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과 연합으로 하나 됨 (요17:21)
본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이유를 모르는 신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여 천국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죄악 의 흑암에서 건져내셨다는 식의 설명이 성경의 설명이긴 합니다만 오늘 본분과 같이 설명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말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 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 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여호와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되고 연합되는 차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같은 구원의 연합과 화목의 차원에 관하여 상 고해 보고자 합니다.
<본론> 먼저 엡2:11-18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 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 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 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 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 문제와는 좀 다른 말씀들을 찾을 수 있 을 것입니다. 원수된 것, 막힌 담,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 이런 것들에 비하여 화 해, 화목, 평안, 막힌 담이 헐림, 함께, 하나 되어라는 식의 묘사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것이 부분적인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 반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그 다음에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며, 말씀을 따라 사는 자 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신앙을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칫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하실 일들을 모두 다 끝냈으 므로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주를 위해서 할 일밖에 없는 줄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돌아가셨 기 때문에 이제 난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남은 생애를 주 를 위하여 바치는 것만이 남았으니 이 생애를 바치리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신앙 생활에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 속을 성취시키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로서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탄생과 출발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라가야 하는 성장의 과정, 성숙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 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조금 전에 읽은 엡2:11-18절에서 하나 됨의 목표가 어디로 설정되어 있느냐 하면 18절에서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으로 그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분명히 이 해하기 위하여 그 뒷부분인 엡2:19-2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 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 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서 성도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계속 지어져 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지금 성전이 되어져 가고 있고 하나님의 거하실 척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17:21절 오늘 본문 말씀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우리가 하 나된 것같이 저희도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할 때의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님 하나님을 가리 킵니다. 그 삼위 하나님 안에 신자된 우리를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같 이 예수님처럼 아버지 안에 있을 만한 완성의 자리에 이르기에는 아직 아닌지도 모 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신자들은 그것이 가능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가능 성이 있는 자로 부름을 받았지 부름 받는 순간 완성된 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부단히 변화하여 성화의 길을 가야하는 것 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이같은 의미를 엡3:1-12절에서 이렇게 연결시켜 이야기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 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으로 나타내신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 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하시고 영원부터 만물 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 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깨달은 비밀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경륜, 그 풍성하신 지혜와 경륜 속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계셨는데 그것을 사도 바울이 깨 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국 점도 없고 흠도 없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정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교 제 하셨고 그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아 우리를 죄에서 꺼냈고 그리고 이 제는 교회 안에 모ㄲ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시키시려고 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란 보이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비한 조직입니다. 어떤 구조와 조 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으로 부름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눈금 없이 일하는 데 훨씬 약하기 때문에 이런 기구와 조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형식이란 내용을 가 지지 않고도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형식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형식이 없이 내용을 담고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형식이 갖는 무서움 때문에 무교회주의자라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목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고 교회를 짖는 부작용으로부터 벗어나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이 참다운 신앙으로 뭉쳐서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모인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 중에서 훨씬 신앙이 뛰어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찌무라 간조 같은 사람이 그런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함석헌씨와 같은 그런 일파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분들이 많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 에게 영향을 미치며 범인으로서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는 유익한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같은 자들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한 조직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때에는 훨씬 불합리할 때가 많고 조직 자체를 위하여 너무 많은 희생과 손해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만큼의 기구 와 어떤 조직을 갖지 않으면 내용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조직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조직을 갖춘 교회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목표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각 제체들이 부름을 받아 `우리가 그 안에서 그 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도록' 하는 일에 유익 을 보도록 의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엡2:22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어 져 기며 그 안에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를 부르고 있고 그 안에서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전도나 교 제나 봉사라기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장 큰 내용과 목표로 하고 원리로 하는 것 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신앙을 종교적인 어떤 행사나 봉사라고 여기신다면 어느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 고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사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 이는 신앙의 성장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신서가 이야기 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참 신앙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교회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과같 이 `저희도 우리 안에 있어 하나되게 하옵소서!'라는 하나님의 궁극적이 계획이 에 베소서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감취었던 비밀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 밀을 바로 깨우치지 못하면 정말 이것은 비밀이 되어버리고 말것입니다.
