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의 이중 구조(1) (요17:19)
본문
오늘 본문은 신자들이 이 땅을 살아가면서 신앙 생활을 해 나갈 때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되며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되며 무엇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등을 제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본론' 신자들은 1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 듯 이 주님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보냄 을 받는 것일까요 그 구체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면 요17:16-19절 까지 다시 보십시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 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 19절에 있는 말씀만을 놓고 초점을 하나로 좁히자면 예수님의 대속 사역 곧, 십자가의 죽으심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의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적용해 보면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않은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낸다고 하십니다. 신자 가 이 세상을 사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왜 세상 에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하늘 나라로 데려가야 말이 맞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해놓고 세상에 내 보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면서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케 한 이 십자가 사역을 전제로 꼭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18절에 서는 예수님의 아버지께로 보내심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이 문제의 답이 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인 19절에서 다시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속한 자로서 거룩하게 되게 만 드시려고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것인 거룩함에 이르는 목적으로 보냄을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 들이 세상에서 먹고 살자면 세상의 필요악에 적당히 처신하면서 섞여 살아야지 그렇 지 않으면 못삽니다. 그렇게 살다간 굶어 죽어요 하면서 세상과 신앙이 연결 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신앙과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바리새적인 길을 답습할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신앙을 예수 믿어 천국 들어 가는 것 하나로 밖에 생각 지를 않고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자의 신앙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즉,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 을 의미합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 얻은 자로서의 어떤 수준과 성장과 완성에 관한 요구와 그에 따르는 훈련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 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가능한데 그 도움은 바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구약이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이야기는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이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된다고 하 였으니, 그리스도로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고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의 모든 구원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신약이 더 많이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그 기초 위에다가 쌓 아가야 하는 성도로서 무엇을 어떻게 훈련되어져야 하며 어떻게 성화되어져야 하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많은 분량을 할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신자들을 만나 보면 이 성화에 관한 부분이 없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서적인 내용 한계에 그냥 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만나서 신앙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신앙 생활을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습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되려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안 되더라' 하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그것이 죄인 줄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 이것은 죄인데… 저로 하여금 이 죄를 짖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때에 이런 기도를 많이 합니 까 바로 그 죄의 길로 가면서 그런 기도를 해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오해를 많이 하는가 하면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언제나 수동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얻은 구원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수동적인것 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결단이 있고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선 항 상 나의 의지나 결단 이전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롬3:21-24절을 보십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 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 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구속에 관한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언급하는 말씀이지만 22절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 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에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어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믿는다는 것은 행위나 공로와는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었더니 그 믿 은 것이 조건이 되고 공로가 되어 구원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에 있어서 믿는 것을 조건으로 여기거나 공로로 간주하여 구원 이라는 결과가 주어진다면 이미 이 구원은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구원은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란 조건이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 가지는 믿음은 조건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할때의 믿음은 상당히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말은 신자가 된 다음에 하는 말입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내게 찾아 오셔 서 나를 신자로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귀가 열려지게 하신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서 이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 국 구원이란 내가 필려성을 느끼지도 않았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조차 없었는데 어 느날 그냥 된 것입니다. 어느날 보니 내가 하나님을 보고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듣 고 알아서 믿게되어진 것입니다. 