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증거하러 온자 (요1:6-8)
본문
오늘 본문에는 빛을 증거 하게 할려고 하나님 께서 보내심을 받은 한 사람이 나온다. 누구 입니까 세례 요한은 그 빛을 증거하고 그 빛을 많은 사람들에게 믿게 할려고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자다. 이 세례 요한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하나님의 예언 속에 기록된 자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다 의 삶은 이미 그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죽어야 할것이 정해져 있었다. 그는 오직 예수 한분 때문에 이 땅에 왔고 오직 예수 한분 때문에 살다가 예수를 위해 죽었다. 예수와 세례 요한 그 관계는 떼어 놓을래야 놓을수 없다. 세례요한은 예수 보다 6개월 먼저 잉태되었다 배속에 있을때부터 세례요한은 예수를 알아 보았다. 눅 1:36 이하 = 예수 그리스도 길을 예비하러 온자다. 그는 오직 예수 를 나타내고 조용히 사라진 위대한 자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세례 요한에게 "여자가 낳은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자가 없다" 고 하셨다.(마11:11) 6 하나님 께로 보냄을 받은 사람. 하나님으로 부터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온자. 세례 요한 역시 자신이 하나님으로 부터 무엇하러 이 땅에 보냄을 받었는지 잘 안자였다. 눅 3:4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눅 3:16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아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시는데 그는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요 3:29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보내심을 받었는데 누구로부터 받었습니까 "하나님 께서" 라는 짭은 단어지만 의미가 깊다. 이름은 요한이라 했음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 뜻. 그는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으로 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자들 입니까 하나님께 로부터 보냄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택함받은 자들이다. 믿고 계십니까 우리도 세례요한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는자들이다. 세례요한이 이미 이 땅에 오는 것이 정해 졌듯이 우리 또한 이미 태중에 우리를 만드시고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시 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우리 또한 각자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왔다 우리 또한 예수를 위해 살고 죽도록 해야한다.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 고 복음을 외쳐야 한다. 우리 또한 세례요한 처럼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또한 포도주나 소주를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또한 다시오실 예수의 길을 예비해야만 한다. 예수만 흥하고 우리는 쇠해야만 한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부터 보냄을 받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세례요한의 삶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 깨달으시고 그렇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외아들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 어머니는 엘리사벳 그런데 두분이 늙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으로 부터 아이를 주시겠다 약속 받았다.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해 주었다. 당시에 제사장 이라면 백성들의 지도자 였다. 그런 집안에서 그것도 아주 귀한 외아들로 태어 났으니 그 얼마나 귀여움을 독차지 했겠는가 그러나 세례요한은 눅 1:80 조금 성장하자 빈들에 가서 살았다. 빈들은 광야이다. 유대 땅에 광야는 낮엔 더웁고 밤엔 말로 할수없이 춥다. 먹을것도 없다. 그래서 메뚜기와 석청만 먹었다. 옷도 약대 털옷 한 벌 옷이었다. 그렇게 1년을 산 것이 아니다. 10년이 아니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예수가30세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 했으니까 요한과는 6개월 나이차이가 있은 것을 볼 때 아마 20년-3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다. 누구를 기다리며. 오직 예수 한분 만을 기다리며 그는 광야에서 살았다. 예수 한분 때문에 그 좋은 집안 가문 다 버리고 광야에서 살았다. 얼마 안가면 좋은 집에, 좋은 방에,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 집이 있었지만 세례요한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를 기다리며 광야 에서 외롭게 지냈다. 예수 때문에 광야에서 젊음을 다 보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많이 울었을 것이다.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세례요한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아는 자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있는 자였다. 왜 자기가 사는지 아는 자였다. 왜 이땅에 왔는지 아는자 였다. 그러 했기에 그 광야의 싸움에서 승리 할수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떠 합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께로 부터 택함을 받은 자 입니까 받은 자라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만 한다. 그렇다고 요한 처럼 광야에 나가서 살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저 세상 사람들하고는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한 분 때문에 외로워야 된다. 예수 한 분 때문에 우리가 눈물을 흘려야 한다. 예수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광야의 삶은 다른 삶이 아니다. 예수 한분 으로 만족하고 구별되게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로 부터 택함 받은 자라면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도 마지막 때에는 산으로 도망 가라고 했다. 광야는 산이 있는 곳이다. 세상속에 깊이 파묻혀서 산다면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수가 없다. 주님도 세상에 있을 때 이런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주님이 제자들이 광야의 삶을 살았다. 초대 교인들이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광야의 삶을 살았다. Q 께로 부터 택함받은 자는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런 삶을 살다 갔다. 우리도 광야의 삶을 살면서 다시오실 예수를 기다리며 살아 가시기를 축원 합니다. 7 절 빛을 증거 하러 온자. 본문에 세례요한이 왜 왔는지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왜 왔습니까
1. 빛을 증거.
