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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섶 이슬과 하나님의 눈물 (요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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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9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점점 가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길가 코스모스의 흔들림이 제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가 생활의 무게를 잊게 해줍니다. 하늘은 쪽빛으로, 구름은 솜털처럼, 들판은 황금물결로 변해 갈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계 절이 주는 의미와 교훈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청명한 날씨처럼 공해에 찌든 하늘과 땅의 모습도 회복되고 인간성도 회복되는 가을이 되 길 원합니다. 올해도 수해로 인하여 많은 피해를 입었었는데 자연이 주는 비수 같은 경고를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끔 이현주 목사님이 풀어 쓴 '노자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노자의 도덕경인데 여러 가 지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지난 수해로 인해 잠시 말씀 드렸지만 특히 8장을 좋아합니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으며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기독교에서 물은 피요, 피는 보혈,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물의 속성은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며 더러운 것을 씻어내며 생명의 원천이고 결국 수증기로 하늘에 올 라가서 다시 깨끗해져서 이 땅위로 내려옵니다.
제가 신학교 3학년일 때 '비교종교학'이란 과목이 있었습니다. 담당 교수가 수강생들에게 과제로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 및 의역을 해오라고 했습니다. 저는 8장을 맡아 학생들 앞에 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과제준비를 하면서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롭던지 노자의 사상 에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도덕경 8장을 짧은 편인데 번역, 의역, 해설을 어설프게 하면서 생활철학을 생각했었습니다. 그것은 물같이 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번 태풍 '올가'의 영향으로 온 나라가 난리를 겪었습니다. 집중호우지역은 아니었지만 우리 교회도 물이 넘칠 뻔했습니다. 물을 생각할 때마다 제 마음에 잔잔하게 살아나는 것은 "물 흐르는 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물처럼 살지 못하고 무언가에 꽉 막혀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감기 몸살로 약 열흘간 앓았습니다. 몸과 마음이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온전하게 대답을 했어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제 편의대로, 내 욕심대로 일을 진행시키니까 몸과 마음이 막혀 서 무기력한 생활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병의 원인과 그 해결책은 저는 마음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 치유를 통해 서 제 몸에 남아있는 병의 찌꺼기를 쫓아내려고 하지만 잘 되질 않습니다.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이지만 치질이 재발하여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신경을 써서 많이 좋아졌는데 '변비' 라는 골치 아픈 병 아닌 병을 앓고 있습니다. 성미가 급하다 보니 느긋하게 앉아 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제게 인내력이 배양되면 쉽게 고칠 수 있을 텐데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량을 늘였습니다. 약을 먹으면 좋아지겠지만, 나타나는 현상이 사 라지는 것일뿐 완전한 치료는 아닐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분명 제 것이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인데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저의 처지입니다. 먹으면 자연히 뒤로 나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도 어찌 먹어도 먹어도 배출이 되질 않는 것은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어찌 들어가서 나올 줄 모르 고 있습니까 그것은 몸 한가운데 어디에서 무엇인가에 그 배출되는 길을 막고있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자꾸 만 자꾸만 세상에게, 여러분에게 진솔하질 못하고 훌륭하고 똑똑한 척 들어내 놓기 위해 눈 에 보이는 대로 입으로 먹고 마음으로 삼키다 보니 어느 순간 몸과 마음이 꽉 막히게 된 것 입니다. 무엇에도 과함이 없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물 흐르는 것처럼 살아야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거늘, 제 몸은 지금 마음 한구석에 과하게 넘치는 것이 있어 욕심이 생기고 사리사욕이 가득하여서 마음이 막히고 몸도 덩달아 막히게 되어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병의 근원은 마음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옳고도 옳다 생각됩니다. 아마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의 공통적인 질병일 것입니다. 여러분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그 무엇인가에 꽉 막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흐름은 지금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의 이치에 맞게 흘러가야 하는데, 이것이 아니 라 억지로 그 무엇인가에 끌려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끌고 있는 실체는 무엇이겠습니까 한번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실체는 없는데 우리 인류는, 너와 나는 정신없이 끌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계속하여 물질문명, 기계문명에 이끌려가서는 안되겠습니다. 