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가, 하나가 되게 하소서 (요17:20-26)
본문
우리들이 가끔 듣고 또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최후"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상기후 현상이 계속되다가는 인류 최후의 날이 곧 다가올지도 모 릅니다"하는 기사를 읽으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게 됩니다. "이것은 최후의 통첩입니다" 하면 다음에는 행동으로 들어가겠다는 뜻입니다. 오늘이 내 생애에 있어서 최후의 날이라면 우리는 최고로 경건하게, 진지하 게 살 것입니다. 이렇게 최후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에게 긴박감을 주고 또 비장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요한복음 14장에서 17장까지, 특별히 17장을 좀 더 심 각한 마음으로 읽어야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예수님의 최후 설교이고 17장은 최 후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해 마지막으로 드린 중보기도인 요한 복음 17장에는 같은 기원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원입니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 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 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23절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최후 기도 가운데 중요한 내용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 입니다. 21절의 기도처럼 교회가 하나될 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믿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 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입니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예수님의 최후 기도 앞에 세 가지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당신은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까 폭풍우 이는 바다를 그리고 싶어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 치는 날이면 바닷가에 나가 유심히 관찰하고 화실에 돌아 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흡족한 그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화가는 큰 결심을 하고 항구를 아가 출항하는 배의 선장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그 배에 승선했습니다. 배는 출항했고 항해 중에 무서운 폭풍우 를 만났습니다. 선장은 이 화가를 마스트에 매달았습니다. 이 화가가 선장에 게 부탁한 것이 바로 폭풍우를 만나면 자기를 마스트에 묶고 폭풍우가 멈출 때까지 내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에 맞섰고 비와 바람에 젖었고 폭풍의 일부가 되었고 나중 에는 폭풍우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폭풍우와 하나가 된 체험을 한 다음에 이 화가는 비로서 만족할만한 명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소설가는 자기가 쓰는 작품의 주인공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독자들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요즘 "눈높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눈높이 수학눈높이 방법", 이 말은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견학을 가지 전 날 미리 가서 무릎을 굽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전시물들을 보고 그 다음날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다는 데서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하나가 된 선생님이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고난 받는 동족과 하나가 될 때 출애굽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고난 받는 히브리 족속이다" 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집트 왕실에 머물러서 동족을 위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도 편하고 동족들에게는 '이집트 왕실에도 우리 편이 있 다'는 사실로 위로가 되었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하면 그는 추 상적이고 감상적인 일 몇가지는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과 같은 새 역사를 창출해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 받는 동족들과 하나가 될 때 그는 새 땅, 새 시대, 새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미엔 신부의 이야기가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벨기에 출신의 신부입니다.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 섬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전도를 하는데 나환자들에 게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나환자들이 "당신은 건강한 사람, 우리는 나환 자" 거리를 둡니다.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나환자 전도를 시작한지 11년째되는 해에 다미엔 신부 자신이 나병에 감염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심부름하는 소년이 주전자에 끓는 물을 담아 가지고 오다 실수를 해서 그 물이 신부의 발에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소년은 이것을 보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신부가 나병에 걸려 발이 감각을 잃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신부는 소년을 위로하며 한편으로는 주님께 자기가 나병에 걸려 나환자들과 하나가 된 것을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열심히 전도하다가 188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나환 자와 하나가 된 5년 동안에 전도한 숫자가 앞의 11년 보다도 더 많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될 때 신앙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깊은 뜻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이를 실감있 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 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 하리라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 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주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가 되었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시의 열두 제자만을 위해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20절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바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 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사는 분열사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한국교회의 역사는 분열사 가운데서 도 분열사입니다. J. C. 스미스라는 학자는 선교국제보고서라는 잡지 1961년 7월 호에 실린 "한국의 정책과제"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장로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분열 많 이하는 교회라고 단정하고 교회가 분열하면 어느 정도 분열하는지 연구한 논문을 게재한 일이 있습니다. 교파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같은 교파 안에서도 교회 간의 담장이 높습니다.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라 고 부릅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는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 묘사된 초대교회의 모습은 하나가 된 교회의 극 치를 보여 줍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 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 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가 된 교회를 주님은 축복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수난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어 받는 수난은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고 접착제가 되었고 훈련의 교재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할 때는 수난은 와해를 부릅니다.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의 평안함은 썩게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맣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최후 기도를 어기는 엄중한 잘못입니다. 우리는 둘로 되려다가도 "아, 예수님의 최후 기도가'하나가 되게 하소서' 하는 것이었지!" 하면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기만 하던 청개구리도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순종해서 어머니를 냇가에 묻고 요즘과 같이 비가 오면 어머니 무덤이 떠나갈까 염려 되어서 개골개골 요란하게 울지 않습니까 청개구리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단결 잘 되는 단체의 하나로 해병대를 들지요. 교회는 해병대 보 다도 더 단결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구호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입니다. 교회 가 북한보다 못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에 순종해 서 하나가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뤄야하는 공동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를 부 탁드립니다.
