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론 (요17:9-12)
본문
본문은 조금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9절에 있는 말씀같이 "내 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라는 말씀과 12절 끝에 있는 것 중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 뿐이오니'라는 이 두 가지 말씀이 어렵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직전에 그의 제자들 앞에서 제사장적인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앞에서 그 기도를 함으로써 그들에게 이 내용을 알게 하시기를 지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이나 뜻 이런 모든 것에 대하여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 중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리가 보통 얘기 할 때 예정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하여 이같은 어려운 예정론에 관하여 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본문 12절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 하면,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는 그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린 것같이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이지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가룟 유다를 가리킨 말입니다. 열 두 제자 중 가룟 유다 만은 원래부터 멸망의 자식이었지 예수님께서 품으려고 애썼는데 놓쳐버린 자는 아 니란 말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으로서 제일 부딪치는 문제가 이런 점들입니다. 이야 기가 참으로 교묘하다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얘기할 때는 다 이쪽으로 성경 구절을 대고, 또 반대편으로 얘기할 때는 반대편 성경 구절을 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 든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때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저주하는 이야기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목사들은 자기가 편할 대로 성경을 여기서 따오고 저기서 따 오는 명수들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대화를 구경하러 가서 이 상하고 그림같지 않는 추상화들을 보고서는 하는 말이 `나도 저렇게는 그리겠어, 저 게 도대체 장난친 건지 그림 그린 건지 뭐야!'라고 한다면 스스로의 무식함을 담대 히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안 간다고 함부로 판단을 성급하게 내릴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9-12절이 왜 등장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실피려고 하는 목적은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고 내게 주신 자를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제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떠나가는 자가 있는데 그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에 떠나간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언데 우리는 여기서 당황하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단 말인가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단 말인가 하는 당혹감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이 말씀이 무 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느냐 하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대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는 말이 이 앞 뒤에 있는 난제들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사실은 여기서 영광 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말인 것입니다. 왜 그러한지를 이제 하나씩 풀어서 추적 해 보아 우리의 기쁨을 더하고자 합니다. 예정론이라고 이야기 하면 대개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에 의해서 되어진다면 내가 예수 믿다가 넘어지는 것도 예정된 것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됩니다. 심지어는 내가 오늘 이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앉는 것까지 다 예 정된 것이란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이란 그런 의미에서 쓰여지지 않습니다. 먼저 롬8:29-30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미리 하나님께서 다 정하셨다는 말씀이 나와서 예정론이라는 용어를 쓰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또한 엡1:3-6절에 보면 이것이 좀 더 크게 묘시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 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서도 예정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예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가 물고 늘어 지는 질문이 좀 전에도 이야기한 바와같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신비로운 내용인 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아니 그러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팔아 먹고 지옥 간 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예 정하신 것이니 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만든 선악과를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따먹은 것이 아닙니까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예정을 따라서 먹었는데 왜 그 것이 죄가 됩니까 우리는 억울합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오해하느냐 하면 죄가 뭐냐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오 해하기 때문에 예정론에 대해서도 이렇게밖에 질문을 못합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 하여 죄에 대한 성경의 예를 다시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도 망가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며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을 죄라 그럽니다. 죄란 진리에 관심이 없으며 생명과 영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죽음인지 멸망 인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관계없이 자신의 욕심에 따라 자신을 멸망시키는 자 리까지 자신의 욕구를 발산하다가 폭팔해 자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만일 공부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해야 된다. 그러나 놀고 싶은 것은 내 본심 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것은 위선이고 사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 습니까 그때 그 아이가 `나는 놀고 싶은데 놀지 않고 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위선자이며 이중 인격자이며 얼마나 거짓된 사람인가' 이런 식으로 생각 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댜답을 하시겠습니까 그때 딱 하나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따귀를 때려 주면서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그렇게 밖에 어떻게 말을 하겠 습니까 그런 그 아이의 생각이야말로 가장 틀린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종교적인 문제로 나아올때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교회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안 나오면 뭐가 어떻게 된다고 하니까, 지 옥 간다고 공갈을 놓으니까 안 나올 수도 없고 또 안 나오면 집안의 화평이 깨지니 한 번 나와주자. 