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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특권과 소명 (요17: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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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라 형편이 어려워져 1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니까 우리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자주 들려 옵니다. "우리 민족이 어떤 민족인데! 6 25사변의 잿더미 위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우리 민족이 어떻게 여기서 무너질 수 있겠는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혹은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이런 말을 어렵지 않게 듣게 되는 것입니다. 왜 너나 할 것 없이 새삼스럽게 '6 25사변의 잿더미 위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이룬 민족'이니 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일까요 국민의 자존심이라는 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깡통을 차도 국민의 자존심이 살아 있으면 그 나라는 일어섭니다. 그 반대로 아무리 호화스러운 1등 국가가 되었다 해도 국민이 자존심을 잃어버리면 그 나라가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가장이 직장을 잃었다고 해서 온 식구가 기가 죽어 가지고 자존심까지 잃어버리면 그 가정은 소망이 없습니다. 자존심이 있냐 없냐에 죽느냐 사느냐의 운명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세상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자존심은 신앙생활의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확고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믿지 않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과연 이 자존심을 가진 사람답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요즘과 같이 답답하고 숨막히는 상황에 처할수록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더 분명한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여셔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들을 돌이키게 하시고 상실되거나 희미해진 자존심을 분명하게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 예배 시간에 우리는 한 가지 특별한 순서를 가졌습니다. 예배를 마치기 전에 우리 모두가 '공동체고백'이라는 것을 함께 고백했습니다. 오늘 주보 3면에 공동체고백이 실려 있습니다만 그 중심 내용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공동체고백인 것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이 세상을 사느냐'를 간결하게 가르쳐 준다는 점에서, 또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어야 할 우리의 자존심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밝혀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는 초창기에 이와 비슷한 공동체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우리가 함께 고백한 것은 아니지만 담임 목사가 축도를 하기 전에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라는 고백을 성도들에게 들려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수년 동안 그렇게 해 오던 중 이 교회당을 짓고 들어와서 교회가 점점 더 커지고 바빠져서 예배가 시간적으로 쫓기게 되다 보니 순서 하나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10여 년 전부터 중단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저는 이 공동체고백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악해질수록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며, 세상살이가 절박해질수록 내가 무엇을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또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신앙적으로 분명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어떤 형편을 만나든지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를 마음속으로 분명히 확인하도록 하기 위해 이 공동체고백을 다시 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앞으로 여러분들은 귀가 아프도록 이 고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또 자다가 일어나도 입만 열면 이 고백이 입에서 튀어나올 정도로 이 고백을 마음에 담고 신앙생활 하도록 제가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안 믿는 사람들 틈새에서 예수 믿는 우리가 그들과 어떻게 다르며, 우리가 어떤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 지도 모르는데 무슨 자존심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우리가 세상사람들보다 낫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들려주시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 먼저 살펴 볼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 14절과 16절에서 두 번이나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앞에 놓고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내용인지라 한마디 한마디에 진지하고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이 뛰고 있는 기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먼저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왜 세상이 저희를 미워했느냐 그 이유가 그 다음에 나옵니다.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16절에도 이와 유사한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저희 곧 우리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어떻게 '저희'를 우리로 해석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본문을 보면 '저희'는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시는 그의 제자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성만찬 도중 가룟 유다가 나간 것을 고려하면 성만찬을 마친 후 예수님의 기도를 들은 제자는 기껏해야 11명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히 이런 상황을 내세우며 '저희'를 우리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절을 보면 그러한 의문이 일시에 풀리게 됩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이 기도를 할 때 염두에 두고 계셨던 사람들은 자기 앞에 있는 몇 명의 제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앞으로 이 지구상에 나타날 하나님의 백성 전부를 염두에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14절과 16절의 '저희'는 우리 모두를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이렇게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오늘 예배 드리는 사랑의교회 성도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처럼 설교하는 옥 목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고, 여기에 와서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 속하지 아니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떼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완전히 구별해 놓으신 백성이 따로 있는데 우리가 그 백성 가운데 포함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우리를 불러내어 하나님의 것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으로 아예 도장을 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요한계시록 13장 16절 이하에 보면 세상 사람들은 머리에 짐승의 이름을 달고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있는지 잘 모릅니다.