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가 될려면 (요1:9-13)
본문
여러분, 사람을 물질로 분해해서 그 재료들을 값으로 따진다면 얼마나 된 다고 생각하십니까 미국 뉴욕 대학의 교수인 봐이다 박사라는 분이 인간의 가치를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계산했습니다. "사람의 몸에는 다량의 석회질과 염분이 있고, 또 장난감 대포 한 번 쏠만큼의 포 타슘, 약 한 봉지 가량의 마그네슘, 성냥 3천개피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인(燐), 커다란 못 한 개 만들 수 있는 분량의 철분, 한 컵 정도의 설탕, 비누 다섯 장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지방(脂肪) 등으로 되어 있다. 물론 나 머지는 물이다. 따라서 무게 약 18관 되는 인간의 가치는 98센트, 현재의 환율로 환산하면 1,300원 가량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 값이 1,300원이라는 말에 동의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화학물질로 분석하 면 그 정도 가치밖에 안된다는 것이 과학자의 분석결과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노동생산성으로 평가하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 십니까 미국 매사추세츠 산업사고국이 지난 95년도에 사고로 인한 상해 보상액을 발표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글을 쓰는 쪽의 손가락 하나를 다 치면 3천1백20달러,다른 손가락은 2천6백75달러,눈과 팔,다리는 각각 9천9백달러"로 발표했습니다. 사망사고 가운데 최고의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항공기 사고인데 이 때의 보상액이 10만SDR, 약 10만 달라 정도로 계산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의 값이 지금의 환율로 환산하여도 1억4 천만원 정도 됩니다. 여러분, 누가 1억 4천만원에 천만원 더 얹어서 1억 5 천만원 주면 값을 잘받았다고 기꺼이 내 목숨을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1,300원짜리 물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자신 의 전부를 1억4천만원짜리라는 말에 동의하실 분이 계십니까 그럴 수 없 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단순히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계산할 수 없는 존재이고, 경제적 가치로만 계산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라고 하면 피카소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들은 경매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지만, 경매시장에 나 오면 그 값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높은 값으로 팔려 갑니다. 그 그림들은 종이나 천 위에 그린 유화 또는 뎃생 등인데 그 값이 집 수 십채 값에 팔리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그림을 피카소가 작업한 날수를 품삯으 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 그림들을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재료는 값나가는 것들이 아닙니다. 몇푼 안되는 종이, 천, 페인트, 물감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재적인 예술가의 혼이 들어간 작품으로 태어날 때 그 가치는 온 인류가 보존해야 할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한줌의 흙과 같은 존재에 불과 하고, 그의 생산성을 경제적으로 계산하여도 몇푼의 가치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흙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줌의 흙으로 지음받았지 만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천하와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 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것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아담이 하나님 앞에 죄 를 지은 후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스스로 하나님을 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 무화과 나무 그늘 밑으로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피하 고 숨은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자 폴 틸리히는 죄의 결과는 소외라고 했 습니다. 죄의 결과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믿게 합니다. 스 스로를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라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죄 때문에 인간은 자기 존재의 존귀함을 잊어버리고, 한 줌의 흙으로 생각하 고, 노동 생산성으로만 파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습니 까 사람을 평가할 때 얼마나 돈을 잘버느냐로 평가하고, 얼마나 좋은 집 에 사느냐로 평가하고, 그의 봉급이 얼마냐로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널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몇푼의 돈으로 평 가하는 일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를
1,300원짜리로 평가하고, 후하게 평가하는 것이 1억5천만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 사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다가 뒷마당의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의 날개 아래 넣어 두었습니다. 스무하루가 지나자 그 알에서 독수리 새끼가 부화되었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어미 닭을 따라다니면서 병아리가 하는 짓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병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독수리는 점점 커가면서 독수리의 외모를 갖추었지만, 자신은 닭 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땅을 긁고 헤쳐 벌레와 곤충을 잡 아 먹는 일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날개를 치면 날수 있었지만, 자신은 닭 이기 때문에 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늙어갔습니다. 어떤 날 그 늙은 독수 리는 창공 높이 날고 있는 멋진 새를 보았습니다. 그 늙은 독수리는 놀랍 다는 듯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쳐다 보면서, "저게 누구지"하고 물었습니다. "그건 독수리, 새 중 왕이야"라고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늙은 독수리는 부러운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새는 하늘에 속해 있고 우리는 땅에 속해 있는 닭이로구나" 그리하여 그 독수리는 닭으로 살고 또한 닭으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닭으로 생각하고 닭으로 믿었기 때 문입니다. 이 독수리에게는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독수 리로 태어나서 한번도 하늘을 날아보지 못하고 죽은 독수리의 모습이 혹 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렇게 죄란 자신을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믿게 하는 무서운 능력입니다. 죄는 하나님으로 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힘입니다. 이 사슬을 끊어내지 아니하고서는 인간은 자신을 발견할 수 없으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슬을 끊어내지 아니하고서는 인간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까 못배운 사람입니까 건강하지 못한 사람입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 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자살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자살한 남녀 중고생은 1백8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는 초등학생과 학교울타리 밖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자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자살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고신의대 부속 복음병원 가정의학과 교실 장윤영 차형수씨와 동아대학교 교육학과 이정희씨가 부산지역의 대학생 220명을 대상으로 공동연구하여 지난 해 8월 '가정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 나라 대학생들 은 절망감보다는 자부심이 부족하고 사회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한다고 합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자살성향과 관련이 있는 요인은 우 울감, 자부심 부족, 사회적 지지 부족 순으로 나타났는데, 자부심과 사회적 지지 부족은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실은 자부심 부족이 가장 근본 적인 자살동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영양의 부족이 아닙니다. 