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자리, 거룩에의 초대 (요17:24)
본문
본문 앞 부분에서 영광이라는 말과 하나라는 말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영광은 앞에서 말하는 같은 선상에 있는 영광이겠습니다만 좀 더 높은 영광 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창세 전부터 내게 주셨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상상과 이해를 초월하는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물질계 에서 만들어지거나 산출되는 그런 수준의 영광과는 비교도 안되는 훨씬 초월하는 그 런 영광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놓고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해 보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예수님 을 보내셔서 무엇을 이루고 싶으신 것인가' 라는 문제를 오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니다. 물론, 그 해답의 일부는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즉 죄에서 신음하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단지 죄에서 꺼낸 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풍성한 그 다음의 설명이 있고 과정과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성경이 제시하는 것을 좀 더 추적해야 될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더 더욱 요한복음 17장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은밀히 하나님과 함께 나누신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을 앞에 놓고 공개하신 것이며 여기에 나타낸 내용들이야말로 모든 신자 들이 알기를 원하신 내용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본론' 모든 신자들로 알기 원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와같이 `창세 전에 그에게 주셨던 그 영광까지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분인 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대개는 너무도 어느 한 부분의 일방적인 설명에만 집착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3:16절이나 롬3장에 나오는 말씀에 너무 집 착해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이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요구하시는 그 엄청난 계획과 목표 중에 어느 일 부분을 특별히 설명한 구절과 내용만을 너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보통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그에 대한 성 취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을 들자면 구약보다 신 약을 찾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신약이 그 서 두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마1:1-2절을 찾아 보십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형제를 낳고" 이렇게 족보가 계속됩니다. 신약이 시 작되면서 뜻밖에도 성경은 아브라함은 다윗이라는 구약 인물들을 서두에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할 때에 `세계'란 족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족보가 나온 다음에 17절에 가면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 윗 부터바 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후부터 그리스도까 지 열 네 대러라" 그래서 혹자들은 여기서 세 번 나온 14대라는 말에 대하여 훨씬 많은 관심을 모으 기도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열 네대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 지는 분명히 알 수 없 습니다만 이 족보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면 하나의 중요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역사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해서 솔로몬 때에 와서 짓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를 당하면서 그 성 전이 몽땅 다 훼파되고 맙니다. 그러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되돌아 온 이후에 다시 성전을 지어 그리스도 때까지 이릅니다. 물론 예수님 오시기 전에 성전이 완성 됩니다만 예수님이 오셔서 친히 성전과 연결하셔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성전 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지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전 역 사를 중심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 과 사역의 가장 큰 핵심을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 말씀하 셨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보십시다. 그 답을 결론적을 말해서 모든 목적이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일단 이 큰 결론부터 내려 놓고 왜 그러한 가를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다윗이 먼저 언급이 되는 것은 일단 아브라 함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다윗에 이르러 완성을 보게 되기 때문에 다윗이 또한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완성에 있어서 하나의 예표와 상징에 불과하였고 실제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시는 것 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 윗을 들먹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가면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 니라 하신지라" 여기에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복의 근원이 된다, 모 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된다.'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모든 족속이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 해서 한 족속이 있고 다른 족속들이 주변에 있는데 다른 주변 족 속들이 이 족속을 인하여 복을 얻는다는 것이기보다, 복을 얻는 족속이 아브라함으 로 인하여 시작될 것을 이야기하는 모든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그의 백성을 삼는데 첫 시조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나온 후손들을 그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나라가 구성될려면 세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합니다. 국민과 국토와 주권이 있 어야 합니다. 주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국토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셔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식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국민은 아브 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 삼기로 한 유일한 택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혈육에 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늘 아브라함을 들먹여서 우리의 신분과 소속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4:16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 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 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 든 사람의 조상이라" 이렇게 은혜에 속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롬 4:23-24절을 또 보십시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 라" 아브라함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 사역으로 하나하나 부른 사람들에게 너도 나를 믿었으니까 이제는 구원을 얻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구원 얻은 자는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 은혜가 임한 것이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은 우리가 믿었더니 구원을 얻게 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구원해 내었다라는 쪽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을 통해서 늘 아브라함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그 부름 속에는 당신의 나라를 성립시키기 위한 범주와 원리, 약속 등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행7:2-6에 이 부분에 대한 묘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이 기도 합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 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 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로 큰 민족, 즉 내 민족 내 백성을 삼아 내 나라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니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본토를 떠나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가나안 땅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에 살게는 하시면서 유업으로는 주 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유리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 땅을 실 제적으로 살게 되는 것은 그 훈손인 이스라엘이 국가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했는데, 실제로 그 땅을 유업으로 차 지하게 되는 자들은 여호수아를 앞세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하였기에 맞는 결국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 기입니다만, 문제는 왜 아브라함 때부터 그 땅을 바로 유업으로 주지 않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그 땅에 유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왜 400여년이나 지난 이후 그 후손들 때에 와서 그 땅을 유업으로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단 하 나의 이유때문입니다. 