그러나 사실 나의 본심은 안 나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둥 사단이 뭐 고 하는 것들에… 솔직하기 위해서 여기서 나가는 것이 옳다. 내가 믿지도 않으면 서 앉아 있는다는 것은 얼마나 사기요 위선이요 기만이냐 나는 정직하련다 하면서 하는 생각한다면 이것을 가리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정직한 것이 아니 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여기서 맞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최고의 약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래도 왜 내가 맞어 하나님이면 다냐 이렇게 나오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이라고 얘기하시는 것은 전혀 우리의 자유를 제한시키거나 우리를 꼭두각시로 쓴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롬8:29절의 말슴이나 엡1:3절 이하의 말씀같이 하나님은 지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작하실 때 계획과 목표를 두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엡1:3-4절을 다시 봅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 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 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택하였다는 것은 넌 이제 내가 단추를 누르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시려고"입니다. 예정은 언 제나 목표가 붙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롬8:29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바로 예정은 이같은 목표를 지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로 부르신 자들 중 아무도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이 본 문의 말씀입니다. 그 예정함을 입은 사람 중 하나도 멸망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6:38-39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주님께서는 하나도 안 잃어버리십니다. 그러면 그런 능력과 그런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 왜 놓치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놓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택함을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왜 안 택했느냐 왜 그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두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이렇 게 나옵니다. 왜 이런 질문이 자구 나옵니까 결국은 못 믿겠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믿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트집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근거가 되며 방법이 되는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이해되어서 믿은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가 모두 이해되어져서 믿었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놓치 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것을 이해해서 믿었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으며 우리를 사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 셔서 마침내 우리가 여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 지혜로 이 신앙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고후 4:3-6절을 보십시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 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 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하시던 그 능력으로 죽었던 우리들 마음을 다시 소생시키 시고 빛을 보게 하셔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설득되고 납득이 되어서 아, 그 렇구나! 하면서 우리가 동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만 어떤 시험 속으로 말려드느냐 하면 내가 이것을 본 것은 어떤 놀리와 이해를 좇 아서 결론에 도달한 것일 거라는 생각을 자꾸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리 따져도 아니니까 보는데 안 보인다고 우깁니다. 신자들의 신앙을 가장 방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만 납득시켜 주면 나는 화끈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 입니다. 이것만 납득되면 다시는 죄를 안 짓고 정말 참 신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신앙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못 보기 때문에 못 믿는 것입니다. 드런데 우리는 왜 믿느냐 하면 봐서 믿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도 이 좋은 시간에 뭐가 답답해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여러가지 핑게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이란 죄인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심심하고 부인에게 미안해서 잘 해 주려고 교회에 나올 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마음 깊이 이 빛에 대한 감각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오면서도 아니라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이런 것들 이 납득이 안 되어서입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을까 왜 사단을 만들었 을까 사탕이나 만드시지. 왜 우리를 이 꼴로 살게 하실까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굉장히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놀랍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보십시오. 요17:9-10에 `내가 비옵는 것은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영광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왜 갑자 기 영광이 등장합니까 요한복음 17장 서두에 이 영광이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영광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뜻과 사랑이 드디어 완성되고 승리를 이루어 내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 의 사건에서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게서도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영광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묘사를 즐겨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광 을 받았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같이 아버지를 알며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아는 자가 된 그것이 곧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빛을 보지 못했던 자들이, 사망과 흑암 속에 있었던 자들이 빛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가 우리를 구속하셨듯이 이 제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들어선 이것으로 영광 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기도를 하고서 얼마 있으면 이제 예수님께서 잡혀 가시게 되고 제자들은 다 뿔뿔히 흩어질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낫다고 하는 베 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를 부인할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본 후에도 고기 잡으러 다 도망을 갔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을 받았다는 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 으신 것이, 예수님이 잡혀 가려고 그랬을때 제자들이 전부 그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우리 스승을 해하려면 먼저 나부터 못박아라! 