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들은 이마에 짐승 이름을 달고 다닌다고 합니다. 짐승은 마귀와 사탄의 이름입니다. 이 세상은 모든 악을 충동질하는 마귀와 사탄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별하여 불러내지 아니한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전부 그 이마에 짐승의 이름을 단 채 그 악한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4장 1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신 특별한 백성들의 이마에는 어린양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눈에는 세상 사람과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나 입는 것이나 시집장가 가서 애 낳고 키우고 하는 것들이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마에 예수 이름이 있는지 마귀 이름이 있는 지 분명히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셨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 망할 줄을 아시고 미리 우리를 세상에서 끌어내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불과 몇 시간 후에는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떨어져서 온 천지가 완전히 불바다가 되고 모든 심령이 영원한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무서운 운명을 앞에 두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롯과 그의 딸들을 강제로 끌고 나오셨습니다. 안나오겠다는 걸 끌고 나오다시피 해서 소돔과 고모라에서 데리고 나오셨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롯은 소돔 고모라에 속하지 아니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미리 막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안 믿으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치는데도, 신앙생활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도 강제로 우리를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구별해 내어 믿게 하십니까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따로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의 놀라운 선언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가 바로 그런 영광스러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고 그랬습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분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어떤 신분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자라면 사회 생활을 할 때 세상 사람들을 따라 가지 않습니다. 비슷하게 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중에는 교회는 열심히 드나들지만 자신이 누구인가를 잊고 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세상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며 그들과 비슷하게 놀 수 있을까 하고 안달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하고 비슷하게 놀면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는 환영합니다. '야, 너 예수 믿어도 굉장히 너그러운 사람이다.' 이렇게 환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들이 겉으로는 온갖 발림말로 환영할 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멸시한다는 사실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세상 사람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사람답게 살려고 애를 쓰면 그들은 겉으로는 우리를 싫어합니다. 어떤 때는 핍박도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우리를 존경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영물입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영으로 통하는 데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자마자 귀신들린 사람이 제일 먼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거룩한 자임을 알았습니다. 영적으로 뭔가 통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을 보면 자기와 다른 줄을 금방 알아챕니다. 어렵지 않게 낌새를 느끼는 것입니다. 회사를 가시든지 어디를 가시든지 한번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안 믿는 사람이 먼저 냄새를 맡아 버립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낸 존재라는 것을 그들이 영적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자기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아우성을 치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멸시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명심합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잘난 것이 뭐가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셨는지는 모르지만 참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왜 나 같은 것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시고 세상에서 불러내셨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만은 분명히 확신합니다. 나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 삼아주신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한시라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자존심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 또한 가지 살펴볼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본문 18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예수님은 요한복음20장 21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평소에 잘 사용하시던 용어 중의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에서만 해도 16번 이상이나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굉장한 프라이드로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자기를 반대하고 거역하는 사람들이나 무슨 권세로 이렇게 가르치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하나님이 자기를 보내셨다는 말씀을 가장 권위 있는 대답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본문 18절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도 똑 같이 적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 자신과 우리를 비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같이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존재 옆에 설 수 있습니까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자 세상의 구원자십니다. 그분은 거룩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분과 감히 비교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와 평행선상에 세우시고 내가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세상으로 보냄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와 같이 대단한 존재로 다루고 계신다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하나님이 예수님을 왜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이 그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시자 마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 자에게 나음을 선포하시고 갇힌 자, 눌린 자에게 놓임과 해방을 선포하시고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시는 놀라운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햇살이 힘있게 비취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이 영광스러운 일을 나에게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하늘 나라로 간다. 