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요20:1-10)
본문
오늘은 기쁘고 즐거운 부활주일입니다. 이 거룩한 부활에 참여하여 새로운 생명을 얻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넘치시길 기도드립니다. 부활절은 2000여년전 겟세마네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간증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심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현대적 의미-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믿음으로서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실로 믿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체험으로 삼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엡5:14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하며, 육적인 생활은 죽고 영적으로 되살아나야 하며, 죄는 장사지내고 의에 다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며 이것이 우리의 믿음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장래의 될 일에 대한 예표입니다. 요 5:28-29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장래 성도의 부활과 이미 얻은 생명이 계속된다는 곧 영생에 대한 예표이며 확증입니다.
1. 부활의 역사는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세계를 크게 변동시킨 사건은 여러가지입니다. 전쟁, 새로운 발명,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세계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됩니다. 이런 많은 사건 가운데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시킨 것이 여러가지 입니다.
1,2차 세계대전, 자동차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 등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인류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 최대의 적인 죽음을 앞에 두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의 기적적인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건인 동시에 세계를 움직이는 시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지상의 인류의 1/3이 예수의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을 따라 살고 있으며, 우리 나라 인구의 1/4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은 극성스럽게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를 처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예수를 죽이려고 날뛰던 그들은 결국 예수를 처형한 지 40년도 못되어 유대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은 추방되어 2차대전이 끝난 1948년까지 약 2000년 동안 조국을 잃어버린 자들이 되었다. 그 때 예수를 죽였던 로마는 세계를 제패하며 가장 큰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를 죽인 지 300년이 지난 후에 그 예수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그렇게 열심히 증거하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만일 부활이 거짓이며 꾸며낸 연극이라면 그 조작극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며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가
그러므로 부활은 진실이며, 부활의 바탕위에 복음은 불꽃처럼 퍼지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고전 15:14-19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면 우리의 전도도 헛것이요, 신앙도 헛것이며, . 성도들은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찾기 위해 메달렸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뒤 당시 공회의원 가운데 부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쓰려고 미리 장만해 둔 묘실(돌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담장(擔葬)해 장사지내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이 벌써 죽었는지를 백부장을 불러 확인한 뒤 그에게 시신을 내어 주었다(마27:59161,막15:46147,눅23:53,요19:39142). 게다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어떤 말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묘실을 큰 돌로 봉인하고 군사를 보내 지키도록 했다.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얻어 행한 것이다. 이같은 철저한 시신관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결코 찾지 못했다. 부활의 신앙을 꺾어버리기위해 당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데 동원된 사람들은 대략 1백만명으로 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신학자 철학자 고고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생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방사선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는 모두 동원됐다. 단일사건을 추적키위해 이처럼 엄청난 수의 전문가가 동원된 사건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이다.부활을 부정하려면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내라는 신학자들의 공격에 부활부정론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에덴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에덴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하므로 결국 인간은 죽음의 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죽을 인류의 운명은 갈보리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가 살 운명으로 바꾸셨다.