언제 보게 되었으며 어느 순간에 들었는지 정확하 게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지만 하여튼 내가 이제는 믿고 있다는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서 이 구원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이런 것일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 스스로가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여 이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인간이 할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그 구원을 값없이 받아 가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냥 믿기만 하라! 빵을 구원 놓았는데 그냥 가지도록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이 왜 안 가지고 안 먹느냐'는 식으로 구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공짜로 가져라고 하는데고 안 가지고 안 믿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요, 완악하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면 인간이란 그것을 믿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원래부터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를 때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기에 전혀 하나님을 향하여 손도 내 밀지 못하는 저주와 비참 가운데 주저 앉아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안이 어둡고 영의 귀가 먹통이 되어 도무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르더라고 말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을 나의 믿음의 능력으로 믿었다고 말 할 성질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다고 밖에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그냥 믿으면 될 것을 못 믿느냐는 식의 강변은 죄인된 인생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오해가 아 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기지와 채치로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것 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남으로서 드디어 보게되고 듣게 되어 회개하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 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들도 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역사 로 말미암아 보고 듣고 회개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믿음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할 때에 이런 식의 적극적인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딴짓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잡아 오셨다면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신앙 생활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나가면 또 하나님의 은혜로 잡아다가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을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제일 많이 질문해야 할 질문은 바로 롬 6:1절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 하겠느뇨"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복음과 구원을 설명할 때에 우리가 아무런 능력 도 없이 세상에 빠져 살고 있을 때 어느날 갑자기 붙잡아 데려온 것이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구원이 내가 하나님을 찾고 믿었다거나 매달린 결과가 아니라 면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가 세상에 마음대로 나가서 놀고 있으면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잡아올 것이 아닙니까 하는 질문을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받은 이같은 질문을 받지 않는 구원에 대한 설명은 가짜입니다. 구원론에 관한 설명 중에는 이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는 설명들이 많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중요한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있 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구원의 그 다음 단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나의 요구나 감각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냥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구원은 우리가 부모에게서 출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에 우리들의 부모님과 상의했거나 무슨 도움을 요했거나 의논을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태어나기전 이기에 그럴 처지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설득을 당하고 지혜롭게 처신 하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요 섭리요 은 혜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잘 깨닫고 설득당한 결과인 줄로 여기기에 설득만 잘하면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꺼집어 내신 사역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서 구원 이후에 마음대로 죄지으며 살아가도 하나님께서 또 주권적으로 전적 책임을 져주시겠구나! 라고 간단하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롬6:1-4절까지를 보십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 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 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분명히 전적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책임하에 있습니다. 구원받았으 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안심이구나!가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이제부터 가야 할 길 이 있고, 이제부터 경험해야 할 것이 있고, 이제부터 획득할 소중한 것들이 기다리 고 있습니다. 그것을 방금 읽은 말씀 롬6: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을 엡4:22-24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이 아닌 자리에서 새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새사람이 되었으므 새사람다운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신자로서 신분 자체가 바뀌는 것은 노력으로 되 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됩니다. 그러나 새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여전히 나의 노력과 성실성을 접어놓고서 기도와 말씀만 가가이 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것 이 저절로 되어질 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기도 와 말씀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가야 하는 방향과 원리와 목표와 방법들을 깨닫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지 기도와 말씀자 체가 내가 내 발걸음을 새사람을 향해 내딪뎌야 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으로서의 길은 내가 직접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오래 신앙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신자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좋은 말씀을 듣고 모여서 기도하고 혹은 금식 기도를 한다든가 행사 나 어떤 모임들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정신이 하나님과 가까와 지는 활동들은 많 이 하고 있는데, 정작 그 기도에서 깨닫고 그 성경에서 요구하는 인격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위하여 자신을 곧바로 훈련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24절에서 이 점을 지적한 다음 25절부터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 의 변화와 인격적 훈련의 성격을 띈 요구들을 직설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엡4:25-26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 고" 27절에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28절에 `도적질 하지 말라!' `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해서 남을 도와라!' 30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님을 근심케 말라' 또한 엡4:31-32절에서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면서 구체적으로 변화되 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많이 믿으면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내려와야 됩니다. 