셋째, 세상이 하나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이 세상 모든 것)이 통일"입니다. 에베소서는 십자가가 가는 곳마다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2장이 그러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 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 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 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 속이라"(엡2:13-19) 십자가의 역사는 갈라졌던 것을 하나로 합하게 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죄로 갈라졌던 하나님과 나를 하나되게 하고 이웃과 이웃을 하나되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를 이뤄가는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8월은 광복의 달이었는데 이제는 평화통일 기원의 달이라는 점이 더 강조되 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는 해로서, 독립 희년으로 서, 부정적인 측면으로서는 분단이 고착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평 화통일의 기원, 남과 북이 하나되는 기원이 더욱 간절해져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정부수립 50주년 감사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교회는 남과 북이 하나 되도록 하는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곳에 화개장터가 있습니다. 이 번에 그 곳도 비 피해를 많이 입었겠는데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졌지요. 이 곳에 가면 경 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어울린다고 합니다. 교회는 남과 북의 화개장터 노릇을 해야합니다. 저기 무주에 가면 나제통문(羅濟通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양쪽을 가로막 은 산에 바위굴로 길이 났는데 예전에 신라와 백제가 이 문을 통해서 오갔 다고 해서 나제통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재미 있는 것은 무주쪽에서 나 제통문을 지나 얼마 더 가면 경상남도 거창군이 되는데 나제통문 지나기 전의 무주군은 전라도적 전라도이고 나제통문을 지나면 전라도는 전라도인 데 경상도적 전라도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는 남과 북의 나제통문이 되어야합니다. 다행한 것은 교회의 통일운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아마 이 다음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비중있게 평가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층 간의 갈등인데 경제위기 이후 이 것이 더 욱 심화되어 염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경제위기 이후 유리해진 금융소득으로 불 로소득을 누리는 계층 간에 반목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노사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갈등이 어느 때에 가서는 폭발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달래주어야합니다. 가진 자들에게 부의 정당한 사용과 고통의 분담을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교리 역시하나되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삼위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셋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일체입니다. 저는 이 설교의 앞부분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하나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하나되어야 하나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 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우리는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이 시간에도 간절하게 기도 하고 계십니다. 이 기도에 응해 주님과 하나가 되고 교회가 안과 밖에서 하나가 되고 세상 이 하나되도록 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는 예수님의 최후 설교이고 17장은 최 후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대제사장으로서 우리 모두를 위해 마지막으로 드린 중보기도인 요한 복음 17장에는 같은 기원이 네 번이나 반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기원입니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 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 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소서"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23절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의 최후 기도 가운데 중요한 내용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하나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 입니다. 21절의 기도처럼 교회가 하나될 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믿게 됩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 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입니다. "하나가 되게 하소서"라는 예수님의 최후 기도 앞에 세 가지 질문을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당신은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까 폭풍우 이는 바다를 그리고 싶어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 치는 날이면 바닷가에 나가 유심히 관찰하고 화실에 돌아 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흡족한 그림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화가는 큰 결심을 하고 항구를 아가 출항하는 배의 선장에게 무엇을 부탁하고 그 배에 승선했습니다. 배는 출항했고 항해 중에 무서운 폭풍우 를 만났습니다. 선장은 이 화가를 마스트에 매달았습니다. 이 화가가 선장에 게 부탁한 것이 바로 폭풍우를 만나면 자기를 마스트에 묶고 폭풍우가 멈출 때까지 내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화가는 폭풍우에 맞섰고 비와 바람에 젖었고 폭풍의 일부가 되었고 나중 에는 폭풍우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폭풍우와 하나가 된 체험을 한 다음에 이 화가는 비로서 만족할만한 명화를 그릴 수 있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소설가는 자기가 쓰는 작품의 주인공과 하나가 될 때 비로소 독자들을 감동 시킬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습니다. 