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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에로의 길 (요17:19)

본문

우리가 받은 구원이란 단지 천국 들어가는 그것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서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성도로서 변화되고 훈련되는 과정까지 포함된 것 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성도로서 구원받은 자들이 쌓아야 하는 훈련과 거룩에로의 길이 어떤 내용들인가 하는 점입니다. <본론> 우선, 마16:16절을 보면 사도 베드로의 그 유명한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드디어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뜻과 궁극적인 목표들을 제자들 앞에서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마16:21-24절을 보십시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 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 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 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 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 말씀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서 거룩하게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가 하는 갈림길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갈림길이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의 길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의 길을 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마음에 동참하는 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반대 편에 서는 모든 것들은 모두 죄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죄 입니다. 그것은 곧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고 하나님 편에 함께 동참하 여 그 길에 서 있는 것을 거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제시해 보이시면 서 이 일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24절에 있는 것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말하 자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신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길이요, 거룩 에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주님이 가신 그와 같은 길에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같은 그러한 길을 가는데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원리는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설명이 빌2:5-8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 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말씀은 복음의 가장 핵심되는 내용들을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주님 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신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거룩에로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보인 가장 중요한 모범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길을 가는데 있어서 주님 자신의 힘과 지혜와 열정을 내놓은 것이 아니 라, 모든 주장과 생각과 지혜와 권리들을 다 내 놓으시고 다시말해 모든 개인적인 권리들을 아버지께 이양하고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복종이 거룩에로 가는 길에 있어서의 핵심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아느냐에 관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말씀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앞에 얼마나 순종했느냐 하는 사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씀은 단지 우리들에게 당신이 메시야 되심을 가르쳐 주기 위한 자기표현에 불과한 것이지 사실 은 그 어느 것도 아버지께 순종했다 라는 말에 귀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순종 을 좀 더 확대한 말씀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히5:8-10절을 보시겠습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 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주의 하셔야 할 말씀이 나옵니다. 즉,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고난을 통하여 배워야 할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결코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여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이 온전함은 예수님 쪽에서 보자면 그 자신의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일 때문에 나온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이 되 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요구한 일은 우리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요구한 것은 그가 참 인간이 되는 어려운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날아가고도 남음이 있으신 분이 기어가는 자리에 오셨으니 그야말로 고난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온 천하 만물을 지으신 이가 자기가 지은 영역 안에 자신을 넣어야 되는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하여 하나님이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께 대하여 온전함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할 때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 의 지혜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가졌던 영광과 권세를 옆으로 제쳐 놓으시고 자신을 비우고 종이 되어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응하는 자로 이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거룩의 중요한 원리가 있고 우리 가 모방해야될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순종의 길을 걸으시 되 우리에게 모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걸으셨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완성시키기 위 하여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신 그 고난의 길을 순종으로 걸으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성경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적에 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모두 기적의 주인이십니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원하시기만 한다면 기적을 만들어 내실 수 있으십니다. 온천하 만물을 말씀으로 만드실 수 있으신 분이 시며, 노도 광풍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잠케 하실 수 있으시며, 죽은지 나흘이나 지나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도 살려내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힐란을 받으시기도 했습니다. `죽은 자도 살려 내시는 이가 어찌하여 자기는 이 죽음의 형 틀에서 벗어 나오지 못하는가'하는 모욕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자신이 가셔야 할 순종의 길을 기적이라는 것으로 대체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사용하실 때는 항상 우리가 경험하고 상상 하고 인식하고 있는 이 세상의 영역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치기 위하여 기적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더 큰 초월적인 영역인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 을 우리에게 암시하기 위해서 기적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에 의 길로 가는 방법은 순종밖에 없습니다. 