그 후손들은 율법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잘 보십시오. 출애굽해서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내 산에 들러 율법을 받아 가지고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거기엔 이런 설명이 덧붙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나라에는 거룩하지 못한 자는 결코 못들어 온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도 거룩하지 않는 한 들어가지 들어가지 못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 를 설립하시고 우리의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즉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어 돌아와 이제 그 일을 다시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잘 되지를 않 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서 우리가 분 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란 그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으로 설명된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 때문에 등장할까요 다윗은 성전을 제대로 건축하는데 있어야 되는 선결 조건을 수행하는 자로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방의 대적들을 잠잠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수행한 자였습니다.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 보십시다. 먼저 대상22:6-9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 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어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 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솔로몬은 왜 성전을 지을 수 있고 다윗은 못 짓습니까 다윗은 피를 흘린 사람이 기 때문입니다. 즉, 솔로몬에게는 평강을 주겠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샬롬의 변형 입니다. 샬롬은 평화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싸움이 없는 곳입니다. 적대 세력이 있을 수 없 고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애통하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이야기합니다. `다시는 슬픔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렇게 쉽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전을 지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상5:3-5절을 보십시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부 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 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하오니" 여기서 솔로몬의 부친인 다윗이 왜 성전을 짓지 못앴다고 되어 있습니까 사방의 대적을 인하여 전쟁하느라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대목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원수를 발 밑에 두기까지 기다렸나이다' 고전 15:20-26절에 가서 살펴보십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 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여기서 26절에서 원수에 대한 영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다윗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열왕기상 5장에 보니까 적을 물리친 후에야 평 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적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어떤 적대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삼는데는 오직 하나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퇴치하지 못하고는 거룩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 원수를 물리치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 다윗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평화롭게 성전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로서 부르시기 위하여 그 대적을 발바닥에 깔고 굴복시키고 멸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족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또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다시 그리스도까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의 모든 역사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우리들을 부르시는데 부른 우리 에게 율법을 주어서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비록 평화를 얻어서 뭔가 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결국 정치적 차원의 상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종국은 솔로몬을 비롯해서 모두가 실패하여 매맞고 포로로 쫓겨 났다가 그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어 다시 되돌아 왔던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개하고 돌이키고 왔어도 매 한가지로 율법 앞에서는 무기 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게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너희들의 실력과 손으로는 도무지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 것이 신약의 시작이요,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핵심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초림하셔서 행하실 사역 중 중요한 사역이 대속 사 역인데 그 대속 사역은 단지 우리의 죄 값을 치루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값을 치루실 뿐 아니라 워수를 치는 것으로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히2:14-16절을 보시겠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함께 속하심은 사 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 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다윗이 원수들을 퇴치한 이후에 솔로몬 시대에 평화가 있었고 성전을 건 축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이 오셔서 맨 처음 하셔야 되는 일은 다윗에게서 상징되었 던 것과같이 대적을 물리치는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히2:14절 말씀과 같이 `마 귀를 없이 하는 일' 즉,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마귀와 죄의 권세를 파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신앙의 기준은 죄냐 아니냐였습니다. 다시말해 거룩하냐 아니 냐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모든 신앙이 검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의 신앙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추적해 보아야 하는 중요 한 대목입니다. 다시 히10:1-4절을 보십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 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 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렇게 구약의 신앙의 기준이 되는 거룩은 율법으로 검증하였는데 그 율법 앞에서 온전한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 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그 무엇으로도 하늘 나라를 온전히 열 수 있는 거룩해 지는 것이 율법 앞에서 전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대신 다 이루심으로 이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식적인 첫 선언부터 이렇게 나오십니다.
