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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받으라 (요20:19-23)

본문

여러분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3후에 다시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자-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때,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 부활의 아침 그 시간에 사랑하는 11 제자들/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들 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 조금은 궁금하지 않습니까-저들은 주님과 3년 동안이나 생 사를/ 고락을 함께 나무며 또한 배ㅇ떤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특별히 많이 받았던 자들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제자들이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던 그 때그 날 에/ 또 부활의 그날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것을 한번 알아 볼 필요 가 있지 않겠습니까-생각해 보면 저들도 나름대로 3년동안 주님을 따라 다니면서, 많이 포기하고 희생했더랬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렸습니다. 가졌던 직업도, 사랑하는 가족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러기를 만 3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주 님과 情도 들만큼 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저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들을, 그 옆에서 직접 따라다니며 지켜보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고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적어도 저들만큼은 " 아-이 분이 보통 분이 아니로구나. 예사 분이 아니구나, 과연 하늘에서 오신 메시야구나" 하는 것 을 충분히 깨달았을 만도 합니다.
━ 그래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바로 전날 밤 이었지요 "내가 곧 큰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다. 죽게 될지 모른다. 그러면 그때 너희들은 다 내 곁을 떠나서 흩어지고 말 것이다" 그랬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펄쩍 뛰며 뭐라고 말 했는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26:33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만, 베드로가 손을 내 저으며"혹 주님이 그런 어려움을 당하시기라도 하신다면, 나는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 베드로 만큼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주 장담하여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 그렇지 않을 것이다. 네가 오늘 밤 닭 울기전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펄쩍 띄면서 또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님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거나 주님을 떠 나지 않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님 지옥가면 지옥이라도 함께 따라 가겠다고"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뿐만 아니지요 옆에서 지켜 보고 있던 다른 제자들도 모두가 다 그랬습니다., " 주님을 따를 것입니다. 주님께서 죽을지라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을 것 입니다.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그렇게 충성을 다짐하고 맹세 했습니다. 때문에 여러분, 이들의 행동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정말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 게 되었을 때, 또 그 이후에 저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했던지를 말입니다. 사실, 저들을 시험할 기회는 머지 않아 금방 찾아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말씀을 하시기가 무섭게 바로 그 어려운 순간이 이내 곧 닥쳐 왔기 때문입니다. 주 님을 잡으려고 하는 제사장들이 가룟 유다를 앞 세우고 몰려 왔기 때문입니다.
━ 마태복음 26장에 이하에 보면, 이런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곧 제자들이 "다 주를 떠날지라도 우리 만큼은 절대로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맹세를 한 그 즉시,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그 말을 하고 입 에 침도 마르기 전에, 이내 곧 군사들이 몰려 와서 주님을 잡아갔던 것입니다. 고로 저들은 방금 자기들이 한 말을 잊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혀가시게 되자, "우리도 그의 제자들이니, 함께 잡아가라"하고 나섰어야 옳았 습니다. 혹 그러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뒤를 끝까지 함께 따라갔어야 했습니다. 그렇지요 방금 그렇게 하겠다고 굳게굳게 다짐하고 맹서를 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때 저들이 취한 행동은 과연 어떠했습니까 믿지 못할 것이 세상의 이님이고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던가요-저들의 방금 전에 한 맹세 의 다짐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어려움이 닥치자 36계 다 줄행랑을 다 놓고 말았 던 것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 베드로는 수석제자 답게 조금은 나았습니다. 그는 멀쩍이 떨어 져서 따라가기는 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멀쩍이'라고 하는 이 태도에 사탄의 유혹이 강하게 깃들어 있었습니다. 속된 말로 그것은 양다리를 걸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사태를 보아서 사태가 불리하게 작용하면 즉시 도망갈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매사 어중간한 태도 참 않좋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시록에 차던지 덥던지 하라고 했지요 이쪽이던 저쪽이든 분명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렇게 멀찍이 따라갔기 때문에, 제사장의 집 마당에서 불을 쬐다가, 제사장의 하녀가 베드로를 알아보고 "이 사람도 한 패다. 저 예수와 함께 따라 다니던 바로 그 제자다" 라고 말했을 때, 몹시 당황하면서, "아니요. 나는 아니요"라고 부인 했고, 그래도 하녀가 물러서지 않고 계속 우기니까 "아니요, 나는 정말 아닙니다. 