물질적 부족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절박한 가난도 아닙니다. 저들에 게 가장 심각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정체성의 위기라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에 부딪히 면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지금보다 가난했고, 배우지 못해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옛선비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따 라 외길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평생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식에게까지 "나처럼 살아라. 나를 본받으라"고 떳떳하게 말했습니다. 문벌을 지키고 가풍을 전승하라고 고집도 부렸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처럼 확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부모도 없고, 스승도 없습니다. 그 결 과 청소년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 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자기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를 다시 찾고, 자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칼빈 (Calvin)은 "하나님을 아는 일은 곧 인간을 아는 일이다."고 했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알 때 비로서 자기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자신이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자신이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이나 노력에 의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몇푼짜리 물건으로, 또는 몇만원짜리 인생으 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죄라는 강력한 힘 이 그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고, 그렇게 믿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으면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자신 은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길이 열 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죄의 사슬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이 내신 길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는 인간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살아 가는데 편리한 것들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 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인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지만, 사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주지 못합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주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이 발달하면 발달할수 록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지는 반면에 인간의 마음은 더욱 공허해지고, 이 궁극적 질문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몰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고 있으면 그는 인생(生)의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의 근 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 와 어떤 관계를 가질 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은 "예수 믿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 녀라 생각하고, 이웃을 형제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고, 나는 하나님 의 자녀로 알게 되며, 우리 이웃을 우리의 형제로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이웃을 아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자기의 가치를 아는 것이요, 자기가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것이요,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너무 분명 히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 제일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한 것"(고전10:31)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견고해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가 된다"(롬4:20)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 을수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신 값으로 치르실만큼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고,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 한 영이신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제대 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자기 존재 가치의 재발견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 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천하보다 더 귀한 하늘 나라의 왕자요 공주임 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하는 일들은 왕자가 하시는 일이요, 공 주가 하시는 일임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파견되었음을 발 견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이 땅에서 소임을 다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보좌에서 열두지파를 다스리는 왕권의 상속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아는 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과학이 아닙니다. 문학이 아닙니다. 도덕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얻을 자 가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가장 쉬운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은 어린 아이라 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팔-다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1급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 세상의 어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따라서 무능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능력자가 되고, 미 련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지혜로운 자가 되고, 천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존귀한 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사슬에 메어있는 자가 예수를 믿 으면 그 사슬을 끊고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몰 라도 좋습니다. 글을 몰라 성경을 읽을 수 없어도 좋습니다. 타고난 음치 라서 찬송을 부를 수 없어도 좋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오늘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된 선언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시 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영생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를 화학물질로 분석하 면 그 정도 가치밖에 안된다는 것이 과학자의 분석결과입니다. 그러면 사람을 노동생산성으로 평가하면 그 가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 십니까 미국 매사추세츠 산업사고국이 지난 95년도에 사고로 인한 상해 보상액을 발표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글을 쓰는 쪽의 손가락 하나를 다 치면 3천1백20달러,다른 손가락은 2천6백75달러,눈과 팔,다리는 각각 9천9백달러"로 발표했습니다. 사망사고 가운데 최고의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항공기 사고인데 이 때의 보상액이 10만SDR, 약 10만 달라 정도로 계산 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 사람의 값이 지금의 환율로 환산하여도 1억4 천만원 정도 됩니다. 