현대 인류 의 문명은 죽임의 문명입니다. 죽임의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는 말입니다.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서구산업의 기계문명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는 근본 요인이 되었고, 이제자연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짓 밝고 죽음을 부르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염원인 "풍요와 안락"을 이루기 위하여 오염시킨 물과 공기를 마시는 언덕의 나무와 꽃들, 오염된 땅에서 과일과 식물을 먹는 인간들-모두 똑같이 죽음의 기운에 중독되 고 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등 너무 전자제품에 매달리지 말고 가급적 승용차로 무절제한 운전을 삼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문화생활을 누리는 만큼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 생명을 저당 잡히게 됩니다. 죽음 의 시대에서 무엇이 생명을 살리는 것인지 그 방법을 자각하여 실천으로 옮기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지금 현대인의 생활은 그 무엇인가에 의해 꽉 막히고 닫히고 꼬이고 뒤틀리고, 그래서 병 들고 죽어가는 것을 공포처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위해 본문을 택하고 여러번 읽어보았습니다. 4V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 또아리 들고 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쾌감을 받았습니다. "그렇구나. 지금 내가 몸과 마음에 병을 앓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늘 뜻대로 살지 못하고 그저 내 뜻대로, 나의 고집, 나의 생각, 나의 욕심, 나의 탐심으로 사리사욕 을 채우기 위해, 나에 대한 집착만으로만 살았기에 그렇구나, 그래서 이런 애꿎은 병을 통해 나에게 깨우침을 주시는 구나" 이러한 깨우침은 우리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으로 제 마음의 병뿐만 아니라 생활까지도 고 쳐주셨습니다. 오늘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무엇인가에 홀려서, 제 정신과 얼을 잃어버리고 어디론가 블랙홀처럼 빠져들고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의 욕심,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살아갑니다. 돈과 명예 와 권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끝장을 내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끝나는 것 도 아닌데, 남이야 어떻든 말든, 그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건만 자기자신의 일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루고야 말겠다는 현대인들의 모습에서 저는 우리가 신앙인으로 하나님 뜻 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고백합니다.
요즘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건 나가지 않는 사람이건 별차이가 없습니다. '옷로비' 청문회 에서 기독교인들의 설자리가 없어졌습니다.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옷 청문회를 마친 다음날 동아일보 신문에서 작가 한수산씨가 쓴 컬럼을 읽어보았습니다. '능욕당한 성경'으로 묘사하 여 증인들의 태도를 비난하며 올바른 신앙과 종교의 역할을 역설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을 팔아서 자신의 뜻, 자신의 욕심, 자신의 영달을 간구할 뿐, 인간의 뜻대로 마냥 살아가는 자칭 신앙인들 속에서 과연 여러분과 저는 포함되어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 인간의 바탕은 이렇게 인간의 뜻대로만 살아가려고 하는 깊은 이면에는 현대문명의 가치관이 독버섯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 "인간의 뜻"대로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모색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 과학의 합리성 을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안락과 편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만큼 인간성의 상실을 비롯 한 수많은 부작용을 양산하였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도구로 이용하고, 착취하면서 인간의 탐욕만 채웠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발 전해온 인간의 인위적인 문명은 결국 인간을 가두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이겠습니까 인간의 뜻대로 살지않고 하 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욕심, 자신의 이기심, 자신만의 안락, 그리고 어떤 인위적이고 조작적은 것 을 버리고 오늘 본문의 예수님처럼 내게 맡기신 사명을 완성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께 영광 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거짓으로 꾸미는 것을 버리고 바람 이 불면 부는 대로, 물이 흐르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 노자 할아 버지는 '無爲自然'을 이야기 했습니다. 노자 가르침의 주제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눈에 보는 생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꾸밈이 없고 거짓 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든 욕심을 버리고 인간의 술수와 계교를 버리고 순수 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道라고 합니다. 무위자연이라 함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버린 완전함을 이야기 합니다. 