나는 저 사람이 누군 지도 모릅니다" 라고 거듭 거듭 강하게 부인하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인이 절정에 달하자, 곧 주님이 예언하셨던 것처럼 거듭거듣 3번씩 이나 부인하자 "꼬끼오" 하고 새벽 닭이 회를 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마음이 과연 어떠하였을까요-전설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 이후로 새벽닭이 울기만 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어나 통곡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럴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충성을 맹서 하고 다짐했던 자가 세번식이나 거듭거듭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을 했으니까 말입니다. 한 평생 동안 그는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며, 부끄러움과 송구함을 금치 못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 제자들, 주님이 부활하신 그 날 그 아침에는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한 일인데요… 바로 오늘 본문 성경이 그것에 대하여 아주 분명하 게 잘 답변을 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19절 말씀을 보니까, 그 때 저들은 어느 집인지는 모르나 어느 집에 함께 모여서, 무엇을 의논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두려워 서 문을 안으로 꽁꽁 걸어 잠가 놓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들의 심정이 어떠했던지를 아주 잘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저들은 지금 유대인을 몹시 두려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내 자기들도 주님처 럼 붇들려 가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두목이신 예님께서 잡혀가서 그처럼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았기 죽으 셨기 때문에, 당연히 그 일당들인 저들도 곧 잡혀가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 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은밀한 곳에 숨어서 숨을 죽 이고 사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저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얼마나 놀 라고 반갑고 또한 당황했을 것입니까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까, 또하나 흥미있는 것은 그 찾아오신 주님이 좀 이상한 방 법으로 오셨습니다 방문을 안에서 꽁꽁 걸어 잠거 놓았는데, 그 닫힌 문으로 들 어오신 것이 그렇습니다. 한번 노크도 없이, 저절로 문이 열리면서 갑자기 들어 오신 것입니다. 아마도 방문을 그대로 투시하고 들어오신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랬으니 우선 저들은 너무 놀라서 혼비백산햇을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주님인지 정확히 알아 보지 못하고 주님의 유령인줄 줄로 알았었고, 그래 더욱 놀 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돌아 오 셧다고는 것도
그런데다가, 꽁꽁 걸어 잠근 문으로 소리 없이 가만히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너무 놀라서 잠시 정신이 혼비백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잠시후 정신을 차린 후에는 ,또 이제는 너무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서 똑바로 고개를 들고, 주님을 처다보기도 힘들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그처럼 충성을 다짐하며 지옥까지 함께 따라가겠다고 장담했던 자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정작 주님에게 어려움이 닥치자 모두가 다 도망가고 말았었 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저는 바로 여기서 매우 놀라운 사실을 하나 새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 되는 내용입니다만, 그것은 다름 아 닌 주님의 태도가 전혀 그러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단 한마디도 저들을 부끄럽게 하는 말을 하시거나, 야단치시는 무슨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하더라도 한 마디쯤은 꼭 하실 만 하지 않습니까 "너희들 참 너무 했지 않으냐 어떻게 그렇게 무정할 수 있느냐"라고 말입니다. 다 도망갔으니 말 입니다. 또 부활의 아침에도 무덤가로 오지 않고 이러고들 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한마디 야단을 치시고 꾸지람을 했다면, 오히려 제자들의 마음이 편했을 지 모릅니다. 마땅히 들어야 할 책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웬일이지 주님은 전혀 그러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러실 마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한마디도 책망하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까요 단지 주님 이 마음이 넒으셔서, 혹은 사랑이 많으셔서 그러셨을까요-물론 그럴 수도 있 었겠지만 그러나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달리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오늘 이 설교 말씀의 중요한 요지가 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주님께서 저들을 하나도 야단치지 않으셨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 무엇이라고 생각됩니까 오늘 본문을 잘 읽어 보면 본문 가운데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믄을 순서대로 한번 다시 보십시다. 먼저 저들을 찾아 오셔서 하신 주님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 을지어다" 이 말씀은 '살롬'이라고 하는 유대인의 인사 말이기 때문에 별로 중요 하지는 않습니다. 그 다음에 하신 22절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숨을 내 쉬면서 가라사대 성령님을 받으라" 하셨지요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이 그 해답입니다. 먼저, 주님게서 숨을 내셨다고 하는 이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왜 숨을 내셨을까요-무슨 숨가뿐 일이 있어서, 숨이 차서 그러신 것은 믈론 아닙니다. 숨을 내신 이유가 따로 있었 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내용입니다. 이 때의 상활을 잘 살펴 보면, 여기서 숨을 내셨다고 하는 것은, 보통 숨이 아니 고, 정확하게는 한숨을 의미합니다. 곧 주님께서 저들을 보시고는 크게 한쉼을 쉬셨다/ 곧 한탄하셨다 하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 또 저들을 보고 한숨을 쉬시고 한탄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렇습니다.