당연히 웃음 이 많아져야 되며, 참으며, 용서하며, 인자해져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힘써고 노력 하셔야 됩니다. 이것을 세상 속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수련회 가면 으례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여기가 좋사오니 세상으 로 내려가지 말고 아예 여기서 자리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이 이야기를 했다가 그 즉시 거절 당하고 말았습니다. 시험과 시련과 유혹이 기다리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새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 에서 여러분의 이웃 앞에서 과연 새사람 다운 신자로 살았느냐를 날마다 정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 합니다. 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하여서 신자로서 마땅히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수고와 노력을 대신한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중적인 면을 지녔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출생과 신자로서의 삶 이 두 가지의 면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거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으로만 만족하고 다 끝난 줄로 여기지 말 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로 믿고 열심을 냄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여기고 기도하는 것으로 모든 행동과 실천을 떼워버리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며, 이제부터 신자로서의 삶은 내가 걷지 않는한 나의 신앙에 변화와 진전과 성장이 오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흡족한 은혜를 받았다며 감동하며 좋은 설교 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대신했다 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설교에 은혜를 받고 감동하는 것은 그대로 살기 위해서라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은혜 받았다는 말이나 그 감동들은 모두가 효과를 잃은 공수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나아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 얻은 자로서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자답게 살아가는 이것입니다. 이 길은 내가 직접 가지 않는 한은 그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 길입니다. 혹시 우리 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이같은 은사들이 여러분이 이 성화의 길을 잘 가도록 분발시켜 줄 수는 있어도 그 길을 단축시켜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과 신령한 은사를 나타 내는 것을 혼동하여 은사가 있고 개인적인 체험이 있다고 해서 많이 성화된 사람이 라는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성화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여러분에게 가장 많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 사람으로서의 생활 습관입니다. 다시말해 성령님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성품적인 훈련이요,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일에 많이 참여 하는가 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에 대하여 골3: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즉,신자로 이미 출발을 하였 다면 이제 이것을 전제로 하여 그 다음에 요구 되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골3:5-10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 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 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 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여기 말씀에 나타난 이런 것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힘써야 할 훈련 조목들입니다. 이 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중생이란 바로 이런 신앙 생활들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미 중생하였고, 지금 죽어도 하늘 나라갈 것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 다면 이제 그러한 확신들을 근거로 하여 나아가야 할 중요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후 은밀한 굴 속에 숨어서 버티고 있으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여! 이제 기어코 오셨나이까' 하면서 뛰어 나오라고 세상이 보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럴 것이라면 벌서 데려 가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주님께서는 나를 세상에서 더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적을 요구 하셔 야 합니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변화되고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히게 되는 기적 을 허락하소서! 라는 요청과 울부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여러분들 앞 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난관들을 극복하고 이기십시오. 여러분은 이기고 승리하도 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넘어지는 수는 있어나 실패 할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는 수는 있으나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러분들은 반드시 이 길을 완수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롬12:1-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 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몸을 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생각만을 드림으로 다 드렸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몸까지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생애와 인격과 존재를 바치라고 성경은 요구합니다. 지금도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유혹 앞에서 우리 자신 그 자체를 산 제사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바 쳐서 여러분이 성공하도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외면한다면 여러분만이 손해볼 것입니다.
'결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기능을 가진 평범 한 인간입니다. 갑자기 특별한 초능력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야 하는 성품적이고도 성령님의 열매적인 이 성화의 길 을 가는데 있어서 계속적인 훈련이 있을 뿐입니다. 내 본심은 하나님의 편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안타까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노라는 무기력한 고백을 이제 더 이상 반복하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온 전한 순종을 바치고 온전한 마음과 몸까지 드리십시오. 이 일에 지지 마십시오. 그 러기에는 이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의 순간 동안의 훈련이 저 영원 한 나라에서의 여러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 엄연한 진리를 직시하여 분발하게 되 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본론' 신자들은 1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 듯 이 주님께로부터 이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보냄 을 받는 것일까요 그 구체적인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그러면 요17:16-19절 까지 다시 보십시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 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지금 19절에 있는 말씀만을 놓고 초점을 하나로 좁히자면 예수님의 대속 사역 곧, 십자가의 죽으심을 들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하게 되도록 의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적용해 보면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은 않은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낸다고 하십니다. 