마4:17절을 보십시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 시더라" 그동안 줄곧 구약을 통하여 상징화 되어왔던 하나님 나라 건설이 드디어 완성의 본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까지 있었던 모든 역사가 나타냈듯이 그 어떠한 것으 로도 불가능했던 하나님 나라 진입을 위한 거룩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5:3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기서 성경이라는 것은 신. 구약을 다 지칭하는 것일까요 구약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설 명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 눅24:44-48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 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 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 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렇게 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 요한 인물은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가장 이해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두 인물인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아버지여 저들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었던 영광을 저희에게도 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라는 오늘 본문의 기도가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젠 우리가 거룩 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같이 지었다가 허물어지는 그런 종교와 성전과 신앙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에로의 초대를 받은 우리들은 아직도 거룩에 미 달하여, 과거 구약의 율법 앞에서 무참히 깨어지고 무너지고 울고불고 되돌아와 다 시 시작해 보지만, 결국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앞세워 지었던 성전을 하나님이 닫 았으면 좋겠노라고 하는 청천벽력같은 저주 속에서 끝맺어야 했던 구약 율법 앞에서 의 우리가 이젠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거룩에로 초대되었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새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바로 새피조물 거기가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이미 거룩에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 니까 거룩의 완성입니다. 골3:1-4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 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고전13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며 바란다는 이야기가 드디어 등장하는 것입니다. 거룩의 완 성을 위하여 사랑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이 요 구되는 것이고, 창세 전에 그리스도에 허락되었던 그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받는 축복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혹 이 거룩의 길에서 모자란 부분이 드러났습니까 그것은 자녀로서의 부끄러움이 지 하나님의 자녀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는 공포와 실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엄청난 일들을 해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 여러분의 기쁨과 신앙을 더 굳게 해 나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본론' 모든 신자들로 알기 원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와같이 `창세 전에 그에게 주셨던 그 영광까지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도대체 무엇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신 분인 가'하는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대개는 너무도 어느 한 부분의 일방적인 설명에만 집착해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요3:16절이나 롬3장에 나오는 말씀에 너무 집 착해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 이런,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요구하시는 그 엄청난 계획과 목표 중에 어느 일 부분을 특별히 설명한 구절과 내용만을 너무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보통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이고, 신약은 그에 대한 성 취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을 들자면 구약보다 신 약을 찾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신약이 그 서 두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하는 사실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마1:1-2절을 찾아 보십시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형제를 낳고" 이렇게 족보가 계속됩니다. 신약이 시 작되면서 뜻밖에도 성경은 아브라함은 다윗이라는 구약 인물들을 서두에 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다윗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듯이 보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할 때에 `세계'란 족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족보가 나온 다음에 17절에 가면 이렇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 윗 부터바 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후부터 그리스도까 지 열 네 대러라" 그래서 혹자들은 여기서 세 번 나온 14대라는 말에 대하여 훨씬 많은 관심을 모으 기도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열 네대가 무슨 뜻을 담고 있는 지는 분명히 알 수 없 습니다만 이 족보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다윗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잘 보면 하나의 중요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역사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성전은 다윗이 준비해서 솔로몬 때에 와서 짓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를 당하면서 그 성 전이 몽땅 다 훼파되고 맙니다. 그러다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되돌아 온 이후에 다시 성전을 지어 그리스도 때까지 이릅니다. 물론 예수님 오시기 전에 성전이 완성 됩니다만 예수님이 오셔서 친히 성전과 연결하셔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 성전 을 헐라! 내가 사흘만에 지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성전 역 사를 중심으로 흘러 내려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격 과 사역의 가장 큰 핵심을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서 말씀하 셨는가 하는 점을 살펴 보십시다. 그 답을 결론적을 말해서 모든 목적이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만 일단 이 큰 결론부터 내려 놓고 왜 그러한 가를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어서 아브라함과 다윗이 먼저 언급이 되는 것은 일단 아브라 함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구체화되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다윗에 이르러 완성을 보게 되기 때문에 다윗이 또한 언급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은 하나님 나라 건설과 완성에 있어서 하나의 예표와 상징에 불과하였고 실제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시는 것 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이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다 윗을 들먹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가면 아브라함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 니라 하신지라" 여기에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복의 근원이 된다, 모 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된다.'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모든 족속이라는 것은 쉽게 이야기 해서 한 족속이 있고 다른 족속들이 주변에 있는데 다른 주변 족 속들이 이 족속을 인하여 복을 얻는다는 것이기보다, 복을 얻는 족속이 아브라함으 로 인하여 시작될 것을 이야기하는 모든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그의 백성을 삼는데 첫 시조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로부터 나온 후손들을 그의 나라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나라가 구성될려면 세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합니다. 국민과 국토와 주권이 있 어야 합니다. 주권은 하나님이 갖고 계시고, 국토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셔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식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 국민은 아브 라함의 후손입니다. 