━ 아직도 보니 제자들이 주님의 제자로서의 자질이나 준비 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쉼을 쉬신 것입니다. 3년 동안 이나 저들을 가르쳤지만, 그러나, 지금와서 보니 아직도 택도 없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저들이 받았던 훈련을 살펴 볼까요 3년 동안 저들이 주님과 함께하면서 받았던 훈련의 내용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대표 적인 제자 배드로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나름대로 자기 소유를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둘째, 주님을 따라 한때, 바다 위를 걸었던 놀라운 체험도 했습니다 세째, "주를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한 후, 주님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고 또 "이후로는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도 메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는 놀라운 천국 열쇠를 선물로 받기도 했습니다. 천주고는 이것을 교회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내째, 성령님의 인도를 수시로 받았었습니다. 다섯째, 주님을 따라 변화산의 올라 갔다가 놀라운 환상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모세를 보고 엘리야를 보고, 변화된 놀라운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섯째, 예수님의 고난 당하시는 장면도 직접 목격을 했습니다. 일곱째, 주님을 부인한 것을 두고, 3번이나 통곡하며 후회하고 울었다고 합니다. 일골째, 오늘 이 장면을 비롯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자그만치 8번이나 거듭거듭 만났습니다. 자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도르를 비롯한 제자들은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 했습니까
21:3절에 보면,배드로가 "나는 물고기나 잡으로 간다"하니까 다른 제자들도 다 따라가겠다고 했랬습니다. 이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그처럼 큰 기적과 능력을 직접 보 았고 체험 했고, 또 그 자신이 직접 능력을 행하기도 했습니다만, 또 주님으로부터 직접 3년 동안이나 배ㅇ습니다만, 또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나고 목격햇습니다만, 더 이상 할 수 없는 큰 체험을 하고 베우고 훈련을 받았습니다만, 그러나 그것 가지고도 아직 부족했다 하는 뜻입니다. 하나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 성격, 옛날 사고방식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 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명에 대한 깨달음도/ 자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 곧 다시 3년 전으로/ 3년 전의 그 생활로 다시 돌아가겠다 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해가 되지지요 주님께서 왜 그런 형편 없는 제자들을/ 배은 망 덕하고/ 의리없는 제자들을 야단치지 않으셨는지를 말입니다. 한 마디로 너무너 무 기가 막혀셔 야단치지 않으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야단 치실 수가 없었다고 하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같습니다.
※ 3살 짜리 꼬마가 밥상을 업 질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를 두고 아이를 야단 칠 수 있습니까 야단치려면 오히려 밥상을 그의 앞에 둔 어른이 야단을 맞을 일 이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의 수준이 바로 그 정도로 형편 없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저들을 야단치는 대신 한숨을 크게 내 쉬신 것입니다. 3년동이나 가르ㅊ지만, 그 것으로는 아직도 안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 너무 한심한 생각이 들으셔서, 크게 한숨을 내 쉬셨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자-그러나 그 다음에 하신 말씀이 또한 중요합니다. "가라사대 성령님을 받으 라 성령님을 받으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아직도 교회 생활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분이 계십니까 기도가 되 지 않고, 성경이 보아 지지 않고, 보아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또 설교 말씀이 하나도 들려지지 않고, 들어도 은혜가 전혀 되지 않습니까 / 전도하라 전도하라 하지만 전도할 마음이 하나도 없습니까
-그런 분은 꼭 성령님을 받아야만 합니다. 십일조 드리기가 힘이 들고, 감사가 되지 않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거나, 또한 물질을 바치려고 하면 자꾸만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어렵습니까 자칫하면 상 처받고, 교회에 불만이 많고 불평할 일이 많습니까 문제는 딴제 있지 않고 아직 성령님을 받지 못하셨기 때문임을 여러분, 꼭 깨달으시 바랍니다. 병을 고치려면 먼저 정확히 진찰부터 해야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혹 이상에서 말씀드린 이런 신앙의 진단이 나오시는 분이 계시다면, 아직도 믿으면서, 성령님을 받지 못하신 것이 틀립없다는 것을 먼저 깨달으셔야 합니다 그런 분은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급한 급선무가 성령님 받는 일입니다. 성령님부터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여기 형편없던 제자들처럼 되고 맙니다. 그러나 치처럼 형편없는 제자들도 그 후에/ 곧 오순절에 성령님을 충만히 받고서는 180도로 달라질 수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 바로 그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령님을 꼭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눌을 교회력으로 성령님 강림 주일입니다. 주님 부활하신 후 50일이 되는 오순 절 성령님강림 주간입니다. 여러분 이 주간에 꼭 기억하셔야할 것이 있습니다. 꼭 성령님을 받는 일입니다. 이미 받으신 분도 더욱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한심한 제자와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으라" 오늘 이 주님의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들려 주시는 주 님의 말씀으로 꼭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성령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되 충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 힘쓰시고, 애쓰시기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우리의 가 장 큰 과제요, 가장 시급하고도 중대한 일임을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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