여러분, 누가 1억 4천만원에 천만원 더 얹어서 1억 5 천만원 주면 값을 잘받았다고 기꺼이 내 목숨을 내어 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을 1,300원짜리 물건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자신 의 전부를 1억4천만원짜리라는 말에 동의하실 분이 계십니까 그럴 수 없 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단순히 화학적으로 분석하여 계산할 수 없는 존재이고, 경제적 가치로만 계산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최고의 화가라고 하면 피카소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피카소가 그린 그림들은 경매시장에 잘 나오지도 않지만, 경매시장에 나 오면 그 값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의 높은 값으로 팔려 갑니다. 그 그림들은 종이나 천 위에 그린 유화 또는 뎃생 등인데 그 값이 집 수 십채 값에 팔리는 것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림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그림을 피카소가 작업한 날수를 품삯으 로 계산한다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 그림들을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렇게 계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것입니다. 재료는 값나가는 것들이 아닙니다. 몇푼 안되는 종이, 천, 페인트, 물감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천재적인 예술가의 혼이 들어간 작품으로 태어날 때 그 가치는 온 인류가 보존해야 할 인류의 유산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도 화학적으로 분석하면 한줌의 흙과 같은 존재에 불과 하고, 그의 생산성을 경제적으로 계산하여도 몇푼의 가치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한 흙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줌의 흙으로 지음받았지 만 하나님의 숨결이 불어넣어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천하와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가 바로 우리 사람 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이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입 니까 바로 죄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온 것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아담이 하나님 앞에 죄 를 지은 후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스스로 하나님을 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뵙기가 두려워 무화과 나무 그늘 밑으로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피하 고 숨은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자 폴 틸리히는 죄의 결과는 소외라고 했 습니다. 죄의 결과는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믿게 합니다. 스 스로를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라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죄 때문에 인간은 자기 존재의 존귀함을 잊어버리고, 한 줌의 흙으로 생각하 고, 노동 생산성으로만 파악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습니 까 사람을 평가할 때 얼마나 돈을 잘버느냐로 평가하고, 얼마나 좋은 집 에 사느냐로 평가하고, 그의 봉급이 얼마냐로 평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널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을 몇푼의 돈으로 평 가하는 일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를
1,300원짜리로 평가하고, 후하게 평가하는 것이 1억5천만원 정도로 평가하고 있는 사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 하나를 주워다가 뒷마당의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의 날개 아래 넣어 두었습니다. 스무하루가 지나자 그 알에서 독수리 새끼가 부화되었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어미 닭을 따라다니면서 병아리가 하는 짓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병아리라고 믿었습니다. 그 독수리는 점점 커가면서 독수리의 외모를 갖추었지만, 자신은 닭 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땅을 긁고 헤쳐 벌레와 곤충을 잡 아 먹는 일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날개를 치면 날수 있었지만, 자신은 닭 이기 때문에 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늙어갔습니다. 어떤 날 그 늙은 독수 리는 창공 높이 날고 있는 멋진 새를 보았습니다. 그 늙은 독수리는 놀랍 다는 듯이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쳐다 보면서, "저게 누구지"하고 물었습니다. "그건 독수리, 새 중 왕이야"라고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늙은 독수리는 부러운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새는 하늘에 속해 있고 우리는 땅에 속해 있는 닭이로구나" 그리하여 그 독수리는 닭으로 살고 또한 닭으로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닭으로 생각하고 닭으로 믿었기 때 문입니다. 이 독수리에게는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있습니까 독수 리로 태어나서 한번도 하늘을 날아보지 못하고 죽은 독수리의 모습이 혹 시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렇게 죄란 자신을 하나님과 관계없는 존재로 생각하게 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믿게 하는 무서운 능력입니다. 죄는 하나님으로 부터 자신을 소외시키는 힘입니다. 이 사슬을 끊어내지 아니하고서는 인간은 자신을 발견할 수 없으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슬을 끊어내지 아니하고서는 인간에게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누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까 가난한 사람입니까 못배운 사람입니까 건강하지 못한 사람입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천하보다 더 귀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마땅히 받아야 할 하나님의 자녀 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자살이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자살한 남녀 중고생은 1백8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 통계에는 초등학생과 학교울타리 밖에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숫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자살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더 많이 늘어날 것입니다. 청소년들의 자살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고신의대 부속 복음병원 가정의학과 교실 장윤영 차형수씨와 동아대학교 교육학과 이정희씨가 부산지역의 대학생 220명을 대상으로 공동연구하여 지난 해 8월 '가정의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 나라 대학생들 은 절망감보다는 자부심이 부족하고 사회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살한다고 합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자살성향과 관련이 있는 요인은 우 울감, 자부심 부족, 사회적 지지 부족 순으로 나타났는데, 자부심과 사회적 지지 부족은 우울감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실은 자부심 부족이 가장 근본 적인 자살동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영양의 부족이 아닙니다. 물질적 부족이 아닙니다. 경우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절박한 가난도 아닙니다. 저들에 게 가장 심각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을 정체성의 위기라고 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습니다.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어려운 일에 부딪히 면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지금보다 가난했고, 배우지 못해 무지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삶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확신이 있었습니다. 고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옛선비들은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따 라 외길 인생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대로 평생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자식에게까지 "나처럼 살아라. 나를 본받으라"고 떳떳하게 말했습니다. 문벌을 지키고 가풍을 전승하라고 고집도 부렸습니다.
