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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점을 받는 신앙 (요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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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8장 이후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수난의 기록들이 연속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언듯 보기에는 당연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여기실 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예수님은 앞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어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일이 뒤에 일어나야 될 것으로 선입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시며 38년 된 병자를 살리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며 생명의 말씀을 전하신 주님이셨음에도 결국은 주님을 어떻게 대접해 드리 고 있는가 하는 사실들을 미루어 볼 때에 놀라운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공생애 기간 동안에 그토록 많은 말씀과 기적들을 베푸시고도 결국 은 십자가와 수난과 죽음이라는 대접을 받으셔야만 했던가 그 많은 기적과 능력을 가지고도 그러한 수난과 고난들을 감수하셨던가 하는 점은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이 구약에서 처럼 블레셋이나 애굽 병정들이나 로마 병정들에게서 받은 고난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그토록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리며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 중, 그것도 제일 뛰어난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 의하여 주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셔야 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너무도 충격적 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충분히 검토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 3절을 다시 보십시다. (요 18:3)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 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여기서 누가 주님을 십자가로 몰고 갑니까 그의 제자중 하나였던 유다가 합니다. 누구로부터 사람들을 얻어서 옵니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로부터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최고의 종교 지도자요, 민족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선물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이 이야기하는 신앙의 핵심과 인간 자기네들이 마음대로 갖고 있는 신앙의 내용과 극단적인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 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신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사실은 늘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신앙이란 생각 보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왜 바리새인들과 대 제사장들이 그러한 오류에 빠지게 되었는 지를 깊이 추적해 보아야만이 무엇을 조심해야 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은 복음서 전체에서 많이 등장합니다. 바리새인들이란 분리한다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외세의 압력으로 처음 알렉산더 대왕에게 점령당 하여 희랍에게 여러해를 고생하고, 또 지금은 로마의 문물에 전염이 되어 유대민족 이 고래로부터 이어온 전통들, 즉 신앙적인 순수성을 잃어버린 데 대하여 분개한 분 리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혼을 지키자! 우리의 신앙을 지키자고 일 어났던 알고보면 뛰어난 민족 수호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으로 이 스라엘 민족이 가졌던 신앙을 지키자고 힘쓰는 사람들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제일 크 게 욕을 먹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십시다. (눅 11:42-44)"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 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여기에 나오는 것만 보아도 이런 얘기를 합니다. 겉으로는 모든 신앙적인 명령들 을 다 지키고 있지만 본심이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신앙 생활을 하는데 속으로는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다는 것입니까 43절 말씀과 같이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을 기뻐하도다'라고 지적합니다. 다시말해, 사람들 앞에서 박수 받기 위해서 종교의 행위가 있었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칭찬받기 위하여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 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6장에서는 더 확실히 말씀합니다. (마 6:1)"사람에 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여기서 무엇을 구별하고 있습니까 사람에게 칭찬 받는 것과 하나님께 받는 칭찬 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6장은 세 가지 유명한 종교적 예를 듭니다. 종교 행위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듭니다. 이 세가지 를 무엇으로 비교하느냐 하면 사람에게 보이려는 종교 행위와 하나님께 보이려는 종교 행위로 나눕니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외식하는 자라고 그럽니다. 외식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겉만 칠하고 있다는 말 입니다. 겉만 장식을 합니다. 뭐하기 위해서 입니까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신앙과 종교 행위가 사람 앞에 보이려는 치장이었지, 하나님 께 보이려는 진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제할 때에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나팔을 불어서 내가 구제하니다 와서 봐라는 식입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 라!'고 하셨습니다. 5절 이하에 또 하나의 중요한 종교 행위가 나옵니다. (마6:5a)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 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기도는 성전이나 회당에서 하면 되는데 왜 큰 거리 어귀에서 합니까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해서 였습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 의 상급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또 (마 6:16a)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그렇게 하여 사람 앞에서 박수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을 공격한 공격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이 일로 인하여 예수님께 끔찍한 원한을 갖게 되어서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자리에 갑니다. 그 들은 그들의 신앙 생활에 대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반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에는 예수님과 바리새인 사이에 충돌하는 변론이 몇군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막 3:1-6)"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엿보거늘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가운데 일어서라 하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 냐 하시니 저희가 잠잠하거늘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 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그 손이 회복 되었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꼬 의논하 니라" 여기 문제가 될만한 사건 하나가 나타납니다. 