그 대신 내가 하던 일 네가 해야 돼. 내가 너를 세상에 보내노라. 사랑의교회 성도들아 내가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 너희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나와 같이 하라. 이 세상을 밝혀라. 이 세상을 변화시켜라. 이 세상을 치유하라. 이 세상을 구원하라. 하나님 나라로 바꾸어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일을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소명입니까 우리는 한 시라도 나를 보내신 이가 누구며, 왜 내가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배후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이렇게 기도하고 계십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절). 우리가 악에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악한 자도 우리를 건드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17절).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우리가 언제나 그 말씀을 통해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받도록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세상사람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도록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그 만큼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우리 마음에 담을 때 가슴속에서 흥분의 불길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시 한번 새로운 자존심이 생겨야 합니다. 이 말씀 때문에 '야, 나라는 존재가 정말 대단한 존재구나!'하고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나를 보는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려고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우리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을 가진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소명을 가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하면 가슴속에 불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감격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존심을 가진 자가 누리는 세 가지 은혜 우리가 이와 같이 우리의 특권과 소명에 대한 분명한 자존심과 넘치는 감격을 가지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큰 은혜를 받아 누리며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첫째로, 우리에게 분명한 자존심이 있으면 우리가 어떤 형편을 만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을 기억해 보십시오. 부활하신 후 40여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이제 하늘로 승천하시려고 하는 마지막, 그 엄숙한 순간에 예수님은 자기 앞에 있는 500여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이 받으신 권세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우리 나라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미국의 40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 또 중국대륙에 비하면 한반도는 마치 어쩌다가 생겨난 버짐처럼 보잘 것 없는 땅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그 나마도 허리가 반 동강이 나 있습니다. 그리고 인구라고 해봐야 남북한을 합해 6천만 명, 남한 만 하면 4-5천만 명밖에 안됩니다. 그럼에도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 요즘 눈만 뜨면 김 아무개의 이름을 수도 없이 듣지 않습니까 신문을 봐도 그의 이름을 빼 버리면 볼 게 하나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 조그마한 땅덩어리 하나 책임 진 사람이 가진 권세가 이토록 대단하다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생사의 모든 열쇠를 쥐고 계신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 높으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이 얼마나 대단한 약속입니까 그분은 말을 들어보나 마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은 대단한 것입니다. 왜 주님이 이렇게 해주시는 줄 아십니까 주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큰 약속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데 어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이사야 41장 10절을 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옆집에 있는 할아버지가 입에 침을 튀기면서 우리에게 이런 약속을 준다 해도 큰 위로와 감동을 얻을 것입니다. 하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라며 약속을 주시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만일 우리가 이 약속을 믿지 못하고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합니까 잘 기억하십시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곤고한 날의 은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과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소명을 가지고 살 때 얻게되는 또한가지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곤고한 날에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곤고한 날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실직을 했다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가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이 되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생활이 궁색해지는 대신에 다른 면에서 부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돈을 가지고 있을 때는 가난했던 영역이 돈을 잃게 됨으로써 부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제가 어려워지는 덕분에 믿음이 좋아지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기도를 잘 안 하던 사람이 기도하게 됩니다. 정신적으로도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있는 대로 마구 쓰고 버릴 때는 무엇이 올바른 가치관인지 잘 알지 못해서 거꾸로 살았지만 자기 손에 있던 것이 없어지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비단 영적인 차원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 형성에도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이 달라집니다. 부부 사이나 부모 자식 사이가 달라집니다. 나빴던 것은 다 거품 빠지듯이 빠지고 좋은 것들이 가정에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궁색해진다, 경제가 어려워진다, 잠깐 동안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것 가지고 손해본다고만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그런 어려움들이 결코 손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제 모일간지에 나온 어떤 주부의 편지를 읽고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최근에 우리 나라에 있는 은행 가운데서 두 개의 은행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 두 은행은 정말 산소 호흡기를 끼고 연명하는 환자처럼 오늘내일 하는 급박한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항간에는 외국 은행이 흡수한다는 말도 있고, 폐쇄한다는 말도 있고, 아무튼 여러 가지 말들이 오고 가니까 그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그 은행에 20여 년을 근무했던 40대 후반의 이 모 차장의 이야기인데 그가 며칠 전에 출근을 해서 자기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자기 몰래 꽂아 둔 아내의 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문에 그 편지의 내용이 공개된 것입니다. 