왜 여기서 순종에 있어서는 기적으로 대체될 수 없음을 강조해야 하느냐 하면 그 것은 우리들의 신앙의 실수와 결함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그 신 앙의 가장 큰 결함이란 신앙을 내 목표와 내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 긴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늘 신자들이 자신의 목표와 뜻을 쉽게 성취하기 위하여 기적을 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내가 가진 계획과 목표와 욕심을 이루기 수단으로 이용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기적이 `주님, 이 일을 이루 어 주십시오. 주님께서 내 일과 계획에 당신의 능력을 투자하시고 나중에 그 이익을 반반으로 나눕시다.'라는 방식에 도입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에 주님의 기적이 도입되고 간섭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 자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순종의 길을 걸어가시는데 있어서 결코 당신의 그 기적으로 대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늘 일과처럼 사용하신 그 기적은 십자가의 길을 가 볍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경험하고 있는 이 영역 의 일들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위하여서는 그 기적을 즐겨 사 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우리가 경험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닌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나라가 있으며 하늘 나라의 자녀 로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무엇으로 가느냐 하면 순종으로 가는 곳 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최고의 핵심은 순종입니다. 나의 죄의 본성은 죽어지고 나의 생각과 욕심을 극복하고 새로운 하늘 나라의 백성으로서 걸맞는 자로서 고쳐지기 위하여 더 욱더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에는 이런 것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롬12:1-2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 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런데 그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 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길이란 주님이 가신 길을 좇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신길 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요 구하기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 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은 바로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변화의 요구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경의 전부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도 같은 요구를 하 시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 거룩함을 이루는 방법으로서 무슨 거창한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말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말씀이 롬12: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 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 롭게 생각하라" 이것을 알기 쉽게 풀어서 오늘날의 말로 요약하면 옆사람과 비교하 여 괜히 시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개인적으로 무엇인지를 모르고 늘 하는 일 이라는 것이 문제있는 사람 색출해 내는 일을 업으로 삼다시피 하는 습관입니다. 간 첩을 찾아내듯 찾아 내는 일에 빠지는 것입니다. 누구 누구는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문제다 이런것 밖에는 다른 일을 할 겨를 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니 그 양심은 한 없이 무디어져 버립니다. `저들이 저렇게 악하게 살기 때문에 그래도 난 이정도로 사는 것으로 양호하다'는 생각을 스 스럼없이 하곤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같은 사고방식이 우리로 하여금 거룩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인 것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교회가 움직여지는 모습을 보니 난 그래도 이 정도도 괜 챦은 거다, 많지는 않지만 헌금도 냈고 주일도 지키고 직분도 그런대로 그럭저럭 감 당해 내고 있고'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선 여러분의 양심을 가리고 있지나 않는지 정검해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의 내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 하나가 문제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다른 사람을 끌여 들일 수 없는 자리입니다. 핑게도 댈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에 모여서 나오는 말이 기껏 `예배당에 갔더니 눈감으라 해놓고 신발 훔쳐 가더 라'는 식의 경험담 만이 무성할 뿐 정작 나와야 할 신자로서의 얘기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교회 갔더니 목사가 어떻더라, 장로가 어떻더라' 이런 얘기가 우리에 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며, 중요한 목표나 책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강대상에 매주일마다 이단을 벗긴다 하여 여호와의 증인, 문선명, 박태선, 권신찬 등으로 계속 비판해 나가는 말씀만을 전한다면 그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되는 이단에 대한 비판 일색의 말씀에 탐탁하게 여길 분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단과 싸우기 위하여 세워진 단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 듭나는 일을 증거하며 그 안에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약속의 풍성함을 경험케 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이단과 싸우는 것이첫째 목표는 아닙니다. 이단과의 싸움은 부 수적인 일일 뿐입니다. 우리의첫째 목표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갖고 계신 뜻과 그 안에서 부름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어떤 계획과 목표를 요구받고 있는가 를 알아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하여 애쓰는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 며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여 감사하며 찬송하는 자리에 까지 나아가게 하기 위하여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구받고 있는 거룩에로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하여 롬12:20절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 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신자에게 있어서 원수 갚는 것이 첫번째 목표가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변화되고 성숙되는 그것이 첫번째 목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 12:21절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전에는 우리가 10원어치 악하게 하면 나는 천원어치 악하게 하고 싶어하였던 자 가 아니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다 바보줄 알어'라는 생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바로 그와같은 생각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우리에게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 보냄을 받습니다. 