요즘 "눈높이"라는 말이 유행합니다. "눈높이 수학눈높이 방법", 이 말은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을 데리고 박물관 견학을 가지 전 날 미리 가서 무릎을 굽혀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전시물들을 보고 그 다음날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었다는 데서 유래를 두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하나가 된 선생님이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고난 받는 동족과 하나가 될 때 출애굽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어머니로부터 "너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고난 받는 히브리 족속이다" 라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가 이집트 왕실에 머물러서 동족을 위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판단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자기도 편하고 동족들에게는 '이집트 왕실에도 우리 편이 있 다'는 사실로 위로가 되었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고하면 그는 추 상적이고 감상적인 일 몇가지는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사건과 같은 새 역사를 창출해 내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고난 받는 동족들과 하나가 될 때 그는 새 땅, 새 시대, 새 역사를 이루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다미엔 신부의 이야기가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벨기에 출신의 신부입니다. 하와이 군도 몰로카이 섬에서 나환자들을 위해 전도를 하는데 나환자들에 게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나환자들이 "당신은 건강한 사람, 우리는 나환 자" 거리를 둡니다.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나환자 전도를 시작한지 11년째되는 해에 다미엔 신부 자신이 나병에 감염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심부름하는 소년이 주전자에 끓는 물을 담아 가지고 오다 실수를 해서 그 물이 신부의 발에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신부는 아무 것도 모르고 계속해서 책을 읽었습니다. 소년은 이것을 보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왜냐하면 존경하는 신부가 나병에 걸려 발이 감각을 잃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야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신부는 소년을 위로하며 한편으로는 주님께 자기가 나병에 걸려 나환자들과 하나가 된 것을 감사 드렸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열심히 전도하다가 1889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나환 자와 하나가 된 5년 동안에 전도한 숫자가 앞의 11년 보다도 더 많았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될 때 신앙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깊은 뜻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이를 실감있 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 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 하리라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 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하나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육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되기 위해 무엇을 합니까 주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둘째, 교회는 하나가 되었습니까 주님께서는 당시의 열두 제자만을 위해서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20절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바로 우리들을 위하여 "하나가 되게 하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하나가 되지 못 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회사는 분열사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한국교회의 역사는 분열사 가운데서 도 분열사입니다. J. C. 스미스라는 학자는 선교국제보고서라는 잡지 1961년 7월 호에 실린 "한국의 정책과제"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장로교회가 세계에서 가장 분열 많 이하는 교회라고 단정하고 교회가 분열하면 어느 정도 분열하는지 연구한 논문을 게재한 일이 있습니다. 교파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같은 교파 안에서도 교회 간의 담장이 높습니다.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라 고 부릅니다. 같은 교회 안에서는 하나가 되어 있습니까 사도행전 2장 42절 이하에 묘사된 초대교회의 모습은 하나가 된 교회의 극 치를 보여 줍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 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 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 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하나가 된 교회를 주님은 축복하십니다. 초대교회는 수난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어 받는 수난은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고 접착제가 되었고 훈련의 교재가 되었습니다. 하나가 되지 못할 때는 수난은 와해를 부릅니다. 하나가 되지 못했을 때의 평안함은 썩게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맣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 교회의 하나됨을 강조했습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최후 기도를 어기는 엄중한 잘못입니다. 우리는 둘로 되려다가도 "아, 예수님의 최후 기도가'하나가 되게 하소서' 하는 것이었지!" 하면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기만 하던 청개구리도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순종해서 어머니를 냇가에 묻고 요즘과 같이 비가 오면 어머니 무덤이 떠나갈까 염려 되어서 개골개골 요란하게 울지 않습니까 청개구리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서 단결 잘 되는 단체의 하나로 해병대를 들지요. 교회는 해병대 보 다도 더 단결되어야 합니다. 북한의 구호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입니다. 교회 가 북한보다 못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에 순종해 서 하나가 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합력하여 선을 이뤄야하는 공동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를 부 탁드립니다.