아브라함이야말로 하나님이 그의 백성 삼기로 한 유일한 택한 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혈육에 관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성경이 늘 아브라함을 들먹여서 우리의 신분과 소속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4:16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 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 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 든 사람의 조상이라" 이렇게 은혜에 속한 우리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입니다. 롬 4:23-24절을 또 보십시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 라" 아브라함만 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위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오셔서 대속 사역으로 하나하나 부른 사람들에게 너도 나를 믿었으니까 이제는 구원을 얻었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구원 얻은 자는 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 은혜가 임한 것이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경은 우리가 믿었더니 구원을 얻게 되었다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내가 너희를 구원해 내었다라는 쪽의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구약을 통해서 늘 아브라함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의 그 부름 속에는 당신의 나라를 성립시키기 위한 범주와 원리, 약속 등이 감추어져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행7:2-6에 이 부분에 대한 묘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것은 스데반의 설교이 기도 합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 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 며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로 큰 민족, 즉 내 민족 내 백성을 삼아 내 나라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니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나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본토를 떠나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가나안 땅에 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에 살게는 하시면서 유업으로는 주 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유리하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 땅을 실 제적으로 살게 되는 것은 그 훈손인 이스라엘이 국가가 된 다음에야 비로소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했는데, 실제로 그 땅을 유업으로 차 지하게 되는 자들은 여호수아를 앞세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차지하였기에 맞는 결국 아브라함이 유업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이야 기입니다만, 문제는 왜 아브라함 때부터 그 땅을 바로 유업으로 주지 않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아브라함 당대에 그 땅에 유업이 되지 못하고 있다가 왜 400여년이나 지난 이후 그 후손들 때에 와서 그 땅을 유업으로 가지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단 하 나의 이유때문입니다. 그 후손들은 율법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잘 보십시오. 출애굽해서 그냥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내 산에 들러 율법을 받아 가지고 들어갑니다. 말하자면 거기엔 이런 설명이 덧붙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나라에는 거룩하지 못한 자는 결코 못들어 온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도 거룩하지 않는 한 들어가지 들어가지 못 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 를 설립하시고 우리의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즉 율법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율법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되어 돌아와 이제 그 일을 다시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잘 되지를 않 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기서 우리가 분 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란 그의 백성의 대표자로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으로 설명된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 때문에 등장할까요 다윗은 성전을 제대로 건축하는데 있어야 되는 선결 조건을 수행하는 자로 있습니다. 즉,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방의 대적들을 잠잠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을 수행한 자였습니다. 다윗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 보십시다. 먼저 대상22:6-9절을 보시겠습니다. "다윗이 그 아들 솔로몬을 불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기를 부탁하여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 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어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 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솔로몬은 왜 성전을 지을 수 있고 다윗은 못 짓습니까 다윗은 피를 흘린 사람이 기 때문입니다. 즉, 솔로몬에게는 평강을 주겠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샬롬의 변형 입니다. 샬롬은 평화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싸움이 없는 곳입니다. 적대 세력이 있을 수 없 고 우리를 슬프게 하거나 애통하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도 이야기합니다. `다시는 슬픔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을 수 없었던 것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렇게 쉽게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전을 지을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왕상5:3-5절을 보십시다. "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부 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 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하오니" 여기서 솔로몬의 부친인 다윗이 왜 성전을 짓지 못앴다고 되어 있습니까 사방의 대적을 인하여 전쟁하느라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 대목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원수를 발 밑에 두기까지 기다렸나이다' 고전 15:20-26절에 가서 살펴보십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 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여기서 26절에서 원수에 대한 영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다윗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열왕기상 5장에 보니까 적을 물리친 후에야 평 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적은 하나님을 반대하는 어떤 적대 세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삼는데는 오직 하나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죄를 퇴치하지 못하고는 거룩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 원수를 물리치는 일을 상징하는 것이 다윗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평화롭게 성전을 짓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그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로서 부르시기 위하여 그 대적을 발바닥에 깔고 굴복시키고 멸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 족보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또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다시 그리스도까지'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의 모든 역사가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대한 설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우리들을 부르시는데 부른 우리 에게 율법을 주어서 그 나라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솔로몬이 비록 평화를 얻어서 뭔가 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결국 정치적 차원의 상징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종국은 솔로몬을 비롯해서 모두가 실패하여 매맞고 포로로 쫓겨 났다가 그들이 하나님께 울부짖어 다시 되돌아 왔던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회개하고 돌이키고 왔어도 매 한가지로 율법 앞에서는 무기 력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게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셨던 것입니다 `너희들의 실력과 손으로는 도무지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지만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이 것이 신약의 시작이요, 예수 그리스도 사역의 핵심 내용입니다. 히브리서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초림하셔서 행하실 사역 중 중요한 사역이 대속 사 역인데 그 대속 사역은 단지 우리의 죄 값을 치루는 것으로만 묘사되어 있지 않습니다. 죄값을 치루실 뿐 아니라 워수를 치는 것으로도 묘사되어 있습니다.