골1:24-29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 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 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 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에서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성시 키셨습니다. 이 구원을 위하여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뒤에 보완해야 될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단번에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 바울은 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까요 그러면 그 남은 고난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곧 우리의 완성을 가리 킵니다. 바로 여기서 여러분은 혼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때에 우리 자신이 구원으로 완성된 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기준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 치 구원받았다고 할 때에 이제는 더 이상의 완성을 위한 길이 남아 있지 않는 것처 럼 여기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 그 자체가 더 이상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것이지 구원 받는 우리들에게 구원받는 순간 갑자기 성화된 완전한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신자는 누구나 예외없이 구원의 완성이라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보냄을 받고 그 지체가 되어서 성화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은 고난을 어디에다 채운다고 되어 있습니까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등장하는 이유는 모여서 이미 알고 있는 바 나는 예수를 믿고 있다, 그래서 천국을 갈 것이다, 지금 죽어도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같은 것들은 모두 기초 입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완성시켜야 할 것이 신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으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움과 완성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자로서 교회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신앙 생활이란 결국 얼마나 남을 더 용서하고 기다리고 사랑하느냐의 싸움이지, 다른 종교적 사업이나 봉사 같은 것들은 이차적인 문제들입니다. 종교적 행사나 봉사를 말로 할에는 참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사건이 되 고 거기에 개입해 보면 우리가 말로만 했던 것과 실제 나의 실력 간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말로만 하게 하지 않고 실제적인 일을 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신자들을 튼튼하게 만드시기 위 하여 가라지도 보내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종종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원 치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원치 않는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수련회 다녀 온 아이가 다쳐 오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보같은 사람은 꼭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는 수련회 보내지 말자.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 일까요 이렇게 우리의 사고방식은 참으로 우습고 자기 중심적이라서 꼭 이런 식으 로 밖에 더 나은 반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실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기라도 하면 나를 보호하려고 만 하지 교회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골1:25절에서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 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신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 를 모르는 자입니다. 이어서 골1:26-27절을 보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 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를 보십시오. 조금 다르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영광의 소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주로 이런 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시요, 그 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된다'라는 식으로 이미 과거에 내게 해주신 것들에 대해 추억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여기 27절에서는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 느냐 하면 골로새 교인들은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기초가 되어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되며 계 속 사역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의 소망을 그들 가운데서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같은 입장에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에 신자들의 최고의 약점은 그 자신이 얻은 구원, 천국 가는 표 를 하나 받아 놓고서는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해려고 동분서주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 해서 무엇을 한답시고 서로가 싸웁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도 많이 봅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런 무익한 싸움을 하는 자들 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여기 골로새서에 나타난 `영광의 소망'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로마서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먼저 롬5:1-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여기까지는 다 과거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이것이 미래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자들에게는 바랄 것이 있는 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영광의 소망입니다. 이런 기대와 이런 약속을 모르고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6:5절을 보십시다. 좀 다른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 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또한 8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로부터 놓여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라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누리는 것은 너무도 약합니다. 거저 어떻하면 구원의 은혜에 보답할까 하는 몸짓만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부모님들이 공부하는 자녀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공부시키느라고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았는데 이제 다 컷다고 이렇게 함부로 하는거냐' 그래서 자녀된 우리는 남은 평생을 그냥 보답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젊어서는 부모님께 보답하느라고 공부만 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나니 내 뒤치닥 거리하면서 부모님 모시다가 평생을 보답하는 것이 동양적인 효입니다. 