셋째, 세상이 하나되게 하도록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신약성경 가운데 에베소서가 있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유(이 세상 모든 것)이 통일"입니다. 에베소서는 십자가가 가는 곳마다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강조합니다. 특별히 에베소서 2장이 그러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 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 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 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 속이라"(엡2:13-19) 십자가의 역사는 갈라졌던 것을 하나로 합하게 하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죄로 갈라졌던 하나님과 나를 하나되게 하고 이웃과 이웃을 하나되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기도를 이뤄가는 역사였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8월은 광복의 달이었는데 이제는 평화통일 기원의 달이라는 점이 더 강조되 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정부수립 50주년이 되는 해로서, 독립 희년으로 서, 부정적인 측면으로서는 분단이 고착된지 5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평 화통일의 기원, 남과 북이 하나되는 기원이 더욱 간절해져야 하는 때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일에 정부수립 50주년 감사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교회는 남과 북이 하나 되도록 하는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전라도와 경상도가 만나는 곳에 화개장터가 있습니다. 이 번에 그 곳도 비 피해를 많이 입었겠는데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졌지요. 이 곳에 가면 경 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아무런 어색함이 없이 어울린다고 합니다. 교회는 남과 북의 화개장터 노릇을 해야합니다. 저기 무주에 가면 나제통문(羅濟通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양쪽을 가로막 은 산에 바위굴로 길이 났는데 예전에 신라와 백제가 이 문을 통해서 오갔 다고 해서 나제통문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재미 있는 것은 무주쪽에서 나 제통문을 지나 얼마 더 가면 경상남도 거창군이 되는데 나제통문 지나기 전의 무주군은 전라도적 전라도이고 나제통문을 지나면 전라도는 전라도인 데 경상도적 전라도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는 남과 북의 나제통문이 되어야합니다. 다행한 것은 교회의 통일운동이 매우 활발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은 아마 이 다음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비중있게 평가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나라의 문제 가운데 하나가 계층 간의 갈등인데 경제위기 이후 이 것이 더 욱 심화되어 염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경제위기 이후 유리해진 금융소득으로 불 로소득을 누리는 계층 간에 반목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노사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같은 갈등이 어느 때에 가서는 폭발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고통 받는 사람의 아픔을 달래주어야합니다. 가진 자들에게 부의 정당한 사용과 고통의 분담을 가르쳐 주어야합니다. 삼위일체는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교리 역시하나되게 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삼위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셋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일체입니다. 저는 이 설교의 앞부분에서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하나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하나되어야 하나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해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교회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 인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이 믿을만 하다는 것, 매력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할 때 우리는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이 시간에도 간절하게 기도 하고 계십니다. 이 기도에 응해 주님과 하나가 되고 교회가 안과 밖에서 하나가 되고 세상 이 하나되도록 하는 일에 모범을 보이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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