2. 모든 사람을 믿게 할려고. 이것이 세례요한의 사명 이었다. 이 빛은 자연적인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믿게 하려 함이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것없이 모든자. 오늘 본문에 "자기를 인하여" 주목 하자. 자기를 통해서 빛이 증거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끔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요한이 예수를 증거 할만큼 예수를 체험한 사람인가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가 공생애 등장 하기전에 예수와 만난적이 없었다. 꼭 있다면 뱃속에 잉태 태었을 때 그 때 말고는 없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예수와 대면이 첫 대면이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 보지도 못한 예수 를 증거 할수 있단 말인가 그 결정적인 답은 눅 3:2 "Q 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모든 뜻이 요한에게 말씀으로 임한것이다. 우리 역시 직접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음.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한다. 요한처럼 우리도 그 빛을 증거 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적이 없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빛을 증거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 때보다 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받기 쉬웁다. 다시말해서 빛을 더 증거 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왜 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속에 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에서 멈추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역사가 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 그 뼈들에게 살이 붙고 살아서 큰 하나님의 군대. 지금 이 시대 하나님 말씀을 듣고만 끝나버린 시대이다. 실천 할려는 노력들이 없다. 그런자들에게 어찌 생명의 빛이 나타나겠는가 오늘 본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다. (다같이)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이 구원자 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직접 다 인간들을 구원 시킬수 있음. 그러나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고 예수는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우리가 빛이 되어서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구원은 나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구원자라는 것이 아니다. 내 입을 통해서 나가는 복음을 듣고 저들이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나를 통해서 여러분의 가족이다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내가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빛이 아니다.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제대로 알고 예수를 위해 내 삶이 살고자 할 때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나타나게 해주실것이다. 8 절 빛이 누구란 것을 밝히고있다. 빛에 대해서 결론을 맺고 있다. 이 빛은 세례 요한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단지 이 빛을 증거 하러 온자에 불과하다. 세례 요한은 스스로 빛이기를 거절 한사람이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내가 빛이 될려고 하는자가 많이 있다. 우리는 빛이기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빛이 될 수도 없는 자들이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거듭나서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빛은 될 수가 없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증거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빛이 아니다. 빛 되신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허분 !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자 수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독사의 자식들아 ! 회개하라 ! 외쳐도 몰려 왔다. 서서히 군중들 속에서 저가 그리스도가 아니야 혹시메시야가 아니야 수근 거렸다. 눅 3:15 그리스도가 아닌가 의논 하고있다. 여기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분명히 밝혔다. 마 4: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요1:29-31)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우리가 아무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에 불과하다. 설교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영혼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에게 필요 한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때 우리는 교만의 사슬에 매이게 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만 흥해야만 한다. 우리는 쇠해야만 한다. 이러한 자세가 될 때 주님은 우리를 온전히 사용하신다. 그래서 빛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 할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이 빛을 온전히 증거하는 자는 환경도 죽음도 그 자를 얽매이지 못한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헤롯 왕에게 정면 도전했다 헤롯 왕의 죄를 대낮에 길에서 책망했다 헤롯은 동생 아내를 데리고 살았다. 이 죄를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 아내를 데리고 사는 네 죄를 회개하라 ! 외쳤다 . 빛을 증거하는 자는 권세 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은다. `그 빛만 증거하기를 원한다.