이렇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지 않았다 이말입니다. 또한, 꼭 기억해야 될 또 하나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렇고 이랬다는 것 을 전부 이해하는 그것이 최고의 신앙의 경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하나님 을 위하여 얼마나 멋진 일을 하느냐에 따라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떠 나야 됩니다. 사실은 그와같은 생각들이 우리의 신앙을 가장 많이 넘어뜨리는 대적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정론에 대해서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정하셨다는 것 말고는 거기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 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만드셨을 것이라는 대답 이상은 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둔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우리 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만드신 것이 우리에게 손해가 되고 죄를 방조하고 죄의 원인이 되도록 하시는 분은 결코 아니신 분입니다. 그것이 어떻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면, 예, 물론 말이 안되죠! 그러나 그래도 저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그 내용들을 모두 모순되지 않 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알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선하시며 의로우시 며 자비하시며 긍휼이 넘치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 한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것으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무조건 하나님의 편입니다. 할 말 있으십니까 이렇게 말하면 성경이 말이 안 된다고 말하지 모르지만 그 것은 우리가 미련하고 둔해서 그렇다고 성경은 오히려 합니다. 또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틀렸고 완전히 막무가내다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은 절대로 틀리지 않았으며 만일
그렇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렇 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 무엇으로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혹시 내 신앙 이 부족하고 미련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힘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아직도 우리 속에 있는 죄된 성품이 자꾸만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왜 납득이 안 되느냐 이해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우리를 눌러 댑니다. 눌러서 힘도 못쓰게 결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우리가 어떤 자 리에 있는 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은 뜨여진 눈으로 하나님의 빛을 보는 것이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고전2:6-8절을 보시겟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 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 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아는 것 입니다. 그가 영광의 주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질문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왜 보석이 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 이아몬드를 왜 보석이라고 그럽니까 보섯이니까 보석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보 석인 줄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그것이 핵심입니다.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소중한 보석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영안이 열려 보니 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 을 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하나님이 누군지를 압니다. 보 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전생애와 전 진심을 바쳐서 그 분을 삽니다 그 분에게 매달립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무엇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것은 사실은 다음의 문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보화라는 사실을 아는 자기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본 고후4:3-4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 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에게는 혼미케 하는 마음으로 인해 못 보게 됩니다. 저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장님들입니다. 빛은 설명해서 보는 것이 아니 라, 시력으로 보아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금 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와 불신자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령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보고 진리를 보고 생명을 본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자랑이요 기쁨이요 빼앗길 수 없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로 거기서 신앙을 출발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가 하신 모든 사역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사실은 그 제자들을 능력있게도 하지 않고 무슨 의사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말하자 면 제자들에게 훈련시킨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신앙의 핵심되는 것인 이 생명만을 그들에게 제대로 심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본 것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생명을 심어 그 눈이 열리고 살아나게 하여 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아니라고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시력을 회복하자 그 제자 들은 스스로 알아서 절벽을 피하여 가고 강물에 빠지지 않고 제 길을 따라서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방법들을 저절로 