신자 가 이 세상을 사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에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는데 왜 세상 에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하늘 나라로 데려가야 말이 맞지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라고 해놓고 세상에 내 보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를 세상에 보내면서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케 한 이 십자가 사역을 전제로 꼭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18절에 서는 예수님의 아버지께로 보내심을 받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던 것과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께로부터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이 문제의 답이 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인 19절에서 다시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가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속한 자로서 거룩하게 되게 만 드시려고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세상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의도하시고 계획하신 것인 거룩함에 이르는 목적으로 보냄을 받은 곳입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 들이 세상에서 먹고 살자면 세상의 필요악에 적당히 처신하면서 섞여 살아야지 그렇 지 않으면 못삽니다. 그렇게 살다간 굶어 죽어요 하면서 세상과 신앙이 연결 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신앙과 현실이라는 이중적인 구조 속에서 바리새적인 길을 답습할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신앙을 예수 믿어 천국 들어 가는 것 하나로 밖에 생각 지를 않고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자의 신앙이 이중 구조로 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즉,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 을 의미합니다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구원 얻은 자로서의 어떤 수준과 성장과 완성에 관한 요구와 그에 따르는 훈련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란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 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가능한데 그 도움은 바로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구약이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신약의 이야기는 무엇이겠습니까 구약이 그리스도가 오셔야만 된다고 하 였으니, 그리스도로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고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의 모든 구원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신약이 더 많이 언급하고 강조하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그 기초 위에다가 쌓 아가야 하는 성도로서 무엇을 어떻게 훈련되어져야 하며 어떻게 성화되어져야 하는 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많은 분량을 할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부분의 신자들을 만나 보면 이 성화에 관한 부분이 없고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서적인 내용 한계에 그냥 앉아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신자들을 만나서 신앙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아보면 신앙 생활을 이렇게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제일 많습니다. `죄를 안 지으려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되려고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도 안 되더라' 하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대개는 그것이 죄인 줄을 잘 알면서도 `하나님 이것은 죄인데… 저로 하여금 이 죄를 짖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때에 이런 기도를 많이 합니 까 바로 그 죄의 길로 가면서 그런 기도를 해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느 부분에서 오해를 많이 하는가 하면 신앙 생활을 하는 것과 신자가 되었다는 것을 혼돈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언제나 수동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얻은 구원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수동적인것 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결단이 있고 수고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으로 바뀌는 것에 대해선 항 상 나의 의지나 결단 이전의 문제로 설명합니다. 롬3:21-24절을 보십시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 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 은 자 되었느니라" 이 말씀은 구속에 관한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리스도의 은혜를 언급하는 말씀이지만 22절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자 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에서 혼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구원은 믿어서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믿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믿는다는 것은 행위나 공로와는 반대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믿었더니 그 믿 은 것이 조건이 되고 공로가 되어 구원이라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에 있어서 믿는 것을 조건으로 여기거나 공로로 간주하여 구원 이라는 결과가 주어진다면 이미 이 구원은 은혜가 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구원은 은혜로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란 조건이 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 가지는 믿음은 조건이나 공로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할때의 믿음은 상당히 많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말은 신자가 된 다음에 하는 말입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내게 찾아 오셔 서 나를 신자로서 영적인 눈이 열리고 영적인 귀가 열려지게 하신 다음에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서 이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결 국 구원이란 내가 필려성을 느끼지도 않았고 거기에 대해서 생각조차 없었는데 어 느날 그냥 된 것입니다. 어느날 보니 내가 하나님을 보고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듣 고 알아서 믿게되어진 것입니다. 언제 보게 되었으며 어느 순간에 들었는지 정확하 게 기억해 내기는 쉽지 않지만 하여튼 내가 이제는 믿고 있다는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서 이 구원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이런 것일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 스스로가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를 통하여 이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인간이 할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그 구원을 값없이 받아 가지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냥 믿기만 하라! 