이것이 동양 적인 윤리관의 최고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와같은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 하여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제 우리가 우리의 죄와 더러 움으로부터 완전히 박차고 나와서 우리에게 허락된 더 큰 약속과 영광의 자리에 나 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시 에베소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광의 소망을 위하여 교회가 어떤 식으로 설명되고 있는 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엡1:17-23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 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 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 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것이 바로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제 다시 엡3:14-21절을 보십시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 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 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 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 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 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부름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즉 예수님께서 요17:21절의 기도를 하실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놓치고 있다면 신자는 그의 나아갈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맡은 큰 일중의 하나가 있다면 이 것일 것입니다. 아는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거짓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방 다니면서 물어보면 모두 답이 목사 님의 말씀이 좋아서 나왔답니다. 그러나 그 설교가 나를 변화시키고 신자 된 모습을 비꿔 놓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만이 교회에 나온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들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게서 용서가 있고, 자비가 있고, 온유가 있고, 사랑 이 있어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신자가 되어질 때에 참된 신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만히 나와서 슬쩍 예배만 드리고 도망가지 마십시오. 헌금만 내 놓 고 사명이 끝난 듯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 영광의 소망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내게 허락된 이 교회를 통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복종하십시오. 교회의 일에 동참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참고 견디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참 이익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봉사하고 참여하고 함께 기도할 줄 알며 마음을 나누는 데까지 참 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론> 먼저 엡2:11-18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 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 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 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 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 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구원 문제와는 좀 다른 말씀들을 찾을 수 있 을 것입니다. 원수된 것, 막힌 담,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 이런 것들에 비하여 화 해, 화목, 평안, 막힌 담이 헐림, 함께, 하나 되어라는 식의 묘사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신자들은 하나님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사실에 대하여 많이 아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것이 부분적인 것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믿으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 반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그 다음에 착하고 선한 사람이 되며, 말씀을 따라 사는 자 가 되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을 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이 남아 있기에 신앙을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칫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제 우리에게 하실 일들을 모두 다 끝냈으 므로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주를 위해서 할 일밖에 없는 줄로 여기기가 쉽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돌아가셨 기 때문에 이제 난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되었고 이제 내가 할 일은 남은 생애를 주 를 위하여 바치는 것만이 남았으니 이 생애를 바치리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는 것이 신앙 생활에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대 속을 성취시키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만,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 로서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탄생과 출발은 되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라가야 하는 성장의 과정, 성숙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 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조금 전에 읽은 엡2:11-18절에서 하나 됨의 목표가 어디로 설정되어 있느냐 하면 18절에서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것으로 그 목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좀 더 분명히 이 해하기 위하여 그 뒷부분인 엡2:19-2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 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 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 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서 성도에 관하여 설명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이 계속 지어져 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직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21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지금 성전이 되어져 가고 있고 하나님의 거하실 척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요17:21절 오늘 본문 말씀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우리가 하 나된 것같이 저희도 모두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하는 말씀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 안에 있게 하사라고 할 때의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님 하나님을 가리 킵니다. 그 삼위 하나님 안에 신자된 우리를 있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같 이 예수님처럼 아버지 안에 있을 만한 완성의 자리에 이르기에는 아직 아닌지도 모 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금 지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신자들은 그것이 가능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가능 성이 있는 자로 부름을 받았지 부름 받는 순간 완성된 자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부단히 변화하여 성화의 길을 가야하는 것 입니다. 바로 이 부분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이같은 의미를 엡3:1-12절에서 이렇게 연결시켜 이야기합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 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님으로 나타내신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 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하시고 영원부터 만물 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 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깨달은 비밀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신 경륜, 그 풍성하신 지혜와 경륜 속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계셨는데 그것을 사도 바울이 깨 달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결국 점도 없고 흠도 없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정말 완전한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교 제 하셨고 그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못박아 우리를 죄에서 꺼냈고 그리고 이 제는 교회 안에 모ㄲ어서 하나님의 자녀로 완성시키시려고 하는구나!