배워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커 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우리들에게 허락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아직도 이해와 설명을 요구하면서 잘 못 믿겠다고 핑게하며, 사실은 한 쪽 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 짓는 인생이 더 재미있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생명과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것들이 요구 하는 삶을 어렵게 살기보다, 그것들을 외면하기 위한 핑게로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요구할 때 응답을 주시지 않았으므로 안 믿는다고 그 이유를 갖다붙여 죄악에 더 머 물고 싶어하는 근거를 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 이 아니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핑게 대기 위하여 이러 한 말들을 갖다 붙이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의 적나라한 현주소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므로 돌이키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핑게나 대고 의문만 제기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 을 본 그대로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어떻게 되는 지 아십니까 시91:14-15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 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여기서 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다면 그 다음의 말씀 을 보십시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합니다. 아마 여기에는 해당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달리말해 예수님을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본자들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계심을 보고 알면서도 속입니까 죄짓는 것이 더 좋아서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기서 돌이키고 나오십시 오. 하나님의 예정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 상을 닮게 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흠이 없고 거룩한 자리에 까지 도달하게 하는 계획을 시작하시고 또 이루시고야 마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당연히 걸어가야 할 신자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끝까지 외면한다면 한 가지 길밖에 남지 않습니다. 맞는 방 법 만이 남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시 겠지만, 제대로 가고 있지 않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이 바로 무서운 저주입니다. 버림받은 본재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안 하면 맞고 터지고 찢겨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 싶은 일을 포기하시거나 변경하시는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별명 중의 하나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 혜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비추어 보아서 사태 를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변명하고 피하고 게으름 피울 핑게거리를 대지 마 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삶의 기쁨과 특권들을 제대로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본문 12절을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이야기 하면,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는 그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잃어버린 것같이 보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이지 내가 잃어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린 자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입니까 가룟 유다를 가리킨 말입니다. 열 두 제자 중 가룟 유다 만은 원래부터 멸망의 자식이었지 예수님께서 품으려고 애썼는데 놓쳐버린 자는 아 니란 말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으로서 제일 부딪치는 문제가 이런 점들입니다. 이야 기가 참으로 교묘하다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얘기할 때는 다 이쪽으로 성경 구절을 대고, 또 반대편으로 얘기할 때는 반대편 성경 구절을 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모 든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때리라는 이야기도 있고 저주하는 이야기도 있고 축복도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목사들은 자기가 편할 대로 성경을 여기서 따오고 저기서 따 오는 명수들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고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긴 오해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현대화를 구경하러 가서 이 상하고 그림같지 않는 추상화들을 보고서는 하는 말이 `나도 저렇게는 그리겠어, 저 게 도대체 장난친 건지 그림 그린 건지 뭐야!'라고 한다면 스스로의 무식함을 담대 히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해되지 않고 납득이 안 간다고 함부로 판단을 성급하게 내릴 수 없는 일들이 이 땅에는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9-12절이 왜 등장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실피려고 하는 목적은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고 내게 주신 자를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자 중 하나도 제가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떠나가는 자가 있는데 그는 내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가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에 떠나간 것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언데 우리는 여기서 당황하게 됩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없단 말인가 우리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단 말인가 하는 당혹감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서 이 말씀이 무 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하고 있느냐 하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대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는 말이 이 앞 뒤에 있는 난제들과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사실은 여기서 영광 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말인 것입니다. 왜 그러한지를 이제 하나씩 풀어서 추적 해 보아 우리의 기쁨을 더하고자 합니다. 예정론이라고 이야기 하면 대개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에 의해서 되어진다면 내가 예수 믿다가 넘어지는 것도 예정된 것이란 말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됩니다. 심지어는 내가 오늘 이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앉는 것까지 다 예 정된 것이란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정론이란 그런 의미에서 쓰여지지 않습니다. 