빵을 구원 놓았는데 그냥 가지도록 허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이 왜 안 가지고 안 먹느냐'는 식으로 구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냥 공짜로 가져라고 하는데고 안 가지고 안 믿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요, 완악하기 때문 이라고 주장한다면 인간이란 그것을 믿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원래부터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전제한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부를 때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기에 전혀 하나님을 향하여 손도 내 밀지 못하는 저주와 비참 가운데 주저 앉아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안이 어둡고 영의 귀가 먹통이 되어 도무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모르더라고 말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을 믿은 것을 나의 믿음의 능력으로 믿었다고 말 할 성질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믿게 되었다고 밖에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우리 신자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 그냥 믿으면 될 것을 못 믿느냐는 식의 강변은 죄인된 인생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 오해가 아 닐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기지와 채치로 회개하고 믿어서 구원을 얻은 것 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남으로서 드디어 보게되고 듣게 되어 회개하고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 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들도 이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역사 로 말미암아 보고 듣고 회개하고 믿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런 식으로 믿음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할 때에 이런 식의 적극적인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딴짓하고 있을 때에 우리를 잡아 오셨다면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신앙 생활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우리 마음대로 나가면 또 하나님의 은혜로 잡아다가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을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제일 많이 질문해야 할 질문은 바로 롬 6:1절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 하겠느뇨"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복음과 구원을 설명할 때에 우리가 아무런 능력 도 없이 세상에 빠져 살고 있을 때 어느날 갑자기 붙잡아 데려온 것이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구원이 내가 하나님을 찾고 믿었다거나 매달린 결과가 아니라 면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가 세상에 마음대로 나가서 놀고 있으면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잡아올 것이 아닙니까 하는 질문을 하는 대목인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받은 이같은 질문을 받지 않는 구원에 대한 설명은 가짜입니다. 구원론에 관한 설명 중에는 이같은 질문이 나오지 않는 설명들이 많습니다. 이 같은 말씀을 드리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중요한 함정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있 어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어진다는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구원의 그 다음 단계에 대하여 명확하게 풀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나의 요구나 감각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냥 하나님께서 내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구원은 우리가 부모에게서 출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날 때에 우리들의 부모님과 상의했거나 무슨 도움을 요했거나 의논을 한 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니, 우리가 태어나기전 이기에 그럴 처지에 있지를 못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설득을 당하고 지혜롭게 처신 하고 판단하여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요 섭리요 은 혜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많은 신자들이 내가 믿고 있는 것을 잘 깨닫고 설득당한 결과인 줄로 여기기에 설득만 잘하면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다는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권적으로 꺼집어 내신 사역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하여서 구원 이후에 마음대로 죄지으며 살아가도 하나님께서 또 주권적으로 전적 책임을 져주시겠구나! 라고 간단하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다시 롬6:1-4절까지를 보십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 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 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분명히 전적으로 하나님의 관심과 책임하에 있습니다. 구원받았으 니 이제 마음대로 살아도 안심이구나!가 아니라 구원 받았기에 이제부터 가야 할 길 이 있고, 이제부터 경험해야 할 것이 있고, 이제부터 획득할 소중한 것들이 기다리 고 있습니다. 그것을 방금 읽은 말씀 롬6: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을 엡4:22-24절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사람이 아닌 자리에서 새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새사람이 되었으므 새사람다운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신자로서 신분 자체가 바뀌는 것은 노력으로 되 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야만 됩니다. 그러나 새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여전히 나의 노력과 성실성을 접어놓고서 기도와 말씀만 가가이 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것 이 저절로 되어질 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기도 와 말씀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과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가야 하는 방향과 원리와 목표와 방법들을 깨닫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이지 기도와 말씀자 체가 내가 내 발걸음을 새사람을 향해 내딪뎌야 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새사람으로서의 길은 내가 직접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오래 신앙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신자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좋은 말씀을 듣고 모여서 기도하고 혹은 금식 기도를 한다든가 행사 나 어떤 모임들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정신이 하나님과 가까와 지는 활동들은 많 이 하고 있는데, 정작 그 기도에서 깨닫고 그 성경에서 요구하는 인격적인 변화와 행동의 변화를 위하여 자신을 곧바로 훈련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24절에서 이 점을 지적한 다음 25절부터는 아주 구체적인 행동 의 변화와 인격적 훈련의 성격을 띈 요구들을 직설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엡4:25-26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 고" 27절에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28절에 `도적질 하지 말라!' `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해서 남을 도와라!' 30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님을 근심케 말라' 또한 엡4:31-32절에서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면서 구체적으로 변화되 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를 많이 믿으면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내려와야 됩니다. 