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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되게 하소서 (요17: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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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자랑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열심과 기도와 헌신과 성경공 부, 봉사등 세계교회가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처럼 커 피 한 잔을 대접받고도 감사기도하고서야 마시는 성도는 한국교회에서나 찾 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참 부끄러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들끼리 하나되지 못하고 교인들 사이에 하나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사람들도 교회는 싸움 잘하는 곳으로 알고 있을 정도입니다. 참으 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물론 교회 만 하나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되지 못하고 자꾸 싸우는 것은 인간 공통의 현상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아담은 그 죄를 하와에게 전가하였고,그 아들 가인은 급기야 자기 친동생을 돌로 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죄 짓는 일에는 쉽게 마음이 하나되어서, 노아 홍수이후에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바벧 탑을 쌓아 올려 하나님을 대적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언어 를 혼잡하게 하여 온 땅에 흩으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진정한 일치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와 달라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과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믿으며, 우리 가운데 계시는 성령님 의 역사를 의지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하여 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그 이후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시는데 그 욧점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회가 주 안에서 하나되게 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는 우리 성도들이 하나되는 것이 예수님께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 나되는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셔야 된다는 사실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하나 되게 만드시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되심으로 우리를 하나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6-11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고백 하면서:11에서는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 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 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서로는 당연히 한 형제자매라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믿을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우리 성도들은 서로서로 가족임을 느낄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참이라면 우리 서로는 가족 이라고 불러야 옳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우리 서로 를 내 가족이라고 여기지를 않습니다. 겉으로는 미소짓고 인사를 하지만 마음은 남남인 채 지내지는 않습니까 이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생활수준이나 학력등 비슷한 사람들 끼리만 모입니다. 여기서 모든 갈등이 생겨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군인교회 목회시절, 하사관 가족들을 군인교회에 나오게 하는 일이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부대에서의 계급이 교회 안에서도 계속 의식 이 되어 군인교회 나오기를 싫어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민간인 교회 로 다 갔습니다. 교회안에서 세상 계급을 다 버리고 진정으로 한 가족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을 보면 아직 세상사람에 가깝지, 하나님의 가족으로는 부적합한 교인들이 많 은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세상 기준으로 성도들끼리 사귀어서는 안됩니다. 약하고 어려 운 교인이 더욱 위로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참된 교회입니다. 다음 주에는 교회에서 장학금을 지불하게 됩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교회의 모든 학생은 곧 내 자녀이고 내 형제임을 알고 교우들은 힘닿는 데 까지 도울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것이 믿지 않는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것과는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 가족에 대한 마땅한 책임 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석을 모으는 것이 취미인 어느 성도가 한번은 돌이 유명한 어느 개 천가에 나갔더랍니다. 그는 거기서 좀 더 크고 좀 더 좋은 돌을 주으려고 자갈 밭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어느 덧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감을 깨달았습니다. 점심도 굶고 돌을 찾았으나 아직 마음에 드는 돌이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이 분은 그 순간 자신이 걸어온 뒤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서 갑자기 인생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느낌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좀 더 좋 은 것, 좀 더 좋은 것을 찾아 가다가 어느덧 허무하게 인생의 종착점에 다 다르고 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발 밑에 있는 돌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볼품없고 조그마한 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까 그 돌 속에도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고 모양이 있고 아름다움 이 있음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사방에 있는 모든 돌들이 다 귀하고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고는 그는 수석을 모으는 취미를 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가족끼리는 가릴 것이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가족 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분도 계신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만 바 라보고 혼자서만 몰래 신앙생활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고, 본인도 신앙생활에서 결코 기쁨을 맛보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속회도 선 교회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마음 문을 열고 솔직하게 자신을 공개하며 성도의 교제를 나눌 때, 신앙생활의 참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들이 가족 같이 느껴지지 않는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나의 가족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참된 교회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담아 주심 으로 우리가 하나되게 하십니다.:26에서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 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성도들의 가슴 에는 너무나도 놀라운 사랑이 가득차 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독생자를 허락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보화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 사랑이 있으면, 우리는 얼마든지 하나될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이 우리 속에 있으면, 우리는 사랑의 빚진 자임을 알게 됩니다. 