먼저 롬8:29-30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미리 하나님께서 다 정하셨다는 말씀이 나와서 예정론이라는 용어를 쓰고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또한 엡1:3-6절에 보면 이것이 좀 더 크게 묘시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 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여기서도 예정이란 단어가 등장합니다. 예정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가 물고 늘어 지는 질문이 좀 전에도 이야기한 바와같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신비로운 내용인 가 하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아니 그러면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팔아 먹고 지옥 간 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예 정하신 것이니 시킨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만든 선악과를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따먹은 것이 아닙니까 결국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예정을 따라서 먹었는데 왜 그 것이 죄가 됩니까 우리는 억울합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무엇을 오해하느냐 하면 죄가 뭐냐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오 해하기 때문에 예정론에 대해서도 이렇게밖에 질문을 못합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 하여 죄에 대한 성경의 예를 다시 추적해 보아야 합니다.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도 망가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며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을 죄라 그럽니다. 죄란 진리에 관심이 없으며 생명과 영원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죽음인지 멸망 인지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관계없이 자신의 욕심에 따라 자신을 멸망시키는 자 리까지 자신의 욕구를 발산하다가 폭팔해 자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만일 공부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놀고 싶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해야 된다. 그러나 놀고 싶은 것은 내 본심 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것은 위선이고 사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과연 이것이 옳 습니까 그때 그 아이가 `나는 놀고 싶은데 놀지 않고 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위선자이며 이중 인격자이며 얼마나 거짓된 사람인가' 이런 식으로 생각 한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댜답을 하시겠습니까 그때 딱 하나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따귀를 때려 주면서 `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 그렇게 밖에 어떻게 말을 하겠 습니까 그런 그 아이의 생각이야말로 가장 틀린 생각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종교적인 문제로 나아올때 여러분이 꼭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교회에 나오고 싶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안 나오면 뭐가 어떻게 된다고 하니까, 지 옥 간다고 공갈을 놓으니까 안 나올 수도 없고 또 안 나오면 집안의 화평이 깨지니 한 번 나와주자. 그러나 사실 나의 본심은 안 나오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슨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둥 사단이 뭐 고 하는 것들에… 솔직하기 위해서 여기서 나가는 것이 옳다. 내가 믿지도 않으면 서 앉아 있는다는 것은 얼마나 사기요 위선이요 기만이냐 나는 정직하련다 하면서 하는 생각한다면 이것을 가리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정직한 것이 아니 라,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러는 겁니다. 여기서 맞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 최고의 약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래도 왜 내가 맞어 하나님이면 다냐 이렇게 나오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이라고 얘기하시는 것은 전혀 우리의 자유를 제한시키거나 우리를 꼭두각시로 쓴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롬8:29절의 말슴이나 엡1:3절 이하의 말씀같이 하나님은 지성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작하실 때 계획과 목표를 두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엡1:3-4절을 다시 봅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 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 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택하셨습니다. 여기서 택하였다는 것은 넌 이제 내가 단추를 누르는 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로 사랑 안에서 거룩하게 흠이 없게 하시려고"입니다. 예정은 언 제나 목표가 붙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롬8:29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라고 말합니다. 바로 예정은 이같은 목표를 지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로 부르신 자들 중 아무도 놓치지 않으신다는 것이 본 문의 말씀입니다. 그 예정함을 입은 사람 중 하나도 멸망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요6:38-39절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이렇게 주님께서는 하나도 안 잃어버리십니다. 그러면 그런 능력과 그런 뜻을 가지고 계신 분이 왜 놓치는 사람들이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놓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택함을 받지 않은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왜 안 택했느냐 왜 그 사람들은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두었느냐 사랑의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 겁니까 이렇 게 나옵니다. 왜 이런 질문이 자구 나옵니까 결국은 못 믿겠다는 것 때문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믿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트집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근거가 되며 방법이 되는 것을 놓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이해되어서 믿은 자들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기초가 모두 이해되어져서 믿었다에 있지 않다는 것을 놓치 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것을 이해해서 믿었다고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셨으며 우리를 사셨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 셔서 마침내 우리가 여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 지혜로 이 신앙을 아는 자가 없습니다. 고후 4:3-6절을 보십시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 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 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하시던 그 능력으로 죽었던 우리들 마음을 다시 소생시키 시고 빛을 보게 하셔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입니다. 설득되고 납득이 되어서 아, 그 렇구나! 