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된 삶을 위하여 (요17:15)
본문
사람들은 대체로 욕되고 수치스러운 삶보다는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이 되기를 원하면서 살아갑니다. 비록 오늘은 고난이 있고,욕됨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마지막만이 라도 영광스럽게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내 생명의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며, 내 생명의 마지막 금줄이 끊 어져 가는 순간! 우리의 생이 사람보기에,또한 하나님앞에 서기에 영광스러운 모습 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이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원래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했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만은 아담과 하와가 옷을 입지 않고도 수치스 러워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영광의 빛이 찬란한 옷을 입고 있었 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범죄함으로 이 영광이 떠나가게 되면서 수치스러움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는 늘 이 영광스러움을 덧입고자 하는 바램 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 주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17장에 나오는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세가지의 방향을 가지 기도였습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요,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요,셋째는 이 세상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주님이 주님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하고 있는 내용인데, 그 중심은 한마디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여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을 영광스럽게 마무리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 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5절 마지막 부분도 보시면,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마지막 기도를 할 수 있는 챤스를 준다면 무엇이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 기도의 내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저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 다면, 저 역시 주님처럼 "나를 영화롭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주님의 백성과 자녀 됨의 영광스러움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것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에만 하는 기도가 되지 말고, 오늘에 종말이 있는 것처럼 늘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러한 기도를 하면서 살아간다 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 오늘 부르실 것처럼 주님보시기에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 홀연히 우리 생명이 거두어져 갈 수 있는 것처럼 "주님 하루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허락해 주 옵소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 이것이 우리 성도의 당연한 기도의 제목이요,삶의 목표가 아니겠 습니까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오늘 본문의 기도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보고하는 영광스러운 삶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인가 몇가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어지는 삶입니다. 다시 1절을 보시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 게하사,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은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죽어 야할 때를 말하는 것이며,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영광을 나타나게 해 달라는 말씀인 것 입니다. 이런 말씀은 이미 몇차례 하신 바가 있죠 밀알의 사건을 통하여 자신이 죽어야 됨을 가르치시기 바로 전에 요12:2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 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라. 세상적으로 본다면 무조건 살아야 하고,잘되어야 영광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깊히 생각해 보면, 하나의 밀알처럼 내 가 스스로 죽는 곳에 영광스러움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죽는 것이 아니고,끌러가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 로 선택하고 자원해서 죽어지는 삶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빛이 빛됨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기름의 소모와 희생이 내적으로 필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스스로 죽으심으로 율법도 성취되고,은혜도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도 나타나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비롯한 하나님의 공동체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야 율법도 완성되고 은혜도 살아나고 하나님의 사랑도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결을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안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 스로 희생하며 죽어지는 삶이 가장 영광스러움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생각할 때, 단순히 메달리셔서 창에 찔리고 죽으신 것만 보아서는 않됩니다. 그가 조롱하며 침벧으며,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자들을 향하여 그의 감정을 스스로 죽이고, 아무런 반응이 없이 오히려 저들의 죄를 용 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사건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없이는 참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말이 없습니다. 자존심이 죽었고, 성질이 죽었고, 세상악한 것들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반응하 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죽은 자는 사랑을 받는다!" 묘지에 가보면, 묘비에 '사랑한다'는 구절이 많이 적혀 있음을 봅니다. 사랑하는 누가 잠들다! 사랑안에서 기억된 누구! 죽으면 미화되고 죽으면 사랑받는 경향이 많습니다. 믿음안에서 내가 죽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영광되고 사랑을 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영광스러운 삶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 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은 자 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자신에게 권세를 주심은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한마디로 나에게 건강과,학식과 재물과 어떤 위치를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삶이 영광스러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던지진 상황은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선교지라는 사실입니다. 그곳에 나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켱야 하는 선교사인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권세는 그 일을 위한 하나님의 후원이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후안까를로스 '당신의 제자입니까' 포드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그 자동차회사의 사실은 선교사 라는 것입니다. 그의 후원자는 포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사장의 후원금을 받아서 선교하는 그 자동차회사의 선교사라는 것 이죠!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는 일입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 요17:3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를 아는 것이니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하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로 알 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알 게되는 것이고, 그 삶을 받아들이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의 삶 그 자체가 곧 복음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곧 우리 주님의 삶의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이러한 복음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의 삶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주님을 알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걸어다니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세상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읽고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는 우리의 삶이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가르키고 주님을 알게 한다면,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 주님을 알게 할 때에 그에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력해햐 할 일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 황과 여건과 소유와 권세를 가지고 복음을 나타내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하여 아주 한탄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 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위하여 서로 힘을 합치고 일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향해서 총질이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편짜고 앉아서 시기와 질투와 자존심의 총질을 하면서 세 월을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3.