2. 살아계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지 맙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지낸 후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의 여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달려갔다. 이 여인들은 죽은 예수의 시체를 찾아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무덤 입구에 있는 큰 돌이었다. 과연 이 돌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서 주님을 만날까 사실 무덤에 가도 그 돌대문에 주님에게 향유를 발라준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3일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생각하니 그녀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여서 견딜수가 없어서 향유를 가지고 새벽 일찍이 주님의 무덤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돌문은 열려져 있고 들어가 보니 주님의 시체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리아는 사라진 세마포만 남겨진 주님이 누었던 곳을 보며 통곡을 하였다. 그때 마리아는 그의 뒤에 흰옷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우리 주님의 시신을 가져간 사람을 말해 주시오”라고 말하자, 주님은 마리아에게 “여인이여 왜 우느냐 어찌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 분은 여기 계시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이미 살아나셨다. ” 즉 “왜 산자를 죽은 자(송장) 가운데서 찾느냐”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골고다의 종교, 해골의 역사와 죽음의 소리 밖에는 아무것도 전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거짓은 진리를 사망은 생명을 짓눌러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으심으로써 진리가 거짓을, 사랑이 미움을, 생명이 죽음을, 사랑이 원수를 이기고 일어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를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죽음을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죽을 것 가운데서, 죽는 것을 향하여 그것을 찾고 메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데 마리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것 가운데서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질은 죽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육신은 죽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지식과 이 땅의 것은 죽을 것입니다. 죽을 것에서는 죽을 것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은 성도는 더 이상 죽음의 문제로 인하여, 죽음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음에 머물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산 것을 향한 신앙입니다. 생명의 신앙입니다. 오늘 부활의 신앙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시요. 예수가 살아나신 빈무덤을 세상의 사람들은 이야기거리로 삼고, 신학자들은 변론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러나 빈무덤은 주님의 부할의 증거이며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히 실의와 절망에서 소생한 것 뿐만 아니라 죽은 인류를 살리려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자랑해야 합니다. 영생의 길이 여기 있습니다. 참 생명의 길이 여기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자기가 직접 듣고, 보고, 만져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을 우리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할을 경험하고 증거하는 신앙인들이 교회의 기초를 이루며, 새로운 역사창조의 기수가 되며, 선교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이론이나, 교리나, 신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믿음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부활을 과거의 사실로 믿을 뿐만 아니라 현재 나의 심령에 체험하여야 합니다. “수천번 예수님이 탄생하신다 해도 내 마음속에 탄생하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수천번 예루살렘에 부활하셨다 하더라도 내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만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베드로와 많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놀라운 증인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증거하였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를 기뻐하시고 증거하는 신앙인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그리스도의 역사가 오늘 우리 안에 더불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엡5:14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도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어야 하며, 육적인 생활은 죽고 영적으로 되살아나야 하며, 죄는 장사지내고 의에 다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며 이것이 우리의 믿음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장래의 될 일에 대한 예표입니다. 요 5:28-29에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장래 성도의 부활과 이미 얻은 생명이 계속된다는 곧 영생에 대한 예표이며 확증입니다.
1. 부활의 역사는 인류 최대의 사건입니다. 세계를 크게 변동시킨 사건은 여러가지입니다. 전쟁, 새로운 발명, 천재지변으로 인하여 세계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됩니다. 이런 많은 사건 가운데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를 시킨 것이 여러가지 입니다.
1,2차 세계대전, 자동차의 발명, 컴퓨터의 발명, 구약시대 노아의 홍수 등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 가운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인류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 최대의 적인 죽음을 앞에 두고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의 기적적인 생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사건인 동시에 세계를 움직이는 시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지상의 인류의 1/3이 예수의 열어 놓으신 생명의 길을 따라 살고 있으며, 우리 나라 인구의 1/4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를 죽인 유대인들은 극성스럽게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를 처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예수를 죽이려고 날뛰던 그들은 결국 예수를 처형한 지 40년도 못되어 유대인들의 성읍인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은 추방되어 2차대전이 끝난 1948년까지 약 2000년 동안 조국을 잃어버린 자들이 되었다. 그 때 예수를 죽였던 로마는 세계를 제패하며 가장 큰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를 죽인 지 300년이 지난 후에 그 예수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가 복음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수 있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을 그렇게 열심히 증거하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만일 부활이 거짓이며 꾸며낸 연극이라면 그 조작극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며 복음을 전할 수가 있는가
그러므로 부활은 진실이며, 부활의 바탕위에 복음은 불꽃처럼 퍼지기 시작하였다. 바울은 고전 15:14-19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했다면 우리의 전도도 헛것이요, 신앙도 헛것이며, . 성도들은 가장 불쌍한 자가 될 것이라” 엄청난 사람들이 예수의 시체를 찾기 위해 메달렸다. 예수님이 운명하신 뒤 당시 공회의원 가운데 부자였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쓰려고 미리 장만해 둔 묘실(돌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담장(擔葬)해 장사지내려고 한 것이다. 여기서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이 벌써 죽었는지를 백부장을 불러 확인한 뒤 그에게 시신을 내어 주었다(마27:59161,막15:46147,눅23:53,요19:39142). 게다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다는 어떤 말도 만들어 내지 못하도록 하기위해 묘실을 큰 돌로 봉인하고 군사를 보내 지키도록 했다.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얻어 행한 것이다. 이같은 철저한 시신관리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결코 찾지 못했다. 부활의 신앙을 꺾어버리기위해 당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시신을 찾는데 동원된 사람들은 대략 1백만명으로 신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그리고 신학자 철학자 고고학자 지리학자 지질학자 생물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방사선과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는 모두 동원됐다. 단일사건을 추적키위해 이처럼 엄청난 수의 전문가가 동원된 사건도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이다.부활을 부정하려면 예수님의 시신을 찾아내라는 신학자들의 공격에 부활부정론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에덴의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에덴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하므로 결국 인간은 죽음의 운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죽을 인류의 운명은 갈보리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가 살 운명으로 바꾸셨다.