여러분 우리가 밤마다 보는 저 달빛은 실은 빛이 없다. 달빛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이 땅에 밤에 달빛을 내고 있다. 우리 역시 빛이 아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살게될때 만이 우리는 저 어두어져 가는 세상에 빛을 발할수 있다. 내가 예수를 뜨겁게 사랑할 때 나를 통해서 주님은 그 생명의 빛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결론' 하나님 께로부터 택함을 받은자는 스스로 자처해서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외로워야한다. 우리가 너무 바쁘면 안된다. 고독해서 주님 생각하고 우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풍요로움 속에서 안주 할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택함 받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구원 하여 주신 것은 나 한사람으로 구원이 끝나기를 하나님은 절대로 원하시지 않으신다. 내 입술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 되기를 원하신다. 내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이 복음화 되기를 원하신다. 직장이, 사업장이 복음화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런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세례 요한만 그 빛을 증거 하러 온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서 숨쉬고 있는 동안 이 빛을 증거 해야만 한다. 이 빛이 증거 되는 곳에는 흑암의 세력들이 귀신의 세력들이 소리치며 떠나게 될것이다. 세례 요한은 헤록 왕에게 목 베임을 당하고 그 젊은 30세 나이를 마쳤다. 우리의삶도 오직 예수를 위해 살다가 예수를 위해 죽는 영광을 차지 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시 139:13-14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 하심이라. 우리 또한 각자 특별한 사명을 받고 이 땅에 왔다 우리 또한 예수를 위해 살고 죽도록 해야한다.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해 "회개하라" 고 복음을 외쳐야 한다. 우리 또한 세례요한 처럼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또한 포도주나 소주를 멀리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 또한 다시오실 예수의 길을 예비해야만 한다. 예수만 흥하고 우리는 쇠해야만 한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부터 보냄을 받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믿으십니까 그러면 이제 세례요한의 삶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 깨달으시고 그렇게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세례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외아들 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사가랴. 어머니는 엘리사벳 그런데 두분이 늙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으로 부터 아이를 주시겠다 약속 받았다. 이름을 요한이라고 정해 주었다. 당시에 제사장 이라면 백성들의 지도자 였다. 그런 집안에서 그것도 아주 귀한 외아들로 태어 났으니 그 얼마나 귀여움을 독차지 했겠는가 그러나 세례요한은 눅 1:80 조금 성장하자 빈들에 가서 살았다. 빈들은 광야이다. 유대 땅에 광야는 낮엔 더웁고 밤엔 말로 할수없이 춥다. 먹을것도 없다. 그래서 메뚜기와 석청만 먹었다. 옷도 약대 털옷 한 벌 옷이었다. 그렇게 1년을 산 것이 아니다. 10년이 아니다.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예수가30세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 했으니까 요한과는 6개월 나이차이가 있은 것을 볼 때 아마 20년-3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다. 누구를 기다리며. 오직 예수 한분 만을 기다리며 그는 광야에서 살았다. 예수 한분 때문에 그 좋은 집안 가문 다 버리고 광야에서 살았다. 얼마 안가면 좋은 집에, 좋은 방에,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 집이 있었지만 세례요한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예수를 기다리며 광야 에서 외롭게 지냈다. 예수 때문에 광야에서 젊음을 다 보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많이 울었을 것이다.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을 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해야만 했습니까 세례요한은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아는 자였다.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있는 자였다. 왜 자기가 사는지 아는 자였다. 왜 이땅에 왔는지 아는자 였다. 그러 했기에 그 광야의 싸움에서 승리 할수 있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떠 합니까 내가 정말 하나님께로 부터 택함을 받은 자 입니까 받은 자라면 우리의 삶이 달라져야만 한다. 그렇다고 요한 처럼 광야에 나가서 살으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저 세상 사람들하고는 구별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한 분 때문에 외로워야 된다. 예수 한 분 때문에 우리가 눈물을 흘려야 한다. 예수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절제하며 살아야 한다. 광야의 삶은 다른 삶이 아니다. 예수 한분 으로 만족하고 구별되게 사는 삶이다. 하나님께로 부터 택함 받은 자라면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도 마지막 때에는 산으로 도망 가라고 했다. 광야는 산이 있는 곳이다. 세상속에 깊이 파묻혀서 산다면 우리는 예수를 위해 살수가 없다. 주님도 세상에 있을 때 이런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주님이 제자들이 광야의 삶을 살았다. 초대 교인들이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광야의 삶을 살았다. Q 께로 부터 택함받은 자는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런 삶을 살다 갔다. 우리도 광야의 삶을 살면서 다시오실 예수를 기다리며 살아 가시기를 축원 합니다. 7 절 빛을 증거 하러 온자. 본문에 세례요한이 왜 왔는지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왜 왔습니까
1. 빛을 증거.
2. 모든 사람을 믿게 할려고. 이것이 세례요한의 사명 이었다. 이 빛은 자연적인 빛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빛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모든 사람에게 믿게 하려 함이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것없이 모든자. 오늘 본문에 "자기를 인하여" 주목 하자. 자기를 통해서 빛이 증거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끔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례요한이 예수를 증거 할만큼 예수를 체험한 사람인가 성경 어디를 보아도 예수가 공생애 등장 하기전에 예수와 만난적이 없었다. 꼭 있다면 뱃속에 잉태 태었을 때 그 때 말고는 없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예수와 대면이 첫 대면이다.