하면서 우리가 동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만 어떤 시험 속으로 말려드느냐 하면 내가 이것을 본 것은 어떤 놀리와 이해를 좇 아서 결론에 도달한 것일 거라는 생각을 자꾸하기 때문에 스스로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리 따져도 아니니까 보는데 안 보인다고 우깁니다. 신자들의 신앙을 가장 방해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만 납득시켜 주면 나는 화끈한 사람이 되겠다는 것 입니다. 이것만 납득되면 다시는 죄를 안 짓고 정말 참 신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안 되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속고 있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이 신앙이 납득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못 보기 때문에 못 믿는 것입니다. 드런데 우리는 왜 믿느냐 하면 봐서 믿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오늘도 이 좋은 시간에 뭐가 답답해서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까 여러가지 핑게를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이란 죄인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에 심심하고 부인에게 미안해서 잘 해 주려고 교회에 나올 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마음 깊이 이 빛에 대한 감각이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나오면서도 아니라고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왜요 이런 것들 이 납득이 안 되어서입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을까 왜 사단을 만들었 을까 사탕이나 만드시지. 왜 우리를 이 꼴로 살게 하실까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굉장히 괴롭히는 것들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얼마나 놀랍게 기록되어 있는가를 보십시오. 요17:9-10에 `내가 비옵는 것은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영광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서 왜 갑자 기 영광이 등장합니까 요한복음 17장 서두에 이 영광이 언급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 영광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하여 가지고 계시는 뜻과 사랑이 드디어 완성되고 승리를 이루어 내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구속 의 사건에서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게서도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영광이며, 그것이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묘사를 즐겨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영광 을 받았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 한 바와같이 아버지를 알며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아는 자가 된 그것이 곧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빛을 보지 못했던 자들이, 사망과 흑암 속에 있었던 자들이 빛을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가 우리를 구속하셨듯이 이 제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들어선 이것으로 영광 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 기도를 하고서 얼마 있으면 이제 예수님께서 잡혀 가시게 되고 제자들은 다 뿔뿔히 흩어질 것입니다. 그 중에서 제일 낫다고 하는 베 드로는 세 번씩이나 주를 부인할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본 후에도 고기 잡으러 다 도망을 갔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영광을 받았다는 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그러니까,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 으신 것이, 예수님이 잡혀 가려고 그랬을때 제자들이 전부 그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우리 스승을 해하려면 먼저 나부터 못박아라! 이렇게 하여 영광을 받으시지 않았다 이말입니다. 또한, 꼭 기억해야 될 또 하나는 우리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은 이렇고 이랬다는 것 을 전부 이해하는 그것이 최고의 신앙의 경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에 대하여 전부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하나님 을 위하여 얼마나 멋진 일을 하느냐에 따라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생각에서도 떠 나야 됩니다. 사실은 그와같은 생각들이 우리의 신앙을 가장 많이 넘어뜨리는 대적 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정론에 대해서 많은 질문들이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예정하셨다는 것 말고는 거기에 대하여 더 이상 설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만 들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었고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우리 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만드셨을 것이라는 대답 이상은 저는 못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둔해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우리 의 이익과 유익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렇게 만드신 것이 우리에게 손해가 되고 죄를 방조하고 죄의 원인이 되도록 하시는 분은 결코 아니신 분입니다. 그것이 어떻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면, 예, 물론 말이 안되죠! 그러나 그래도 저는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요 그 내용들을 모두 모순되지 않 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알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선하시며 의로우시 며 자비하시며 긍휼이 넘치시며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 한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것으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무조건 하나님의 편입니다. 할 말 있으십니까 이렇게 말하면 성경이 말이 안 된다고 말하지 모르지만 그 것은 우리가 미련하고 둔해서 그렇다고 성경은 오히려 합니다. 또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틀렸고 완전히 막무가내다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저는 하나님은 절대로 틀리지 않았으며 만일