당연히 웃음 이 많아져야 되며, 참으며, 용서하며, 인자해져야 됩니다. 이것을 위해 힘써고 노력 하셔야 됩니다. 이것을 세상 속에 들어가서 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수련회 가면 으례히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목사님, 여기가 좋사오니 세상으 로 내려가지 말고 아예 여기서 자리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옛날 베드로가 이 이야기를 했다가 그 즉시 거절 당하고 말았습니다. 시험과 시련과 유혹이 기다리는 세상으로 들어가서 새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 에서 여러분의 이웃 앞에서 과연 새사람 다운 신자로 살았느냐를 날마다 정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날마다 주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 합니다. 하지만, 기도만 한다고 하여서 신자로서 마땅히 새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수고와 노력을 대신한다고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이중적인 면을 지녔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출생과 신자로서의 삶 이 두 가지의 면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거저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것으로만 만족하고 다 끝난 줄로 여기지 말 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혜로 믿고 열심을 냄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여기고 기도하는 것으로 모든 행동과 실천을 떼워버리는 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원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며, 이제부터 신자로서의 삶은 내가 걷지 않는한 나의 신앙에 변화와 진전과 성장이 오지 않음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흡족한 은혜를 받았다며 감동하며 좋은 설교 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그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대신했다 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설교에 은혜를 받고 감동하는 것은 그대로 살기 위해서라야 합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은혜 받았다는 말이나 그 감동들은 모두가 효과를 잃은 공수표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늘 구원을 얻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아온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이기 때문에 나아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 얻은 자로서 결코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신자답게 살아가는 이것입니다. 이 길은 내가 직접 가지 않는 한은 그 누가 대신해 주지 않는 길입니다. 혹시 우리 가 방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이같은 은사들이 여러분이 이 성화의 길을 잘 가도록 분발시켜 줄 수는 있어도 그 길을 단축시켜 주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성화의 길을 가야 하는 것과 신령한 은사를 나타 내는 것을 혼동하여 은사가 있고 개인적인 체험이 있다고 해서 많이 성화된 사람이 라는 착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 성화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여러분에게 가장 많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새 사람으로서의 생활 습관입니다. 다시말해 성령님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하는 성품적인 훈련이요, 여러분이 가진 것으로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일에 많이 참여 하는가 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훈련에 대하여 골3:1-2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러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즉,신자로 이미 출발을 하였 다면 이제 이것을 전제로 하여 그 다음에 요구 되는 것이 신앙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골3:5-10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 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 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 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여기 말씀에 나타난 이런 것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힘써야 할 훈련 조목들입니다. 이 것이 신앙 생활인 것입니다. 중생이란 바로 이런 신앙 생활들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이미 중생하였고, 지금 죽어도 하늘 나라갈 것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 다면 이제 그러한 확신들을 근거로 하여 나아가야 할 중요한 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세상에 보내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이후 은밀한 굴 속에 숨어서 버티고 있으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주여! 이제 기어코 오셨나이까' 하면서 뛰어 나오라고 세상이 보냈을 리는 없습니다. 그럴 것이라면 벌서 데려 가셨을 것입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주님께서는 나를 세상에서 더 거룩하게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보 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이같은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적을 요구 하셔 야 합니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변화되고 성령님의 열매들을 맺히게 되는 기적 을 허락하소서! 라는 요청과 울부짖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제 여러분들 앞 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난관들을 극복하고 이기십시오. 여러분은 이기고 승리하도 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가진 자들입니다. 넘어지는 수는 있어나 실패 할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는 수는 있으나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러분들은 반드시 이 길을 완수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롬12:1-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 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 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몸을 제사로 드리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존재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여러분 생각만을 드림으로 다 드렸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몸까지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생애와 인격과 존재를 바치라고 성경은 요구합니다. 지금도 다가오는 수많은 시련과 유혹 앞에서 우리 자신 그 자체를 산 제사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바 쳐서 여러분이 성공하도록 의도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 일을 하지 않고 게으르고 외면한다면 여러분만이 손해볼 것입니다.
'결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기능을 가진 평범 한 인간입니다. 갑자기 특별한 초능력을 소유한 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야 하는 성품적이고도 성령님의 열매적인 이 성화의 길 을 가는데 있어서 계속적인 훈련이 있을 뿐입니다. 내 본심은 하나님의 편인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안타까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노라는 무기력한 고백을 이제 더 이상 반복하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온 전한 순종을 바치고 온전한 마음과 몸까지 드리십시오. 이 일에 지지 마십시오. 그 러기에는 이 인생이 너무나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의 순간 동안의 훈련이 저 영원 한 나라에서의 여러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이 엄연한 진리를 직시하여 분발하게 되 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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