주님의 하라고 하신 일을 다하는 삶이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자기 실현에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 가진 재능과 자신의 꿈을 다 이룬 사람을 성공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을 다 순종하여 이루어 드린 삶을 영광스 러운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늘 분별하여 아는 일이고, 아는 이것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무엇이 되어서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진정한 사람의 행복은 가치있고 쓰여지는 삶이 될 때인데, 그것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뜻에 의해서 내가 쓰여질 때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요,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요,셋째는 이 세상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주님이 주님자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 하고 있는 내용인데, 그 중심은 한마디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여 하나님에게도 영광이 돌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삶을 영광스럽게 마무리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요17: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 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5절 마지막 부분도 보시면,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마지막 기도를 할 수 있는 챤스를 준다면 무엇이라고 기도하시겠습니까 여러 기도의 내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저에게도 이런 기회가 주어진 다면, 저 역시 주님처럼 "나를 영화롭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나라에 합당한 거룩한 예복을 입히시고, 주님의 백성과 자녀 됨의 영광스러움이 나타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할 것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에만 하는 기도가 되지 말고, 오늘에 종말이 있는 것처럼 늘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러한 기도를 하면서 살아간다 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주님 오늘 부르실 것처럼 주님보시기에 영광스러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에 홀연히 우리 생명이 거두어져 갈 수 있는 것처럼 "주님 하루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허락해 주 옵소서!"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 이것이 우리 성도의 당연한 기도의 제목이요,삶의 목표가 아니겠 습니까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런데, 오늘 본문의 기도에 보면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께 보고하는 영광스러운 삶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인가 몇가지를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1.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어지는 삶입니다. 다시 1절을 보시면,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 게하사,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은 이미 잘 아시는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죽어 야할 때를 말하는 것이며,아들을 영화롭게 해 달라는 말씀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십자가를 지고 죽음으로 영광을 나타나게 해 달라는 말씀인 것 입니다. 이런 말씀은 이미 몇차례 하신 바가 있죠 밀알의 사건을 통하여 자신이 죽어야 됨을 가르치시기 바로 전에 요12:23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 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 라. 세상적으로 본다면 무조건 살아야 하고,잘되어야 영광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인 차원에서 깊히 생각해 보면, 하나의 밀알처럼 내 가 스스로 죽는 곳에 영광스러움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억지로 죽는 것이 아니고,끌러가면서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 로 선택하고 자원해서 죽어지는 삶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빛이 빛됨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기름의 소모와 희생이 내적으로 필요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스스로 죽으심으로 율법도 성취되고,은혜도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도 나타나지게 되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교회를 비롯한 하나님의 공동체에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스로 죽어지는 사람들이 있어야 율법도 완성되고 은혜도 살아나고 하나님의 사랑도 보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결을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님안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스 스로 희생하며 죽어지는 삶이 가장 영광스러움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생각할 때, 단순히 메달리셔서 창에 찔리고 죽으신 것만 보아서는 않됩니다. 그가 조롱하며 침벧으며,주먹으로 얼굴을 치는 자들을 향하여 그의 감정을 스스로 죽이고, 아무런 반응이 없이 오히려 저들의 죄를 용 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사건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런 것이 없이는 참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말이 없습니다. 자존심이 죽었고, 성질이 죽었고, 세상악한 것들에 대하여는 죽은 자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반응하 지 않는 것입니다.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죽은 자는 사랑을 받는다!" 묘지에 가보면, 묘비에 '사랑한다'는 구절이 많이 적혀 있음을 봅니다. 사랑하는 누가 잠들다! 사랑안에서 기억된 누구! 죽으면 미화되고 죽으면 사랑받는 경향이 많습니다. 믿음안에서 내가 죽어지는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영광되고 사랑을 받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2.영광스러운 삶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삶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요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 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 것은 자 신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즉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자신에게 권세를 주심은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한마디로 나에게 건강과,학식과 재물과 어떤 위치를 주셨다면 그것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삶이 영광스러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던지진 상황은 하나님의 나를 향하신 선교지라는 사실입니다. 그곳에 나는 생명의 역사를 일으켱야 하는 선교사인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권세는 그 일을 위한 하나님의 후원이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후안까를로스 '당신의 제자입니까' 포드 자동차회사에 다니는 사람은 그 자동차회사의 사실은 선교사 라는 것입니다. 그의 후원자는 포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사장의 후원금을 받아서 선교하는 그 자동차회사의 선교사라는 것 이죠!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는 일입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 요17:3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를 아는 것이니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하는 배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로 알 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이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사신 삶의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알 게되는 것이고, 그 삶을 받아들이게 되면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주님의 삶 그 자체가 곧 복음입니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곧 우리 주님의 삶의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이러한 복음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의 삶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주님을 알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걸어다니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지만,세상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읽고 있습니다. 즉, 그들에게는 우리의 삶이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가르키고 주님을 알게 한다면,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 주님을 알게 할 때에 그에게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력해햐 할 일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 황과 여건과 소유와 권세를 가지고 복음을 나타내고 복음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하여 아주 한탄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 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위하여 서로 힘을 합치고 일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향해서 총질이나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 서로 편짜고 앉아서 시기와 질투와 자존심의 총질을 하면서 세 월을 보내고 있으니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3.주님의 하라고 하신 일을 다하는 삶이 영광스러운 삶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세상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자기 실현에 두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나올 때 가진 재능과 자신의 꿈을 다 이룬 사람을 성공 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안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일을 다 순종하여 이루어 드린 삶을 영광스 러운 삶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일은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나를 통하여 이 세상에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늘 분별하여 아는 일이고, 아는 이것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무엇이 되어서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진정한 사람의 행복은 가치있고 쓰여지는 삶이 될 때인데, 그것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주님의 뜻에 의해서 내가 쓰여질 때 가장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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