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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말고 부활의 주를 보라 (요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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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역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사회적 분위기는 어떤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칠 줄 모르는 성장의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내 것을 내어 놓아 야 하고, 생활의 규모와 스타일을 줄이거나 바꿔야 하는데 따른 두려움과 공포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금을 625 이후 최대의 난국이라고 했습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세계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지금의 어 려움은 하나의 도전인데, 이 도전에 우리가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우리 조국과 역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99년 부활절 아침에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도전 앞에 선 우리에게 "울 지만 말고 부활하신 주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렵다고 울고 두 려워 하기만 한다고 이 어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까 우리의 어려움을 누가 막아줍니까 우리가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 도전에 응전해 나가야 합니다. 그 이기는 비결과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오는 것 입니다. 물론 지금 언론이나 방송은 시대가 어렵다고 연일 보도하고, 국민에 게 물자절약과 나라살리기 운동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 수록 사회는 더 위축되고,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한계요, 언론의 한계입니다. 그 이유는 이런 도전에 대해 서 바른 응전을 할 수 있는 힘은 세상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부활 하신 주님만이 이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할 수 있는 힘과 비결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대속제물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가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신 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 탁하나이다"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후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허락받아 예수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려 수의로 싸고 몰약을 발라 자신이 들어가려고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모 시고 그 입구를 큰 돌로 막은 후 인봉했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가 살아 있을 때 사흘만에 부활한다고 했습니다. 이러므로 혹시 그의 제잘들이 시체를 훔 쳐가는 날이면 후환이 클 것입니다. 그러니 군대를 파견해서 무덤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빌라도는 완전무장한 군대를 보 내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두 여인이 향유를 들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저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무덤을 가로막고 있는 큰 돌을 걱정하면서 "누가 우리를 위해 무덤문을 열 어줄꼬"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갔습니다.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은 누군가에 의해 굴려져 있고, 무덤 안에 계셔야 할 예수님의 시신 이 없어진 것입니다.
곧 바로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누가 예수님 의 시신을 훔쳐간 것 같은데, 어디에 숨겼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와 제자들이 무덤으로 달려가 보고 마리아의 말대로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자들이 다 돌아간 후 마리아는 무덤 앞에서 울고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억울하게 죽으신 것만도 분한데, 이제는 시신까지 뒤로 빼돌 려 감쪽같이 없앤 일이 분하기도 하고, 또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무덤 앞을 떠날 생각도 아니하고 울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생전에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예루 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 으리라. 그러나 나는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하신 말씀을 하셨지만, 자 기가 막상 슬픔을 당하고 보니 이런 말씀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울다가 혹시 하는 생각으로 무덤 안을 다시 들여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놓인 자리에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머리가 놓인 자리에,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발이 놓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울면서 무덤을 들여다 보는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 하여 우느냐" 하고 이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에 대해 마리아는 "사람들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해서 억울하고 슬퍼서 웁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 들이 천사들인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머리를 돌려 무덤 밖을 보니 어떤 사람이 서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라고 똑같은 질문을 마리아에게 합니다. 마 리아는 그 사람이 그 동산을 지키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말하기를 "아저 씨, 당신이 혹시 우리 주님의 시신을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해 주십시오. 그리하면 내가 모시겠습니다." 라고 사정합니다. 이 분은 바로 부 활하신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생전의 그 부드러운 음성으로 "마리아야!" 하고 불러 주셨습니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 마리아는 주님에 대한 믿음이 회복 되었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 생 전에 말씀하셨던 부활에 대한 말씀들이 그의 가슴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마리아는 비로소 이 분이 바로 주님이시고, 주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이 아니 라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너무 감격스러워 아 무 말도 못하고 다만 "선생님!" 할 뿐입니다. 그 이상의 말을 더 잇지 못했 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감격하면 말을 잇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마리아야, 너는 여기에서 울지만 말고 내 형제들에게 가라. 가서 전하라.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 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는 말을 전하라" 고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우는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달려 갔 습니다. 지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제자들에게로, 예루살렘을 덥고 있던 죽음의 공포에 두려워 떨고 있는 120명의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저들에 게 "내가 주를 보았다."고 부활의 소식을 랄렸습니다. 물론 주님께서 부탁하 신 말씀도 잊지 않고 제자들에게 충실히 전했습니다. 이 자리가 바로 새 역 사, 즉 이제 새롭게 열려지는 교회시대의 출발점이 됩니다. 기독교 2천년이 바로 마리아가 울고 있던 자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울고 있던 마리아를 이렇게 바꾸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부활 체험입니다. 즉 부 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여러분, 지금 슬픈 자리에 서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이 아침 부활하신 주님 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지금 눈물만 나는 고통스런 자리에 처한 분이 계십 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업에 어렵습니까 병마에 시달리다 지친 분이 계십니까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하는 일마다 실패만 거듭하여 의욕을 잃고 삶의 기쁨을 잃어버린 분이 계십니까 부활하신 주 님을 만나십시오. 이 아침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부활하신 주 님을 바라보는 자, 그의 음성을 듣는 자는 믿음이 회복되고, 이 믿음이 여러분을 슬픔과 고통과 병마의 아픈 자리에서 일으킬 것입니다. 실패의 쓴 잔 을 마시는 자리가 사명을 얻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가장 낙심 된 자리가 인생의 새출발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병마로 시달리며 누워있던 자리가 일 어서서 건강한 인생을 걸어가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자리 가 행복이 시작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1864년 덴마크는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 습니다. 