안식일날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 가셨다가 거기서 한 쪽편 손이 말라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자를 만나게 됩니다. 바리 새인들은 오늘이 안식일인데 예수님께서 일을 하는가 안 하는가를 지켜보고 있었 습니다. 그 병자의 손을 고쳐주면 안식일에 일한 격이 되고 맙니다. 안식일을 지키 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범하면 돌로 쳐 죽일 수 있는 빌미를 잡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 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답을 뭐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선을 행하는 것이 옳고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리새인들의 생각은 이것 입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으로 인하여 자기네들이 생색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그것이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며 사람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여 하나님이 요구한 법칙이라는 것은 까막득히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모든 신앙은 바로 여기가 분기점입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어떻게 사랑하셨으며, 어떻게 더러움과 비참함의 죄악과 죽음으로 부터 건져 내시는 것인가 하는 것이지, 이것을 지키면 잘 난 사람이고 못 지키면 죽여도 되는 사람으로 판정하기 위하여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것을 바 리새인들을 통하여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갖고 있던 것으 로 여태껏 쌓아 놓은 지위가 예수님의 제대로 된 지적과 제대로 밝혀낸 말씀의 내용 으로 무너지는 것만 싫어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이 창피를 당하고 그들의 지위가 무 너지는 것이 더 싫었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올바로 아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바리새인의 최대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입니다. (요 5:39-44)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 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 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신앙이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리새인들은 그들 자신이 요구하는 영광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 마저도 동원되고 있을 따름이지,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신앙의 대상이거나 경배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요구하였던 것은 그들 자신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무엇까지 동원해가 면서 자신들 경배체 했습니까 하나님과 성경과 기독교라는 종교를 동원해서 자기를 증명하며 자기를 색칠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진리와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자들 이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십시다. 여기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바리새인들과 제사장 들에 대한 공격이 나옵니다. (마 23:1-7)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 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 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 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 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 23:13-17)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 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없 음)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 식이 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마 23:23-28)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 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 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 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예수님께서는 이 당에 오셔서 모두를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섬기러 왔다고 하였으며,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 놓으시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늘 그러셨습니다. 간음하다 현 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향해서도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 리고는 끝에가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유독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에 대해서만은 아주 쫓아 다니면서 싸움을 거셨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저주를 하셨습니다. (마 23:32-33)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것만은 욕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최고의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언제나 은혜입니다. 은혜란 내가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말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 을 받고 은총과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장 많이 공격한 것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자기를 증명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죄사함을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의 법들을 지킬수 있다고 생각하여 은혜가 아닌 법을 지켜 자기를 치장하려는 것에 대하여 공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외식인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제일 무서운 것이 이 싸움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착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나, 의로운 사람이 되자는 것이나, 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자, 사랑하자는 것들은 다 부수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는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내 힘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데, 오로지 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것밖 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회개하는 마음이 가장 신앙의 근본적인 자세입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제사보다도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 를 원하시며, 심령을 찢는 제사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스스로 내 문제 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의 잘못과 실수와 범죄에 대하여 항 상 불쌍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너는 왜 못해'라고 질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하여 죄를 방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 며, 그의 간섭을 구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오늘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신아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지금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습니까 금식하며 십일조를 내며 성경 말씀을 외우는 것으로 자기네들의 지위와 자랑을 드높이고 있을 뿐이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위해서는 아 무것도 못하는 자들입니다. (사 58:4-7)"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 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 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 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 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 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 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밥을 안 먹는 것이 금식이 아니라, 이것이 금식입니다. 