저는 그 내용을 읽으면서 감동도 많이 받았고 또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여보, 한번 잠이 들면 애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꿈쩍 않고 주무시던 당신이 요즈음 중간에 자주 깨어나 앉아 있는 걸 보면서도 저는 모른 척하고 아무런 위로의 말도 해 드리지 못했지요. 집에 와선 은행 일을 입밖에도 내지 않는 당신이지만 저도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알고 있어요. 나중에 직원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처음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이 얼마나 방방이질을 치는지 한참 동안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답니다 여보, 20여 년 전 부엌도 없이 연탄 아궁이 하나뿐이었던 신림동 무허가 단칸방에서 이제는 전망 좋은 34평 짜리 아파트를 장만한 것도 당신이 꼬박꼬박 가져다주신 월급만으로 이뤘어요. 당신 첫 월급이 얼마인지 기억하세요 3만원이었어요. 그래도 우리는 매달 2만원씩 꼬박꼬박 저금했잖아요 우리 다시 그때 각오로 살아요. 그땐 방이 너무 추워 이불을 문에다 쳐 놓고도 살았는데 아무려면 그 때보다야 더 어려울까요 우리 민정이도 제 용돈은 제가 벌겠다며 며칠 전부터 아르바이트를 한대요. 이제는 무거운 짐 당신 혼자만 지지 마세요. 우리는 여전히 당신을 굳게 믿지만 설사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가족이 함께라면 이겨낼 수 있습니다.
여보, 힘내세요." 이 가정을 보십시오. 비록 그런 어려운 위기를 앞에 두고 근심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을 얼마나 많이 발견하고 있습니까 부부 사이에 서로가 더 사랑하게 되고, 어려움 속에서 서로를 더 존중하게 되고, 서로의 처지를 한 번 더 이해하게 되고, 자녀들은 부모를 이해하게 되고, 가족들 간에 서먹서먹했던 것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분위기로 바뀌었지 않습니까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자고 하는 각오로 가족이 하나가 되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절대 돈으로 살수 없는 보화들인 것입니다. 요즈음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이혼소송이 뚝 끊어졌다고 합니다. 참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이 손해만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 우리에게 손해 되게 하시지 않습니다. 이것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끝으로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과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소명을 분명하게 가지고 살면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전도하는 일에는 나름대로 많은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지난해 우리 교회에 등록한 3,100명 가운데 44.2%가 우리가 전도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10명중에 4명 내지 5명은 우리가 전도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회 어두운 구석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직장 신우회나 중소기업인들이 모이는 CBMC, 혹은 저마다 자기 분야에 속한 사람들끼리 수많은 성경공부 모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로 인해 이 사회가 뭔가 달라져도 크게 달라져야 할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는데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이 사회의 가치관에 우리 기독교인들이 무슨 변화를 주었다고 할 만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굵직굵직한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장로, 집사, 권사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는 사람이 어디 한둘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계가 바뀝니까 재계가 바뀝니까 교육계가 바뀝니까 심지어 종교계가 바뀝니까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입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는 만사를 정치로 풀고 정치로 통하는 풍토 속에 살아왔습니다. 법과 제도를 통한 정상적인 해결보다 정치적인 해결이라고 하는 미명 아래 온갖 탈법과 불법과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 우리마저 함께 물들어 있었습니다. 양심을 따지고 원칙과 규범을 준수하려는 사람은 고지식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찍혀 버리고, 편법에 능한 사람은 융통성 있고 능력이 있는 자로 인정받는 세상을 우리는 당연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조금 잘 살게 되었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을 나도 모르게 모방을 했습니다. 전도도 열심히 하고 모여서 성경공부도 잘하는 것을 봐서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 세상에 들어가서는 세상을 이끌기보다 세상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나라가 벼랑에 선 것 같은 위기를 만나게 되자 비로소 정치나 경제, 모든 면에서 우리가 크게 잘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다는 말입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목사의 한 사람으로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몇 사람 전도하는 것으로 우리의 사명이 끝났다고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이 사회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순기능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 사회의 문화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이 사회적인 병을 치유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정치인이 있습니까 무엇을 할 것인지 주님 앞에 물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공무원이 있습니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여러분이 분명히 확인하시고 고치시기를 바랍니다. 기업인이 있습니까 이대로는 안됩니다. 교육자가 있습니까 할 말이 없습니다. 교육자가 요사이 할 말이 있어요 지금 무슨 교육이 되고 있습니까 그러니 이제 와서라도 우리는 이 사회를 가만히 두고 따라갈 수는 없다고 하는 새로운 각오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가 처한 이어려운 난국을 조금이라도 빨리 헤쳐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우리가 세상사람들보다도 한 걸음 먼저 앞서서 솔선 수범을 해야 합니다. '아나바다'를 해야 되면 아나바다를 해야 합니다. 아껴 쓰고, 나누어 쓰고, 바꾸어 쓰고, 다시 쓰는 것이 필요하면 우리가 앞장서자는 것입니다. 금 모으기 캠페인이 나라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이 가진 금을 들고 나가십시오. 교회가 깃발 들고 금을 모으지는 않겠습니다. 얼굴이 뜨거워서 못하겠어요. 지금까지 잘못 할 때는 무엇을 하고 있다가 이제 나와서 금을 모으자고 야단법석을 떨겠습니까 그러니 개인적으로 금을 들고 나가서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장롱에 숨겨 놓은 달러가 있습니까 돈 뭉치가 있습니까 이젠 들고 나가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지금까지 외제중독증에 걸려서 외제 아니면 쳐다 보지도 않고, 값비싼 것이 아니면 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하루 빨리 전도된 가치관을 버리고 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면에서 솔선수범하고 앞장서면 이 사회가 바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이 치유될 줄 믿습니다. 우리 나라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우리의 잃어버렸던 자존심을 되찾읍시다. 요즈음 경제 위기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찡그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자존심을 분명하게 가질 때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비출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어 이 세상을 밝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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