그 결과 기름진 남부의 실레스비히와 홀스타인 두 주를 빼앗기고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물어야만 했습니다. 국민 전체는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덴마크는 이제 지도상에서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다가온 시련과 도전이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이 도전에 응전의 나팔을 불고 나온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그룬트비 목사였습니다. 그는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혼 란 가운데서 분연히 일어나서 세가지 구호를 부르짖으며, 신앙 부활, 역사 부활, 국토 부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운동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사랑하자" 라는 삼애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농민 학교를 세워 성경을 기초로 한 정신적인 자원을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동안 멀어졌던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 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저들에게 희망이 보 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신앙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룬트 비 목사님은 덴마크를 재건하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가르침과 신 앙 지도를 따라 덴마크가 다시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패전하고 돌아온 용병 달가스 대령이었습니다. 그는 국민들 앞에 "밖에서 잃은 국토, 안에서 찾자" 라며 호소했습니다. 그는 넓지만 늪 지대요, 동토인 유틀란트 반도를 개간하여 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믿음을 갖고 버려진 땅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세찬 바람과 이슬과 서리 때문에 보통 나무들이 견디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달가스 대령 은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해서 새로운 종자의 나무를 만들 어 냈습니다. 그의 집념어린 연구를 통해서 알프스 산의 전나무를 접붙여 동토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우수한 품종의 나무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를 모든 북부의 해변에 심었는데 그 나무들이 자라 울창한 숲을 이 루었고 차가운 바람을 다 막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그 땅에 들어가서 늪지대의 물을 퍼내고 온갖 어려움과 싸우면서 개척해 나갔습니다. 덴마크는 그 후 백년만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 적인 낙농국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또한 자원을 개발해서 공업국으로도 번 영하게 되고, 오늘날 세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로 부흥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절망에 처한 자들에게 꿈을 갖게 하고, 부활의 은혜 를 입은 자들은 고난을 극복하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패 전국 덴마크, 덴마크 역사상 가장 힘들고 두려웠던 그 순간이 오늘날 가장 살기 좋은 나라 덴마크 건설이 시작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거센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이 도전 앞에 우리 민족이 신앙으로 무장하여 용감하게 대응해 나간다면 우리 하나님은 덴마크에서 일 어난 기적을 우리 한국 땅에도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국의 그 룬트비, 한국의 달가스가 될 때에 100년 후 우리 조국을 물려받은 우리의 후손들은 세계 제일의 선진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가장 깨끗하고, 가장 살기좋은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출발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 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어렵다고 포기하실 것입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제 눈을 들어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 보십시다. 그리하 여 자랑스런 조국, 자랑스런 역사, 자랑스런 가문을 소망하고, 이를 물려주 십시다. 우리가 포기하면 우리도 망하고, 우리 후손도 망하고, 우리 나라와 역사도 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고, 어려운 자리 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 역사와 시대에 대해 우리가 해 야 할 사명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수행할 힘과 용기를 얻 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꿈을 가지십시다. 꿈은 자신이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 들이 진정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목표도 없고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나 가정이나 족속은 지금은 번성하는 것 같으나 종국에는 망합니다. 이런 사실은 역사를 통해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꿈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 즉 희망의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은, 꿈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가지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이 믿음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여러차례 부활에 관한 말씀 을 듣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기 전까지는 그에게 희 망과 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 본 후 그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으로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들고 제자들에게 달려갔고, 박해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의 역사를 시작하는 자리를 떠나지 않게 했습니다. 우리가 답답한 현실로 인해 안타깝고 슬픔에 빠질지라도, 이곳에서 믿음을 가질 때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꾸게 하시고, 그 일을 감당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그 슬픔의 자리를 새 역사를 시작하는 자리로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제 울지만 마십시오. 그리고 그 우는 자리를 피하지도 마십시오. 믿음의 이기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꿈을 꾸십시오. 그 자리 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은 부활로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두려움과 아픔과 슬픔과 눈물 은 부활로 나아가기 위한 십자가입니다. 부활은 이러한 고통이 있은 후에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기억해 보십시오. 십자가 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 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절규하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을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온 세계에 희망과 영원한 빛이 되셨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복음의 열매는 십자가 고난을 통해 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과 의로움의 열매가 열립니다. 십자가를 통해야 하나님과 화해가 되고 성령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십자가 고난 때문에 우리는 치료함을 받고 저주와 가난에서 해방되며, 두려움과 공 포를 이기고, 사망과 심판을 이기고, 천국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을 모리아 산 에서 시험하셨듯이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꿈을 가져야 됩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나오는 희망찬 부활의 꿈을 가슴속에 품어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의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고 그 고난의 자리를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복된 자리로 받아들 여야 합니다. 그러면 종국적으로 우리에게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 안땅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 라보는 자 그는 새 역사를 시작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가문의 역사를 시 작하는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게 될 것입니다. 찬란한 조국의 미래를 일으 킨 역사의 페이지에 그 이름이 쓰여질 것입니다. 이 보다 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은 그 이름이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생명록에 기록될 것이고, 영원한 그 나라의 보좌에 앉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우리 후손을 위하여 기도하는 행복을 주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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