그런데 어떻게 만나 보지도 못한 예수 를 증거 할수 있단 말인가 그 결정적인 답은 눅 3:2 "Q 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는 모든 뜻이 요한에게 말씀으로 임한것이다. 우리 역시 직접 예수를 만나보지 못했음.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한다. 요한처럼 우리도 그 빛을 증거 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적이 없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 말씀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도 빛을 증거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세례요한 때보다 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받기 쉬웁다. 다시말해서 빛을 더 증거 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 어두워져만 가고 있다. 왜 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고 끝나 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이 내 영혼속에 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육에서 멈추고 말기 때문이다. 하나님 말씀은 우리를 살리는 역사가 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 뼈들에게 하나님 말씀이 임할 때 그 뼈들에게 살이 붙고 살아서 큰 하나님의 군대. 지금 이 시대 하나님 말씀을 듣고만 끝나버린 시대이다. 실천 할려는 노력들이 없다. 그런자들에게 어찌 생명의 빛이 나타나겠는가 오늘 본문에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다. (다같이)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이 구원자 라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직접 다 인간들을 구원 시킬수 있음. 그러나 그런 경우는 특별한 경우이고 예수는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고 우리가 빛이 되어서 우리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길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를 택하신 것이다. 구원은 나를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란다. 우리가 구원자라는 것이 아니다. 내 입을 통해서 나가는 복음을 듣고 저들이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나를 통해서 여러분의 가족이다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먼저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내가 하나님 말씀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빛이 아니다.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제대로 알고 예수를 위해 내 삶이 살고자 할 때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나타나게 해주실것이다. 8 절 빛이 누구란 것을 밝히고있다. 빛에 대해서 결론을 맺고 있다. 이 빛은 세례 요한도 아니라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단지 이 빛을 증거 하러 온자에 불과하다. 세례 요한은 스스로 빛이기를 거절 한사람이다.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대목이다. 내가 빛이 될려고 하는자가 많이 있다. 우리는 빛이기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는 빛이 될 수도 없는 자들이다. 세상의 빛이 되라는 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거듭나서 예수를 위해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내 스스로 빛은 될 수가 없다. 그는 이 빛이 아니요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그는 이 빛에 대하여 증거 증거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빛이 아니다. 빛 되신 예수를 증거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허분 !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자 수 많은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독사의 자식들아 ! 회개하라 ! 외쳐도 몰려 왔다. 서서히 군중들 속에서 저가 그리스도가 아니야 혹시메시야가 아니야 수근 거렸다. 눅 3:15 그리스도가 아닌가 의논 하고있다. 여기에 세례 요한은 자신을 분명히 밝혔다. 마 4:11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요1:29-31) "(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30)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3: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우리가 아무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복음을 전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에 불과하다. 설교자가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영혼을 사랑한다 할지라도 성도들에게 필요 한 것은 설교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때 우리는 교만의 사슬에 매이게 되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만 흥해야만 한다. 우리는 쇠해야만 한다. 이러한 자세가 될 때 주님은 우리를 온전히 사용하신다. 그래서 빛의 역할을 온전히 감당 할수 있도록 허락하신다. 이 빛을 온전히 증거하는 자는 환경도 죽음도 그 자를 얽매이지 못한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헤롯 왕에게 정면 도전했다 헤롯 왕의 죄를 대낮에 길에서 책망했다 헤롯은 동생 아내를 데리고 살았다. 이 죄를 요한이 헤롯에게 동생 아내를 데리고 사는 네 죄를 회개하라 ! 외쳤다 . 빛을 증거하는 자는 권세 앞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은다. `그 빛만 증거하기를 원한다.
여러분 우리가 밤마다 보는 저 달빛은 실은 빛이 없다. 달빛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이 땅에 밤에 달빛을 내고 있다. 우리 역시 빛이 아니다. 오직 예수 안에서 온전하게 살게될때 만이 우리는 저 어두어져 가는 세상에 빛을 발할수 있다. 내가 예수를 뜨겁게 사랑할 때 나를 통해서 주님은 그 생명의 빛을 나타내 보여주신다. '결론' 하나님 께로부터 택함을 받은자는 스스로 자처해서 광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외로워야한다. 우리가 너무 바쁘면 안된다. 고독해서 주님 생각하고 우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세상에 풍요로움 속에서 안주 할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택함 받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구원 하여 주신 것은 나 한사람으로 구원이 끝나기를 하나님은 절대로 원하시지 않으신다. 내 입술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 되기를 원하신다. 내 행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원하신다.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이 복음화 되기를 원하신다. 직장이, 사업장이 복음화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런 사명을 다 가지고 있다 세례 요한만 그 빛을 증거 하러 온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이 땅에 서 숨쉬고 있는 동안 이 빛을 증거 해야만 한다. 이 빛이 증거 되는 곳에는 흑암의 세력들이 귀신의 세력들이 소리치며 떠나게 될것이다. 세례 요한은 헤록 왕에게 목 베임을 당하고 그 젊은 30세 나이를 마쳤다. 우리의삶도 오직 예수를 위해 살다가 예수를 위해 죽는 영광을 차지 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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