그런데 요사이는 이처럼 확신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는 부모도 없고, 스승도 없습니다. 그 결 과 청소년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확실한 대답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그래서 저 들은 조그만 어려움이 와도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자기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를 다시 찾고, 자기를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칼빈 (Calvin)은 "하나님을 아는 일은 곧 인간을 아는 일이다."고 했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을 알 때 비로서 자기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자신이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때 자신이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사람의 뜻이나 노력에 의해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몇푼짜리 물건으로, 또는 몇만원짜리 인생으 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죄라는 강력한 힘 이 그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고, 그렇게 믿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으면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감을 잃게 되고, 자신 은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하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길이 열 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죄의 사슬을 풀 수 있는 길이 있습니까 그 길이 바로 하나님이 내신 길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상에는 인간생활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이 살아 가는데 편리한 것들을 제공해 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 지 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인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지만, 사람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코 주지 못합니다. 인간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주지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 철학, 문학, 예술 등이 발달하면 발달할수 록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지는 반면에 인간의 마음은 더욱 공허해지고, 이 궁극적 질문에 대한 갈증은 더욱 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그것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몰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고 있으면 그는 인생(生)의 모든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생사화복의 근 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면 내가 예수 그리스도 와 어떤 관계를 가질 때 그리스도를 알 수 있으며,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의 관계입니다. 오늘 말씀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신학자 아돌프 폰 하르낙은 "예수 믿는 사람이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자 녀라 생각하고, 이웃을 형제로 여기며 사는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게 되고, 나는 하나님 의 자녀로 알게 되며, 우리 이웃을 우리의 형제로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이웃을 아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자기의 가치를 아는 것이요, 자기가 세상에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것이요, 자신이 왜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부터 자신의 존재 이유를 너무 분명 히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의 제일 목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 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한 것"(고전10:31)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견고해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가 된다"(롬4:20)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믿으면 믿 을수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신 값으로 치르실만큼 가치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되고, 자신은 하나님의 거룩 한 영이신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음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제대 로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자기 존재 가치의 재발견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 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이 천하보다 더 귀한 하늘 나라의 왕자요 공주임 을 아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하는 일들은 왕자가 하시는 일이요, 공 주가 하시는 일임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에 사는 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파견되었음을 발 견하는 일입니다. 더 나아가 내가 이 땅에서 소임을 다하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보좌에서 열두지파를 다스리는 왕권의 상속자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를 아는 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과학이 아닙니다. 문학이 아닙니다. 도덕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의로운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얻을 자 가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란 가장 쉬운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것은 어린 아이라 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팔-다리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1급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 세상의 어느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강력한 능력입니다. 따라서 무능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능력자가 되고, 미 련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지혜로운 자가 되고, 천한 자가 예수를 믿으면 존귀한 자가 됩니다. 더 나아가 죽음의 사슬에 메어있는 자가 예수를 믿 으면 그 사슬을 끊고 영생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몰 라도 좋습니다. 글을 몰라 성경을 읽을 수 없어도 좋습니다. 타고난 음치 라서 찬송을 부를 수 없어도 좋습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 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오늘 아침에 주시는 하나님의 복된 선언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시 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영생의 능력을 가진 자가 됩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아멘으로 영접하는 자, 그는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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