를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란 보이는 조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비한 조직입니다. 어떤 구조와 조 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으로 부름받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고 눈금 없이 일하는 데 훨씬 약하기 때문에 이런 기구와 조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형식이란 내용을 가 지지 않고도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형식주의를 배격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형식이 없이 내용을 담고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형식이 갖는 무서움 때문에 무교회주의자라는 무리가 생겼습니다. 목사를 세우고 장로를 세우고 교회를 짖는 부작용으로부터 벗어나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이 참다운 신앙으로 뭉쳐서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모인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들 중에서 훨씬 신앙이 뛰어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찌무라 간조 같은 사람이 그런 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함석헌씨와 같은 그런 일파에 속한 분이었습니다. 여기에 뛰어난 분들이 많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 에게 영향을 미치며 범인으로서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는 유익한 방법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같은 자들이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한 조직을 갖고 신앙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때에는 훨씬 불합리할 때가 많고 조직 자체를 위하여 너무 많은 희생과 손해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만큼의 기구 와 어떤 조직을 갖지 않으면 내용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런 조직을 허락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조직을 갖춘 교회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목표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아 각 제체들이 부름을 받아 `우리가 그 안에서 그 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도록' 하는 일에 유익 을 보도록 의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엡2:22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지어 져 기며 그 안에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교회를 부르고 있고 그 안에서 훈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됨을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전도나 교 제나 봉사라기보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장 큰 내용과 목표로 하고 원리로 하는 것 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신앙을 종교적인 어떤 행사나 봉사라고 여기신다면 어느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이 도사리 고 있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하나님과의 사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없 이는 신앙의 성장이나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과의 깊은 사귐 을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신서가 이야기 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참 신앙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교회란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것과같 이 `저희도 우리 안에 있어 하나되게 하옵소서!'라는 하나님의 궁극적이 계획이 에 베소서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감취었던 비밀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 밀을 바로 깨우치지 못하면 정말 이것은 비밀이 되어버리고 말것입니다.
골1:24-29절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 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 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 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에서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성시 키셨습니다. 이 구원을 위하여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뒤에 보완해야 될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단번에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 바울은 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란 이야기를 하고 있을 까요 그러면 그 남은 고난이란 무엇을 가리킬까요 그것은 곧 우리의 완성을 가리 킵니다. 바로 여기서 여러분은 혼동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이라는 것을 이야기 할 때에 우리 자신이 구원으로 완성된 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을 기준으로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 치 구원받았다고 할 때에 이제는 더 이상의 완성을 위한 길이 남아 있지 않는 것처 럼 여기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 그 자체가 더 이상 덧붙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는 것이지 구원 받는 우리들에게 구원받는 순간 갑자기 성화된 완전한 사람으로 바뀐다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구원 받은 신자는 누구나 예외없이 구원의 완성이라는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으로 보냄을 받고 그 지체가 되어서 성화의 완성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남은 고난을 어디에다 채운다고 되어 있습니까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육체에 채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교회가 등장하는 이유는 모여서 이미 알고 있는 바 나는 예수를 믿고 있다, 그래서 천국을 갈 것이다, 지금 죽어도 하나님 앞에 설 것이다, 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같은 것들은 모두 기초 입니다. 지금 죽어도 천국에서 깨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기초로 완성시켜야 할 것이 신자들에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자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났으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아름다움과 완성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자로서 교회에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신앙 생활이란 결국 얼마나 남을 더 용서하고 기다리고 사랑하느냐의 싸움이지, 다른 종교적 사업이나 봉사 같은 것들은 이차적인 문제들입니다. 종교적 행사나 봉사를 말로 할에는 참으로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사건이 되 고 거기에 개입해 보면 우리가 말로만 했던 것과 실제 나의 실력 간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있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말로만 하게 하지 않고 실제적인 일을 주시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 신자들을 튼튼하게 만드시기 위 하여 가라지도 보내십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종종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원 치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원치 않는 사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수련회 다녀 온 아이가 다쳐 오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보같은 사람은 꼭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는 수련회 보내지 말자.