그렇다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이렇 게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 무엇으로도 전혀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혹시 내 신앙 이 부족하고 미련함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신자들의 힘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아직도 우리 속에 있는 죄된 성품이 자꾸만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왜 납득이 안 되느냐 이해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우리를 눌러 댑니다. 눌러서 힘도 못쓰게 결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참으로 우리가 어떤 자 리에 있는 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이 어디서부터 나오는 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힘은 뜨여진 눈으로 하나님의 빛을 보는 것이요,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고전2:6-8절을 보시겟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 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 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아는 것 입니다. 그가 영광의 주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질문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왜 보석이 되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 이아몬드를 왜 보석이라고 그럽니까 보섯이니까 보석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보 석인 줄을 아는 눈을 가졌다는 그것이 핵심입니다.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소중한 보석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영안이 열려 보니 보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감추인 보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 을 샀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알고 하나님이 누군지를 압니다. 보 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전생애와 전 진심을 바쳐서 그 분을 삽니다 그 분에게 매달립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무엇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것은 사실은 다음의 문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보화라는 사실을 아는 자기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전에 본 고후4:3-4절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 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에게는 혼미케 하는 마음으로 인해 못 보게 됩니다. 저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장님들입니다. 빛은 설명해서 보는 것이 아니 라, 시력으로 보아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보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지금 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와 불신자들의 근본적인 차이점입니다. 우리가 지금 신령한 것을 보고 하나님을 보고 진리를 보고 생명을 본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자랑이요 기쁨이요 빼앗길 수 없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로 거기서 신앙을 출발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그가 하신 모든 사역들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사실은 그 제자들을 능력있게도 하지 않고 무슨 의사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말하자 면 제자들에게 훈련시킨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단 하나 신앙의 핵심되는 것인 이 생명만을 그들에게 제대로 심은 것입니다. 다시말해 본 것을 외면하지 못하도록 생명을 심어 그 눈이 열리고 살아나게 하여 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직접 보고 체험한 것을 아니라고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시력을 회복하자 그 제자 들은 스스로 알아서 절벽을 피하여 가고 강물에 빠지지 않고 제 길을 따라서 헤쳐 나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방법들을 저절로 배워 나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커 가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우리들에게 허락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아직도 이해와 설명을 요구하면서 잘 못 믿겠다고 핑게하며, 사실은 한 쪽 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 짓는 인생이 더 재미있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생명과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이것들이 요구 하는 삶을 어렵게 살기보다, 그것들을 외면하기 위한 핑게로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요구할 때 응답을 주시지 않았으므로 안 믿는다고 그 이유를 갖다붙여 죄악에 더 머 물고 싶어하는 근거를 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우리가 모르는 것 이 아니라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서 핑게 대기 위하여 이러 한 말들을 갖다 붙이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겁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들의 신앙의 적나라한 현주소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므로 돌이키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 대하여 핑게나 대고 의문만 제기하는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 을 본 그대로 사랑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어떻게 되는 지 아십니까 시91:14-15절을 보십시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 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여기서 저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다면 그 다음의 말씀 을 보십시오.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고 합니다. 아마 여기에는 해당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달리말해 예수님을 아는 자라는 뜻입니다. 본자들이라는 것 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계심을 보고 알면서도 속입니까 죄짓는 것이 더 좋아서입니다. 그러나 이제 거기서 돌이키고 나오십시 오. 하나님의 예정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시고 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말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목표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 상을 닮게 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흠이 없고 거룩한 자리에 까지 도달하게 하는 계획을 시작하시고 또 이루시고야 마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당연히 걸어가야 할 신자로서의 길이 있습니다. 그것을 외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만일 끝까지 외면한다면 한 가지 길밖에 남지 않습니다. 맞는 방 법 만이 남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일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시 겠지만, 제대로 가고 있지 않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이 바로 무서운 저주입니다. 버림받은 본재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신앙 생활을 안 하면 맞고 터지고 찢겨서 돌아올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 싶은 일을 포기하시거나 변경하시는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별명 중의 하나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지 혜가 여기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비추어 보아서 사태 를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더 이상 변명하고 피하고 게으름 피울 핑게거리를 대지 마 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되는 삶의 기쁨과 특권들을 제대로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