무위자연은 바로 인간이 걸어야 할 道이며, 기독교적 의미로는 예수의 길인 것입니다. 무위자연은 적극적 사 고, 적극적인 신앙, 적극적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의 수동적인 태도를 말 합니다. 이렇게 때로는 거꾸로도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수동적인 태도는 적극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혀둡니다. 자신의 것을 쟁취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는 것,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 으로 달려드는 어떤 인위적인 조작과 간섭을 배제한 수동적인 태도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 이 수동적인 적극성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루겠다는 인위적 적극성을 벗어버려야 할 것이고 스스로 꾸미는 신앙도 던져버 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위적 신앙에 매달려 교회에 나오는 습관도 벗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궤교나 술수, 꾸밈이 없는 인간의 모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기도한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것, "천지의 이치"에 맞게 사는 것,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뜻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서 태어나서 자연안 에서 살아가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인과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올바른 모습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일반계시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토불이 정신이요, 제때 제고장에서 나는 음식을 먹어야 몸에 좋은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그때그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산너머에서 불어오 느 바람을 맞으며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며, 서녘에 걸린 노을을 보면서 하나님의 미소를 발 견하며, 아침 풀섶에 맺히는 이슬을 보며 하나님의 눈물을 발견하는 신앙인의 안목이 있어 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과 함께 쉬고 호흡하는 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자연은 아무런 욕심이 없이 그저 스스로 있습니다. 자연은 하는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을 다 이루고 있습니다. 언덕의 꽃은 하늘 일 없이 그저 바람에 이끌리어 춤을 추지만 하나님 의 맡기신 일을 다하고 있습니다. 산은 아무 것도 하는 것 없는데 모든 것을 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저희같은 속물도 산 은 받아주질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창조사업에서 우리는 이탈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창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고 꿈꾸는 대로 하나님과 우리가 "새하늘과 새땅"을 향하여 함께 일을 하는 것 입니다. 결국 단물이 배어가는 포도 열매, 밤하늘에 앙머구리하는 개구리, 물 속에 살아가는 피라 미 한 마리,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 몇마리, 그리고 바로 우리들 하나 하나, 이렇게 자연과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창조사업의 동역자들입니다. 모두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감하 고 더욱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작고 자연과 어울리는 성도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 우리의 마음에 안식과 평화와 여유가 있으며 넓고 바르고 정직한 마음에 바로 튼튼한 육체가 건강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몸은 우주입니다. 우주는 우리 몸입니다. 건강한 마음에 건강한 육체가 찾아옵니다. 우리 마음과 몸이 병들면 땅과 우주 가 병들고, 땅과 우주가 막히면 우리의 몸도 막힙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하늘 아버지의 듯"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내 뜻대로", "인간의 뜻대로" 살아왔던 아집과 교만을 버립시다. 진정한 무위자연으로 돌아갑시다. 무위자연으로 돌아가는 방법중에 하나가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은 욕심이 없으며, 거짓이 없고, 세상을 깨끗게 합니다. "'인간의 최고의 善'은 물이다" 라는 노자 도덕경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물처럼 살아갑시다. 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야기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보혈의 물을 흘려주신 예수!. 우리는 거기에서 작은 예수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언어행실은 더욱 크리스챠니즘(예수정신)으로 뭉쳐 있어야 합니다. 마음과 몸과 자연과 우주는 모두 동일합니다. 동일 선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축으로 해서 하나님을 향해 달려가는 신앙인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신앙인은 진정한 자연인이 될 때 가능합니다. 그러기에 자연을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가 하라고 하신 일들에 대하여 회피하고 변명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이제 예수님이 보여준 모습대로 우리의 욕심, 우리의 사리사욕을 벗어버리고 무위자연으 로 물이 흐르면 물 흐르는 대로,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살아갑시다. 물은 예수요, 바람은 성령님입니다. 이 길이 자연의 길이요, 진정한 신앙인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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