2. 살아계신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지 맙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지낸 후 안식일 다음날 즉 주일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의 여자들이 예수의 무덤에 달려갔다. 이 여인들은 죽은 예수의 시체를 찾아간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무덤 입구에 있는 큰 돌이었다. 과연 이 돌을 어떻게 열고 들어가서 주님을 만날까 사실 무덤에 가도 그 돌대문에 주님에게 향유를 발라준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3일전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생각하니 그녀는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허전하여서 견딜수가 없어서 향유를 가지고 새벽 일찍이 주님의 무덤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돌문은 열려져 있고 들어가 보니 주님의 시체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마리아는 사라진 세마포만 남겨진 주님이 누었던 곳을 보며 통곡을 하였다. 그때 마리아는 그의 뒤에 흰옷 입은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가 동산지기인줄 알고 “우리 주님의 시신을 가져간 사람을 말해 주시오”라고 말하자, 주님은 마리아에게 “여인이여 왜 우느냐 어찌 산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 분은 여기 계시지 아니하시고 말씀하신대로 이미 살아나셨다. ” 즉 “왜 산자를 죽은 자(송장) 가운데서 찾느냐” 만일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골고다의 종교, 해골의 역사와 죽음의 소리 밖에는 아무것도 전할 것이 없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거짓은 진리를 사망은 생명을 짓눌러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살으심으로써 진리가 거짓을, 사랑이 미움을, 생명이 죽음을, 사랑이 원수를 이기고 일어선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기독교를 생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죽음을 극복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죽을 것 가운데서, 죽는 것을 향하여 그것을 찾고 메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는데 마리아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은 것 가운데서 찾지 말라고 하십니다. 물질은 죽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육신은 죽을 것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명예와 권력과 지식과 이 땅의 것은 죽을 것입니다. 죽을 것에서는 죽을 것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을 갖은 성도는 더 이상 죽음의 문제로 인하여, 죽음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죽음에 머물고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부활의 신앙입니다. 산 것을 향한 신앙입니다. 생명의 신앙입니다. 오늘 부활의 신앙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시요. 예수가 살아나신 빈무덤을 세상의 사람들은 이야기거리로 삼고, 신학자들은 변론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러나 빈무덤은 주님의 부할의 증거이며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단순히 실의와 절망에서 소생한 것 뿐만 아니라 죽은 인류를 살리려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을 자랑해야 합니다. 영생의 길이 여기 있습니다. 참 생명의 길이 여기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자기가 직접 듣고, 보고, 만져본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부활을 우리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부할을 경험하고 증거하는 신앙인들이 교회의 기초를 이루며, 새로운 역사창조의 기수가 되며, 선교의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의 이론이나, 교리나, 신조가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믿음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는 부활을 과거의 사실로 믿을 뿐만 아니라 현재 나의 심령에 체험하여야 합니다. “수천번 예수님이 탄생하신다 해도 내 마음속에 탄생하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수천번 예루살렘에 부활하셨다 하더라도 내 속에서 주님의 부활을 만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베드로와 많은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 놀라운 증인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증거하였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를 기뻐하시고 증거하는 신앙인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의 그리스도의 역사가 오늘 우리 안에 더불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