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거룩함 (요17:17)

본문

예수님의 기도 내용인 본문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신자들을 향한 분명한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소속이 바꿈으로 모든 구원을 완성시키시 것이 아니라, 이제 그 출발점에 서는 것이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 우리들에게는 각각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기 위하여 아버지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 지만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는 말씀의 좀 다른 면을 중 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본론> 본문 요17:14-15절을 보십시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 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 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 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전'이라는 말씀은 11절에서도 한 번 나오고 여기 15절에서도 다 시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기도를 제자들 앞에서 올리는 것은 몇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이제 예수님께서 구속 사역을 다 마치시고 떠 나 가실텐데, 마지막으로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과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가 하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단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그 소속을 변화시킴으로 천국 백성이 되게 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 라, 그 이상의 뜻과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이 기도문의 중요 한 목표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서 믿게 하였으니, 이제는 `너희들이 이렇게 살아가야 되지 않겠느냐'는 식의 권고라 기 보다 지금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를 보존하옵시며 주 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며 주의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하면서 하나님을 향 한 의미심장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삼아 살아가야 되겠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아 행하기를 요구하기 이전 에 하나님 쪽에서 행해야 되는 어떤 일이요 섭리임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흐름을 성경 전체를 통하여 더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신8:1-6절을 보십시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 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 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 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 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이스라엘은 모세를 선두로 하여 종 되었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 었습니다. 그들이 반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아서 광야생활 사십년을 보내 게 됩니다. 그 사십년을 사는데 있어서 요구되는 것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들 이 사는 것은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사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이 언듯 보기에는 신자는 세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진리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영 혼과 미래를 준비하는 등 더 가치있는 일에 전념해야 된다라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만 본 사건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의도된 말씀인 것입니다.
출16:1-3절을 보십시다. 이 사건 이후에 만나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 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같은 원망 이후에 만나가 주어지는데 그런데, 이같은 원망은 출15장에 나타난 바 대로 이스라엘이 기적적으로 홍해를 건너고 나서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과 놀라운 간 섭에 대하여 기뻐 뛰며 찬송하고난 바로 직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엄청난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번씩 예외없이 배고픔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기쁨 이고 무엇이고 간에 당장 배가 고픈데 도대체 광복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해방이 무 슨 소용이냐는 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비록 노예였을지라도 먹을 것이 있었고 입을 것이 있었고 잘 곳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광야 에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될 바에야 해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원망 이었습니다. 이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 앞에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인지가 출 16:4-8절 사이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 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 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모세와 아론이 온 이 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 여 내셨음을 알 것이요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 여 원망하느냐 모세가 또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 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이렇게 하여 아침에는 이슬같은 만나가 내리고 저녁에는 매추라기가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실 때에 뭐라고 다짐하면서 주셨습니까 `좋다! 그러면 이것을 먹여 주겠으니 어디 내 말을 듣나 안 듣나 보자꾸나!'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주된 원망의 핵심은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싶지만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니 이같은 조건과 환경 가운데 서는 도무지 하나님을 제대로 따르기 어렵습니다. 어찌 이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안 좇겠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듣고 그러면 좋다, 먹고 입고 자는 문제를 내가 해력해 줄테니까 어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나 보자 라고 제안하신 사건이 만나사건입니다.