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이 의도 일까요 이렇게 우리의 사고방식은 참으로 우습고 자기 중심적이라서 꼭 이런 식으 로 밖에 더 나은 반응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렇게 실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자기 자신에게 일어나기라도 하면 나를 보호하려고 만 하지 교회를 보호하려고 하지 않으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골1:25절에서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 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신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교회가 무엇인지 를 모르는 자입니다. 이어서 골1:26-27절을 보면,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 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를 보십시오. 조금 다르게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가 영광의 소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주로 이런 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시요, 그 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천국에 가게 된다'라는 식으로 이미 과거에 내게 해주신 것들에 대해 추억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여기 27절에서는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 느냐 하면 골로새 교인들은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그 기초가 되어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 되며 계 속 사역하셔야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영광의 소망을 그들 가운데서 이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같은 입장에 있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에 신자들의 최고의 약점은 그 자신이 얻은 구원, 천국 가는 표 를 하나 받아 놓고서는 주를 위해서 무엇을 해려고 동분서주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 해서 무엇을 한답시고 서로가 싸웁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신자들이 너무도 많이 봅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런 무익한 싸움을 하는 자들 이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여기 골로새서에 나타난 `영광의 소망'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로마서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먼저 롬5:1-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여기까지는 다 과거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이것이 미래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신자들에게는 바랄 것이 있는 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 영광의 소망입니다. 이런 기대와 이런 약속을 모르고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힘이 없는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6:5절을 보십시다. 좀 다른 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 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또한 8절에서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에게는 이 부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 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로부터 놓여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라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누리는 것은 너무도 약합니다. 거저 어떻하면 구원의 은혜에 보답할까 하는 몸짓만이 있을 뿐입니다. 옛날에 부모님들이 공부하는 자녀들에게 늘상 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공부시키느라고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 것 입지 않았는데 이제 다 컷다고 이렇게 함부로 하는거냐' 그래서 자녀된 우리는 남은 평생을 그냥 보답하고 살아가야 됩니다. 젊어서는 부모님께 보답하느라고 공부만 하고 결혼해서 애 낳고 나니 내 뒤치닥 거리하면서 부모님 모시다가 평생을 보답하는 것이 동양적인 효입니다. 이것이 동양 적인 윤리관의 최고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은 이와같은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위 하여 희생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제 우리가 우리의 죄와 더러 움으로부터 완전히 박차고 나와서 우리에게 허락된 더 큰 약속과 영광의 자리에 나 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시 에베소서 1장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광의 소망을 위하여 교회가 어떤 식으로 설명되고 있는 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엡1:17-23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 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 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 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이것이 바로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된 복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이제 다시 엡3:14-21절을 보십시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 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 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 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 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 기를 원하노라 아멘"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신자로 부르신 부름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즉 예수님께서 요17:21절의 기도를 하실 수 있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러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이것을 놓치고 있다면 신자는 그의 나아갈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날 한국에 많은 교회들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맡은 큰 일중의 하나가 있다면 이 것일 것입니다. 아는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을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 거짓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에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심방 다니면서 물어보면 모두 답이 목사 님의 말씀이 좋아서 나왔답니다. 그러나 그 설교가 나를 변화시키고 신자 된 모습을 비꿔 놓는 것으로 연결되어져야 만이 교회에 나온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들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게서 용서가 있고, 자비가 있고, 온유가 있고, 사랑 이 있어서 마침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신자가 되어질 때에 참된 신자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여기에 모여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가만히 나와서 슬쩍 예배만 드리고 도망가지 마십시오. 헌금만 내 놓 고 사명이 끝난 듯이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기 말씀에 약속되어 있는 영광의 소망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는 장성한 신앙인이 되기 위하여 내게 허락된 이 교회를 통하여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복종하십시오. 교회의 일에 동참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일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참고 견디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참 이익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또한 유익을 끼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봉사하고 참여하고 함께 기도할 줄 알며 마음을 나누는 데까지 참 여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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