이 말은 우리는 이미 누구를 미워할 자격도 권리도 없는 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와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돼지와 함 께 뒹굴다가 돌아오는 탕자, 그 냄새나는 몬을 그대로 껴안으신 아버지의 사랑이 곧 저와 여러분이 받은 사랑이고, 음탕하여 외간 남자를 찾아가는 아내 고멜을 그래도 다시 데리고와서 품에 안으라고 호세아에게 명하시면서 내 마음이 그와 같다고 안타까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곧 우리가 받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는다면, 용납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 까 어느 창녀가 전도를 받았으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 도무지 예수 믿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고 주저하자 전도인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과거를 깨끗이 지워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당신의 과거를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서로 서로에게 있는 허물과 죄를 잊어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여인 중에도 창녀였던 막달라 마리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부활의 소식을 첫번째로 전하는 영광이 주어졌음을 알아 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내가 미워하고 멸시해서야 되겠 습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성도들을 대할 때, 성도들 사이 에 세상에서 맛보지 못하는 참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미움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십자가의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의 신앙의 본이 되어야 할 성도가 그러하다면 그는 자 신이 천국 문을 가로막고 있음을 깨닫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세째,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사이에 성령님의 교통하심을 주심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23에서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저희로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이라고 기도하셨는 데, 이 기도 속에 성령님의 사역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하나되는 일은 결국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 게 하시는 이도 성령님이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게 하시는 이도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들 사이에서 마음과 생각의 일치시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이러한 사역을 성령님의 교통하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성도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도, 또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성령님의 교통하시는 은혜를 믿고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들 끼리 모여 의논하 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옵니다. 생각과 뜻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잠언 19:21 말씀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 전히 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 다 른 생각을 가졌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마음이 모아 졌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의견일치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의견이 일치된 것 같 아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어떤 사람들의 주장이나 의 논을 더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교회는 하나가 된 것 같으나,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지 않게 되며 결국은 사람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조심하고 주의해 야 할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과 성령님께서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책임이 있는 성도들이 모 여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모여서 서로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 말 바로 구하였다면 놀라운 일치를 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기쁨이 넘칠 것이고, 확신이 생겨 용기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교회 각 기관 에서도 우리의 일터에서도 두세사람의 진실한 성도만 있으면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의 함께하시는 증거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다운 일치가 적게 경험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믿음이 적어서 성령님의 교통 을 구하지 않거나, 우리 각자가 성령님께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안에서의 일치가 왜 이렇게 필요합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 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서 하나되어야만
첫째,:13에 의하면 우리 속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충만 하게 되고
둘째는:21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공산화될 때, 중국에는 조직화된 교회와 성령님의 실제적인 역 사로 이끌어져 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조직화된 교회에는 훌륭한 목회자 와 정기적인 예배와 성경공부와 기도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성령님 의 일치보다는 제도와 조직에 의하여 운영되어 갔습니다. 공산 정권이 들어 서서 목사를 잡아가고 교회를 핍박하자 이 조직화된 교회는 다 무너지고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지 성령님 님의 인도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교통함으로 하나님이 진정 한 주인이신 교회는 그 핍박을 얼마든지 이기고 오히려 더 크게 부흥하였음 을 최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교회에는 참 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거짓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으로 하나되는 가정과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도들 사이에서 마음과 생각의 일치시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이러한 사역을 성령님의 교통하심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들은 성도들이 모인 어떤 자리에서도, 또 어떤 일을 할 때에도 성령님의 교통하시는 은혜를 믿고 구하여야 합니다. 우리들 끼리 모여 의논하 면 여러가지 의견이 나옵니다. 생각과 뜻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잠언 19:21 말씀에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 전히 서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모든 성도들이 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 다 른 생각을 가졌던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마음이 모아 졌다면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교회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의견일치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의견이 일치된 것 같 아보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절대로 어떤 사람들의 주장이나 의 논을 더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교회는 하나가 된 것 같으나,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지 않게 되며 결국은 사람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조심하고 주의해 야 할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음과 성령님께서 그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하여, 책임이 있는 성도들이 모 여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려는 마음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하여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기를 하나님 앞에 겸손히 머리 숙이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모여서 서로 깨달은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 말 바로 구하였다면 놀라운 일치를 볼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기쁨이 넘칠 것이고, 확신이 생겨 용기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교회 각 기관 에서도 우리의 일터에서도 두세사람의 진실한 성도만 있으면 그 가운데 우리 주님의 함께하시는 증거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참다운 일치가 적게 경험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믿음이 적어서 성령님의 교통 을 구하지 않거나, 우리 각자가 성령님께 순종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안에서의 일치가 왜 이렇게 필요합니까 이것이 우리 성도 들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서 하나되어야만
첫째,:13에 의하면 우리 속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충만 하게 되고
둘째는:21 말씀에 의하면 세상에 생명의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는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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