이같은 배경을 잘 이해하고 신8:2절의 말씀을 보면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 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신 만나 사건은 먹을 것을 확보해 주어서 과연 말씀을 지킬 것인가 아닌 가를 보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들이 못 지킬 것을 아시고 계 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만나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어떤 나 쁜 환경이나 절박한 현실 때문에 하나님을 안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은 원 래가 하나님을 싫어하는 족속이요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존재임을 확인시키 시키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란 육신적인 문제인 떡 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말씀으로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이지, 다른 외적인 것으로 말씀으 로 살도록 해결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여호와의 말씀은 그 위치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는 보통 여호와의 말씀 그러면 당신의 말씀은 진리입니다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 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많이들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단지 아는 것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이스라엘의 만나사건에 서처럼 `배고프고 헐벗어서 지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했지 이 절박한 문제만 해결되 면 우리는 선하게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이라'고 단언하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만나와 메추리기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허락하시고 발이 부르트지 않고 의복이 헤어지지 않는 보살핌과 온전한 보호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반역의 연속 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이럴 줄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리의 말씀을 주셨을까요 그것은 광야 사십년 동안에 스스로들이 진리에 대하여 어 떠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확인해 보라고 주신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리고 미리암까지 원망하다가 문둥병에 걸리기도 하였으며, 고라의 자손들은 반역으로 향 로에서 불이 나와서 죽었으며 땅이 갈라져 그 일족들이 멸족 당하는 등의 일들이 광 야 40년 동안 연속됩니다. 가데스 바네아 이르러서는 그들의 하나님의 약속을 따르 지 않고 또 원망하다가 가안안 입국을 거절 당하고 광야 40년 생활을 자초합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이들은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착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결국, 너희들이 말하는데로 어떤 조건들을 다 만족시켜 환경을 조정해 주어 도 하나님을 좇아오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만 살아야 된다고 대조시키고 있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고상한 영적인 말씀을 습득하여 파헤쳐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이해 하고 나서 말씀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자신이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가 하는 사실을 접어두고 무조건 이 문제만 해결되면 주를 더 열심히 믿겠다고 쉽게 이야기 하는지 모릅니다. 아이만 하나 주시면, 이 병만 낫게 하시면, 이 아이를 학교에 붙여 주시기만 하면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식의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는 지 모릅니다. 이렇게 만나만 주시면, 메 추라기만 주시면, 불기둥만 주시면… 그것으로 우리 자신을 개선할 것이라고 이 야기 하는 것은 아직도 인간이란 존재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은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난 존재들이 못됩니다. 이것을 바로 알게 하기 위 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집념있게 이끄셔서 실상을 보게 만들고 그리고 참된 신앙의 자세를 가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궁극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서 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 진리란 모두 경험과 검증을 통하여 받아들여 집니다. 0도 C 이하가 되면 물이 업니다. 땅은 공중에 메달려 있으며 중력의 법칙에 의하여 북극이나 남극이나 할 것 없이 둥근 지구 상의 모든 사람들이 떨어지지 않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 게 왜 물이 0도 C 이하에서 얼며, 둥근 지구상의 사람들이 떨저지지 않고 살게 하는 중력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진리들이 어떻게 존재케 되었 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사람들은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렇 게 하셨을 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란 궁극적인 권위가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 의 진리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사실이냐 아니냐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 셨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란 하나님을 떠나서는 따로 존재치 않기 때문 입니다. 내가 나를 힘있게 하며 여유있게 하고 눈을 밝히고 귀를 띄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 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히려 제 3의 문제일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결정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떡을 먹어서 나를 힘있게 하여 내가 진리 를 깨우치며 습득해서 그대로 살 것을 결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슴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은 하나님의 집념이요,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의 결정이면 곧 진리입니다. 그분이 태양에게 멈추라 그러면 그것이 진리가 되어 멈추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입니다. 왜 지구가 둥글어야 할까요 이것은 답이 없습니다. 여기에는 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그렇게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무에서 유로 창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는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이 표현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극적인 권위자가 결정을 내리고 판단하여 계획한 모든 것이 진리임을 알고, 그것이 표현된 것이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잘 묘사된 곳이 사55:8-11절에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여기서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합니가 내 생각부터 시작하여 내 뜻으로 가서 말씀으 로 연결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 같은 이야기입니다. 생각, 듯, 말씀은 같은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하나도 그 말이 헛되지 않고 마치 비가 내려서 그냥 하늘로 가지 않 고 땅을 적시어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같이 내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 리라고 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성경이 시105편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이스라 엘을 인도하시고 일런 저런 일을 행하셨다는 기록입니다.