뜻밖에도 우리는 원치 않는 악한 자들을 만 나게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을 만나서 내가 얼마나 악을 악으로 반응하는 것 이 없어졌는가를 살펴 봄으로 얼마나 더 거룩에로의 길을 더 가야 할 것인가를 알 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을 위하여 우리 신자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갈 5:13-14절을 보십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 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 바로 이것이 거룩으로 가는 과정이요 길입니다. 신자는 거룩으로 초대 받았고 이것을 목표로 삼고 훈련하셔야 됩니다. 네 이웃 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것이 온 율법의 마침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을 사랑하십시오. 이웃 사이에서 만일 싸움이 나거든 아직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모두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알고, 나와 부딪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히려 사랑할 만한 사람 을 사랑하기 보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혹시 단 그 사람만은 벽을 쌓고 지내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바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해결되어 있지 않는 한 여러분은 아직도 거룩에의 길로 제대로 가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되어질때 비로소 거룩에의 길로 진전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옆에 모아 두고서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신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연의 이치에 불과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기독교의 신앙입니다. 기독교에 능력이 있고 기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의 신앙을 영위하는 것은 능 력과 기적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장이 고전 13장에 뭐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헛일이라고 합니다. 내가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예언의 능이 있어도,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주를 향한 열정이 있어 도 사랑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은 헛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우리의 신앙이 내가 어떤 정열을 가졌는가 어떤 기도의 능력을 가졌는가 천사의 말을 들었는가가 난무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급기야는 옆 사람을 영적으로 죽 이는 일을 할 뿐일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니 아무와도 화해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 사랑의 길을 가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혈육을 돌아보 아야 합니다. 담 쌓고 지내는 형제자매들을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웃 과 웃고 지내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싸움만 안하면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지고 짖밟혀 줌으로서 마침내 이루어지는 그런 화목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이 일을 하기를 꺼리는 이유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하루도 못살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의 길에 항상 요구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 종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과 요구에 나를 복 종시켰느냐의 싸움입니다. 그 순종의 길을 걸어가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놀라 운 기적과 만족과 상상치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현실 세계를 잘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로 전락해 버린 것은 슬픈일 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선과 관심이 마땅히 자기 자신에게로 집중되어야 할 것을 도리어 밖으로 돌리어 `교회가 왜 이래 목사가 왜 이래 신자가 왜 이래' 하는 것에다 자신을 감추어 버리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큰 교회가 점점 더 커가는 이유 중 하나가 거기에는 숨는 교인들이 점점 더 많이 생 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 일에 끼어 보니까 전부 상처받는 일 밖에 없었다는 이유로 그렇게 큰 교회에 파뭍혀 조용히 신앙 생활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상처를 받았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요구가 자기 자신을 향한 것 이 아니라, 전부 다 상대방들을 향한 요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목사들이 성숙해져 가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은 처 음에 세계를 달라고 기도한답니다. `이 세계를 주십시오!' 그러나 신앙이 좀 더 성 숙해지면 `이 교회를 주십시오!'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 교회를 멋있게 하여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마침내 `하나님, 이 못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한답니다. 목사마저도 결국은 자신과의 싸 움을 하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목사로 세우셨사오니 내게 열명의 확실 한 일꾼을 보내어 주십시오! 그러면 그냥 전 세계를 뒤엎어 놓게습니다'는 생각 만 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목사들이 늘 빠지는 실수 중 하나입니다. 나 아 닌 다른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내가 믿음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좋은 목사, 좋은 장로, 좋은 집사가 있다고 안심할 일이 아닙니다. 신앙은 자신이 시작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가 주는 길이 아닙니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에 관한 싸움인 것입니다.
<결론>
내가 가야할 신앙의 길, 성화의 길, 거룩에로의 길을 다른 사람으로 떼우지 마시고 다른 일로서 대체시키지 마십시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길입니다. 우리는 이 거룩에로의 길을 반드시 가야하는 사람입니다. 어쨋든 맞아서라도 이 길을 가야 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마침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지 나고 다 걷고 나보면 후회되지 않는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계속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훈련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내가 얼마나 사랑이 없으며 거룩이 없는 자인가를 깨닫고, 아직도 얼마나 악이 충전되어 있는 자인가를 깨닫 고 끊임없이 사랑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거룩의 길입니다. 스데반 같이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에게 그 마음에 복수심이 없고 진정한 사랑이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성품에 도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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