의미이다.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가 있다. 우리는 예수를 영접 한 자들이다. 그러나 지금도 예수를 영접한자 들보다 영접치 아니한 자들이 더 많이 있다. 왜 ! 예수를 영접 안할까요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 왜 그 쉬운 예수를 영접 안할까 의문을 갖는다. 사람이 영접하고 싶다고 영접하는 것이 아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고. 다시 말해서 주님을 영접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허락이 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실 때 맨 처음 아기 예수를 영접 한자들은 누구입니까 들에 있는 목동들이다.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소식을 알려 주었다. 이 목동들에게 맨 처음 알린 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눅 2:8-20 당시에 목동들은 천한 직업. 지금도 그렇지만 . 그들이 어디 있었습니까 먼저 장소 광야이다. 빈 들. 대부분 예수를 영접하고 믿게 된자 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광야 같은 삶이었을 때 였다는게 공동점이다.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사업에 어려움이 오고. 건강에 문제가 오고. 삶 자체에 허무함을 가지고 있을 때 . 우리의 인생이 광야처럼 삭막할 때 예수를 영접했다. 저도 그럴 때 예수를 믿었다. 여러분도 그랬습니까 저희 어머니도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수를 믿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부한 상태에서는 예수가 들어오실 수 없다. 우리의 심령이 광야 같은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만 예수를 영접 하실 수 있다. 마 5:3 심령이 가난 한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부자들은 예수를 잘 안 믿는다. 모든 부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부자들에게는 복음이 잘 안 전해진다. 부자들이 열심히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예수 만났을 때 가난하고 죽을려고 한 자들이 예수를 마나서 부자가 된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에 다시오실 예수를 영접하려면 내 심령이 광야 같은 삶이 되어야만 한다. 우리의 심령이 너무 세상 것으로 부한 자가 되어 있어서는 절대 안된다 약 5: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여기에서 나온 부한 자들은 육적으로 부자들만 애기 한게 아니다. 심령이 부한 자들에게 경고하는 메시지 이다 이 천한 목동들이 맨 처음 예수를 영접하는 영광을 만났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게 무엇을 의미 해 줍니까 눅 2:8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광야의 밤이 얼마나 춥습니까 그러나 그들을 양 떼를 위해서 지키고 있었다. 밤을 무엇을 의미 영적으로 타락을 뜻한다. 주님이 언제 오셨습니까 밤에 오셨다. 영적으로 타락할 대로 타락한 밤에 주님은 오셨다. 그런 타락한 속에서도 광야에서 양떼를 지키는 목동들에게 이 기쁜 소식이 맨 처음 알려졌다. 마지막 때도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 속에서 광야 같은 삶을 살면서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다시오실 주님의 소식은 맨 먼저 알려지게 될 것이다. 또 예수를 영접 한자들이 누구입니까 동방 박사들이다 이들 역시 명예, 권세 다 뒤로하고 오직 예수를 만날려는 가난한 심령으로 왔기 때문에예수를 영접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예수님 제자들 역시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가난한 심령으로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제자들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니고데모 역시 자기의 지위와 권세 명예를 뒤로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왔기 때문에 그가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삭개오 역시 세리장이라는 지위와 권세를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기 때문에 예수를 만날 수 있었다. 우리의 심령은 지금 어떠합니까 내가 지금 예수를 영접한 자라면 우리의 심령은 지금 가난합니까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사는 자들과 내 심령이 다를 바가 없다면 어떻게 된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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