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중보기도 (요17:1-5)
본문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중보(mediator,Intercession,Intercessor,)의 기도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중보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신 것을 가리켜서 중보의 기도라고 합니다. 바울선생은 디모데 전서 2장 1절에서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의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은혜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도의 생활을 말 합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물론 기도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서 하는 것이지만 성경 전체로 보면 기독교인의 생활자체가 기도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시간은 즐거워야 하며 보람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며 대화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하시고 깨우치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대단히 좋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관습을 길러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고, 양은 목자를 위해서 기도 해야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보면 하나님은 이것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정에 화평이 올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기도, 즉 중보기도를 많이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 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 말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6장 32절과 33절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2절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리고 나서 33절에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비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또, 영화롭게 되는 것에 관하여 중보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의 의미는 무엇을 뜻 합니까 은혜와 진리가 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진리가 있어야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까
첫째,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심을 보는 놀라운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을 것 같은 경외감에 사로 잡혀 떱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하나님의 참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세상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고, 당연히 하나님의 솜씨가 그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유일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이나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6:3에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더우기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죄가 많아지면서 자연도 오염되기 시작하여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보기 어려워 졌다는사실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솜씨를 찾아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은 태양은 여전히 비취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태양빛을 차단하므로 태양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아닙니다.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서도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몸은 죽은 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살았다 하지만 죽은 자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과 죄로 물든 삶을 살면서도 태연한 자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온은 이집트 원정길에 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갔는 데 어느날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 웅대하고 화려한 밤하늘은 도데체 누가 지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면 그 개인과 세계 여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한때 천하를 얻었으나 그 마지막은 너무나도 쓸쓸했습니다. 세상사람은 나폴레온을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그는 바보 천치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따금 이라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면, 눈을 높이 들고, 우주를 보고,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지혜로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발견치 못하고 가리우는 행동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죄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제거하고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7:1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가장 크신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에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죄인된 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과 공의와 능력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큰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 만으로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사람의 영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기준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어떻게 널리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쓰임받지 못하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는 자가 될 뿐입니다. 문둥이 성자로 널리 알려진 다미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지중해 한 섬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이 다미엔 신부의 호소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다미엔 신부는 자신이 문둥병자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는 문둥병에 걸렸고 그로인해 문둥병자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들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다미엔신부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생의 성공자 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7:4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받으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평가 받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 되었는지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다고 여겨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멋잇고 화려하고 높아져도 그 자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광만 돋보일 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잘된 것을 통하여 얼마나 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까 우리에겐 복음전도, 영혼구원의 문제가 별로 매력없는 주제일지 모릅니다. 나 혼자서는 열심히 교회 빠지지 않고 헌금도 잘 내고 할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이 정도만 믿음생활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어떤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의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를 묻어 둔 종이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어두운 데로 쫓겨나 이를 갈며 울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의 문제가 지상의 최대의 과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 십자가를 지는 일,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쉽지 않은 일인 데 왜 순종을 요구 하셨겠으며, 예수님은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셨겠습니까 형편과 여건이 어려운 것, 생활이 바쁜 것, 자신이 없다는 것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도 기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공산정권 아래서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의 퓨헤라 목사를 중심으로 월요 기도회가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불과 50여명의 기도회였으나 공산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에는 10만명의 대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회로 모일 때 라이프찌히 공산당 경찰들이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할때 그 누구도 돌하나 던지지 않고 맞서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 맞고 감옥으로 끌려 갔으면서도 계속 모였습니다. 그러더니 동서독은 기적과 같이 통일되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유명한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있었고, 불가리아에는 하랄란포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설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하여 그 무섭고 기세 등등하던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났던 것입니다. 전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십자가를 졌던 성도들은 오직 그의 골방에서 저 북쪽의 적 그리스도의 왕국 얼어붙은 소련 땅에도 마음놓고 복음이 전파되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지금 소련은 경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서 그들 스스로가 개방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 데, 그 결과 소련 내의 교회성장 만큼은 현재 세계1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관습을 길러야 합니다. 목자는 양을 위하고, 양은 목자를 위해서 기도 해야합니다. 우리가 기도하여 보면 하나님은 이것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여 기도하여 주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여 기도해주는 가정은 행복한 가정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위해서 기도하는 가정에 화평이 올 수 있습니다. 서로를 위하는 기도, 즉 중보기도를 많이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 17장 1절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 고" 라고 했는데 여기서 이 말씀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요한복음 16장 32절과 33절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장 32절에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리고 나서 33절에서 제자들에게 평안을 비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또, 영화롭게 되는 것에 관하여 중보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영광의 의미는 무엇을 뜻 합니까 은혜와 진리가 있다는 것 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와 진리가 있어야 독생자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됩니까