시105:5-6절에 "그 종 아 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 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이어서 7절에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라고 하여 `판단'이라는 말씀이 거 듭 나타납니다. 그런 다음에 8-10절에서는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 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은 저들이 무엇을 하면 이렇게 하겠다는 식이 아닙니다. 따라서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설명한 것에 불 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표현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결심과 결 정들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간섭하셨고 그의 종들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요셉의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시105:17-18절에 설명하기를 "한 사람을 앞 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하나님은 전 역사를 간섭하시며 그러기 위하여 각 개인들을 간섭하십니다 시105:19절에는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우리의 선택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열심을 가지시고 섭리하시고 다루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한 번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4절의 말씀을 하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 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게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 은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시는 집념의 표현입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본분 에서도 예수님의 기도에서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빌1:3-6절에 보면 사도 바울도 이같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물론 우리가 성화라는 차원에서 책임져야 하고 반응해야 하며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그런 차원의 시각이 아닙니다. 우리가 운명적으로 하나님게서 가지신 집념과 열심으로 간섭하시는 목적물이요 대상물이라는 것을 성도들이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금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같은 이해가 여러분을 모든 시험과 어려움에서부터 건져줄 것입니다. 목사로서 설교한다는 것이 이 자리에 설때마다 두려운 마음을 가집니다. 설교한 만 큼 행하지 못할 때가 많으며, 그것을 감당치 못하여 중압감에 짖눌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은 위기 중에서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이것을 감당할 수 있 느냐 없느냐를 따져서 결벽증과 자책감으로 자신을 매도하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그 열정과 사랑을 내가 나를 깨끗케 한다는 이름으로 대체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가장 큰 믿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감히 이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누가 저를 책잡으려면 저는 당연히 잡힙니다. 저는 예수님 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책잡겠느냐고 하셨지만 저는 책잡힐것 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격적 결함과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는 것 등 여러가 지 결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에 늘 좌절과 절망과 한심한 그런 행위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편이 시며, 하나님의 그 열심과 사랑과 능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시어 마침내 당신이 요구하시는 자리에 세우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로요, 힘이요 자 랑이요, 신자가 갖는 놀라운 믿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좌절하여 꺼지 지 않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게 한 것입니다.
<결론>
지난 일년 동안을 돌이켜 볼때, 신명기 8장에 나온 말씀들을 과연 감당할 수 있었 던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나아갔노라고 선듯 대답할 수 없는 사람 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으로는 몇 년동안 계속 진전을 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 나아졌고, 주거 환경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요즘은 못먹어서 생기는 병보다 너무 잘 먹어 기름기가 많아져서 생기는 병들입니다. 국민 소득이 향상되면서 여러가지 변화 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는 뭐가 나아진게 있습니까 우리는 훨씬 많은 불평과 불만과 게 으름과 완악함에 바집니다. 그러고도 그것이 자신 탓이 아니라, 모두 다른 사람 탓 이라 핑케하는 손가락질만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다. 여기저기에 교회가 들어서고 상가마다 교회들이 모여있어 구역질 이 난다고 그럽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는 가지도 않으면서 굳이 자기가 하지 않는 신앙생활을 적당히 카바하고 핑게하기 위해 부지런히 지적해댈 뿐입니다. 그리고 자 기 생활에 몰두합니다. 시치하며, 허영과 남을 짖밟아 나의 자존심을 채우는 일에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일년에 몇번씩은 체면과 혈육 문제에 얽 혀 그나마 이기적이지 않는 생각을 몇번은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하나님 앞에 매달리 수 밖에 없으며 기도해야 되며 불쌍히 여기심을 구해 야 하는 자인 줄을 알게 만드셔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너는 죽어 마땅 하다, 죽어 버려라!는 식으로 말씀을 안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은혜요, 최후의 감사거리입니다. 하나님의 다함이 없는 그 사랑과 열심을 끝없이 찬양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57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