히2:14-16절을 보시겠습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함께 속하심은 사 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 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다윗이 원수들을 퇴치한 이후에 솔로몬 시대에 평화가 있었고 성전을 건 축할 수 있었듯이, 예수님이 오셔서 맨 처음 하셔야 되는 일은 다윗에게서 상징되었 던 것과같이 대적을 물리치는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히2:14절 말씀과 같이 `마 귀를 없이 하는 일' 즉,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마귀와 죄의 권세를 파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신앙의 기준은 죄냐 아니냐였습니다. 다시말해 거룩하냐 아니 냐였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으로 모든 신앙이 검증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의 신앙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부분을 우리가 추적해 보아야 하는 중요 한 대목입니다. 다시 히10:1-4절을 보십시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 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 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이렇게 구약의 신앙의 기준이 되는 거룩은 율법으로 검증하였는데 그 율법 앞에서 온전한 거룩을 이룰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서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 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는 그 무엇으로도 하늘 나라를 온전히 열 수 있는 거룩해 지는 것이 율법 앞에서 전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대신 다 이루심으로 이것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공식적인 첫 선언부터 이렇게 나오십니다.
마4:17절을 보십시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 시더라" 그동안 줄곧 구약을 통하여 상징화 되어왔던 하나님 나라 건설이 드디어 완성의 본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선포입니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포로까지, 포로부터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까지 있었던 모든 역사가 나타냈듯이 그 어떠한 것으 로도 불가능했던 하나님 나라 진입을 위한 거룩에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5:39절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영생에 대하여 서슴치 않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여기서 성경이라는 것은 신. 구약을 다 지칭하는 것일까요 구약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구약은 모두 예수님에 대한 설 명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 눅24:44-48절에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 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 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 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렇게 구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 요한 인물은 아브라함과 다윗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을 가장 이해시킬 수 있는 상징적인 두 인물인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아버지여 저들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창세 전에 아버지께서 내게 주었던 영광을 저희에게도 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라는 오늘 본문의 기도가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젠 우리가 거룩 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구약시대같이 지었다가 허물어지는 그런 종교와 성전과 신앙을 걷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결론' 그래서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에로의 초대를 받은 우리들은 아직도 거룩에 미 달하여, 과거 구약의 율법 앞에서 무참히 깨어지고 무너지고 울고불고 되돌아와 다 시 시작해 보지만, 결국은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앞세워 지었던 성전을 하나님이 닫 았으면 좋겠노라고 하는 청천벽력같은 저주 속에서 끝맺어야 했던 구약 율법 앞에서 의 우리가 이젠 그리스도로 인하여 참된 거룩에로 초대되었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새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후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바로 새피조물 거기가 우리의 출발점입니다. 이미 거룩에로 초대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 니까 거룩의 완성입니다. 골3:1-4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 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고전13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며 바란다는 이야기가 드디어 등장하는 것입니다. 거룩의 완 성을 위하여 사랑을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이 요 구되는 것이고, 창세 전에 그리스도에 허락되었던 그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받는 축복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혹 이 거룩의 길에서 모자란 부분이 드러났습니까 그것은 자녀로서의 부끄러움이 지 하나님의 자녀에서부터 떨어져 나가는 공포와 실패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엄청난 일들을 해 오셨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 여러분의 기쁨과 신앙을 더 굳게 해 나가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