3일 금식했다, 일주일 금 식했다, 사십을 금식한 신령한 분이시다, 라는 식으로 날자를 따지고 경쟁하여 자랑 하는 것이 금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나의 양식을 삼겠다 하는 것 이 금식입니다. 세상의 것을 먹어 내 육체의 힘과 세상의 힘을 길러서 세상을 정복 하겠다가 아니라, 금식이란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여 세상의 방법과 세상의 힘을 축적하지 않고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힘과 지혜와 능력을 얻겠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했으면 며칠동안 굶었느냐가 자랑이 아니라, 실제로 나에게서 하나님의 긍휼이 나가며 자비가 나가며 사랑이 나가는 이웃을 향한 마음이 열려져 있느냐를 물어보아야 옳지 않겠느냐 하는 하나님의 꾸짖음입니다. 결국 모든 신앙 의 행위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이제 그 받은 사랑을 이웃을 향하여 나누는 자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자신이 가 지고 있는 신앙과 행위와 열매들이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하기 위한 눈금으로 가지 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 가 마태복음 7장에 나옵니다. (마 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 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 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 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외식의 가장 굵은 원리가 남의 티를 보는 것입니다. 누구를 보기만 하면 저 사람 은 어디가 결점인가 저 사람은 무엇을 안하는가 이것을 빨리 집어 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랑입니다. 보기만 하면 척 알아 내어버립니다. 자기는 세수도 안한 처지에 저 사람은 세수할 때에 세 번 밖에 안 문지른 얼굴이다, 저 사람은 여섯번 밖에 안 문지른 얼굴이다, 이렇게 척 알아 내는 것이 자랑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란 자기의 들보를 빼어 내는 작업입니다. 자기가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마땅히 나아가야 할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이지 그가 아는 모든 것으로 저 사람은 십일조를 내었다, 안 내었다, 저 사람은 새벽기도 나온다, 안 난온다, 저 사람은 겉으로는 저렇지만 속으로는 안 그렇다 이런 것을 헤아리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헤아릴 줄 안다는 것이 자랑이 됩니까 세상사를 사사건건 시시비비하고 다 알고 사람 속에 있는 마음 다 집어보고 하는 이것이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외식을 할 때에는 이런 것을 자기 자랑으로 삼고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정검해 보셔야 합니다. 이것을 마태복음 23장에서는 (마 23:24)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루살이까지 헤아려 봅니다. 아주 세밀한 것 까지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 장에서 본 것같이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내가 알았도다 라는 지적 그대로 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 바리새인들이 지금 예수님을 죽이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기껏 율법을 지켜놓고, 안식일을 지키고, 금식을 하고, 십일조를 바 치고 예수님은 정작 죽이고 있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킵니다. 여러분 자신이 이러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가 무서워하셔야 됩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신앙 생활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뜻밖에 도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들어 가기 보다는 서로서로가 나는 그래도 너만 못지 않다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에 쉽게 유혹을 받고 시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본의 아니게 바리새인이 되고, 본의 아니게 대제사장들과 같이 됩니다. (마 9:9-13)"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 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 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우린 예외없이 병자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오해는 그들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병자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시비를 거는 것이 이것입니다. 왜 병자와 식사를 하는가 왜 식사를 할 때에 손을 씻지 않느냐에 칩착했습니다. 마태라는 죄인 한 사람을 건져내어 죽었던 심령을 살려 내는 것보다도 손 씻었 느냐 안 씻었느냐가 더 중요하게 보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금방 유혹받기 쉽습니다. 우리는 결정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경쟁 상태에 서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비교할 수밖에 없고 지기 싫습니다. 여기서 서로를 향하여 칼을 빼지 마십 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원하시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모두를 향하여 참으며, 용서하며,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원수를 위해서 기도 하십시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을 대십시오!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러한 기독교 신앙마저 여러분을 증거하는 어떤 증명이 되도록 하지 마십시오! 치장이 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여러분 자신을 견주어 인간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를 확인하는 것으로 신앙을 전진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의 가장 큰 실 수는 자신들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비판하는 것을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의 신앙이 어떤 수준에 와 있느냐 하는 것은 각각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 이전에 그 신앙이 어떤 방향과 목표와 원리와 근거 속에 있느냐는 같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언제나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에 있어 야 합니다. 형제의 티를 보며,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그런 날카로움을 갖지 마십시오 그런 뛰어난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마음에 은혜를 구하며 긍휼을 구하 시기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용서가 있으며, 회개가 있으며, 눈물이 있는가를 보십시오! 여러분이 오늘 이 시간에도 주를 못박고 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 주님 앞 에 무릎을 꿇은 자인가 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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