첫째, 우리 인간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던 중,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심을 보는 놀라운 체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죽을 것 같은 경외감에 사로 잡혀 떱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가지신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은 놀랍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하나님의 참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 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영광은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온 세상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은 온 세상이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고, 당연히 하나님의 솜씨가 그 속에 잘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유일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 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이나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창세기 6:3에서 성경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 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입니다. 더우기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의 죄가 많아지면서 자연도 오염되기 시작하여 자연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찾아 보기 어려워 졌다는사실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솜씨를 찾아보기 어려워 졌습니다.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그것은 태양은 여전히 비취지만 먹구름이 잔뜩 끼여서 태양빛을 차단하므로 태양이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은 아닙니다.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만일 사람에게서도 자연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곳은 바로 지옥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몸은 죽은 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살았다 하지만 죽은 자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과 죄로 물든 삶을 살면서도 태연한 자들이 있습니다. 나폴레온은 이집트 원정길에 많은 학자들을 데리고 갔는 데 어느날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 웅대하고 화려한 밤하늘은 도데체 누가 지었는가"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그가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면 그 개인과 세계 여사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는 한때 천하를 얻었으나 그 마지막은 너무나도 쓸쓸했습니다. 세상사람은 나폴레온을 영웅이라고 말하지만 아닙니다. 그는 바보 천치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따금 이라도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면, 눈을 높이 들고, 우주를 보고, 우주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지혜로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발견치 못하고 가리우는 행동이 무엇 입니까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죄 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죄를 제거하고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7:1에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여기서'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렀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까 모순도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의 영광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가장 크신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죄인에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죄인된 한 사람이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될때, 하나님의 영광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과 공의와 능력을 가장 극적이면서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가장 큰 영광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큰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까 그것 만으로는 단정지어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사람의 영광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기준은,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어떻게 널리 전하여 영혼 구원하는 일에 쓰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쓰임받지 못하는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서는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었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받는 자가 될 뿐입니다. 문둥이 성자로 널리 알려진 다미엔 신부가 있습니다. 그는 지중해 한 섬 문둥병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이 다미엔 신부의 호소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다미엔 신부는 자신이 문둥병자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는 문둥병에 걸렸고 그로인해 문둥병자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들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다미엔신부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인생의 성공자 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보다도 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지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우리는 온전히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7:4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신 것은 예수님이 받으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평가 받을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 되었는지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겠다고 여겨지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사람이 될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가리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멋잇고 화려하고 높아져도 그 자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사람의 영광만 돋보일 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잘된 것을 통하여 얼마나 주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까 우리에겐 복음전도, 영혼구원의 문제가 별로 매력없는 주제일지 모릅니다. 나 혼자서는 열심히 교회 빠지지 않고 헌금도 잘 내고 할테니까 그렇지 않아도 할 일 많은 이 세상에 이 정도만 믿음생활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어떤 삶도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의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를 묻어 둔 종이 어떤 책망을 받았습니까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어두운 데로 쫓겨나 이를 갈며 울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영혼구원의 문제가 지상의 최대의 과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일, 십자가를 지는 일, 십자가를 증거하는 일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쉽지 않은 일인 데 왜 순종을 요구 하셨겠으며, 예수님은 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 하셨겠습니까 형편과 여건이 어려운 것, 생활이 바쁜 것, 자신이 없다는 것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도 기도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독일의 공산정권 아래서 라이프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의 퓨헤라 목사를 중심으로 월요 기도회가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불과 50여명의 기도회였으나 공산정권이 무너지기 직전에는 10만명의 대 기도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기도회로 모일 때 라이프찌히 공산당 경찰들이 곤봉으로 무차별 구타할때 그 누구도 돌하나 던지지 않고 맞서는 사람도 없이 그대로 맞고 감옥으로 끌려 갔으면서도 계속 모였습니다. 그러더니 동서독은 기적과 같이 통일되었습니다. 루마니아에는 유명한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가 있었고, 불가리아에는 하랄란포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설교하고 살았던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인하여 그 무섭고 기세 등등하던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났던 것입니다. 전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중보기도의 십자가를 졌던 성도들은 오직 그의 골방에서 저 북쪽의 적 그리스도의 왕국 얼어붙은 소련 땅에도 마음놓고 복음이 전파되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지금 소련은 경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어서 그들 스스로가 개방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 데, 그 결과 소련 내의 교회성장 만큼은 현재 세계1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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